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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공간을 가늠할 수 없는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곳.
‘Gate of Paradise’, 천국의 문이라 칭할 만큼 원초적인 자연의 품으로 인도하는 곳.
깊고 높은 산속, 한여름에도 모포를 두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나라, ‘The Kingdom in the Sky’ 해발 3,000여 m의 멀고 먼 길을 찾아간 그곳, 원주민들의 소박한 삶이 위로를 건네준다.
- ▲ 일상을 말과 함께 살아가는 말레아레아 사람들은 말과 함께 있을 때 더 늠름하고 당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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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경이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 와서야 다시금 느낀다, 지구는 참으로 경이로운 곳이라고. 수천 미터 길이의 산맥들이 평화로운 마을들이 흩어져 있는 평원 저 너머로 아스라이 이어지고 있다. 남아공화국에서 레소토의 수도 마세루를 거쳐 이틀을 달려온 이곳, 하늘과 맞닿은 듯한 산골 동네의 포근함이 마치 천국의 휴식과 같다.
- ▲ 1 가파른 산자락 아래, 집들은 산허리에 달라 붙어있고 초원 위에선 말이 노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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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드라켄스버그의 웅장한 산자락이 끝없이 펼쳐진다. 수도 마세루를 출발한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웅장한 산자락 아래를 쉼 없이 달린다. 주변은 온통 울퉁불퉁한 바위와 산자락이 드러나는 평화로운 산과 골짜기들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그 골짜기 산비탈에 달라붙듯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마세루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한 20인승 미니버스는 좌석을 꽉 채우고도 도중에 차를 세워 빈틈없이 사람을 싣고 달린다. 차는 여러 차례 정차를 반복한다. 중간 어느 마을에서는 엄마와 어린 아이 셋이 그 좁은 미니버스 안으로 또 들어온다. 아이 셋 중 가장 어린 아이 하나를 내 무릎에 앉히자 아이는 까만 두 손을 꼭 잡은 채 먼산을 바라본다. 레소토의 평화로운 국토가 내 가슴 안으로 들어온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 ▲ 2 말레아레아 로지의 방갈로 타입 숙소. 3 독특한 문양으로 채색한 집들이 인상적인 말레아레아 마을. 4 말레아레아 타운의 오랜 집들도 따스한 풍경이다. 5 너른 부지의 말레아레아 로지는 밤이 되면, 더욱 환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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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이 허락한 위로의 힘, 말레아레아
마세루에서 약 84km 떨어져 있는 말레아레아는 레소토 남서부 깊은 산자락에 위치한 골짜기 마을이다. 마페텡(Mafeteng)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린 후 작은 상점들이 늘어선 삼거리 모체쿠아 (Motsekuoa)에서 하차한다.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리면, 말레아레아 로지 간판이 나타난다. 다시 그곳에서 7km의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말레아레아 로지에 닿는다.
- ▲ 말을 타고 이어지는 말레아레아 트레킹은 산허리를 타고, 강을 건너며, 초원과 들판을 지나는 천국의 세계를 경험하는 이색 페험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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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산길을 한 10분 달렸다. 작은 골짜기 능선을 넘자마자, ‘Gate of Paradise’라는 작은 팻말이 보인다. 이후로 그 팻말의 진가를 실감할 수 있는 장엄하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광활한 산 능선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다. 누구나 이 능선을 넘던 그 찰나의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 아래 천국 같은 산골마을의 풍경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감동에 겨운 가슴을 부여잡고 시선 둘 곳을 모르는 사이, 미니버스는 비탈진 산길을 부지런히 내려간다.
- ▲ 1 말들의 천국, 말레아레아의 말들은 온순하다. 2 건강하고 미끈한 말들은 말레아레아의 상징이다. 3 오래된 말 안장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4 트레킹을 나서기 전 말들은 부지런히 영양 보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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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자락에 당도하자, 말레아레아 로지 간판이 보인다. 모든 차량은 이곳에서 멈추어 휴식을 취한다. 마을에 도착하자, 산비탈 마구간 풍경이 시선을 끈다. 조랑말들이 한가로이 먹이를 먹는 모습이 정겹다. 큰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너른 정원에 고깔모자형태의 지붕을 인 방갈로들의 풍경이 고목 아래 운치 있다. 남아공에서 이주해 온 주인이 오랫동안 운영해 온 포니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전원 코티지로 유명한 곳이다.
동네 주민과 함께 마을 산책을 나선다. ‘조수아’라는 이름의 청년과 거닐며, 마을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말레아레아마을 이곳저곳의 신비를 파헤쳐 본다. 암석으로 지어진 이 지방 전통 가옥들은 돌로 토대를 쌓고 벽을 올린 후 지붕엔 마른 풀잎을 엮어 올렸다. 넓게 펼쳐진 구릉과 능선 아래로 동네 꼬마들은 조랑말을 몰며 놀기에 바쁘다. 말을 달리며 초원을 누비는 모습은 마치 피안의 세계 같다.
어린 아이들은 외지에서 온 손님을 자연스레 반긴다. 두 손을 크게 흔들기도 하고,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내 손을 붙잡고 오래도록 손을 놓지 않는 모습, 사람이 무척 그리웠던 모양이다. 푸른 초원 위에는 염소, 말, 흑 돼지, 송아지 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고, 지천에 흐드러진 이름 모를 꽃들과 거대한 선인장 군락이 산 능선 위로 그득 펼쳐져 있다.
산이 높은 탓일까? 하늘이 낮은 탓일까? 산과 하늘이 서로 맞닿아 있으며, 거대하게 이어지는 산자락 아래로 계곡은 깊고 아찔하다. 웅대한 대자연의 파노라마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장엄한 풍경들이 사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뿐히 초원 위 산길을 거닐다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초원 위 흐드러진 꽃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실로 낙원이라 부를 만한 평화로운 곳이란 소박하고 꾸밈없는 태초 자연 그대로의 모습 아닌가.
정원의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주문한다. 저 멀리 웅장하게 펼쳐지는 먼 산자락을 바라보며, 마음도 가다듬는다. 영혼의 휴식이란 무엇일까? 자연의 품속에서 원시 향기에 눈과 마음을 기울이고, 고요한 휴식과 평화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온전한 휴식 아닐까? 저 멀리 산자락 위로 검은 먹구름이 하나 둘 몰려온다. 비가 올 모양이다.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