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歷史)에 쓰이는 ‘지나갈 력(歴)’자는 생명나무(木)와 선악과(木)가 있던 에덴동산 중앙에 사람의 발(止)이 침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 것이 인류 역사(歴)의 시작이었음을 보여주는 글자이다.
[표] 지나갈 력(歴)자의 변천과정표
‘지나가다’의 뜻을 가진 력(歷)자는 인간의 역사(歷史), 역대(歷代), 내력(來歷) 등에 쓰이는 글자이다. 세종이 성군(聖君)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그가 역사(歷史)의 실록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버지 태종이 죽고 1431년 태종실록 36권이 완성 된다. 세종은 실록을 보고자 하였다. 그러자 맹사성이 “전하께서 실록(實錄)을 보신다면 후세 임금도 똑같이 하실 것이며, 사관도 왕이 볼 것을 염려해 사실을 모두 기록하지 못할 것이니 진실함을 후세에 어찌 전하겠습니까?” 직언하였고 세종은 뜻을 굽혔다고 한다.
우리는 ‘지나가다’의 역(歴)자의 최초의 의미를 자세하게 알기 위해서는 이 글자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자는 갑골문(B.C 1250년)으로부터 해서(楷書 A.D 700년)까지 약 2천년의 변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갑골문자에서는 두 개의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 림(林)+발 지(止)보다 두 개의 벼 화(禾)자가 들어간 력(秝)+발 지(止)자를 사용한 빈도가 더 많다. 그렇지만 후한(後漢)시대의 예서(隸書)에서는 림(林)+지(止)자가 들어간 력(歴)자가 훨씬 많이 보이며, 해서에서는 력(歴)자가 대부분이며, 력(歷)자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인류의 역사(歷史)의 의미에 있어서 벼 화(禾)자가 들어간 의미보다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 력(歴)자가 들어간 것이 더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소전(小篆:B.C 220-A.D 100년) 이후 A.D 100-200년대의 예서(隸書)부터는 림(林)자가 들어간 력(歴)자를 절대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력에 대하여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동양신화』에서 ‘후한시대(A.D 25-219년)에 나타나고 있는 것들은 중국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당시 4개의 강대국이었던 로마, 페르시아, 인도와 한(漢) 나라가 서로 인접하고 있을 당시에 그러한 주제들이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고 한다. 경교(景敎)란 이름으로 기독교가 전래 되었다는 것이 중국의 공식적 문서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635년 당 태종(9년)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미 전한(前漢)의 한(漢) 무제 때 장건(張騫)을 통하여 개척된 실크로드(B.C 139-A.D 100년)를 통해 왕성하게 전파되고 있던 기독교의 진리가 유입되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현재 역(歷)자 안에 쓰이고 있는 력(秝)자를 ‘나무 성글 력’자라고 하는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나무가 아니라 두 개의 벼 화(禾)자이지 나무(木)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歷史)에 쓰인 역(歴)자는 두 개의 나무가 포함 된 수풀 림(林)자가 쓰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 될 당시인 A.D 100년에 기록된 허신(許愼)의 『설문해자』에서는 ‘력(歷)자는 지나가다 뜻이다(過也). 지(止)가 뜻 부분이고, 력(厤)은 소리부분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단옥재(段玉裁)는 과(過)자의 주석에서 ‘지나가다(過)에서 과실(過失: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의 뜻이 파생되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에덴동산 중앙의 두 나무(林) 사이에서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인 범죄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밝힐 수 있는 것이 바로 수메르의 기록에서 최초의 남자는 아다파(아담)이다. 그가 찾았던 낙원에도 생명나무(木)와 지식의 나무(木)가 존재했고, 그도 아담처럼 뱀의 상징인 엔키의 유혹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성경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역(歴)자에 보이는 두 나무(林)는 에덴동산 중앙의 두 나무(林)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는 필자의 박사 논문인 「갑골문자의 신학적 해석 연구」에서 두 나무(林)자와 관련된 29개의 글자를 통하여 에덴동산 중앙의 두 나무였음을 분명히 밝혔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RISS-키워드 갑골문자-학위논문, 40-44P).
그리고 두 나무(林)와 사람의 발(止)로 구성된 ‘지낼 력(歴)’자에 ‘기슭 엄(厂)’자가 추가된 이유에 대하여도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가 있다. ‘기슭’에 대하여 국어국립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산이나 처마 따위에서 비탈진 곳의 아랫부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두 나무(林) 사이에서 범죄(止)한 이후 그들은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숨게 되었던 정황(창 3:8-10)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말을 듣고 범죄 한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고 하신다. 우리는 사람의 말에 이끌리는 발(止)이 되고 사람이 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는 이유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고후 4:9-10).
송태정 박사(갑골문 연구 교육학 박사), 박사논문-갑골문자의 신학적 해석 연구, 성경적 갑골문자해석연구소 대표, 순복음해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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