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을지언정 다듬어 말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다. 학창 시절 별명이 '대시(-)' 'ㅂ-ㅂ-ㅂ-바이든' '스텃' '스텃헤드 (말더듬꾼)'였다. 그는 "내 약점 덕분에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게 됐다"고 말한다.
말더듬이 출신 리더로는 바이든 외에도 영화 '킹스 스피치'로 잘 알려진 영국 왕 조지 6세,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그리고 미국 기업가인 잭 웰치 전 GE 회장 등 허다하다. 이들은 '말 더듬는 약점'을 '다듬어' 말하는 것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기애애(期期艾艾)'는 말더듬이를 가리키는 고사성어다. 같은 글자가 반복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말을 버벅거리는 것을 뜻한다. 기기(期期)는 유방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장군인 주창(周昌) 이야기다. 한고조가 여후(呂后)가 낳은 태자를 폐하고 총애하는 척부인 아들인 여의(如意)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주창은 강력하게 반대한다. 말더듬이인 그가 흥분하니 말이 더욱 엉켰다. "폐하께서는 태자를 폐위시키려고 하시지만 '기필코, 기필코' 신은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다(陛下雖欲廢 太子臣期期不奉詔)." '기(期)'자를 되풀이해 '기필코, 기필코'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애애(艾艾)는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나라 장수 등애는 어려서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놀림을 받고 한직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다 군사 일에 능통한 점이 눈에 띄어 참모로 발탁될 수 있었다. 그는 늘 "저 애(艾)는, 애는…" 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보고를 받던 사마소가 웃으면서 "'애는, 애는'을 연발하는데, 도대체 '등애'가 몇 명이기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가"라고 농담 삼아 말한 데서 유래했다. 당시엔 "저는"이라고 대명사로 말하는 대신 이름으로 자신을 칭했다. 즉 "애는, 애는"은 "저는 저는"이라는 뜻이다.
이들과 달리 한비자는 말 더듬는 것이 삶에 결정적 장애로 작용했다. 진시황은 한비자가 쓴 글을 읽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존경을 표한다. 막상 만나보니 한비자는 심한 말더듬이였고,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당시 진왕실에는 그와 동문수학한 이사(李斯)가 있었는데 모함을 하는 바람에 한비자는 결국 감옥에 갇혀 독약을 받아 자살하게 된다.
말하기는 동서고금 리더의 필수 요건이다. 동양에서도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중시한 데서 알 수 있다. 단 말을 잘하는 것과 잘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가 유창함이라면, 후자는 진정성이 포인트다.
요즘 세태는 말은 잘하는데, 잘 말하는 이는 드물다. 웰치 전 회장이 어렸을 때 말더듬이로 놀림을 받으면 그의 어머니는 "너는 머리가 좋단다. 단지 입이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를 따르지 못할 뿐"이라고 위로해줬다고 한다.
청산유수 속사포급 말을 쏟아내는 이들은 "입이 머리보다 빠르기 때문"일까. 차라리 말을 더듬을망정 '다듬어' 말하는 리더가 아쉽다.
[김성회CEO리더십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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