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나무의 가을철 단풍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나라위해 몸 바친 이들의 넋을 추모하는 현충일이 있고 1950년에 일어난 잊지 못할 6.25전쟁의 발발이 올 해로 꼭 60년이 되어 더욱 감회가 새롭게 여겨진다. 남북으로 갈라진 틈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기도 한 가운데 동족전쟁의 수난으로 생긴 수많은 이산가족들, 그들의 애타는 마음을 모두 풀지도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서서히 묻혀 가고 있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총구를 겨누며 긴장을 지속하는 대치 상태의 남북은 군함의 피격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되어 통한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지만 참혹했던 전쟁의 피해를 경험한 터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전쟁만은 피하기 위해 인내를 유지하는 상태이다.
문경새재의 개울에 자라는 비목나무-여름철

푸른 유월에 단골로 듣는 애창곡 ‘비목’은 올해도 어김없이 전쟁의 화면과 함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나라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과 전쟁터 이야기며 한 많은 사연들로 인해 6월은 우리들의 가슴이 뭉클해지고 마음은 어느 때 보다 더욱 숙연해진다.
대구수목원의 비목나무꽃

국토 곳곳의 격전지에서는 전사자들의 유해 발굴이 계속 이어져 무명용사들이 안식처에서 잠들 수 있게 국가적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화천군청의 김남석님이 보내준 비목

사람들은 산을 찾아 나서다가 비목나무를 보면 곧잘 애창하는 가곡인 ‘비목(碑木)’을 노래하면서 나무와 노래가 연관을 가진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목나무와 가곡의 비목은 같은 글자인 것만으로 친근감을 가질 뿐, 노래로 나무의 이름을 익히는 데는 좋으나 하나의 사연은 민족의 비극을 담고 있는 노래 제목이며 다른 하나는 나무이름이다.
비목나무는 좀 깊은 산이다 싶으면 계곡에 많이 자생을 하는데 우리 지역에도 팔공산이나 앞산, 청도 등의 여러 지역에 흔하게 보인다.
녹나무과로 암수가 다른 비목나무는 가을이면 단풍이 노랗게 들고 잎은 가늘고 작은 모양이 꼭 자두나무의 잎을 닮았다. 열매는 한 다발에 여러 개의 열매가 위쪽으로 보고 달려 있기에 빛을 받아 반짝이기도 한다. 빨간 색을 띠는 비목나무의 열매는 다른 나무들의 열매와 달리 먹을 수가 없는 것이기에 새들도 돌아보지 않다보니 가을에 익은 열매가 비교적 오래 달려있는 모습을 보인다. 가을의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은 가운데 비목나무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의 나무이기도 하다.

광복 60주년이 훌쩍 지나고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을 맞으면서 가곡 비목을 작사한 한명희 선생의 모습이 노래와 함께 자주 방영되기에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작곡을 하신 장일남 선생은 2006년에 74세의 나이로 타계를 하시었다. 노래의 제목에서부터 슬픈 내용이 물씬 풍기는 비목의 사연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으로 6.25 전쟁이 치열했던 장소인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을 소위 계급의 한명희 육군 장교가 소대원들과 함께 순찰을 돌면서 시작된다. 전방의 소대장 직을 맡은 그는 산을 오르내리다 우연하게도 이끼 낀 돌무덤을 발견하고는 무덤 쪽으로 발길을 옮겨 보니 그 무덤은 6.25 전쟁의 슬픈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녹이 쓴 철모, 칼빈소총, 묘비처럼 꽂혀 있는 썩어버린 나무의 등걸, 주변에 피어있는 산목련 등, 적과 싸우다가 숨진 군인의 무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 6.25 전쟁 당시 전사한 군인들을 안장 할 때 급박한 상황에서 미처 비석을 세울 수도 없기에 손쉬운 주변의 나무를 잘라 십자가로 대신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러나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내용은 나무로 세워진 묘비가 썩어 전사한 용사가 누구인지, 또 그를 묻어준 이가 누구인지, 언제 인지 알 수가 없기에 당시 한명희 소대장은 즉석에서 영감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고 그 시를 땅속 무덤의 주인공에게 바쳐 넋을 위로 했다.
그 후 군복무를 마친 훗날 작곡가 장일남 선생을 만나면서 비목이라는 이름의 가곡으로 작곡이 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썩은 나무의 등걸은 노랫말에서 ‘이름 없는 비목’으로 표현되었고 그 뜻은 ‘나무로 세워진 묘비’라는 뜻이다. 비목은 70년대에 텔레비전의 드라마에서 배경음악으로 국민들에게 익숙해지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후 노래로만 머물지 않고 강원도 화천의 평화의 댐 부근에는 해마다 비목의 계곡에서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목 문화제 행사가 열리어 오고 있다.

무덤 주변에 피어 있다는 산목련은 함박꽃나무로 북한의 상징화이다. 그들은 산목련을 ‘목난’으로 까지 부르며 바꾸는 변화를 했으나 정작 삶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변화를 요구하는 우리에게는 거부가 잦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이질적 요소들이 너무 많아져 있다.
북한이 진달래에서 목난으로 상징화를 바꾼 함박꽃나무

산하에 뼈를 묻은 지 60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친 고귀한 희생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잊을 수 없다. 잊어서도 아니 된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해 민족의 고통이 계속되면서 우리의 소원인 통일의 그 날이 빨리 오기를 남북이 함께 이루어 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