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1(수)일 사도회원 4명(회장 정상덕 마리노, 정재민 스테파노,
유재균 요한보스코, 권기창 즈가리아)은 뜻 깊은 하루를 보내고자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님 생가와 “가톨릭 군위묘원”을 찾아
김수환 추기경님의 높으신 뜻과 고인이 되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
오는 길엔 인각사에 들러 삼국유사를 집필하신 “일연스님”을 떠올리며
우리역사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1.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생가.
이 초가(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번지)는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5살 되던 해 이사와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소신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 신앙의 꿈을 키우며 사셨던 곳으로
그동안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허물어져가는 것을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2006년 복원하였다.
우리나라 최초 추기경으로서 생전 종교의 벽을 넘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각막을 기증하면서
사랑과 나눔, 희생과 봉사의 생활철학을 남겨놓으신 이 시대의 표상이며
“사랑과 평화와 관용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였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나는 바보다.”라고
하신 겸손의 말씀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현수막의 글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뜻을 깊이 새겨봅니다.
(군위군 관광안내도에서...)
13시 30분 경 도착하여 주차장에 얌전히 주차하였다.
추기경의 집안은 원래 충남 논산군 연산의 양반 가문으로 충청도 땅에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의 집안이다.
조부이신 김요안 공은 광산 김씨로 병인박해 때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옥중 순교했고, 조모 강말손 여사는 남편 순교 후에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갖은 고생에도 교우들의 뒷바라지를 성심으로 하였으며,
당시 유복자로 추기경의 부친이신 영석(요셉)이 태어났다.
김영석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했던 김보록 신부(대구교구 설립자)의
일을 도왔으며 동학난을 만나 칠곡의 장자동 옹기굴로 피신하게 된다.
이때 뮈뗄, 김보록 두 신부의 중매로 대구의 유명한 신자 집안인
달성 서씨 서용서 회장의 딸 중하(마르띠나)와 혼인을 하였다.
이분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이다.
그 후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의 옹기굴, 대구 남산동을 전전하던
추기경의 부모는 칠곡 산나무골과 선산을 거쳐 1922년 4월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슬하에는 모두 6남 2녀를 두었는데 군위에 들어온
해인 1922년 5월 8일 (음력)에 낳은 막내가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며,
추기경은 외가에서 태어났다.
추기경이 8살 되던 해 아버지는 해수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었으며
어려운 형편에서도 이 초가에서 공소를 열었다.
추기경은 군위 보통학교를 마치고 지금 대구 가톨릭대의 전신인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이 집에서 형인 동한(카를로)
신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신앙과 꿈을 키웠으며,
생전에 가끔 이 집을 찾아와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생가는 방 둘에 정지 하나인 작은 초가로 그 당시 어려웠던
형편을 말하는 듯 하다.
실내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이번에 다 찍으면 다음에 찍을 게 없다는
묘한 논리에 인근의 군위묘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참말이가?
2. 가톨릭 군위묘원.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산69-1에 있는 가톨릭 군위묘원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1986년 설립하여 매장식과 납골식이 함께
운영되는 한국 교회 최초의 납골 시설이며 2001년 5월 리모델링하여
대지면적 7726㎡, 연건평 1900㎡, 지상 3층 규모를 갖추었다.
1~2층 1만944기의 봉안함을 안치할 수 있고 넓은 지하 추모실과
3층엔 성당과 분향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관리사무소 건너편의
언덕 위에는 깔끔한 아파트형 모양을 한 성모의 정원도 있다.
이곳은 고인이 된 신자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비신자의 경우 가족 중
신자가 있는 고인만이 이곳에 안치될 수 있으며 사용기간은
봉안일로부터 30년, 15년씩 2회 연장(재계약)이 가능하다.
관리사무소와 성당, 식당이 있는 황토색 건물이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모습을 하고 있네요.
아파트와 다를바가 없는 모습.
"이보게들 오늘 내 제삿날이니 102동으로 시간 맞춰 모이게나" 할 것 같다.
판석에 새겨진 글을 유심히 살펴보며 고인의 넋을 기려본다.
3. 인각사.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에 있는 인각사는 사적 제374호로서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학소대 바위위에 기린이 뿔을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고 전해지며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되었고,
고려 충열왕이 왕명으로 토지를 내려 보각국사 일연의 하산소로 정한 곳이다. 화산과 기린의 전설이 서린 학소대가 병풍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위천이 서쪽으로 휘감아 도는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연스님은 이곳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비롯한 불교서적 100여권을
저술하였고,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열었다.
일연스님이 이곳에서 완성하신 삼국유사는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전해주고 고조선을 대한민국의 정통으로 삼아
우리 민족이 4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우수한 민족임을
깨우쳐준 소중한 보배요, 우리 민족의 혼이라 할 수 있다.
(안내판과 삼국유사의 고장에서....)
(군위군 관광안내도에서...)
학소대를 배경으로 한 인각사 표지석 앞.
전경.
각종 안내판들.
일연시비.
극락전과 석탑.
국사전.
좌측의 보물 제428호 보각국사정조지탑과
우측의 경북유형문화제 제339호 석불좌상.
일연선사 생애관.
가는 날이 장날인지 오늘따라 휴관이라 생애관 내부를 볼 수가 없었다.
보물 제428호 보각국사비.
일연스님의 비석으로 앞면에는 스님의 행적과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등의 이야기를 세겼으며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글씨가 후대에 크게 회손당하여
우측 일부만 겨우 글자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절 남쪽에 스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탁본을 통해
원문대로 재현한 비석이 있다.
인각사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부재들.
첫댓글 자세하고 상세한 자료와 함께 사진 잘 보았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사진 촬영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는데, 언제 이렇게 상세하게 올리셨나요?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
여름이 와있는 6월의 푸르름과 싱그러움
아름답습니다.
조만간 발을 디디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늘고움님 항상 달아주시는 답글 진심 감사드리고 언제 한번 시간 나시면 다녀 오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함께한 stephen/jung님, 웰빙님, 보람되고 즐거운 하루였고
이는 정재민(스테파노)님의 운전봉사가 있었기에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자상한 사진 상세한 소개글
정성어린 게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