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대산 골짜기 부연동 마을
아침에 고갯길을 오른다. 골이 깊으니 산그림자가 짙다. 능선마다 칼로 자른 듯 명암이 갈린다. 모든 소리가 증발해버린 듯한 적요한 산길. 유일한 배경음은 분주하게 날개치는 꿀벌들 소리다. 무더기로 핀 찔레꽃도, 검붉게 익어가는 산뽕나무 오디도 꿀 향기를 지녔다. 고개 넘어 마을로 내려간다. 한낮도 아침처럼 향기로운 산골마을이다.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 부연동. 오대산 국립공원 두로봉 골짜기에 자리한 외딴 동네다. 진고개·전후재·신배령·철갑령·바두재·머구재…, 전후좌우 사방이 첩첩 고갯길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마을길은 외줄기다. 마을로 가려면 가파른 비포장 산길이 굽이굽이 이어진 전후재를 넘어야 한다. 고개 앞뒤 모습이 똑같은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전후재’는 부연동 주민들이 주문진·강릉으로 나가는 통로다. 옛날엔 주문진 장을 보기 위해 신배령을 넘어온 홍천 내면 사람들도 넘어다녔다고 한다. 이 고개를 오르며 등 뒤로 바라다보이는, 노인봉·두로봉 사이 진고개쪽 경치가 압권이다.
스무집 오십여명이 사는 부연동 마을은 물줄기를 따라 띄엄띄엄 두세집씩 흩어진 길쭉한 모습이다. 두로봉에서 발원해 양양 앞바다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최상류 지역이다. 물줄기는 느무골을 내려와 부연동 마을을 거쳐, 또다른 오지마을 법수치리로 이어진 뒤 어성전리를 지나 남대천을 이룬다.
첩첩 고갯길 스무집 띄엄띄엄
한자로 적어 부연(釜淵)동이지만,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아직도 ‘가매소’(가마소)로 부른다. 말죽을 끓이는 가마솥을 닮은 깊은 소가 있는 데서 유래했다. 마을 한쪽의 고개 ‘머구재’의 모습이 ‘말이 물을 마시는 형세’(갈마음수형)인데, 말 머리 앞에 구유를 닮은 길쭉한 구융소(기융소·구유소)가 있고 그 상류 쪽에 가마소가 있다. 깊이를 강조할 때 흔히 얘기하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모자라는 깊이”를 가진 소들이지만, 2년 전 태풍 루사가 계곡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통에 다 메워졌다.
마을 최고령자 강대선(74)씨는 “가마소는 들여다 보기가 싫을 정도로 깊은 소였다”며 “소에 살던 그 많던 산천어가 다 쓸려내려가고, 줄줄이 이어지던 소들이 다 평평한 강바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루사가 메운 가마소를 지난해 태풍 매미가 다시 파놓았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지금 가마소와 구유소는 어른 한 길을 넘는 깊이의 검푸른 물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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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중인 부연분교 교실. 왼쪽부터 지동현(10·3년) 어린이, 장동환(35) 선생님, 그리고 조주형(13·6년)·지두환(12·5년)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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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소 들머리 반대쪽 골짜기엔 부연약수터가 있다. 60년 전 한 주민이 지저분한 바위 위에 벌들이 떼로 모여 물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고, 정으로 찍으니 톡 쏘는 샘물이 솟아나 약수터로 개발했다고 한다. 쨍 하는 맛은 아니지만, 상쾌할 정도의 알싸한 청량감이 땀을 식혀준다.
주민들은 벌꿀을 치고 산비탈 밭에서 곰취나물·옥수수·감자들을 키우며 산다. 해 비치는 시간이 짧아 논은 없다. 한여름이면 피서객을 맞아 민박으로 수입을 올리기도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마을 으뜸 자랑거리는 토종꿀이다. “가매소 꿀이 얼매나 좋든지, 원래 양양에 속했던 마을을 강릉 원님이 제 관할로 가져갔다니까. 왜 그러긴. 꿀 상납받으려고 한 게지.”
그림같은 분교 학생은 3명 뿐
강씨는 “부연동 꿀은 피나무꽃 화분을 주원료로 해서 갖가지 약초의 화분이 섞여 만들어진 최고급의 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손바닥을 칼날처럼 펴서 단호하게 까딱 하더니 “피나무 꿀 그 이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토종꿀을 하는 집은 열다섯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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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재 고갯길에서 내려다본 부연동(가마소) 마을 일부. 마을 들머리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신선골 풍경이다. 오른쪽 아래 길 옆에 성황당과 500년 된 소나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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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을 더욱 평온하게 만드는 힘은 작고 예쁜 초등학교 교정에서 나오는 듯싶다. 연곡 신왕초등학교 부연분교장이다. 3·5·6학년생 한 명씩 전교생이 세 명이다. 이 중 둘은 형제간이다. 햇살 따사로운 교실 창문으로 넘겨다 보니 둘은 한문공부를 하고, 하나는 모형 비행기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막내인 3학년 (지)동현이가 졸업하면 폐교되나요” 한 명뿐인 이 학교 선생님 장동환(35) 교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명이라도 있으면 폐교되지 않습니다. 지금 유치원 다니는 이장님 딸 (최)혜윤이가 대기하고 있지요.”
학교 건물은 1970년에 지은 소나무 판자 건물이다. 당시 마을까지 차가 드나들기 어려워 벽돌이나 시멘트를 쓰지 못하고, 주민들이 소나무를 켜서 학교를 지었다. 운동장은 다람쥐들 차지다. 34년째 학교 관리를 맡고 있는 지연식(54)씨가 운동장에서 돌을 골라내며 말했다. “저 다람쥐가 새끼를 낳았는데, 어미·자식이 늘 같이 붙어다녀요.”
발길을 돌려 신선골 성황당쪽으로 오른다. 성황당 뒤엔 엄청나게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가슴 높이 둘레가 3m79, 키가 25m에 이르는 500년이 넘은 적송이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다. 이 골짜기 상류에 마을의 중심 골짜기인 느무골, 칡소폭포가 있는 물푸레골, 신배령으로 넘어가는 영골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강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leebh99@hani.co.kr
■ 가는길 =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평창 진부나들목에서 나가 6번 국도를 따라 오대산국립공원으로 들어선다. 진고개를 넘어 송천약수 지나 내려가 59번 국도 갈림길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한다. 여기서 부연동까지 6㎞. 비좁고 가파른 시멘트길에 이어 비포장길을 따라 전후재를 넘으면 부연동이다. 휴대전화는 대개 잘 터지지만 일부 안되는 지역도 있다. 부연동에서 바두재를 넘으면 양양 어성전리로 이어진다.
■ 먹을거리 = 부연동에 민박과 함께 식당을 하는 집이 두세 곳 있다. 산나물비빔밥·토종닭 등을 낸다. 부연약수터 민박·식당(033-661-4133), 부연휴양촌(033-661-0978). 두 집은 가게도 겸하고 있다. 강릉 성산면 구산리 일대 옛 영동고속도로 부근에 먹자거리가 형성돼 있다. 특히 10여집에서 내는 대구머리찜이 이름있다. 옛카나리아(033-641-9502)는 대구머리찜 전문집이다. 크고 살집 많은 대구 머리에다 두부·감자·떡·콩나물·목이버섯 등을 곁들여 얼큰하게 쪄 내온다. 1만3천(2인분)~2만5천원(5인분). 강릉 경포호 들머리 부근의 서지초가뜰(033-646-4430)은 강릉식 전통 한정식을 내는 집이다. 1인 1만~3만원.
■ 묵을곳 = 부연동 민박은 2만원부터 3만~4만원(주방시설·화장실)까지 다양하다. 최근에 문을 연 가마소 펜션(033-661-9233)도 있다. 주말 7만원. 경포해수욕장 주변에 여관이 많다. 엠지엠(MGM)호텔(033-644-2559)은 최근 문을 연 깨끗한 호텔. 해수사우나·찜질방도 갖췄다. 주중 5만원부터.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