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비문의 기록과 삼국사기 등 사서의 기록과 내용을 달리 하는데 대한 당혹감은 이해할만합니다.
먼저 신라의 시조를 박혁거세라고 하지 않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제 견해는 이렇습니다.
먼저 왕조시대에는 한 나라의 임금이 통일한 성씨를 통해 이어져가는 것이 철칙인데 반해 신라는 왕조체제이면서도 특이하게 박,석,김의 삼성이 왕권을 주고받는 이해불가사의한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왕이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면 나라의 주인이 바뀐 것이므로 나라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 통례인데 말입니다.
신라는 왜 이런 상식을 깨고 있는 것일까 싶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역으로 신라는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삼성체제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이들의 선대는 동일하기에 성을 달리해도 결국은 같은 혈통이라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었다는 뜻이 될 겁니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삼성의 시조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문무왕비문에서 경진씨를 파견했다는 기록입니다.
삼성의 시조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단순한 알이 아니라, 시조에 대한 고대인의 서술인 셈입니다.
알이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본래는 태양을 나타내는 것이멌으나 후에 알로서 변형되었음을 국문학자들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의 하나님이란 단어 또한 기원이 큰 태양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큰 태양의 후손이니 자신이 알의 후손이며, 알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모두 흙으로 돌아갈 때 묻히는 전통적인 묘제도 둥근 알모양으로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알의 자손이라는 주장은 박, 석, 김의 삼성이 있기 전에 알이라는 시조의식이 있었던 것이고, 이것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발굴된 수천년전의 고대문자 기록에서도 인칭으로 알(○)이 새겨져 있음을 볼 때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한 두개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수백개의 유물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싶고, 특히 신라 임금의 무덤에서는 실제로 알(계란)이 부장되어 있고, 왕관 주변에 알이 주럴주렁 달려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고대인들은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즉 알이란 것은 신비하거나 권위를 인공적으로 부여하기 위한 술수가 아니라, 실제의 족칭이거나 인칭이라는 사실입니다.
세대를 달리하는 고대인들에게서 알(○)이 사용된 것을 보면 대대로 전해지는 족칭임을 알게 합니다.
세대를 달리하는 알(○)을 씨칭/족칭으로 사용한 예를 몇가지 추려서 파일로 올립니다.
여기에는 씨칭으로 쓰인 예들인데 아버지 알씨(父珠)와 할아버지 알씨(祖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청나라 말기에 알을 족보로 하는 청동과가 발견되어서 알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결코 신화나 전설이 아닌 실제의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알지가 어쩌면 가공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우리가 역사와 얼마나 거리가 멀어졌나 하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입니다.
분명 한민족의 선조는 예외없이 알에서 태어났음에도 우리는 이 알의 정체 자체를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신화라고 까지 단정하니 우리는 사실상 자기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비문에서 파경진씨라고 되어 있어서 동쪽으로 경진씨를 보냈다는 말이 됩니다.
이는 김씨가 흉노땅으로 가기 전에 이미 일족이거나 한 족단이었던 경진씨를 갈라서 먼저 보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 저간의 사정은 여기서는 일일이 설명하기 힘듭니다만, 어쨌든 경진씨는 동쪽으로 보내게 되었고, 김씨 일족은-한나라에 오기 전까지는 김씨가 아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무제의 포로로서 중국대륙에 들어오게 되었고 여기서 뿌리를 내리다가 왕망의 신제국이 망하게 되자 대륙을 탈출하여 만주와 한반도로 이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쪽으로 갈라보낸 경진씨는 이미 한 혈족임에도 다른 성씨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무제로 부터 성씨를 김으로 받은 신라 김씨의 세력이 한반도 동남쪽에서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갈라진 후 다시 만나기 까지 약 20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고대인은 자기의 조상숭배는 철처하여 서로가 동일한 선조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을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외견상 성씨를 달리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혈족이라는 인식을 함으로써 왕조시대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삼성체제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로, 우리민족이 단일민족이고, 천자의 민족이라는 말 좀 않했으면 좋겠다는 것도 우리는 개념을 정립해야 합니다.
민족과 혈통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혈통은 생물학적인 동질성을 말하지만 민족은 언어, 문화, 역사를 함께 하는 삶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일민족인 것은 수긍할 수 있지만, 단일민족=단일혈통은 개념의 혼돈에서 오는 결과입니다.
전세계 어느 민족도 순수혈통은 존재할 수도 없거니와 순수혈통이란 것의 정체를 말할 사람도 없습니다.
순수혈통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성씨'제도나 족보 자체가 필요없는 것들이 될 것입니다.
성씨 자체가 족외혼을 전제로 하기에 피가 섞이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고,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천자의 민족이라는 것도 알의 후손이라는 내용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서는 천자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기에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힌트를 드린다면 하늘 天이라는 글자는 결코 광활한 허공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한 남성을 가리키는 것임을 고대문자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한가지 빠졌군요.
신라 김씨는 결코 흉노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라인들의 선조의 역사무대는 이 땅에 오기전 흉노의 땅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이유로는 비문에서 자신들의 출자를 '화관의 후예'라고 되어 있고, 역사 서술이 모두 대륙에서 일어난 일들이지 흉노의 땅에서 일어난 사실은 전무하니까요.
여기서 '화관'은 火正이라고도 하는데 고대의 각 절기별로 제사를 지내는 오행관을 총칭하거나 그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직책입니다.
그 기원은 우리가 전설로 아는 염제로부터 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화관이라는 직책은 흉노에서 이렇게 체계적으로 행할 수 없는 직책이며, 신라의 문무왕비문에서는 신라인들이 흉노와 관련이 없는 화관의 후예라고 한 것이죠.
또한 신라인들의 선조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첨부파일에서 보듯이 구체적으로 족칭이나 인칭으로 쓰인 것이어서 흉노와는 더더욱 관련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아마도 신라의 선조가 정치적 망명을 위해 흉노땅에 산 것을 가지고 대대로 흉노의 피를 받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알의 후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문외한임을 자백하는 것이고, 이 땅에서 발굴되는 신라인들의 왕관에 달린 알들이 무수한 것을 보고도 '송아지 둠벙 쳐다보듯'하는 사람이라는 반증이 될 겁니다.
전통적인 묘제란 지금도 시골 어느 곳에 가든지 반원모양의 봉분이 있는 것을 말하고, 이 분의 시조는 봉분의 양 옆에 있는 두개의 기둥 즉 ¡ 모양을 말합니다. 이것을 위에서 보면 완전한 알(○) 모양이고, ¡는 ○을 족칭으로 하는 시조의 이름을 말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셨다'고 하는 말은 바로 알의 시조인 ¡에게 돌아간다는 표현이기도 한 것이죠. 왕관의 알은 '경주 금관총 금관/금령총 금관/교동고분 금관/천마총금관/황남대총 북분금관/오꾸라 수집금관/호암미술관 소장금관/대구 비산동 37호분 금관...등등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1. 日력, 알의 자손 력(○=태양, 日) 2. 相作父珠, 아들 상이 아버지 알 ○씨를 위해 (청동기물을) 만들어 바칩니다. 3. 王申父珠(=王鑄父珠), 왕은 시조 ¡에게 제사를 지내는 아버지 알○씨이다. (=고대는 왕이 만백성의 어버이라는 관념이 있었음을 반영합니다.)
4. 衛父珠, (아들의 이름을) 衛라 칭한다. 명명자 아버지 알씨 5. 깃대를 쥐고 있는 인물 盛씨를 기준으로 祖珠(祖○)로 되어있어서 알씨가 盛씨의 할아버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단순한 신화전설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의 자기 고백이 '아리랑'으로 전해져오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뿐 아니라, 실제로 ○이 새겨진 청동과 족보도 발견되어 탁본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학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 일종의 '학문적 직무유기'를 범하는 자들이 아닐까 싶네요
분구의 형태가 알의 형상이라고요? 글쎄요 그렇게 생각 되지는 않습니다. 알의 모습을 본뜬걸로 보기에는 신라와 전혀 상관 없는 지역에서도 원형의 분구가 확인됩니다. 그리고 제가 궁금한것은 금관의 어느부분이 알의 상징인지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구의 형상은 알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 됩니다.
묘가 알의 형태라는 건 실제로 시골에 가서 보시면 설명이 필요없지요. 앞에서 보면 당연히 시신이 땅에 묻혀있으므로 지면에는 반원 모양을 하게 되는 것이고...제가 사는 집 옆에도 무덤이 있습니다만 분명 반원입니다. 위에서보면 원이지요. 신라와 관련이 없는 지역에서도 원형의 분구가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모두가 알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알의 자손이란 것은 원초적인 시조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중국 땅에서는 서언국이나 진나라 등이 대표적으로 알의 자손임을 인식하는 나라들입니다. 아! 은나라도 있군요.
집 옆의 무덤이 3기가 있는데 답변을 위해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올릴 수가 없군요. 이 카페는 이미지를 올리기가 힘들어서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어쨌든 말보다는 언제 교외로 나가셔서 우리 무덤을 보시죠. 이곳은 허다가게 많습니다./ 사진을 소개합니다. 참고하세요. ▶ http://dicimg.naver.com/100/400/37/671137.jpg ◆ 끝으로 금관의 어느 부분이 알의 상징이냐고 물으시면 참으로 난감하군요. 도서관에 가셔서 금관 사진을 보시면 주로 山자니, 出자니 헛시비를 하는 부분에 ○이 무수히 달려있습니다. 특히 '금관의 비밀'(김병모 저)에 수록된 사진에 잘 나와 있더군요. 참고하세요.
우리 민족이 순수 북방계통주민이라는건 문제가 있는듯 합니다. 바로 난생설화가 북방계통 주민의 유입을 추정하는 근거가되는데요. 우리나라는 남방계통 주민또한 유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구의 형상이 왜 둥근지는 알이라기 보다 다른이유가 있는듯 한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가 보통 알이라고 하는것은(타조등 후대에 들어온 조류알 제외)구형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분구중에는 원형을 띄지 않은분구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그설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부분인지는 짐작이 되지만 그것역시 알이라기 보다 물방울의 모습을 본뜬거라 생각됩니다. 즉 의미보다 장식적 역할에 그친다고 생각됩니다.
天孫// 글쎄요. 님의 논거는 객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봉분의 모양이 알이라는 것은 제 생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학자들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특히 서정범 교수같은 분이 알의 어원을 풀이하면서 봉분을 예로 들었지요. 출생과 죽음은 장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묘제를 보면 그 시대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출생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서에서는 한민족계열의 나라는 100% 알에서 태어났으니까요. 단군을 빼고는...객관성이 있는 논리를 기대해봅니다. 한가지 추가하면 님이 사용하시는 북방계통/남방계통이니 하는 것들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싶군요. 물론 짐작은 갑니다만 확인 차원입니다.
비난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님이야 말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조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해야 할 말인 듯한데요. 저도 객관적인 접근을 원합니다. 님은 물방울이라고 하시는데 우리 선조들이 물방울 형상을 금관에 달아야 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차례같습니다. 왜 물방울로 보아야 하는지 설명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전통적인 묘제에서 어느것이 알을 상징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배우는 바와 너무 다르기에 궁금합니다. 그리고 금관의 어느 부분이 알을 상징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전통적인 묘제란 지금도 시골 어느 곳에 가든지 반원모양의 봉분이 있는 것을 말하고, 이 분의 시조는 봉분의 양 옆에 있는 두개의 기둥 즉 ¡ 모양을 말합니다. 이것을 위에서 보면 완전한 알(○) 모양이고, ¡는 ○을 족칭으로 하는 시조의 이름을 말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셨다'고 하는 말은 바로 알의 시조인 ¡에게 돌아간다는 표현이기도 한 것이죠. 왕관의 알은 '경주 금관총 금관/금령총 금관/교동고분 금관/천마총금관/황남대총 북분금관/오꾸라 수집금관/호암미술관 소장금관/대구 비산동 37호분 금관...등등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sorgai님 첨부된 파일내용에 있어서 상형문자 탁본된 사진이 5개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라서......무슨 내용을 뜻하는지? 간단하게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1. 日력, 알의 자손 력(○=태양, 日) 2. 相作父珠, 아들 상이 아버지 알 ○씨를 위해 (청동기물을) 만들어 바칩니다. 3. 王申父珠(=王鑄父珠), 왕은 시조 ¡에게 제사를 지내는 아버지 알○씨이다. (=고대는 왕이 만백성의 어버이라는 관념이 있었음을 반영합니다.)
4. 衛父珠, (아들의 이름을) 衛라 칭한다. 명명자 아버지 알씨 5. 깃대를 쥐고 있는 인물 盛씨를 기준으로 祖珠(祖○)로 되어있어서 알씨가 盛씨의 할아버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단순한 신화전설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의 자기 고백이 '아리랑'으로 전해져오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뿐 아니라, 실제로 ○이 새겨진 청동과 족보도 발견되어 탁본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학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 일종의 '학문적 직무유기'를 범하는 자들이 아닐까 싶네요
분구의 형태가 알의 형상이라고요? 글쎄요 그렇게 생각 되지는 않습니다. 알의 모습을 본뜬걸로 보기에는 신라와 전혀 상관 없는 지역에서도 원형의 분구가 확인됩니다. 그리고 제가 궁금한것은 금관의 어느부분이 알의 상징인지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구의 형상은 알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 됩니다.
묘가 알의 형태라는 건 실제로 시골에 가서 보시면 설명이 필요없지요. 앞에서 보면 당연히 시신이 땅에 묻혀있으므로 지면에는 반원 모양을 하게 되는 것이고...제가 사는 집 옆에도 무덤이 있습니다만 분명 반원입니다. 위에서보면 원이지요. 신라와 관련이 없는 지역에서도 원형의 분구가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모두가 알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알의 자손이란 것은 원초적인 시조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중국 땅에서는 서언국이나 진나라 등이 대표적으로 알의 자손임을 인식하는 나라들입니다. 아! 은나라도 있군요.
집 옆의 무덤이 3기가 있는데 답변을 위해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올릴 수가 없군요. 이 카페는 이미지를 올리기가 힘들어서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어쨌든 말보다는 언제 교외로 나가셔서 우리 무덤을 보시죠. 이곳은 허다가게 많습니다./ 사진을 소개합니다. 참고하세요. ▶ http://dicimg.naver.com/100/400/37/671137.jpg ◆ 끝으로 금관의 어느 부분이 알의 상징이냐고 물으시면 참으로 난감하군요. 도서관에 가셔서 금관 사진을 보시면 주로 山자니, 出자니 헛시비를 하는 부분에 ○이 무수히 달려있습니다. 특히 '금관의 비밀'(김병모 저)에 수록된 사진에 잘 나와 있더군요. 참고하세요.
우리 민족이 순수 북방계통주민이라는건 문제가 있는듯 합니다. 바로 난생설화가 북방계통 주민의 유입을 추정하는 근거가되는데요. 우리나라는 남방계통 주민또한 유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구의 형상이 왜 둥근지는 알이라기 보다 다른이유가 있는듯 한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가 보통 알이라고 하는것은(타조등 후대에 들어온 조류알 제외)구형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분구중에는 원형을 띄지 않은분구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그설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부분인지는 짐작이 되지만 그것역시 알이라기 보다 물방울의 모습을 본뜬거라 생각됩니다. 즉 의미보다 장식적 역할에 그친다고 생각됩니다.
天孫// 글쎄요. 님의 논거는 객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봉분의 모양이 알이라는 것은 제 생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학자들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특히 서정범 교수같은 분이 알의 어원을 풀이하면서 봉분을 예로 들었지요. 출생과 죽음은 장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묘제를 보면 그 시대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출생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서에서는 한민족계열의 나라는 100% 알에서 태어났으니까요. 단군을 빼고는...객관성이 있는 논리를 기대해봅니다. 한가지 추가하면 님이 사용하시는 북방계통/남방계통이니 하는 것들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싶군요. 물론 짐작은 갑니다만 확인 차원입니다.
비판을 떠나 비난식으로 가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마십시요. 비판은 할수 있으나 비난은 잘못된겁니다. 님의 주장을 읽다보면 마지막글이 비난식으로 간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군요.
비난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님이야 말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조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해야 할 말인 듯한데요. 저도 객관적인 접근을 원합니다. 님은 물방울이라고 하시는데 우리 선조들이 물방울 형상을 금관에 달아야 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차례같습니다. 왜 물방울로 보아야 하는지 설명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