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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라나시(Waranasi)..바라나시.. 인도 여행의 궁극적 종착역 바라나시. 갠지스강 사이에 있는 역사와 신화보다 오래 되었다는 도시,, 실제로도 가장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왔던 도시라고 한다. 인도인의 독특한 종교관 때문에 여기는 더없이 신성한 곳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말하면 여기 자체가 신의 영역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를 오기 위해 인도여행을 편입공부할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꿈꿔 왔다. 여기 오는 것이 인도에 오는 것이고 인도에 온다는 것은 여기에 온다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내 방식대로 편집해 보았다. 그만큼 바라나시는 인도에 온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반드시 오게 되는 곳이다. 어떤 사람은 그곳의 매력에 심취해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어떤이는 아예 눌러앉아버린다. 반면에 어떤 이는 극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몇일만에 바로 떠나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나의 바라나시는 부바네스와르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20시간짜리 기차안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부바네스와르에서 나와 소영이는 기차를 탔을 때 시간은 대략 점심시간정도 되었다. 우리가 탄 맞은편 좌석에는 일본인 남녀가 끝없는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압도되어 우리는 가만히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내 우리도 너무 심심했는지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하면서 기차안에서 맞는 나머지 절반의 하루를 오순도순 지냈다.
다음날 오전 10시정도일까... 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수시로 구글맵을 체크하고 있었고, 마침내 나의 좌표는 정확히 바라나시 정션역을 지시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창문밖을 보니 우리가 목표로 하던 곳이었다.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인 남녀와 함께 기차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숙소를 찾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기차에서 하룻밤을 지냈기 때문에 피로는 덜 풀려 있었다. 게다가 소영이는 배낭을 제외하고서라도 들어야 되는 짐이 4개나 되었다. 이렇듯 피곤과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를 찾아 정처없이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80루피(여기서 오토릭샤의 평균가는 100루피)짜리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우리는 옴게스트 하우스에 가달라고 했다..
< 우리들의 짐 >
하지만 바라나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 겉은 멀쩡하게 생긴 오트릭샤기사가 내려준 곳을 자세히 봤다. 분명 Om Guest house 라고 써져있긴 했지만,, Om 과 Guest house 중간에 home 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어.. 정식 명칭은 Om home guest house.. 한마디로 옴게스트하우스의 짝퉁이다. 이런식으로 바라나시에는 유명한 숙소이름을 약간 변형시킨 가짜숙소가 많다. 가드이북에도 주의사항으로 적혀있는 경우를 여기 오자마자 겪게 된 것이다. 위치도 중심에서 너무나 외진 곳에 있었다. 인적도 너무 뜸하고 상점들도 거의 없는 지역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나와서 다른곳에 가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오토릭샤요금은 100루피로 올라있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커미션관계(다른 말로 유착관계..인도여행하면서 지겹게 겪어야 하고 피해야 할 일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냥 강가를 따라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바라나시가 길 찾기 편한 것 중에 하나는 강을 따라서 모든 시설이 있기 때문에 길을 모르면 강을 따라가면 웬만하면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다. 물론 바라나시에 포함된 강이 정말 길다.... 우리는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인도식 명칭은 가트<Ghat>)에서 잠시 짐을 던져놓고 앉아서 쉬었다. 바라나시 아니랄까봐 계단은 온갖 동물들의 배설물이 묻었던 흔적들로 가득했다... 이날 옅은 안개와 구름이 끼어 있어 태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희미한 물안개로 덮힌 가트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강가의 건물들이 마치 현실의 것이 아닌 신화속의 그것이라고 착각할 만 했다.
이 지역은 강을 사이로 한쪽은 허허벌판이고 한쪽은 바라나시(Waranasi)시(市)였다. 따라서 강을 따라 한쪽은 건물들과 사람들로 북쩍이는 지역이고 나머지 반대편은 허허벌판에 저멀리 숲같은 곳이 보이는 형태였다.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강에 이따금식 한두척씩 보이는 작은 보트들,, 바로 여기가 바라나시였다. 우리는 다시 강을 따라 길을 걸었다. 이따금식 보트꾼들이 보트를 타달라는 호객을 흘려보내며 한참을 걸었다. 중간에 한국사람을 만나 우리의 목적지는 철수보트라고 한글말로 써진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수아저씨...인도사람인데 한국말을 너무 잘한다. 철수라는 이름은 한국 사람이 부르기 쉽게 붙힌 약칭이다.)
결국에는 찾게 된 옴 게스트 하우스.. 숙소전체가 한국인에게 점령당한 곳이었다. 마치 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으로써 만약 여기 머물렀다면 한국에서 MT를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사실 옴 게스트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100미터 내외가 한국인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같았다.
< 옴게스트 하우스 근처의 바라나시 골목길 >
우리는 옴 게스트하우스가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그 옆에 있는 Modern Vision이라는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하룻밤 싱글로 150루피만 지불하면 되는 저렴한 방이었다. 물론 내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숙소 6층에 방을 잡아 더 저렴한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처음에 여기서는 각자 개인적으로 이동하기로 암묵적으로 결정했던 것 같다. 어차피 방이 달라 나는 짐을 풀고 씻은 후에 바라나시의 강가로 나가보았다. 배가 고픈 관계로 아무데나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혼자 먹었다. 나중에 숙소에서 소영이를 만나 듣고보니 소영이도 혼자서 점심을 해결했다고 한다. 사실 여기는 한국 사람이 너무 많고 이미 2~4명씩 그룹이 짜여져 있어서 혼자 오게 된 사람이 새로운 동행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바라나시가 인도여행의 갑이지만 여기가 특별한 볼거리나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여기에 갔다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걷고 쉬고 먹고 자고 가끔씩 악기를 배우거나... 어느 도시에서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여기서의 전부이다. 정말 특별한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은 인도사람처럼 강물에서 목욕을 하면 되겠지만,, 강물을 가까이서 본다면 강에 손가락 하나 담그기도 싫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 일중에 제일 기억에 남은 일은 뿌자 의식을 본 것이었다. 해가 떨어진 강가에서 향을 피우고 음악을 틀며 성직자로 보이는 남자 몇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날 바라나시의 묘한 분위기와 맞물려 참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담아내었다. 나는 바라나시의 첫날밤의 정취를 감상중인데, 그 와중에도 소영이는 제일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잘생겼다는 얘기뿐이다;; 내일은 같이 사진을 찍는다나 어쩐다나...;;
원래 소영이와 바라나시에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둘이서 여기서 4일은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최초의 계획은 소영이가 보라라는 또 다른 한국 사람을 만남으로써 변했다. 당장 내일 밤에 네팔로 가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여기가 나와 소영이가 동행하는 마지막 도시긴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가버리다니...(소영아..ㅠㅠ) 시원섭섭하구나~
약간 엉뚱하고 황당하지만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만약 캘커타에서 혜언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보지 못했겠지만,, 무슨 인연 때문인지 다시 많나 뿌리, 부바네스와르, 바라나시에서 함께 동행했다. 지금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여행 초반부에 소영이와 영신이는 큰 존재감을 차지하는 동행들이다. 소영이는 여행이 2월말까지라고 했다. 한국에서 다시 연락을 하고 재회를 할 수 있을까...?
이날이 사실 1월9일이었다. 어느덧 여행한지도 열흘째다.. 이날 저녁은 Reva라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또 다른 한국인 천지인 숙소에 있는 부설식당에서 먹었다. 나와 소영이 그리고 보라 세명이서 라볶이와 수제비, 김치볶음밥을 시켜먹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한식이었다. 그렇지만 가격만 비싸고 맛은 저질이었다...(인도에서는 제대로 된 한식은 먹지 못한다..네팔에 가기 전까지는...) 그날 저녁 어차피 내일 저녁이면 떠날 사람이긴 하지만 보라양과 상당히 친해졌다. 숙소도 같은 곳이라서 내일 아침 일찍 갠지스강에 보트를 타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바라나시뿐만 아니라 인도의 북부지역은 겨울이 되면 아침에는 정말 춥다. 아마 북부의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가 그대로 이 지역을 덮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내 방은 제일 꼭대기층의 옥탑방 같은 곳이다. 히말라야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샤워를 하는 기분이란.. 온몸이 짜릿해지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이 마구마구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을 통해 느껴졌다.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ㅋㅋㅋ
이렇게 샤워를 마치고 밑층에 가서 소영이를 깨우고(소영이의 그때 잠을 덜 깬 모습이란.. ㅋㅋㅋㅋ) 로비에서 우리 세명은 다시 재회를 했다. 이때가 아침 6시 반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바로 강가에 나가자마자 만난 보트꾼은 그 유명한 철수 아저씨였다. 철수아저씨를 만난건 참 다행이었다. 귀찮은 흥정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됬으니 말이다. 그 사람은 워낙 많은 한국인을 상대해봤기 때문에 합리적 수준의 가격을 요구했다.
새벽녘 보트를 타고 강을 유람하며 유창한 한국말의 소유자 철수아저씨에게 가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만 가트(계단)하나하나도 인도에서 유력한 가문들이 만든 것이란다. 워낙 신성한 도시다보니 경쟁적으로 가트를 만들려고 했다나... 그러는 사이에 우리 보트는 화장터 근처에 다다르고 있었다. 바라나시가 유명한 이유.. 절대로 꺼지지 않는 화장터의 불빛 때문이다. 인도인이 제일 바라는 것이 사후 바라나시에서 화장되는 것..윤회의 사슬을 벗기 때문.. 그런 인도의 전통이 있는 한 바라나시 화장터의 불은 절대로 꺼지지않는다. 나중에 화장터에 직접 가보았지만, 한 사람이 한줌 재로 돌아가는 것을 지천에서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인도같이 곳에서는 더더욱...
바라나시...여행 초반에 바라나시를 집어넣은 이유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어서였다. 나는 여기를 끝마치면 그때부터 진정한 인도방랑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한다. 바라나시까지만 정해진 길이고 여기를 벗어나는 순간 포장된 길은 사라진다. 오직 나의 감에만 의지하여 광활한 인도대륙을 해집고 다닐 것이다. 조그만 디우(물위에 띄우는 조금만 접시)에 나의 소원을 빌고 갠지스강에 띄웠다. 디우의 촛불은 금방 사그라들었고 이내 가라앉았다. 사라져 가는 조그만 소원보따리를 바라보며 잠깐 감회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철수아저씨와의 대화 삼매경으로 빠져들었다. 과거는 과거로써 덮고 다가오는 미래를 기다리며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나의 생각이 그렇다. 오늘은 해가 뜰 것 같았다. 보트에서 내려서 조촐히 아침을 먹고 나니까 옅은 햇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 소원을 빌기 위해 강물 위에 띄우는 디우 >
그 뒤로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전에 강가를 조금 거닐거나 거리에서 물건을 구경했다. 그리고 제일 북쪽에 있는 open hands cafe에 가서 케익을 먹었던 일이 기억에 난다. 아마 인도여행중 제일 맛있었던 케익 맛이 아닐까 싶다. 우리 셋은 먹으면서 환호성의 연속이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점심은 또 한식이었다. 라가카페라고 역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적이었는데, 가이드북에는 웬만한 한국의 식당의 맛에 꿀리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다. 들어가보니 순 한국인 뿐이다. 한국식당에 온 것 같았다. 여행중에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한식을 먹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김치찌개를 시키고, 소영이는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보라양은 무엇을 시켰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여튼 우리는 여기서 배불리 먹고 블루라씨(Blue Lassi)가게(이지역에서 제일 맛있는 라씨집)에 갔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3~4시가 되고 있었다. 저녁 8시 정도되면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여행중에는 언제나 그렇지만 막상 보낼 때는 담담하다. 그리고 혼자 남은 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빈자리가 점점 크게 느껴진다. 그러다 다시 뜻이 맞는 동행을 만나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바라나시에서는 소영이가 떠난후 동행을 만나지 못했다. 여튼 그날 저녁 떠나기 1~2시간 남았을 때...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늦은밤 혼자서 가트를 가보았다. 보름달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둥근둥근 보름달,, 그리운 누군가가 떠올랐다. 반드시 여기에 오고 싶어했던..대신에 내가 왔지만,, 만남의 땅이기도 한 인도.. 여행중에 쌓아올린 인연은 그 무엇보다 여행이 준 값진 선물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숙소를 옳겼다. 너무 높아서 올라가기 힘들고 추운 것도 있었지만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다. 두 번째로 잡은 숙소는 도로변에 있는 곳이었지만 나름 깨끗한 곳이었다. 정전이 자주 되어서 결국엔 뜨거운 물로 씻지 못하였지만, 내가 알아보러 갔을 때는 뜨거운 물도 나왔었다. 혼자가 되어 버린 날은 1월 11일.. 바라나시에는 9일부터 12일까지 있었다. 11~12일 내가 무엇을 했는지.. 그저 강가를 거슬러 걷거나 앉아있거나 가끔씩 화장터에 가거나.. 먹고 자고 하는 것을 빼면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 open hands cafe >
둘이서 셋이서 아니면 그 이상 되는 한국인들 무리와 동떨어져 나는 혼자서 먹고 자고 했다. 사실 여기 있으면서 몸이 계속 쇠약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화장터에 오래 있으면 반드시 한번은 아프게 된다고 들었다. 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도에서 신내림을 받은 사람의 절반이 여기에 살고 신내림을 받으면 일단 갠지스강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그만큼 이 땅은 요기가 깃들은 땅이기도 하다. 가이드북에 묘사된 것처럼 현실공간에 신화속의 공간이 끼어들어 있는 곳이랄까.... 적응한자에게는 정말 편안한 곳이겠지만, 나처럼 적응하지 못한 자에게는 오래 있으면 반드시 몸에 탈이 날것 같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외로움도..
사실 아시가트는 정말 좋았다. 보통 인도에 대한 기행문을 보면 바라나시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될 것이다. 영혼과 정신의 신성한 도시 바라나시로... 하지만 실제는 너무 다르다. 강가를 걸으면 쉴새도 없이 보트꾼들과 마사지꾼들의 호객소리가 들려온다. 집요하기까지 해서 조금이라도 얼굴을 마주치면 계속 따라온다. (사실 집요하기로는 엽서같은 것을 파는 꼬마들이 제일이다.) 똥들과 쓰레기는 별문제가 되지 않으나 항상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게 내가 느낀 바라나시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제일 북쪽에 있는 아시가트는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거기에는 따뜻한 햇빛을 이불삼아 낮잠을 자려는 사람들과, 독서하는 사람들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가 있는 곳이었다. 바라나시를 떠날 때까지 그곳의 그늘에 앉아 있곤 하였다. 거기서 바라보는 메인가트와 강의 풍경은 압권이었다. 오전 안개가 완전히 거치지 않았을 때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들과 건너편의 황무지 그리고 멀리 보이는 숲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들의 땅 로스로리엔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바라나시의 소들은 유난히 온순했던 것 같다. 다른 곳에서 가까이 가면 뿔부터 들이대는 소들과 달리 여기 소는 좀 더럽긴 했다. 하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쫄아드는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 아시 가트의 풍경들 >
< 아시 가트의 풍경들 >
< 아시 가트의 풍경들 >
이렇게 바라나시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어도 몸은 계속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제 다른곳도 가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바라나시에서 4일째인 12일 아침에 역까지 가서 당일밤에 출발하는 오르차행 기차표를 샀다. 여기가 나에게 맞는것도 않맞는것도 아니지만, 웬지 떠나고 싶어졌다고 할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행을 한참 하다가 바라나시를 갔으면 어떨까 싶다. 동행들이 초반에 네팔로 가버리는 바람에 나 혼자서 할 일을 찾아야 했고, 소일거리 찾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였지만, 아직 인도에 경계심과 낮설음이 남아있을 시기여서 여기의 진면목을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처럼 여행 중반이나 마지막에 갔으면 좀 더 기억에 남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여기서 어슬렁거리고 뭘 먹고 하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인도가 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유독 더 그런 것 같았다. 배낭을 메고 바라나시 정션역으로 가는 길.. 더러운 거리와 북쩍이는 사람들.. 여기를 다시 오게 되는 날이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이 들었다.
< 제 블로그 http://blog.naver.com/hidellok 에서 퍼왔습니다~ .
첫댓글 인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생생한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 인도여행은 비행기표를 사는순간부터 시작이라죠~
2008년도에 나도 다녀왔는데 바라나시는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곳~~또한 경이로울 정도로의 종교의식을 보는것도 인생의 도움이되지요~~그때를 다시금 생각나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붉은남작님!!!
뿌자의식을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인도는 정말 어느 여행지보다 인상이 강렬했습니다
사진에서 문듯 보이는 한국어!!! 자세히 보니 여행책 표지군요 ㅋㅋㅋ 재미있었겠어요~ 부러워요~
다른건 몰라도 저 여행책이 없으면 여행이 정말 다이나믹 해져요~ 막상 여행중에는 힘들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 추억이네요 ㅎㅎ
언제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네~ 부럽다!!
언제든 가슴에 품고 있으면 갈 수 있는 날이 올거에요~! 나이드신 분들도 많이 오세요
고생했네~~~강아지는 세계 어딜가나 귀엽구나.ㅎㅎ
흠..내가 사진을 잘 찍어서 그렇지~! ㅋㅋㅋㅋ
글을 재밌게 잘 쓰시네요.
감사합니다~
여행전문가 같습니다.
정말 글도 잘 쓰시고
책 내셔도 될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여행전문가라니요~ 그저 여행을 좋아서 남들이 갔던 길만 따라가는 소심한 사람이지요
저도 인도 여행 가보고 싶어요..
멋집니다
저도 언젠가는 여행 갈 날이 오겠죠?
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