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을 탐방하고자 서울시청역에 왔습니다. 주말에 이곳부터 광화문 4거리까지 태극기부대가 집결하는 장소입니다.
덕수궁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입니다. 하루에 2번 진행하는데 애즈산이 왔을때 마침 엄숙한 교대의식이 있었습니다. 모여든 길거리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흥미롭게 관람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5대 궁궐중의 하나인 경운궁.. 을사늑약후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곳에 비운의 왕 고종이 머물렀는데 그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종의 친형 월산대군의 사저였으나 광해군때 서궁으로 인목대비가 유폐되어 머문 곳이기도 합니다. 중화문 넘어 중화전이 보입니다.
경복궁의 근정전 역할을 하는 중화전입니다. 그러나 근정전보다는 규모가 작습니다. 중화전 앞에 있는 품계석도 눈에 들어옵니다.
순백의 예쁜 신부입니다..웨딩 사진을 남기는 모습을 슬쩍 담았습니다.
석조전.. 덕수궁의 근대적인 전각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건립한 유럽풍 양식의 궁전입니다. 나라가 기울어져가는 당시 건축비 300만원으로 지어졌는데 지금 가치로 2,500억원 정도 된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해방정국 이곳에서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도 열렸었지요.
구한말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신축한 외교 공간 돈덕전 앞에는 일찍 핀 진달래가 곱습니다. 진달래는 올해들어 처음봅니다.
덕수궁 탐방을 쏜살같이 마치고 덕수궁 돌담 길을 걷기로 합니다. 애즈산 젊은 시절 연인들이 이 길을 걸으면 이별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지금도 인가요?
정동 근대역사길 역사보행 탐방로 안내판입니다. 다음에 오면 구석구석 다녀 봐야겠어요.
돌담거리에는 악사도 보이고, 그의 연주를 들으며..따뜻한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띱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세워진 정동제일교회입니다. 그 뒤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이화여고 건물이 보입니다. 1970년대에 이화여고, 경기여고, 창덕여고는 서울의 최고 명문 여자고등학교였었죠.
덕수궁 돌담 길은 한참을 돌다가 덕수궁 내로 다시 들어와 후원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길은 야간에도 개방되는데 연인들이 걸으면 환상적일 거 같습니다. 서울시민들이 부럽네요.
남산으로 향합니다. 숭례문이 보이네요. 일제강점기때 보물1호가 후에 대한민국의 국보1호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잔재가 아닐까요? 임진왜란때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가고,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1착으로 한양도성의 정문을 무혈 입성했거든요.
이곳은 남산공원입구입니다. 오랫만에 오네요. 2년만입니다.
남산 둘레길 안내판을 스캔합니다. 길을 놓치지 말고 잘 찾아가야 할텐데..
백범광장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1956년 80회 생일을 맞이하여 당시 건립된 이승만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4.19의거후 철거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김구 선생님이 계십니다.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 115년이군요. 아직도 그의 시신이 여순감옥 주변에 암매장되어 있다고 추정하나 발굴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옛날 국민학교 2학년 시절.. 교실 앞에 안중근 의사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애즈산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보다 먼저 알았던 안중근..
남산둘레길에 있는조지훈 시비. 박목월, 박두진으로 대표되었던 일제강점기 청록파 시인입니다. 참혹하고 어두웠던 민족의 현실을 외면한채 시의 서정성과 유려함만을 강조하여.. 후에 이육사와 심훈, 이상화, 카프출신 시인 등을 비교하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 윤석열정부의 조태열 외교부장관이 바로 조지훈의 아들입니다.
충무로 일대의 빌딩 숲..좌측으로 인왕산과 우측으로 북악산과 보현봉이 흐릿합니다.
남산둘레 아스팔트 길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포장도를 걷는다는 것은 애즈산에게는 가혹한 고문입니다. 무릎이 시큰거리는데요.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서울의 상징 남산타워.. 아직까지 타워에 올라가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케이블카도 타보고, 남산타워도 올라가 봐야겠어요.
애즈산의 카메라에 우연히 2번 담긴 우측의 여산님. 흑심은 없습니다. 늘씬한 몸매에 축지법을 쓰는지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배가 고파 헛것을 보았을까요..
차량이 통행금지된 아스팔트 길에 있는 남산둘레길 바닥표지.. 이것만 쭈욱 따라 가면 됩니다.
활터 '남산 석호정' 에서 바라 본 국립극장.
국립극장, 장충단 공원과 남산둘레길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궈.
한양도성 둘레길도 만나고.. 이 데크길 위로 오르면 남산타워가 나옵니다. 오늘은 남산둘레길이라 생략합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좌측 매봉산과 우측 한남동 방향. 몇년전 남산을 지나 매봉산을 넘어 옥수역까지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멋진 길이었지요. 윤대통령 관저는 어디쯤일까요?
남쪽 방향. 한남동과 한강 건너 강남일대가 흐릿하게 보입니다.
잠시후 남산순환도로를 만나고..
순환도로를 걸어갑니다. 후암동 일대의 주택들이 보입니다. 그 너머에는 이태원과 해방촌이 있겠죠..
숭례문 방향으로 계속 진행을 합니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발바닥은 불에 덴듯 뜨끈뜨끈하고..
믿거나 말거나 최대장님이 공부 열심히 했다던 남산도서관을 지나..
서울역으로 내려왔습니다.
광화문 4거리에는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스피커 소리가 기차화통처럼 엄청나네요. 이곳에는 연식이 있는 어르신들이 많고, 이동식 화장실도 있으며,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6년만에 경복궁에 왔습니다. 근정전입니다.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광장에는 품계석이 있습니다. 설계시부터 눈비가 많이 와도 배수가 잘 되어있다고 예전에 애즈산은 들었습니다.
경회루에서 바라본 북악산이 근사합니다. 2층 누각으로 이렇게 커다란 정자는 대한민국에 없을 겁니다. 경회루는 임금이 외국사신이나 조정의 대신들과 함께 연회를 여는 장소였으니까요. 아마도 연산군이 이곳에서 많이 놀지 않았을까요?
강령전입니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때 지어진 전각으로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다 전해집니다. 임진왜란때 왜군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대원군때 복원되었습니다.
교태전은 조선시대 중궁전으로 왕비의 침전입니다. 이 앞에는 상궁과 궁녀들이 쫘~악..있었겠지요. 왕이 오시면 중전마마는 버선 발로 나오셨을 겁니다.
자경전입니다. 흥선대원군이 대왕대비 조씨를 위하여 지어준 전각입니다. 조씨가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이를 왕으로 만들어 주었거든요. 세도정치는 흥선대원군때 개혁으로 완전히 종식되었죠.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흥선대원군이 왕이었다면 조선은 달라졌을 겁니다.
경복궁 후원의 북쪽에 있는 향원정입니다. 옛날 1970년대에는 이곳이 스케이트장이었죠. 육각형의 정자와 북악산이 아주 잘 어울려 보입니다. 달력 그림으로도 본 기억이 나네요.
이름 그대로 보물을 모아 놓은 집옥재입니다. 과거 이곳에는 4만여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왕립 도서관 역할을 한것으로 생각됩니다.
경복궁의 가장 끝 북문 신무문입니다. 문 밖에는 바로 청와대 정문이 있습니다.
경복궁 탐방을 마쳤습니다. 근정전 앞에서 바라 본 광화문 방향입니다. 궁궐 안은 평온하지만 궐 밖은 함성소리로 가득합니다. 담장을 두고 서로 다른 세상입니다. 언제 이 혼란이 끝나야 하는지..암담합니다.
오늘도 경복궁역에서 안국역까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로 도로는 가득찼네요.
어둠이 찾아 왔지만 그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79년 부마항쟁과 10.26사건..그리고 12.12군사반란과 1980년 광주5.18 민주화 운동..격동의 시간이었습니다. 그후 1987년 6월항쟁이 있었고, 6.29 선언과 함께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지금까지 평화롭게 잘 살아 왔습니다. 20대에 겪었던 일들을 40년후에 다시 겪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처연한 슬픔과 참을 수 없는 극심한 분노를 느낍니다.
첫댓글 슬픈 트레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