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32) - 조지아 탐방 끝내고 아르메니아로
- 새롭게 떠오르는 코카서스 여행기(3)
1. ‘나, 여기 있다’를 새기고 떠난 조지아
6월 18일(월), 아침에 아내랑 한 시간여 숙소주변을 산책하였다. 울창한 숲 속의 공기가 신선하고 좔좔 흐르는 강물이 운치 있다. 오래 전 이스라엘의 요단강을 접하였을 한국의 넓은 강에 비하면 시냇물 같은 좁은 강줄기에 실망하였는데 코카서스의 강 도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 작은 강물이 시리아에서 발원하여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카스피 해로 이어지는 1,200여km의 큰 물줄기라니 놀랍다.
오전 9시, 휴양도시 보르조미를 출발하여 역사도시 아할치헤로 향하였다. 삼림 우거진 협곡을 벗어나니 거대한 암벽들이 병풍처럼 둘러 싼 산악지대가 나타난다. 단선으로 이어진 철길,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엇갈려 교차하는 도로를 따라 한 시간여 달리니 거대한 성채가 우뚝 솟은 작은 도시에 이른다. 아할치헤의 라바티 성, 9세기에 교회로 세워졌다가 한 때는 페르시아의 정원으로, 17~8세기에는 오스만투르크의 이슬람사원이기도 했던 굴곡의 역사를 지닌 성채를 201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성채를 한 바퀴 돌아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전원 풍경의 시내와 주변을 감싼 평원을 조망하며 이곳을 훑고 간 세계사의 숨결을 되새겼다.
기독교 성당, 페르시아, 정원, 이슬람 사원, 오스만트루크 성채 등 굴곡의 역사를 지닌 라바티 성
시내의 중심지에 대기 중인 버스 앞쪽의 산뜻한 투명유리 건물은 경찰서, 조지아의 모든 경찰관서는 투명유리건물이란다. 민원사항을 투명하게 처리하겠다는 조지아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 일상의 민원처럼 거대한 이권도 그렇게 처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부연한다. 모든 권력자들의 속성이 그러함을 필부도 알고 있는 터, 부~페 음식이 어떻고 하는 카톡을 본 가족이 여행 중 왠 부패가 등장 하는가 하며 놀랐다는데 이런 정황을 꿰뚫어 보았을까?
11시 넘어 다음 행선지인 바르지아드로 출발, 한 시간여 기암괴벽의 협곡을 달려 목적지 가까운 도로변의 아늑한 휴식처에서 점심을 든다. 감자양송이 스프가 별미, 빵과 야채 셀러드 등 다른 메뉴는 비슷하다.
바르지아드는 유명한 동굴 관광지, 조지아에 세 곳의 동굴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이 가장 유명한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 거대한 암벽에 위험을 피하여 은거한 동굴이 700여개나 남아 있는 탐사 길이 약간 위험하다. 미로처럼 얽힌 동굴 안에는 교회와 우물 등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았던 선인들의 숨결이 살아 있다. 가파른 동굴 탐사 후 소감, ‘나, 여기 있다‘는 바르지아드의 의미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든지 제 자리에 있어야 하리.
'나, 여기 있다'를 일깬 바르지아드 동굴
오후 3시, 바르지아드 동굴을 출발하여 국경지대로 향하였다. 나흘간 친절하게 안내를 맡은 조지아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 조지아를 제대로 살피려면 한 번 더 오시라며 손을 흔든다. 바통을 이어받은 총괄가이드가 3박4일의 조지아 여정을 되짚어 요약, 적은 기록 중 미진한 부분을 채워주어 고맙다.
서남 방향으로 한 시간여 험준한 협곡을 달리니 푸른 초원이 끝없이 이어지는 고원이 나타난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 국경지대에 이르니 오후 6시, 버스에서 내려 조지아 출국절차를 밟는 동안 고원지대라 바깥 날씨가 쌀쌀하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출입국자는 우리 일행뿐, 아르메니아에 접어드니 도로사정이 훨씬 양호하다. 한국과 스웨덴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는 시간, 가이드가 인터넷을 살펴 후반 10분경까지 0 대 0이라 알려주더니 아르메니아 입국수속 마치고 확인한 결과 0 대 1로 석패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아르메니아가 본거지인 총괄가이드의 설명, ‘인접한 국가지만 조지아보다 아르메니아의 역사가 더 길어 세계 최초, 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볼거리들이 많다. 한때는 세계를 호령하던 아르메니아의 현재 면적은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의 좁은 국토, 인구도 300여 만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유대인과 더불어 세계 곳곳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 흩어져 살고 있다.’ 5박6일의 아르메니아 여정을 충실히 즐기시라.
한 시간 여 달려 아르메나이 제2도시 귐리를 지난다. 부근의 양식장이 딸린 큼직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출발하니 저녁 9시, 목적지인 예르반에는 밤 11시가 넘어서 도착하였다. 숙소에 여장을 푸니 12시가 가깝다. 새로운 나라의 여정이 좋은 날들이기를 빌며 서둘러 잠자리에 들다.
2. 2800년 고도, 예르반의 이모저모
우리가 타는 버스 뒤편에 ‘예르반 2800’이라 새긴 로고가 붙어 있다. 예르반이 2800년 역사를 지닌 오랜 도시인 것을 강조하는 엠블럼이다. 예르반은 해발 800~1,000미터의 고도에 100만 인구를 지닌 아르메니아의 수도다.
오전 9시, 숙소를 나서 예르반 시내와 인근 유적지 탐사에 나섰다. 먼저 찾은 곳은 예레반에서 한 시간거리의 에치미아진, 가는 길목의 차창으로 정상에 눈이 쌓인 쌍봉우리의 높은 산이 시야에 잡힌다.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아라랏산, 터키의 동쪽 끝에 있어 일반인이 찾아가기 어렵다는 명산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음이 신기하다. 아내는 전날 아르메니아 국경을 넘은 다음 정상에 눈이 쌓인 산을 멀리서 바라보면서도 그 산이 아라랏산인 것은 몰랐다며 선명한 무지개가 비쳐 신비로웠다고 술회, 가이드가 그 말을 수긍한다.
에치미아진은 세계최초의 교회(서기 301년, 콘스탄티노플의 허락으로 로마교회가 세워진 313년보다 앞선다)로 알려진 마더 사도 교회가 있는 곳,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가 성 그레고리에게 이곳에 교회를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지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수리공사가 진행 중인데도 개방,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국내외의 많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교회 안의 박물관에는 진귀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 파편으로 알려진 나무 조각,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찌른 창의 정수리부분(4개의 창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중 진품이라는 설명), 교회 옆의 인쇄소에서 찍었다는 성서 자료 등.
에치미아진 인근에 7세기에 지었다가 지금은 잔해만 남아 있는 즈바르노츠 사원이 있다. 마더 사도 교회와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물, 이곳을 찾아 석조 기초만 남은 사원과 당시상황을 이해할 자료들을 보관한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사원에 들어서니 웅장한 화음의 성가가 울려퍼진다. 남녀 4중창단이 방문객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노래와 관광자료를 담은 시드를 판매하기도. 돌아나오는 시간, 10여분 합창과 독창으로 이어지는 음악 감상의 시간을 가지며 즐거운 시간이었다.
폐허로 변한 즈바르노츠 사원에서 함께 한 코카서스 일행
사원 탐사를 마치고 나오니 12시, 정문 가까운 곳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살구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식탁이 운치 있고 악사가 들려주는 현악기의 연주가 청아하다. 주 메뉴인 통닭구이가 일품이고 곁에 앉은 일행이 살구나무 아래 있는 사다리에 올라 따준 살구 맛이 향긋하다. 현지가이드는 아르메니아의 살구 맛이 으뜸인데 지금이 한창 제철이라고 설명한다.
살구 따기에 힘을 모은 일행들
점심 후 다시 예르반으로 복귀, 첫 번째 찾은 곳은 아르메니아 브랜드(꼬냑) 공장, 아라랏산 주변에서 자란 포도 등을 숙성하여 만든 아르메니아 산 꼬냑의 품질이 최상이라는 공장 측의 설명, 제조현황을 살핀 후 3년산과 10년산 꼬냑을 시음하며 모두들 유쾌한 기분이다. 2차 대전 종전을 다루는 얄타회담 때 스탈린이 이곳 명주 꼬냑을 대접, 맛이 좋다고 칭찬하는 처칠에게 스탈린이 매년 수 천병의 꼬냑을 선물하였다고 현지가이드가 덧붙인다.
이어서 찾은 곳은 제노사이드(제1차 대전 때 오스만 터키가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사건) 추모공원, 예르반 시내의 높은 언덕에 세워진 첨탑과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불꽃 현장을 돌아보며 세계 곳곳에 도사린 처절한 역사적 아픔이 말끔히 치유되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어서 찾은 곳은 빅토리아 공원의 아르메니아 마더 상, 스탈린 동상을 세웠던 자리에 어머니상을 대신 세웠다. 전쟁과 공포를 물리칠 위대한 힘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에 있음을 새기려는 뜻이리라.
다음으로 찾은 곳은 넓은 광장에 각종 조각품이 전시되고 수백 개 계단을 올라 예레반 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캐스캐이드, 광장의 조각품 중에는 한국 조각가가 제작한 작품(폐타이어로 만든 사자 상)도 들어 있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계단 꼭대기에 올라 시내를 조망하니 오전부터 자주 시야에 들어온 아라랏 산의 모습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예레반 여행은 만족, 나머지는 푸짐한 덤이다.
예레반 시내에서 바라본 아라랏산의 웅자
예레반 탐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5시가 가깝다. 방에 들러 소지품을 내려놓고 한 시간여 숙소 주변의 중앙광장, 오페라광장 등을 돌아본 후 식당으로 향하였다. 시내 곳곳의 공중장소에서 TV로 생중계되는 월드컵 축구를 관전하는 팬들이 눈에 띤다. 중계화면은 일본과 컬럼비아 경기, 초반에 일본이 1 대 0으로 리드하다가 동점을 허용, 후반에 다시 일본이 결승골을 넣어 2 대 1로 일본이 승리하는 것을 살피며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저녁을 들고 호텔에 돌아오니 8시가 가깝다. 종일 전에 잘 알지 못하던 아르메니아의 역사와 문화를 밀도 있게 체험한 알찬 일정을 보낸 것이 뿌듯하다. 낯선 곳의 역사와 문화를 열심히 학습한 일행,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