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222
■ 1부 황하의 영웅 (222)
제4권 영웅의 길
제 28장 이극(里棘)의 반격 (8)
이윽고 진헌공(晉獻公)의 장례일이 되었다.
조정의 모든 대부들이 궁으로 들었으나 이극(里棘)만은 몸이 아프다 핑계대고 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자객의 임무를 부여받은 도안이는 동관오(東關五)를 찾아가 몰래 속삭였다.
"이극(里棘)이 궁으로 나오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은 하늘이 그의 목숨을 재촉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가 이극을 처치할 터이니, 대부께서는 제게 병사 3백 명만 붙여주십시오.
주공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제가 이극(里棘)의 집을 습격하여 그를 목베어 오겠습니다.“
"좋은 계책이다."동관오(東關五)는 두말 않고 순식 몰래 병사 3백을 도안이에게 내주었다.
도안이는 즉시 병사들을 거느리고 이극의 집 주변을 에워쌌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습격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한편 집 안에 머물러 있던 이극(里棘)은 모든 것이 예정대로 되어가는 것을 보고
가재(家宰, 집안 일을 총괄하는 사람)를 불러 지시했다.
"너는 지금 당장 순식에게로 가서 내가 위기에 빠졌으니 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오너라.“
"관백(關伯) 순식(筍息)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겁니까?“가재가 고개를 갸웃 흔들며 되물었다.
"밖의 군사는 동관오의 병사들이다. 순식(筍息)은 이 일을 모르고 있을 게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순식밖에 없다. 어서 가서 도움을 청하라.“
이극(里棘)의 재촉에 가재는 어쩔 수 없이 순식에게로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이극(里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순식(筍息), 이 모든 게 그대가 자초한 일이오.
잘 가시오.'교외로 나가 장례를 관장하던 순식(筍息)은 이극의 가재( 家宰)로 부터
동관오(東關五) 병사들이 이극을 습격하려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당황했다.
"이극(里棘)의 집이 포위당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요?“순식은 옆에 있던 동관오를 돌아다보며 물었다.
그제야 동관오(東關五)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실은 이극(里棘)이 오늘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먼저 선수를 쳐
도안이라는 자로 하여금 이극을 처단하게 했습니다.뜻한 바대로 일이 성공하면
모든 것은 관백의 공로요, 만일 실패한다 하더라도 관백께서는 모르시는 일. 아무 책임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이극(里棘)이 나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왔는데, 어찌 내게 아무 책임이 없을 수 있단 말이오?"
순식의 다그침에 동관오(東關五)는 오히려 능글맞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관백께서도 결정을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이극을 도우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참에 이극(里棘)을 처단하시겠습니까?"
순식(筍息)은 마음이 어지러웠다.선뜻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망설이고 있는 그에게 양오(梁五)가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이극은 관백께서 구원하러 올 것을 철썩같이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점을 이용하면 쉽게 이극을 잡아 처단할 수 있습니다.“마침내 순식(筍息)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좋소. 일이 기왕 이렇게 된 마당에 일이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행동하시오.
나는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궁으로 들어가 있을 터이니, 두 대부께서는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도안이와 합세하여 이극(里棘)을 도륙내시오.“"현명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동관오(東關五)와 양오(梁五)는 싱긋 웃음을 흘리며 병사를 몰고 이극(里棘)의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223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223
■1부 황하의 영웅 (223)
제4권 영웅의 길
제 28장 이극(里棘)의 반격 (9)
순식(筍息)과 이극(里棘)의 싸움!소문은 빨랐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관오(東關五)와 양오(梁五)가 이끄는 병사들이 성안으로 몰려 들었다.
삽시간에 성내는 소란스러워졌다.순식(筍息)이 공실을 앞세워 망명 공자를 내세우고 있는
이극을 토벌하는 셈이 되자 대부들은 어느 편에 가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자신의 운명은 물론 가문의 앞날까지 달라질 수가 있었다.
그들은 숨죽인 채 두 대신 간의 싸움을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극(里棘)은 탁상을 내리쳤다."빌어먹을 놈들!“일이 벌어지면 자신에게 가담하리라
믿었던 대부들까지 자라처럼 목을 들이밀고 집 안에 처박혀 있다는 소식에 이극은 배신감마저 느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하오.“비정(丕鄭)이 그의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혔다.
"공격 명령을 내린 순식 또한 결코 용서할 수 없소.“"우선은 동관오와 양오부터 처단해야 할 것이오.“
이극(里棘)은 밖에서 자신의 집을 포위하고 있는 척하고 있는 도안이에게 밀명을 내렸다.
- 동관오와 양오부터 해치운 후 궁으로 들어가 순식(筍息)과 탁자(卓子)를 주살하라.
동관오가 앞장서고 양오가 그 뒤를 따랐다.선발대인 동관오가 동시(東市)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편에서 도안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이극(里棘)의 집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급히 아뢸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어서 말하라.“"귀 좀..........."도안이는 동관오 가까이 다가갔다.
동관오(東關五)가 긴장하여 상체를 내밀려고 할 때 별안간 도안이의 주먹이 허공으로 치켜올라갔다.
어, 할 사이도 없이 그 주먹은 번개처럼 동관오의 목을 내리쳤다.
"캭!“철퇴보다 센 도안이의 주먹이었다.단 한 방에 동관오(東關五)는 목뼈가 부러져 즉사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도안이가 그 병사들을 향해 칼을 뽑아들고 외쳐댔다.
"중이(重耳) 공자께서 이미 진(秦)나라와 적(翟)나라 군대를 이끌고 성밖에 와 계신다.
나는 이극 대부의 명을 받고 세자 신생(申生)의 원한을 갚기 위해 간악한 무리부터 죽이고
중이 공자를 군위에 모시려 하는 것이다.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라!
나를 따르려는 자는 오고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돌아가도 좋다."
병사들은 공자 중이(重耳)가 새 군위에 오른다는 말을 듣고 모두 기뻐서 날뛰었다.
그들은 이내 도안이의 부하가 되어 오히려 뒤따라오는 양오(梁五)를 공격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성안으로 들어와 이극의 집을 향하던 양오(梁五)는 뒤늦게 동관오가 도안이에게 맞아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절초풍하였다."조당(朝堂)으로!“그는 궁을 향해 달렸다.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음을 직감했다.그는 순식과 탁자를 데리고 타국으로 망명할 생각을 가졌다.
'그 길만이 살 길이다!'그러나 하늘은 양오(梁五)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조당에 이르기 전에 지름길로 달려온 도안이와 그 병사들에게 추격당하고 말았다.
그가 겁을 먹고 주춤하는 사이, 다른 편에서 이극과 비정, 추천 등이 이끄는 병사들이 그를 포위했다.
이제 양오는 달아날 길마저 막혔다.양오(梁五)는 어쩔 수 없이 칼을 뽑았다."맞서려는가?“
이극(里棘)의 외침소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소리 같았다.
양오(梁五)는 포기했다. 칼을 거꾸로 쥐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몸이 떨려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저하고 있는 사이 재빨리 도안이가 달려들어 한 칼에 양오의 목을 쳤다.
한줄기 선혈이 허공에 뿌려졌다.
동관오(東關五)가 죽고 양오(梁五)마저 주살당하자 대세는 단번에 이극(里棘) 편으로 기울어졌다.
양편의 눈치만 보며 국면을 지켜보던 대부들이 하나 둘 집에서 나와 이극 편에 가담했다.
가장 먼저 달려 나온 것은 좌행대부 공화(共華)였다.
그러나 원로대신 호돌(狐突)과 곽언(郭偃)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궁으로!“누군가가 외쳤다.
병사들은 대열을 지어 궁문을 향해 돌진했다.조당 문 앞에는 순식(筍息)이 칼을 짚고
비장한 각오로 서 있었다.그를 따르는 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 뒤로 아홉 살배기 소년 임금인 탁자(卓子)만이 공포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순식(筍息)은 탁자에게 끔찍한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함인지 오른팔 소매로 탁자의 얼굴을 가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극을 향해 무거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 어린 소년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나의 마지막 부탁이오. 선군의 일점 혈육인 이 소년을 살려주시오.“
냉소가 스쳐가고 있음인가.이극(里棘)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대에게 묻노니, 세자 신생(申生)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
"세자 신생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답하면 나 또한 탁자(卓子)를 죽이지 않겠노라!“
"............."
그때였다.도안이가 풀쩍 뛰어 순식 앞에 서며 외쳐댔다."이 도안이가 대신의 목을 베겠소!“
그러고는 들고 있던 칼을 휘둘러 순식의 머리를 후려쳤다.피가 튀고 뇌수가 흘러내렸다.
순식(筍息)은 그렇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처참하게 죽어갔다.절규 같은 신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순식 뒤에 서 있던 탁자(卓子)가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여러 명의 피를 본 도안이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모든 악연은 자신이 담당하기라도 한 듯 울고 있는 탁자를 번쩍 들어올려 계단 밑으로 내던졌다.
"앗!“
"악 -!“
이극도, 비정도, 추천도 눈을 감았다.퍽, 하는 이상야릇한 소리와 함께 탁자의 머리통이 깨어졌다.
한동안 탁자(卓子)의 손과 발이 바르르 떨더니 멈추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과 탁자를 해치운 도안이는 다시 병사를 이끌고 내궁을 향해 쳐들어갔다.
- 여희(驪姬)를 찾아라!도안이가 내궁 문을 발로 차 부쉈을 때 앞을 가로막는 한 사내가 있었다.
여희의 정부이자 진헌공이 총애하던 배우 우시(優施)였다."보잘 것 없는 놈!“
도안이는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우시를 철퇴 같은 주먹으로 내리쳤다.
단 한 방의 주먹에 우시의 오른쪽 눈알이 빠졌다.졸지에 악귀 같은 모습으로 변한 우시(優施)는
다시 몸을 일으켜 도안이를 노리고 칼을 뻗었으나, 도안이를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에는 도안이의 발이 우시의 배를 후려찼다."허억 -“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우시(優施)가 나동그라졌다.그것으로 끝이었다.
내장이 파열되어 즉사해버린 것이었다.
내궁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여희(驪姬)는 우시마저 처참한 죽음을 당하자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나와 후원으로 달려가 연못 속에 몸을 던졌다.
이극(里棘)은 여희를 얼마나 증오하였던지 연못 속에서 그녀의 시체를 끌어올려 칼을 들고 다시
수십 토막을 내었다.이로써 여희(驪姬)로 인해 빚어진 진(晉)나라 공실의 참극은 그 막을 내렸다.
22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