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홍과 그의 아들 임숭재
'오직 임금께 미인을 바치지 못 하는게 한스럽다'...임 숭재가 죽으면서 남긴 말
저 유명한 임사홍의 아들의 임종 시에 했다는 간신의 아들다운 유언입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연산군의 뚜쟁이를 미처 다 못한 것을 한하며 가는 임숭재는 인류 역사상 전무 후무한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알고보니 임사홍은 대단한 수재였드군요. 음서(蔭敍...과거 시험 보지 않고 관리에 임명되는 것)로서 관직에 오르기는 했으나 나중에는 과거를 보아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였습니다. 한학, 중국어, 일어, 여진 어에도 능통한 다재다능한 수재였드군요. 집안도 좋아서 효령대군의 손녀와 결혼했고 아들 임광재는 예종의 딸과 결혼했고 다른 아들 임 숭재는 성종의 딸인 희숙옹주와 결혼하여 두 임금과 사돈을 맺었습니다. 또 다른 아들 임 희재는 사림파 정치인으로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벼슬에는 뜻이 없고 연산과 그의 추종세력을 비판했습니다. 어느 날 연산군이 임사홍 집에 와서 술판을 벌리는데 병풍에 임희재가 자기를 진시황에 빗대어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희재을 죽였는데 애비인 사홍은 풍악을 울리고 태연히 잔치를 계속하였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잔인한 아버지 임사홍입니다. 많은 벼슬을 하고 무고한 사람 탄핵하여 죽거나 귀양가게 한 임사홍, 갑자사화에 불을 지른 훈구파 대신. 늙어서는 연산군의 채홍사(採紅使)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지만 그 직책에 대하여 수치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미녀를 채홍 못해오는 그를 야단치고 조롱했다고 합니다.
중종반정 때 사형당하고 또 부관참시까지 당했습니다. 머리 좋고 명문가 집안 출신이 역사에 간신으로 낙인찍힌 것은 자주 있는 일이기에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21세기 오늘에는 우수한 간신들이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한 편 임숭재는 아버지를 훨씬 능가하여 연산군에게 미녀를 진상하는 일에만
전념하여 연산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자기가 사는 집 주위의 수십 채를 헐고 담을 치고
그 안에서 연산군을 모시고 향연을 벌렸답니다.
숭재는 대감들의 첩들을 연산에게 바치고 심지어는 자기 누이동생 까지 연산에 진상하였다는데 어느 날은 연산이 숭재의 누이동생과 관계하고 이어 희숙옹주(숭재의 부인이며 연산의 이복동생)와도 관계를 맺었다고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청출어남 청어남 이라 하더니 숭재는 한 술 더 떠서 자기 부인도 자기 동생도 채홍하여 연산에 바쳤다니 연산의 패륜이 약여합니다.
숭재는 매일 연산과 어울리면서 술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숭재는 연산의 총애를 믿고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미 이성을 잃은 연산의 머리를 더욱 어지럽게 해 놓았다고 합니다.
숭재는 중전 반정 1년 전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신하들이 부관참시 하자는 것을 중종이 말렸다고 합니다.
숭재가 생전에 한 못된 짓을 하고도 행복(?)한 병사를 한 것은 세상은 대체로 공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천만을 죽인 스탈린도 모택동도 자연사했습니다.
다음은 연산군 시절에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산군이 원각사의 여승들과도 관계를 하고 닥치는대로 음행을 저질르다가 나중에는 대신들의 부인들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연산군이 특정 대신을 찍어 어느 날까지 부인을 궁으로 들여보내라고 하면 꼼짝없이 그렇게 했답니다. 처음에는 연산의 변태적인 명령이 어이없었지만 따르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 모두 따랐다합니다. 기가 찬 것은 시간이 지나니까 신하들 부부들이 연산이 자기들을 지명하는 것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부인이 연산과 관계를 하면 부인은 양심의 가책을 안 받고 임금과 한 번 즐기고 남편은 승진이 보장 되었다는 것이지요.
연산은 박원종 등의 반란으로 퇴위하는데 쿠테타 하던 그 날 밤도 술판을 벌리다가 변을 당했는데 쿠테타가 얼마나 엉성했는지 사전에 음모가 새어 나갔고 당일 날 밤도 반란 군쪽에 줄을 서면 공신의 서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박원종의 누님이며 자기 큰 어머니(월산대군 정부인)을 강간하여 임신시켜 큰 어머니가 자살하게한 미치광이였지요. 중종반정으로 강화도로 귀양가서 거기서 죽었습니다.
첫댓글 스토리의 주인공이 연산군인지 임사홍의 가문인지
희대의 패륜아들의 총결산이군...ㅎㅎㅎ
연산군 때는 임사홍이, 광해군 때는 이 이첨이 있었으니 폭군과 간신은 죽이 잘 맞는 것 같군요.
고미인현님...패륜들이 어울이니 모두가 주인공이지요. 머리좋고 시험에는 모조리 합격하고 4게극에 능통하다는 임사홍이가 간신에도 능통하니 애석한 일입니다. 21세기에는 그런 수새들이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인님....그렇습니다. 폭군은 미치광이 간신은 폭군의 가려운데만 긁어주면 될것 같군요.
위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다음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신하들 부부들이 연산이 자기들을 지명하는 것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부인이 연산과 관계를 하면
부인은 양심의 가책을 안 받고 임금과 한 번 즐기고 남편은 승진이 보장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잠복해 있는 치사하고 추악한 성정이, 패륜의 시대에는 집단적으로 노출된다는 증명아닌지.
더 거창하게 '해석'하면, 어느 시대나 어떤 문명권에서나 도덕율- 인륜의 타락 현상은,
지적- 문화적으로 우월한 입장의 인간들에게서 먼저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실증아닌지.^^
됫매님....됫매님이 지적한 부분은 야사가 아니고 정사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성은 참으로 신비롭고 추악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아버지와 딸들과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관계하는 대목이 나오고 사도 바울은 아버지의 부인과 관계를 하는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질타합니다. 뒷매님이 지적한대로 인간이 심연에는 연산같은 짐승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가에서'님! 소중한 댓글에소생의 닉네임을 계속 '뒷매'라고 쓰고 계시는데 사실은 ' 뒷메'입니다.^^
원래는 '뒷뫼'라고 했었습니다만,'뫼'는 山이라는 뜻과 함께 墓라는 뜻도 있어 오래전에 '메'로 바꾸었습니다.
'메'는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山의 '예스러운 말'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 민중서관).
왜 뒷메로 했는가. 제 고향 집뒤 선산을 동네 사람들은 통상'뒷메산'('역전앞'- 혹은 '처가집' 처럼...)이라고 호칭해 왔습니다.
(그곳에는 조부와 부모님의 幽宅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생의 이른바 호는 뒷메의 한자표기인 '後山'입니다. ^^장광설, 이해해 주시길!
뒷메님...무심한 늙은이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메로 적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