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거리로 나앉은 방랑자들
‘신용불량자’라는 낙인과 함께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 노숙자란 꼬리표를 하나 더 달고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노숙자로 전락했다. 지난달 서울시청에서 조사한 노숙인 신용불량자 비율을 보면 전체 노숙자의 약 3% 정도.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집계된 수치일 뿐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서울시청 ‘노숙자 대책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심지어 노숙자 가운데 신용사기를 당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신용불량자라는 멍에를 안고 있는 노숙자들은 대부분 원금을 갚기는커녕 하루하루 생활도 이어가기가 어려운 이들이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진지는 오래다. 노숙자로 살다가 신용사기로 신용불량자가 된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기막히다.
■사업실패, 가정파탄 그리곤 거리로
김형남 씨(가명ㆍ44ㆍ서울)는 노숙자 세계에서는 아직 6개월도 안된 ‘신출내기’. 그러나 얼굴에는 사업 실패와 신용불량자 등재로 인한 가정파탄 때문인지 나이에 맞지 않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김씨는 서울의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한 엘리트. 1990년대 초 친구 2명과 룸살롱,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등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꾸려 나갔다. 전자대리점 사장으로 7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그의 인생은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업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집도 팔고 동업하는 친구에게 카드를 빌려 줘 자금을 융통했지만 결국 가게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빌려 준 카드가 문제였다.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가정형편상 도저히 카드빚을 막아 낼 여력이 없었다. 하루하루 연체금은 늘어났고 결국 신용불량자에 등재됐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용불량자의 멍에만으로도 벅찬 그에게 이번에는 가정의 분열이 다가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연체통지서에 가족 모두가 민감해져 있었어요. 독촉장을 볼 때마다 서로에게 화를 내고 부부싸움을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지요.” “심지어 매일 아침 일찍 우편함으로 내려가 통지서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그게 제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정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어 지방공장에서 일하며 1주일에 한 번씩만 집에 들어왔다. 그러나 좀처럼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김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이혼했다.
“아내는 직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나간다면 아내와 자식들이 편안하게 살지 않겠습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떳떳하게 그들을 만나는 게 작은 희망입니다.”
■한순간의 유혹에 날아간 인생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을 가진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실제로 옥상까지 올라간 적도 있고요.”박희구 씨(가명ㆍ44ㆍ강릉)는 삶을 포기한 듯 아침부터 술에 취해 얼굴에는 홍조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전기설비 관련 일을 하는 일용직 근로자였다.
“전기 일을 하면서, 한 달에 약 2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의 유혹이 저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아넣었습니다.”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자 그는 연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때문에 친구들과 먹은 한잔 술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친구들과 홧김에 먹은 하룻밤 술값이 300만원이 나왔던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그에게 300만원은 큰 돈이었다. 돈 갚을길은 막막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거리는 더욱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더욱 자주 술에 입을 댔고 조금씩 모아 둔 돈까지 까먹었다.
“참고 또 참았지만 한두 잔씩 먹다 보니 어느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박씨는 노숙자 신세가 되기 전 어머니와 함께 강릉에서 살았지만 카드사에서 독촉전화가 걸려 오고 연체통지서가 날아들자 집을 나와버렸다.
“집에서는 벌써 버린 자식이 됐어요. 노숙을 하면서 간간이 일을 해 나가고 있지만 빚을 갚으려면 멀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빚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실히 모른다.
“처음에는 85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200만원이 넘었을 거예요. 원금만이라도 갚게 해 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노숙자 생활 중 사기당해 신용불량자로
“어떻게 개인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지도 않고 쉽게 카드가 발급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인혁 씨(가명)는 노숙생활 도중 사기를 당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다. 지난 84년 군 제대 후 영업용 택시, 부동산 쪽 일을 했지만 일이 쉽게풀리지 않았다. 결국 노숙자 생활을 하며 일용직 근로자로 이곳저곳 전전하고 있었다.
2000년 겨울 인력사무소 일이 떨어지자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구씨는 한 할부금융사를 찾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NO’. 안정적인 직업도 수입도 없던 그에게 대출이 될 리는 만무했다.
절망하던 그에게 그곳 직원이 불러 “좀더 시간을 갖고 같이 살면서 다음 기회를 찾아 보자”고 말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구씨는 마땅한 거처도 없었기에 일단 그 사람과 같이 살기로 했다.
“약 한 달 정도 같이 살았을 거예요. 서로 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믿음도 쌓이더군요. 그 후 직장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H신용금고 영업사원으로 취직을 알선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마수에 걸려든 시작이었다.
“취직이 되고 나서 전 직원의 소개로 100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그 동안 그에게 신세진 것을 갚기도 했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이미 제 정보로 카드를 발급받았더군요.”구씨를 위장취업시키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것처럼 속여 구씨의 개인정보로 카드를 발급받았던 것이다.
“나중에 대출받았던 금액과 관련해 은행에 가 보니, 글쎄 제 카드빚이 수백만원에 이른다지 뭡니까. 정말 황당하더군요.”“어떤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확실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그냥 포기한 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