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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품꾼의 비유
참고말씀: 욥34:11; 시62:12; 사40:10; 렘32:19; 겔33:20; 마3:9,10; 5:11,12,46; 6:1; 10:41,42; 11:11; 19:23~30; 눅18:11,12; 고전3:12~15; 4:1,2,5; 고후5:10; 엡2:8~10; 빌3:14; 딤후4:8; 히11:6; 약1:12; 벧전5:2~4; 계2:10; 3:8; 22:12
읽을말씀: 마20:1~16
주제말씀: 마20:14,15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첫째, 본 비유는 영생(구원)에 관한 설명입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4,15)
‘포도원 품꾼들 비유’는 4복음서 중 오직 이곳에만 등장하는데, ‘포도원’은 교회(또는 천국), ‘집주인’은 하나님을, ‘품꾼’은 세상 사람을, ‘청지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장터’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세상을, 품꾼들을 취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서 교회(또는 천국)으로 인도하심을 각각 가리킵니다. 참고로, 교회(헬, 에클레시아)란 이 세상에서부터 불러냄을 받은 성도들의 연합체를 가리킵니다.
사실 이 비유는 앞장의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마19:23~30)에 연관 것으로써, 영생의 문제 있어서‘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에 대해서 재차 밝히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30) /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절)
물론 여기서 ‘먼저 된 자’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 받고 복음의 진리를 먼저 들은 유대인들입니다. 또한 ‘나중 된 자’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그보다 늦게 접한 이방인들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누구까지도 다 포함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성도입니다.
본 비유를 이해하는데 주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본 비유의 목적이 9,10절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9,10절) 즉 먼저 된 자나 나중 된 자가 모두 똑같은 품삯을 받는다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디에 있습니까? 14,15절입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4,15절) 즉 하나님께서 먼저 온 자에게나 나중 온 자에게나 동일한 구원을 베푸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한 행동이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내 것’(헬 에모스)는 ‘자신의 고유 영역에 속한 일’이란 뜻으로,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의 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새삼 깨닫게 됩니까?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그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의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사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그런데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무엇을 내세웠습니까? 자신들의 혈통입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9,10)
또한 자신들의 공로나 노력을 내세웠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눅18:11,12)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명심해야 합니까? 구원은 그 어떠한 인간적 공로와 노력, 혈통에 의해서 획득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될 수 있음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 받고 그의 일군이 된 것은 전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명심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무엇을 경계해야 합니까?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줄 알았던 것처럼(10절), 소위 모태신앙이나 먼저(오래)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당연히 구원을 받을 줄로 착각하는 것, 곧 영적 자만심을 늘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 믿은 자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절)
둘째, 본 비유는 상급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마20:10~12)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비유는 주로 무엇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까? 구원(영생)입니다. 대신 무엇에 관한 것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습니까? 상급(賞給)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로 잘못 연결하곤 합니까? ‘불공정의 문제’입니다. 특히 ‘더 받을 줄 알았더니’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등의 표현에 주목하여 집주인의 불공정 문제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5절 하)
하지만 우리는 분명 성경이 구원의 문제와 별개로 상급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되 먼저 구원(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요,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선한 일에 힘쓰고 그 결과로써 상급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언급하셨고,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마5:46 상) /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6:1)
또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많이 언급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욥34:11) /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시62:12) /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사40:10 하) /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렘32:19 하) /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겔33:20 하)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0)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구원 받은 것 자체만으로도 먼저 감사할 뿐만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일꾼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마음껏 섬기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고, 또한 이것들을 일일이 기록해두셨다가 후일에 상급으로 모두 갚아주실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행위에 따르는 상급이나 보상은 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원래 ‘상급’이라는 말은 어떤 선행이나 일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답’ 또는 ‘보응’을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되되, 구원 얻은 성도들의 경우는 최후 심판 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기의 행위에 대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나,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불신자들의 경우는 그들이 세상 살 동안 지은 죄에 대한 최후 심판 때의 보응 곧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게 되는 하나님의 온전한 선물인 반면에(엡2:8,9) 상급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대가라는 점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3:14)
참고로, 성경에서는 언급된 ‘상급이 따르는 봉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시험에 대한 인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
② 하나님을 열심히 찾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③ 순교(殉敎)의 제물이 되는 것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④ 성실한 목회 또는 사명 감당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2~4)
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함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8)
⑥ 청지기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함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1,2,5)
⑦ 복음전도나나 나그네 대접 등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1,42)
아울러 상급에는 분명한 무엇이 있습니까? 등급(等級)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시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3:12~15).
그러나 상의 등급을 매기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사나 능력의 정도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충성의 여부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하)
하지만 이 등급 개념에는 무엇이 적용될 수 없습니까? 이 세상의 순차 또는 대소의 의미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천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11:11) 모든 성도들이 상급의 등급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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