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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가곡예술마을[나음아트홀] 원문보기 글쓴이: goforest
보는 이 없어도 홀로 피는 들꽃처럼
찾는 이 없어도 맑게 솟는 옹달샘처럼
그렇게 넘쳐나는 생명일 수 없을까
무한의 큰 품에 다담삭 안겨
성스런 향기 뿜어내는
- 고진하 / 세상에 날개가 닿지 않는 새처럼
피아니스트 노조미 이와이,
나는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한자로 그녀의 이름을 풀어보았습니다.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일본어와 20년째 인연을 맺어온 나는, 일본인들의 성씨와 이름이
우리에 비해 가짓 수도 많고 또 그 뜻도 다양하고 재미있는 데 놀라곤 합니다.
우리의 성(姓)에 해당하는 '노조미'는 한자로는 '망" (望)의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희망한다는 뜻이지요
우리의 이름에 해당하는 '이와이(岩井)'는 바위를 뚫고 솟는 우물을 뜻합니다.
다도(茶道)를 즐기시는 분들은 우리가 마시는 물 중에서 차를 끓이는 최고의 물로 흔히 석간수를 듭니다.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물인 셈이지요. 맑고 깨끗한데다 풍부한 미네랄과 무기물이 섞여 있어
맛이 비할 데 없이 좋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그녀의 이름을 풀이한다면 '바위를 뚫고 솟아오르는 우물 같은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피아노 앞에 다소곳이 앉은 그녀가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다양한 표정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와 이름이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검은 피아노의 몸통은 바위인 셈이고, 그녀가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을 누를 때마다
피어오르는 때로는 청아하고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힘차고 때로는 연약한 소리들은
바위 틈을 비집고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그녀가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유려하게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앞을 보되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이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주니 희망의 샘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가 이번 가곡마을과 모차르트 홀에서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장에서 그녀의 소리를 들어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나 불가피한 일로 그녀가 쏟아내는 선율을 현장에서는 들을 수 없어 오늘 하루 종일
가곡마을에서 보내 온 연주 동영상을 듣고 또 듣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그녀의 연주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피아니스트라는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어색함도 미숙함도 없었습니다.
피아노를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청아한 가을 하늘 같았습니다.
그 하늘에 뭉게뭉게 흰 구름이 피어나다, 새털같은 솜털같은 비늘같은 안개같은
형형색색의 구름이 피어났다 사라집니다.
정말 그녀가 피아노 건반을 볼 수 없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녀는 피아노와
친구처럼 연인처럼 자매처럼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음악을 전공한 전문가도 아니고 더욱이 피아노를 배우지도 않았으니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항변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도 늘 음악을 듣는 제 귀에는 어느새 좋은 소리와 덜 좋은 소리,
아름다운 소리와 거슬리는 소리를 구별할 정도의 근육은 붙었습니다.
그녀가 들려 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오스트리아 춤곡과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봄의 안식' 모두 내 가슴을 묵직하게 두드렸습니다.
몇 해전만 해도 나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자주 듣지는 못했습니다.
베토벤의 압도적인 세례를 받는 내게 슈베르트는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산맥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돌무더기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나이를 먹고 맵고 짜고 신 세상에서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육신이 너덜해지면서
슈베르트 곁으로 자꾸 다가가고 싶은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어떤 음악가보다 불행하고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오직 음악을 밥처럼 먹고, 술처럼 마시고
애인처럼 사랑하고 자식처럼 아꼈던 음악가,
오규원 시인의 싯구처럼 '음악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었던!' 작고 못생기고 소심한 음악가,
하지만 다른 어떤 음악가의 음악보다 힘든 이, 눈물 흘리는 이, 고통 받는 이, 쓸쓸하고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가,
그의 음악을 듣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슈베르트를 들으면서 나는 그녀와 슈베르트의 음악이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뜨거운 음악에의 열정과 세상에 대한 순수한 사랑, 그리고 영원을 지향하는
고결한 영혼을 가졌던 슈베르트는 그러나 세상에서는 가장 낮은 곳,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은 왜 이렇게 슈베르트에 시련을 주신 걸까요?
그것은 어쩌면 세속에서 맛난 것, 좋은 옷, 아리따운 여인, 만인의 박수, 그리고 번쩍이는 금관을 쓴
음악가는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하늘의 소리를 지상에 뿌리는 전령사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녀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시련을 하늘이 주신 이유도 그러리라 짐작했습니다.
천재시인 백석의 싯구절 한 대목이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유도 그래서였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백석 /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어쩌면 그녀는 세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오롯이 그녀의 눈과 귀 그리고 영혼을
하늘의 소리를 듣는 데 쏟아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도 너무 감동적인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도리어 눈을 지그시 감게 됩니다.
그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소리에 전율을 느낄 때 귀를 뺀 오감을 모두 닫아 걸고
오롯이 귀를 통해 그 소리의 파동을 감지하고 온 몸 깊숙이 받아들이고 싶어집니다.
연주자와 지휘자들도 몰아의 경지에 빠지면 두눈을 감곤 합니다.
신의 음성을 갈구하는 예배당에서도 신자들은 두 눈을 감고 기도를 합니다.
그녀가 두시간 동안 연주한 슈베르트의 음악이 더욱 깊이 가슴을 파고든 이유도
그녀가 슈베르트의 음악을 빌려 하늘의 소리를 제 마음 속에 뿌렸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건반을 두드리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 했습니다.
청중도 청중이지만 그녀 자신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그 영롱한 소리를 타고 냇물을 거슬러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연어같았습니다.
그녀가 마침내 다달은 곳,
맑은 소리가 펑펑 솟는 곳, 그 곳은 소리의 발원지, 그녀의 영혼 깊숙이 자리한
음악의 성소(聖所)였을 것입니다.
연주가 끝나고 해맑게 웃으며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눈물이 솟았습니다.
편안히 앉아서 슈베르트의 선율에 몸을 맡기는 일은 숨쉬는 일처럼 쉽지만,
저렇게 연주하기까지 무대 위의 그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어둠과 낯설음과 고통과 싸워야 했을지요?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피아노 앞에 앉은 나를 상상해봅니다.
도무지 어디에 도레미파..... 건반이 붙어있는지도 알 길 없는데
그 어려운 멜로디와 화성, 때로 건반을 껑충 건너 뛰기도 해야 하는 이 망망한 피아노를
환한 대낮처럼 들여다보고 장난감 다루듯 능숙하게 연주하기까지
그녀가 건반 위에 쏟았던 땀과 눈물은 얼마였을지요?
또 그녀를 뒷바라지하는 부모님의 노고는 얼마나 지극한 것일지요?
나는 그녀가 언제까지고 그 건반을 벗삼고 애인삼고 자식삼아 연주하기를 빌었습니다.
어쩌면 하늘은 예술을 그녀의 가장 친한 벗으로 만들고 싶어 그녀에게 세상의 시련을 내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슈베르트에게 그랬듯이,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서, 육신은 가난했지만 영혼은 누구보다 부자였던 슈베르트, 외모는 초라했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눈부셨던 슈베르트, 걸친 옷은 남루했지만 영혼에서는 진한 향기를 뿜었던 청년
슈베르트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혹시 슈베르트가 죽은지 두 세기 만에 여인의 몸을 빌어 먼 극동의 나라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닐까요?
폭염이 무자비하게 세상 사람들을 괴롭히는 여름, 폭염보다 더 무서운 세상의 경쟁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는 영혼들에게 그녀의 음악이 한없는 위로와 기쁨과 용기를 줄 것으로 믿습니다
세상에 날개 닿지 않는 그녀가 하늘 높이 높이 힘껏 날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녀의 앞날을 응원하면서 고등학교 음악 시절 따라 부르면서 감동을 못이겼던
슈베르트의 가곡 한 줄로 그녀를 축복합니다.
" 그대 축복 받은 예술아!
인생의 잔인한 현실이 나를 조일 때
그대는 나의 마음에
온화한 사랑의 불을 붙였고
나는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었네
.....
그대 축복받은 예술이여,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
- 슈베르트 / 음악에 부쳐
- 2016. 08.23 KBS 해설위원 임병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