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 김성훈/김종철
<녹색평론> 138호, 2014년 9-10월호
이 기록은 김성훈 전(前) 농림부장관과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014년 8월 4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 커피숍에서 가졌던 대담을 녹취, 정리한 것이다.
(내용에 나오는 사진 자료는 모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카페 운영자인 제가 임의로 삽입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재섭)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몬산토’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 7월 중순에 제가 전화 드렸을 때 며칠 외국에 다녀오실 예정이라고 하셨는데, 어디를 가셨던가요?
헝가리하고 우크라이나에 다녀왔습니다. 두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헝가리는 아시다시피 유럽에서 유일하게 동양계 민족과 피가 섞인 나라예요. 물론 먼 옛날 얘기지만. 그리고 내가 볼 때는 가장 미인들이 많은 나라가 헝가리예요. 헝가리에 가면 기분이 좋아요. 사람들이 아주 정답습니다. 그리고 헝가리에서는 GMO(유전자조작식품)라면 생산도, 판매도, 거래도 못하게 돼 있어요. 우크라이나도 원래는 그래 왔었지요.
근데 이번에 유럽에 가서 들었는데, 물론 엄밀한 과학적인 정보는 아니지만,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단순히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라 그 이면은 GMO와 반GMO 간의 싸움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GMO산업을 주도해온 몬산토가 아무리 유럽시장을 공략하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EU의 반GMO 정책이 워낙 강경하죠. 특히 독일과 동구권 국가들이 똘똘 뭉쳐 있어요. 근데 EU의 곡물창고가 우크라이나입니다. 그래서 몬산토가 허술한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가려고 공작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전(前) 대통령이 완강히 거부했어요.
그런데 몬산토 계열에 블랙워터(정규군 수준의 병력과 무기를 보유한 세계 최대 민간 용병회사 ― 편집자)가 있습니다. 전직 CIA 출신하고 전직 공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돼 있는 블랙워터를 2년 전에 몬산토가 인수·합병했지요. 그 블랙워터 용병들이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들어가서 시위를 선동해 대통령을 몰아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위 친미 인사가 새로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사람은 GMO를 찬성합니다.
그런데 GMO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게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입니다. EU는 물론 헝가리나 폴란드 등 동구권 나라들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거기서는 GMO가 불임이나 난임(難姙)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유방암 등 종양 발생률을 높여 GMO를 도입하면 결과적으로 인종말살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푸틴은 의회 결의를 거쳐 GMO 식품은 판매도, 생산도, 가공도, 거래도 못하게 했습니다. 푸틴이 지금 러시아계 동포들을 보호한다는 정치적인 명분을 걸고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고 있지만 근본 배경에는 이렇게 GMO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거죠.
― 무서운 세상이군요. 저도 GMO가 큰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 때문에 이런 식으로 국가질서가 유린되고, 국제정치가 뒤틀리고, 진실이 무너지고 있는 건 몰랐습니다. 언론들이 늘 그냥 받아만 쓰지, 진실을 캐낼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말이죠. 근데 저도 뉴스의 이면을 꽤 살펴보려고 하는 편인데, 선생님은 참 어디서 그런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시는지….
〈RT〉 뉴스, 〈Natural〉 뉴스 등을 읽으면 다 나와요. 그리고 저는 옛날에 유엔(식량농업기구)에 근무할 때 맺었던 인연들이 있어요. 이제는 늙어서 그 사람들이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IT로 이런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그럽니다.
― 아주 좋은 네트워크를 갖고 계시군요.
GMO, 불임과 난임을 유발한다
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도 우리 정부보다 먼저, 더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서 대안을 적시할 수 있었던 게 그 덕분입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원하신다면 내가 받은 자료, 특히 GMO 관련 자료는 얼마든지 보내드릴 수 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GMO는 절대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1998년에 영국의 푸스타이 박사가 이미 실험했던 것을 시작으로, 그 후 여러 독립연구가 있었죠. 그중 가장 완벽한 실험으로 인정받은 게 재작년 프랑스 파리대학의 셀라리니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죠. 실험용 쥐 2,000마리한테 2년 동안, 사람으로 치면 약 10년 동안, 계속해서 GMO옥수수와 GMO콩을 먹여봤는데, 결과는 각종 종양이 생기고, 장과 위장이 비틀어지고, 유방암이 생겼습니다. 피해는 암컷과 수컷이 7 대 3 비율로 나타나요. 특히 여성들은 절대로 GMO 콩나물, GMO 두부, 두유를 먹어선 안됩니다. 동물실험 결과로 볼 때 여성이 훨씬 더 취약합니다. 2세로 가면 자폐증과 불임증이 나타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종자를 계속 팔아먹으려고 GMO는 모두 불임이 되도록 미리 조작돼 있거든요. 유럽과 중국, 러시아에서도 동물실험을 한 여러 자료가 있지만,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게 셀라리니 교수의 실험이라고 합니다. 그 실험은 몬산토 스스로가 GMO의 효과가 좋다고 설명하기 위해서 썼던 수법을 그대로 썼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론을 얻어낸 것이니까요.
― 셀라리니 교수가 그런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전에 영국의 과학자 푸스타이는 GMO가 유해하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하자마자 목이 잘려버리지 않았습니까. 프랑스에서는 독립적인 과학실험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모양이죠?
프랑스가 그런 면에서는 좋은 나라죠. 그리고 지금 GMO는 주로 미국계 다국적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있겠죠. 몬산토, 듀퐁, 신젠타, 다우, 비앤에프 등 소위 다국적 농약·화학회사들이 제초제·농약을 겸사겸사 팔아먹기 위해 유전자조작 종자를 만들어내고 있죠. 그런데 종자 만들어낼 때 제초제에 강한 것, 병해충에 강한 것, 내한성을 가진 것들을 만들어내지만, 공통적인 것은 종자가 불임이 되도록 하는 거죠. 그래야 계속 GMO 씨앗을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
(빌 게이츠의 도움으로 아프리카 국가에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밀어넣으려던 몬산토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근데 웃기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부부입니다. 그들은 몬산토 주식 20퍼센트인가 샀어요. 그러고는 아프리카에 자선한다고 GMO 곡식을 무상원조하겠다고 하니까, 짐바브웨가 거부해버렸죠.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GMO 따위는 안 받겠다고요. 빌 게이츠 부부가 그런 망신을 당했습니다. ‘인도주의적 자선’을 표방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거죠.
지금 몬산토의 1년 매출은 대한민국 연간 예산과 맞먹습니다. 어마어마하죠. 그러니까 블랙워터 같은 용병회사도 경영하고, 한국에도 모 교수에게 GMO 연구재단 만들도록 지원하고, 그리고 바이오 분야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 주고, 농업연구기관을 비롯해서 학계, 관계, 언론계에 장학생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 한심한 이야기네요. 학자, 전문가, 언론인 등 소위 사회 엘리트라는 자들이 늘 돈이라면, 권력이라면, 그 앞에서 독립성과 자주성을 잃고 인간적 자존심도 내팽개쳐버리는 이 빈곤한 정신적 풍토가 개탄스럽습니다.
몬산토는 광화문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매년 794만 톤씩 GMO 콩과 옥수수와 카놀라를 십수 년째 수입하고 있는데, 그중에 식용은 약 190만 톤입니다. 사료용까지 포함해서 해마다 794만 톤씩 들어옵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 GMO 농산물 수입국이에요.
― 첫번째는 어딘데요?
일본이죠. 근데 일본은 식용보다도 주로 사료용이에요. 그러니까 몬산토 쪽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은 아주 충성스런 ‘봉’이죠. 그래서 광화문의 좋은 위치에 자릴 차지하고, 각종 장학생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죠. 저한테도 초기에 식품산업협회를 통해서 접근해왔어요. 제가 속해 있는 경실련에서 GMO 표시제를 주장하니까 그거 좀 하지 말아달라고요. 그래서 당신네 협회가 결정한 것이냐 아니면 GMO 종자를 판매하는 쪽에서 부탁한 거냐고 물었더니, 어물어물 대답을 못해요. 몬산토가 돈을 댄다는 말을 할 수 없겠죠.
‘몬산토’의 장학생들
― 농과대학 교수들도 많이 넘어갔죠?
농과대학의 바이오 전공 교수들, 또 식품영양학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넘어간 것 같아요. 어떤 고명한 영양학자도 우리나라에 GMO를 도입·개발해야 식량안보가 달성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어요. 바이오 분야에 전문성도 없던 사람인데, 대학을 은퇴하자 부랴부랴 연구재단을 만들어 GMO 홍보원 노릇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잡초가 농사를 망치니까 어차피 제초제는 써야 한다는 논리죠. 몬산토가 만든 제초제를 쓰면서 거기에 저항성을 가진 GMO 종자를 뿌리면 증산이 된다는 논리죠.
그러나 그런 몬산토의 신화도 벌써 깨졌어요. 2~3년 동안은 잡초 제거에 효과가 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글리포세이트라는 몬산토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새로운 잡초가 나와버려요. 슈퍼잡초죠. 그리고 제초제 때문에 토질이 악화되니까 생산성이 떨어져요. GMO를 재배하지 않는 EU의 과거 10년간의 곡물생산성과 GMO를 사용해온 브라질과 미국의 곡물생산성을 비교해보면 그 결과가 확연해요. 이젠 유럽의 농업생산성이 훨씬 앞서 있어요. 결국 GMO 농사가 식량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건 거짓말이죠.
(산업농업의 대가 – 미국 농장의 거의 절반에서 슈퍼잡초가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이 보도를 안해요. 그리고 GMO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어떤 관계기관도 과학적인 실험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한민국의 어느 연구기관 또는 학자들에게도 그런 실험을 하라고 연구비가 주어지지도 않고요.
― 자기들한테 불리한 연구비를 줄 리가 없죠.
독립적인 연구는 국가가 지원해야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게 국가의 책무니까요. 그러나 많은 민간단체들이 그렇게 요구해왔는데도 한국정부는 귀를 닫고 있어요. 이게 다 국가가 기업(자본)에 휘둘려 있는 탓이겠죠.
― 지금 우리 정치권에도 로비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겠네요?
네. 현재 야당 국회의원 남윤인순, 홍종학 의원 등이 GMO 표시제를 하자고 입법 발의를 했는데도,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 지도부가 말 한마디도 거들지 않는데, 무지한 탓인지 약 먹은 탓인지.
―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표시제를 하자는 건 지극히 정당한 요구인데요.
물론이죠. 그리고 GMO 표시제가 실제론 특별한 추가비용이 드는 게 아닌데도 생산비용이 많이 든다고 식품업계가 반대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표시제를 반대하는 로비가 주로 재료의 70% 이상을 외국산으로 쓰고 있는 식품산업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몬산토는 직접 자기 얼굴을 내밀지 않아요. 관련 학계, 식품영양학자, 바이오 학자들 그리고 농약 및 GMO 연구기관 사람들이 알아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농약은 과학이다!”, “GMO, GAP도 친환경 농산물이다”라고요.
― 몬산토의 지배력이 생각보다 더 심하네요.
저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서 국민안전에 관련된 거의 모든 재앙이 코퍼라토크라시(corporatocracy)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를 김 선생님이 좀 잘 번역해주세요.
― 기업자본독재 혹은 기업전제정치라고 할까요.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기업(corporation)이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뜻이죠. 기업자본이 정치와 언론과 사회와 경제, 문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우리 일상생활까지 지배한다는 뜻이거든요.
― 지금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GMO는 옥수수하고 콩하고….
카놀라도 있어요. 나는 참치통조림을 먹지 않아요. 깡통 열면 가득 찬 기름이 전부 GMO 카놀라기름이거든요. 캐나다산 카놀라는 거의 100%가 GMO예요. 그리고 하와이에 카우아이라는 섬이 있는데 거기서 생산되는 파파야도 GMO예요. 미국 사과도 그렇고. 그리고 미국의 양식 연어를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금 많이 사 먹는데, 이 양식 연어가 GMO일지 몰라요. 이러다간 우리 젊은이들이 장차 실험실 쥐 신세처럼 될지 모릅니다. 불임·난임률에 대한 보건복지부 통계 한번 보세요. 5년 이내에 아이 못 갖는 신혼부부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체외수정을 하는데, 또 이게 3,000만원 하다가 요즘 5,000만원으로 올라갔어요.
― 불임은 환경호르몬 영향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가지 영향이 있죠. 그중에서 특히 GMO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셀라리니 교수 실험결과에서 밝혀졌어요. 우리나라에 GMO가 들어온 게 15년이 훨씬 넘었거든요.
― 그러니까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쌀 이외 농산물이 모두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중국도 지금 GMO를 수입합니까?
우선 확실하게 수입하는 것은 GMO 옥수수, 대두 그리고 면화씨. 직접 먹는 것 아니니까 사료용으로 수입하는데….
― 면화씨로 기름을 내지 않습니까?
그게 문젭니다. 그리고 GMO콩을 수입할 수밖에 없어요. 워낙 중국이 콩기름 수요가 많으니까. 그런데 자기들이 안전성에 대해서 인정한 것만 수입해요. 인정하지 않은 GMO콩이 들어오면 바로 항구에서 돌려보내요. 최근에도 몇 차례 돌려보냈어요.
― 인정하는 GMO라는 건 뭡니까. 함유량을 말하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외신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 인정하는 어떤 특정 품종이라고 해요. 지금 탐문 중이지만, 아마 자체의 분석결과가 있는 모양이에요. 근데 한국도 농촌진흥청 실험실에서 개발해놓은 GMO벼가 있어요. 황금쌀(golden rice) 종자라는 거죠. 그 외에 70여 품목 150여 GMO 종자가 개발되어 있다네요.
그런데 제가 농림부장관하면서 남겨놓은 게 뭐냐면 GMO 실험용 연구는 통상압력 방어용으로 학술적으로 계속해도 좋다, 다만 이것을 상용화하고자 할 경우엔 인체 및 생태계에 대한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다음, 생산자 및 소비자 단체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지침이에요. 미국으로부터 GMO를 받으라는 압력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도 GMO 기술이 있지만 상용화하지 않고 있다, 왜냐면 생태계와 인체에 대한 안전성이 증명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로 미국의 통상개방 압력을 막았었죠. 우리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조건의 수량만 수입했죠. 국내산 GMO 종자, 이것을 상용화하려고 할 경우엔 생산자·소비자 단체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이 지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소비자·생산자 단체들은 다 알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진흥청 자체 내에 GMO 상용화(실용화)사업단이 생겼다 하네요.
‘창조경제’의 허구
― 소위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하겠네요.
‘창조적인 씨앗’ 장사죠. 그런데 몇해 전에 대한민국 소비자단체장들이 초청을 받아 미국에 다녀왔어요. 그런 다음 GMO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요. 그때 초청여행을 거절한 예외적 인사가 송보경, 김재옥 씨들이에요.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모임’(소시모)을 이끌어온 분들이죠. 저도 ‘소시모’ 창립멤버입니다.
그 ‘소시모’하고 경실련의 소비자정의센터가 주동이 돼서 ‘바이오 안전성 시민단체 연대회의’가 만들어졌어요. 39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죠. 그래서 각 단체마다 GMO 의심 품목을 하나씩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최근에 언론에도 보도됐지만, 어린애들이 즐겨 먹는 미국산 시리얼들이 전부 수입 옥수수와 수입 콩을 쓰면서 GMO 함유 표시가 돼 있지 않은 걸 밝혀냈지요. 심지어 어느 나라 것인지도 표시가 안돼 있어요. 경실련은 제일 먼저 두유를 조사했는데, 한살림 등 생협 제품을 제외하곤 거의 GMO콩 사용 제품이었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지난 5월 24일 세계 200여 도시에서 ‘Non―GMO, Anti―Monsanto’ 집회가 동시에 열렸어요. 서울에서도 열렸습니다. ‘슬로푸드문화원’을 비롯해서 50여 단체 대표들이 광화문 몬산토 사무소 앞에서 “GMO 물러가라, 몬산토 물러가라”며 데모를 하며 가두행진에 나섰는데, 경찰들이 와서 “저기 고엽제피해 전우회가 행사 중인데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니 행진에 나서지 말라”고 종용했답니다. 근데 고엽제가 뭡니까? 제초제와 사촌지간 아닙니까? 바로 몬산토가 전세계 고엽제(Agent Orange)의 80%를 공급하고 있는데….
― 자기들에게 피해를 입힌 그 기업을 옹호한다? 재미있네요.(웃음)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쓰는 사료는 전부가 GMO라고 봐야 됩니까?
곡물의 경우는 그렇죠. 배합사료를 만들 때 주로 옥수수를 많이 쓰고, 대두박을 섞습니다. 그래도 이런 현실이지만 희망적인 움직임도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광주에서 우리가 기르는 닭들한테는 절대로 GMO 못 먹이겠다며 양질의 사료를 러시아에서 직접 계약·재배하여 가져와서 양계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화학제품, 항생제 없이 채란용 닭을 키우죠. 두부도 만들어 회원들에게 직접 배달을 해요. 꽤 규모가 큰 양계농장이에요.
― 러시아라면 연해주를 말씀하시겠죠. 연해주에서 한국인들이 농사 많이 짓습니까?
한국인들은 많지 않고요. 한국인들이 가서 땅을 계약해 갖고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주로 하고 있지요.
― 거기서 오는 농산물이 몇 퍼센트나 됩니까?
몇 퍼센트라고 할 만큼은 안되죠. 그런데 예전에 대륙연구소의 장덕진 (전 농수산부 차관, 농업진흥공사 이사장) 씨가 중국의 삼강평원 개발계획에 착수한 적이 있죠. 옛 발해 땅인데 한반도보다 훨씬 더 넓은 땅입니다. 거창한 북쪽 황무지라는 뜻으로 ‘북대황(北大荒)’이라고 불렀죠. 그곳을 장덕진 씨가 배짱 좋게 50년 장기계약으로 빌렸죠. 추가로 50년 연장이 가능한 계약도 맺었습니다. 근데 노태우 정부의 눈 밖에 나서 계약금이 떼일 입장이 되었어요. 그래서 장덕진 씨가 어찌어찌 수출입은행에서 지원을 받기로 돼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었어요.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쌀 수입개방만은 절대로 막겠다고 해놓고는 못하게 되니까 대국민 사과를 하고, 급하니까 농어촌발전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위원장감을 모색하다가 장덕진 씨에게 맡아달라고 했어요. 그걸 장덕진 씨가 거절했어요. 그게 탈이었어요. 장덕진 씨는 몽땅 사재까지 털어 삼강평원에 몰입하던 때라 거절했을 것인데, 그게 밉보인 거죠. 그래서 수출입은행에서 돈을 받기로 한 약속이 대통령의 ‘안돼’라는 한마디로 물거품이 돼버렸어요. 중국정부는 장덕진 씨의 인품을 믿고 10년을 기다려줬는데 결국 나무아미타불이 돼버렸죠. 이미 삼강평원을 가로지르는 큰 수로도 개발해놓았는데 그대로 중국 것이 돼버리고 말았죠. 지금은 그곳이 중국의 대곡창이 되어 ‘북대창(북쪽의 큰 곡창)’이라고 부릅니다. 장덕진 씨는 그로 인해 좌절되었고.
― 그거 아깝네요. 국가가 왜 그리 생각이 없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닌데….
100년, 아니 10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한국정부 지도자들입니다. ‘북대황’을 찾아내 소개를 했던 제가 잘못이죠. 그때 어떤 신문은 1면에다가 “영하 40도 동토에 웬 농사냐” 하고 반대 기사를 썼어요. 내가 캐나다에서 2년 넘게 살았는데, 거기는 삼강평원보다 위도가 더 높아서 겨울에 영하 50도까지 내려가지만, 여름엔 농사를 잘만 짓는 나라입니다. 농사를 짓는 여름엔 일조시간이 더 길어서 우리나라 여름철에 사흘 걸려 자랄 것이 거기선 하루에 다 자란다구요.
농지해외개발의 실태
― 궁금해서 여쭙는데 외국에 우리 기업들이 나가서 땅 확보해서 농사짓는 것, 해외개발이 어느 정도 됩니까?
박정희 정부 때 아르헨티나 땅 60만 평을 정부 돈으로 샀어요. 그걸 개척하기로 하고, 당시 농업경제 전문가를 농무관으로 파견했어요. 그런데 비전문가들이 부랴부랴 땅을 산 탓에 알고 보니 염분이 많은 간척지였어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을 산 것이에요.
― 어떻게 잘 알아보지도 않고 샀을까요?
대통령이 한번 관심을 보이고, 또 브로커가 좋은 땅이라고 하니까 현장조사도 안해보고 사버린 거죠.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농업투자였어요. 결국 실패했는데, 그 뒤 노태우 정권 때 그런 오지를 개발하는 방법은 안되겠다고 아예 기존 농지를 사야 한다면서 다시 선경㈜을 앞세워 미국 워싱턴주의 농장을 20만 평인가 샀거나 빌렸어요. 밀과 옥수수 밭인데, 거기서 농사지어 수확해서 가져오는 것으로 했어요. 정부가 선경을 도와주고 선경이 주체가 되었죠. 그런데 그게 다국적 곡물기업들이 들여오는 농산물과 가격경쟁이 되지 않았어요. 두산과 삼성이 다국적기업 농산물들을 받아 파는데, 선경 것이 가격경쟁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수지가 안 맞아 손들어버렸어요. 그게 두 번째의 공식적 해외농업개발이었죠. 세 번째가 장덕진 씨의 삼강평원이었고.
그 다음에 ‘월간 상업농경영’이라는 잡지를 지금도 발행하고 있는 국제농업개발원의 이병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제가 재직하던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석사를 했어요. 그런데 고려합섬의 장치혁 회장이 장덕진 씨가 삼강평원 개발을 계획할 때 우수리강 오른쪽 땅 연해주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자기 부친이자 역사학자인 장도빈 선생이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장덕진 씨와 부딪쳤어요. 그 영역 조정을 제가 했죠. 장덕진 씨는 말은 안 했지만 발해의 고토에도 큰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욕심을 줄여라, 우수리강 왼쪽 삼강평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조언을 했지요.
근데 당시만 해도 우수리강 이하는 황무지로 버려져 있었어요. 예전에 우리 동포들이 살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한 뒤에는 그곳이 사실상 방치돼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영농의 타당성을 살피러 건국대학교 김모 교수 등 농업전문가들이 연해주에 갔는데 그때 제가 실무자로 이병화를 추천했어요. 그것을 계기로 이병화가 연해주 전문가가 된 거예요. 뇌물이 쉽게 통하는 구소련 관리들과 친해졌죠. 그래서 이병화 씨가 매년 10여 차례씩 오가며 연해주에 농사짓고 싶은 기업가들에게 소개를 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농사지어서 한국에 들여오면 수지가 맞을 거라는 단순계산을 믿고 10여 개의 기업들이 연해주에 진출했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미국이 연해주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한국으로 들여올 때 미국산 농산물을 한국으로 수입할 때와 똑같은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 거예요. 원산지가 러시아니까 미국에서 들여온 농산물하고 동등한 관세를 매겨야 한다며 가트(GATT) 규약을 들이댔어요. 이들이 초기 개발비용을 회수하려면 한 10년 걸리는데도 막무가내였죠.
―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쯤이었겠군요. 그래서 미국이 관세 매겨야 한다고 해서 결국 물러났습니까?
네. 그래도 하나는 틀어잡았어요. 옥수수, 콩을 사 들여오되 품질과 안전성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갔죠. 흔히들 가격경쟁력을 말하지만, 먹는 것은 무엇보다도 품질과 맛과 향기와 안전성이 중요하거든요.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사회가 되면 자연히 그렇게 되지요.
― 그 이외 해외농지는 어떻습니까? 한때 대우 계열회사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의 독재자에게 뇌물을 주고 전체 농지 중 절반을 헐값으로 99년인가 장기 임차를 했다가 국제적인 지탄을 받고 철수한 일도 있잖습니까?
대우는 동남아시아 쪽을 겨냥하기도 했지요. 그런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식량공급이 불안정한 나라입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엔 식량 때문에 폭동이 자주 일어났어요. 기본적으로 사회가 불안한 나라에서 농산물을 생산해서 가지고 나가려고 해보십시오. 그곳 국민들이 용인 못합니다. 그래서 대우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쪽에 욕심을 내다가 그만뒀어요. 그리고 우리 정부가 호주 쪽에서 쌀농사 해볼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논농사는 물이 제일 중요한데, 물싸움 벌어지면 환경론자들한테 밀려납니다. 결국 물 문제 때문에 중단했죠. 그래서 제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연해주나 삼강평야였죠. 남미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해외농지를 사거나 빌려서 농사짓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충돌 때문에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흔히들 경제성만 가지고 해외개발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죠.
근데 유심히 살펴보니 일본이 아주 영악해요. 일본은 아예 다국적 곡물 메이저를 사버립니다. 원래 세계를 주름잡던 곡물 메이저가 10여 개 있는데, 그중 2개를 미쓰비시(三菱)와 이토추(伊藤忠商事)가 사버렸죠. 이렇게 미국에 베이스를 둔 다국적기업을 장악해서 각 생산지마다 보유하고 있는 엘리베이터(곡물저장창고)를 확보하여 유통물량 확보를 하는 방법이죠. 그래서 제가 계속 건의를 했죠. 직접 투자하려고 하지 말고 일본처럼 유통과 상업부문에 투자해서 무역을 컨트롤하자. 농협에 그걸 맡기자고 했죠.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나온 지 십 몇 년이 흘렀는데도 못하네요. 농협 쪽에서는 정부가 돈을 줘야 하지 리스크가 부담스러워 못하겠다는 식입니다. 유통공사도 시작하다 그만두었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곡물을 전문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기업이 두산이거든요. 그 다음에 삼성물산. 이런 기업들은 미쓰비시나 이토추처럼 유통과정에 투자할 생각이 없고, 그냥 편안하게 매판자본 역할이나 하려고 해요. 다국적기업이 가져오면 수수료 물고 한국에서 판매를 독점하는 것 말이에요.
한국의 대기업, 매판자본
― 결국 자기 동포들 등쳐먹는 짓이 더 쉽다는 거겠죠. 한국의 대기업이 장사하는 방식이 참 치사하네요.
그렇게 하면 위험이 없으니까. 앞잡이 노릇을 하면 안전하죠. 그래서 한국의 ‘코퍼라토크라시’는 뭐냐면 전부 외국자본, 외국 대기업하고 관계되어 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이 쓰는 화학농약 중 원자재가 국산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부분 다 다국적기업인 신젠타, 몬산토, 듀퐁 등 외국 화학회사들이 만든 원자재를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밀가루를 타고 희석해서 팔아먹는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의 농약회사들 대부분이 매판업자들입니다. 식품회사든 뭐든지 거의 다 그래요.
― 비료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하잖아요?
그건 질소비료들이고, 나머지 가리비료나 인산비료는 원재를 수입해서 희석해 팔고 있습니다. 농업 이외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각종 화학제품, 무기 등등, 세계를 실제로 지배하는 기업들은 다국적, 초국적 기업들입니다. 미국의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의 귀재가 앞으로 농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하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앞으로 우리도 농업을 수출하는 미래성장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쌀 관세화(전면개방)는 말하자면 떡볶이를 만들어 수출 많이 해서 대처하자는 식이죠.
근데 왜 몬산토를 비롯한 미국의 초대형 다국적 대기업들이 농업에 투자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중동에서의 국지전 빼고는 오랫동안 평화시대가 계속되는 바람에 그 동안 투자했던 무기산업이 생각만큼 돈벌이가 잘 안돼요. 전쟁이 나야 가장 큰 돈벌이가 되는 건데. 금융투자도 2008년에 위험이 드러났어요. 그래서 농업으로 눈을 돌린 거죠. 사람은 365일 하루 세끼 먹어야 하고, 세계 인구도 늘고 소비수준이 높아지면 육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납니다. 고기 수요가 늘면 종래보다 4~8배의 곡물 수요가 생기니까 곡물 생산과 유통에 미래의 농업성장동력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 제초제와 농약 그리고 GMO 종자산업의 전망이 좋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가공해서 파는 겁니다. 맛과 색깔과 향기를 화학적으로 조작하고, 인공첨가물 등으로 식품업을 확대합니다. 그리고 비타민이나 약품 만드는 분야도 액상과당을 쓰면 돈이 많이 드니까 값싼 GMO옥수수에서 추출해서 각종 약품을 만들어요. 작년에 고려은단㈜에서 “우리는 GMO가 아닌 옥수수에서 추출한 원료로 비타민C를 만듭니다, 재료가 다릅니다”라는 광고를 냈지요. 그러자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항의를 하고, 모처에서 그 광고 삼가도록 조처를 했다나요.
―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GMO만 보고 있으면 ‘코퍼라토크라시’로 인한 온갖 부조리, 비리가 다 보입니다. 약품회사건 식품회사건 대부분 GMO를 쓰고 있으니까. 요즘 인기 있는 막걸리에 들어가는 아스파탐도, 가축이나 젖소 성장촉진제도 GMO로 만들어요. 유기농제품에도 쓰고 있는 대부분의 올리고당, 포도당, 구연산, 이런 것도 원래는 과일에서 추출된 것이어야 하지만 요즘은 전부 값싼 GMO옥수수에서 추출해 만듭니다.
― 저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GMO를 피할 길이 없군요. 이렇게까지 무방비로 침투됐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유기농은 없다?
미국 같은 보수적인 나라에서도 소비자의 80%가 GMO에 반대하는데도 정치인들의 우선적 관심사는 기업의 이익입니다. 대부분이 주사약을 맞은 거죠. 몬산토 쪽에서 보면 문제는 EU입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어요. 2012년 내부문서를 보면, EU는 씨도 안 먹히니까 EU를 회유하는 데 쓰는 자원을 당분간 GMO를 제일 많이 수입하고 있는 일본, 한국, 중국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중국에서는 정치싸움에 GMO가 끼어들어 후진타오(胡錦濤)에 맞선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가 GMO 반대편이었는데 쓰러졌고, 지금 시진핑(習近平)은 GMO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중립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사천리예요.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노무현 정부 때도 아무것도 몰랐어요. 무능한 진보였죠. 지금 야당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몬산토에서 써먹어온 상투적 수법이 ‘유기농 죽이기’입니다. 사람들이 GMO를 싫어하는 이유는 우선 제초제·농약의 독성 때문이고, 두 번째는 유전자조작 식품의 인체 위해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정반대에 유기농이 있죠. 당연히 몬산토의 결론은 유기농을 죽여야 GMO와 제초제 등 농약산업이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스탠퍼드대학에 5억 달러 연구용역을 주고, 또 3년 뒤에는 옥스퍼드대학에 용역을 줘서 유기농 평가를 의뢰했어요. 스탠퍼드대학의 연구보고서는 돈 준 쪽의 주문대로 유기농산물이 일반 농산물에 비해서 영양가가 별로 차이가 없다, 들이는 노력과 자원만큼 효과도 별로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죠. 이 결론을 스탠퍼드대학 이름으로 전세계에 뿌립니다. 옥스퍼드대학의 연구는 유기농이 농약과 화학비료 안 쓴다고 하지만 실은 그 효과가 별것 아니라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금 이 논리를 펴고 있는데, 농진청의 일부 학자 관리들이 앞장을 서고 있죠. 국립대학의 농약·화학 교수들도 가세하고요. KBS가 ‘친환경유기농의 진실’이라는 2부작 프로그램을 7월 31일과 8월 7일에 방영했습니다. ‘유기농은 없다’가 원래 제목이었답니다. 공공연히 담당 PD가 그렇게 말했어요. 전국의 2,500여 유기농민들과 환경농업단체연합회가 KBS로 찾아가 데모하고, 간부들을 만나 고발하겠다고 했어요. 작년 1년 동안 우리 유기농 농가들을 찾아다니면서 부실한 방법으로 논밭의 토양을 조사하고, 그것을 화학농법을 옹호하는 교수들한테 의뢰하여 실험용 기계를 써서 ppm도 아니고 ppb 단위로 농약성분을 찾아내 가지고 농약이 나왔다고 과장된 주장을 한 겁니다. 그러니 유기농 농가들이 당연히 반발했지요.
KBS는 할 수 없이 프로그램의 일부 내용을 바꿔서 정부의 인증정책 공격에 집중했는데, 어쨌든 유기농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명백했어요. 특히 땅속에서 농약성분 나왔다고, 그것도 극미량을 측정하는 실험실용 기계를 가지고 농약이 나왔다고 과장했지요. 선진국에선 농약의 반감기라는 것 때문에 하지 않는 조사방법입니다. 또 그것이 유기농 인증 이후에 검출된 것인지 인증 이전에 있었던 농약이 잔류한 것인지도 밝혀내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유기농가 인증 밭에서 농약이 나왔다고 했으니 유기농 농민들이 기가 찰 노릇이죠. KBS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은 제주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든 것인데, 취재비를 포함해서 비용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런 주제를 정했을까요? 그래서 다들 여기에 GMO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몬산토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국내 식품산업계 및 GMO 수입회사들이 개입돼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그런데 몬산토가 쌀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쌀은 아직 건드리지 않고 있어요. 지금 몬산토가 밀 등 서구인들의 주곡을 건드릴까 말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미국 워싱턴주에서 일부 GMO밀을 실험하였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저항이 워낙 겁나거든요. 그래서 한국과 중국, 일본에 수출했는데 이명박 때 한국만 받아들였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반송처리 되었죠.
유전자조작 쌀은 우리 진흥청이 스스로 만들었어요. 그 외에도 벌써 150여 종의 GMO 종자를 가지고 있으니 GMO 숭배자들은 이를 상용화하고 싶어서 안달일 겁니다. 좀 있으면 청와대로부터 농림당국을 통해 실용화하라고 지시가 나올지도 몰라요. 그러면 소비자단체, NGO들이 또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원래 소비자단체와 생산자단체의 동의를 받아 상용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지침이었는데, 문서가 없다고 나올지 모르죠. 그러나 정부방침은 한번 정해지면 건강, 생명, 환경문제에 관한 한 문서에 관계없이 따라야 하는 거예요.
쌀 전면개방, 예견되는 농사의 종언
― 이제 쌀 문제 좀 말씀해주시죠. 정부에서 내년부터 쌀 관세화 시작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쌀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이 더 이상 존립할 수 없을 게 분명한데, 정부는 왜 이렇게 국민들의 동의도 없이 밀어붙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기본부터 따져봅시다. 우루과이협상 하면서 유일하게 예외를 인정받은 게 뭡니까. 쌀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영화산업은 예외로 인정하기 곤란하니까 아예 빼버렸고요. 프랑스가 막판까지 우리 때문에 UR 협상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프랑스의 영혼인 문화예술, 즉 영화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아예 협상 막판에 영화를 빼버렸지요. 그리고 쌀만 관세화(개방) 예외로 남았어요.
미국의 눈으로 볼 때는 당시 한국의 쌀 수출 비중은 일본의 10분의 1도 안되었죠. 그래서 우리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일본한테는 예외를 인정해주되, 3~4년 후 일본이 완전 개방하면 그때 국내가격과 수입가격 차이에 따른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인정한다. 일본은 이미 우루과이라운드 전에 쌀을 수입한 적이 있으니까 그 제안이 가능했죠. 그리고 그때 UR 이행기준이 1986~1988년이었어요. 이 기준은 우루과이협상의 모든 개방계획이 타결되기 10년 전의 것이죠. 일본은 미일 간의 밀약대로 관세화 유예조건을 몇 년 지키다가 높은 관세율(800% 상당)로 완전 개방했죠. 사실상 의무 수입 물량(최소시장접근물량)도 별로였어요.
우루과이협상의 첫번째 목표가 예외없는 관세화, 두 번째가 정부의 농산물가격 지원 및 생산비 보조금지(de―coupling)였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쌀 시장 개방 예외로 인정을 받아 관세화가 유예되고, 그 대신 기준연도의 쌀 소비량의 4%를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수입하는 것으로 낙착되었죠. 그게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된 것도 전국의 180여 농민, 시민, 환경, 종교단체들이 치열하게 싸운 덕분이죠. 그러다가 10년이 지나서 2004년에 다시 협상을 하게 되는데, 당시 노무현 정부는 통상협상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협상의 기본이 여러 개의 카드를 갖고 있다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수시로 변통해 그것을 적극 활용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협상팀은 처음부터 아무 전략도 없이 무조건 쌀 의무수입량을 4%에서 8%로 늘렸어요. 그것도 1986~88년의 우리 국민 수요량 기준을 그대로 둔 채 8%로 늘렸어요. 근데 그때는 국민 1인당 쌀 수요가 많이 줄어서 환산하면 실제로는 8%가 아니라 12%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글을 써서 이미 UR 타결이 10년이나 지났으니 1986~88년 기준을 고쳐서 이제는 그보다 10년 뒤 즉, 1996~98년을 기준으로 설정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당초의 4%를 고수하라고 했어요. 왜 4%냐. 당시 모든 우루과이라운드 이행계획이 2004년에 만료되고 다시 제2의 우루과이라운드에 해당하는 DDA(도하협상)가 성립돼야 했지만, 이것이 지연돼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약속들이 1993년 타결될 때의 이행계획을 2004년까지 유지하도록 돼 있습니다. 당시 미국이건 일본이건 영국이건 1993년 타결 때 설정된 그 이행기준이 2004년에 멈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왜 우리만 최소시장접근(의무수입량) 기준을 두 배로 더 늘린다는 것인가, 원래 예외로 인정받았으니까 우리는 그 기준을 고수할 기득권이 있다, 그러니 계속 4%를 유지하다가 정 안되면 기준연도를 10년 더 늦춰 변경하자고 역으로 제안하면 된다, 10년 전에는 기준을 1986~88년으로 했지만 10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그 기준을 1996~98년으로 고치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을 해야 한다, 그러면 설사 최종적으로 쌀 국내 소비량의 8%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1996~98년에는 1인당 쌀 수요가 크게 줄어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4~5% 수준밖에 안된다, 그런 계산으로 하라는 것이었죠.
이런 게 협상의 기술인데도 장관이 미국 가서 기준연도를 1986~88년 그대로 두고, 의무수입 최소물량을 4%에서 8%로 늘려주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1인당 수요량이 낮아졌기 때문에 1986~88 기준의 8%는 실제로는 2004년으로 볼 때 12%가 되었어요. 정말 잘못된 협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또 10년이 지나서 재협상을 할 때가 왔어요. 내년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원래 관세화 예외로 인정받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에 이행계획이 다 끝나버렸으니까 남들처럼, 타 품목들처럼, 현상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야지요. 잘못된 협상이었지만 노무현 정권 때 정해버린 8%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고, 그 대신 이번에는 기준연도를 10년 전, 즉 2006~2008년으로 바꾸자고 주장을 해야 합니다. 설사 이것을 끝내 관철시키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자꾸 새 카드를 내면서 상대방과 협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결렬과 중단을 거듭하면서 협상을 하는 거죠. 그것도 협상전략이거든요.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이상 기한이 지났다고 페널티를 받지는 않아요. 필리핀도 2년 기한을 넘겨서 타결됐어요. 그리고 정부는 필리핀이 최소시장접근 물량을 2배나 늘려줬으니 우리도 지금보다 2배로 늘리라는 요구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실은 필리핀은 매년 쌀이 110만 톤씩 부족해서 수입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부족한 범위 안에서 늘린 거예요. 그것도 관세는 35%를 부과하고요. 우리는 MMA 관세가 단 5%에 불과해요. 자급하고 남아돌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추가로 더 수입해야 하는 사정과 필리핀 상황은 180도 다릅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자꾸 정부는 필리핀 자료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다가 전농에서 초청한 필리핀 대표가 국회 공청회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자 정부의 거짓말이 들통 났죠. 정부는 필리핀도 양보했고, 더이상 관세화를 유예하면 우리가 더 많은 걸 내줘야 한다고 계속 말했지만, 필리핀 대표가 그게 아니고 자기들은 전략상 필요에 의해서 MMA를 늘렸다고 말하니 머쓱해졌죠.
결국 근본문제는 이 정부가 우리 쌀농사를 지킬 의지가 있느냐는 거예요. 정부는 완전개방하게 되면 고율의 관세를 매기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과연 정부 말대로 그렇게 될 것인지.
― 미국사람들이 관세 내리라고 하면 금방 내리겠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게 되면 불가능하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UR협상 때 유일하게 얻어낸 ‘관세화 유예라는 예외’를 이번에 정부가 자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관세가 최소한 400% 되면 외국 쌀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천만에, 우리는 그렇게 관세를 주장할 근거도 없어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전에 쌀을 수입해본 적이 없어서 기준이 없고요. 또 설사 미국이 봐줘서 300%로 타결되었다고 합시다. 우리 정부는 대승리라고 선전하겠죠. 그럼 두산이나 삼성물산과 같은 미곡 수입상은 어떻게 할까요? 예를 들어, 쌀을 도정하다 보면 싸라기가 생기죠. 근데 싸라기는 미국서는 사료용으로 거의 내버리다시피 해요. 그러나 우리에겐 엄연히 쌀눈이 있는 현미 쌀이니까 헐값에 관세를 붙여 그걸 수입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현미로 떡 만들고, 기름 짜고, 효소 만들고, 각종 건강식 만들어 팔면 떼돈 벌죠. 중국에서는 3~4년 쌓아두었던 고미(古米)를 못 팔아서 현지에서 가마당 2만여 원에 팔아요. 오래되어 쌀이 노래지니까 이걸 쪄서 표백제를 뿌려요. 이것을 찐쌀이라며 우리나라에 한때 팔았어요. 한국에서 이걸 사다가 막걸리도 만들고 떡도 만들었는데, 그 유해 표백제 때문에 들통이 나버렸어요. 그래서 더이상 공개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몇년 동안 큰 재미를 봤어요. 그것을 관세 300% 매겨 봤자 한 가마니에 6~7만원입니다. 우리 쌀이 17만원 하니까 누군들 유혹을 안 받겠어요? 음식점에서는 다투어 싼 중국 고미를 사 쓰지 않겠습니까?
― 그런 관세마저 유지하지 못할 건 뻔하지 않습니까.
시작부터가 틀렸다니까요. 관세를 고율로 하자는 것은 수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결국 둑이 허물어져버립니다. 상인들이 쓰는 수법들이 기기묘묘합니다. 국내업자들이 외국 수출업자들과 짜서 싸라기로 달라, 고미, 고고미를 쪄서 보내달라, 그러면 구멍이 뚫려버리는 거예요. 관세가 설사 500%가 된다 하더라도 안됩니다. 일단 뚫려버리면 국내 쌀값이 폭락할 거고, 농민들에게 생산의욕이 남아있을 리 없죠. 그럼 결국은 국내 쌀 생산이 부족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거꾸로 우리가 사정하면서 외국에서 사와야 됩니다. IMF 위기 때 인도네시아 등 다른 나라에서는 식량폭동이 일어나도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던 것은 쌀과 연탄을 자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년부터 쌀 시장이 완전개방 되면 2018년, 이 정권 끝나기 전에 우리나라 벼농사는 결딴이 나 있을 겁니다. 벼농사를 그만두면 그 논을 놀리겠어요? 거기서 돈이 될만한 딴 작물들이 과잉 생산되어 결국엔 연쇄적으로 모두 폭락사태를 맞게 되겠죠. 그렇잖아도 작년, 금년 박근혜 정권 들어서 대부분의 채소, 과일들이 반토막 가격으로 떨어졌는데….
― 결국 우리나라는 농민과 농촌이 없는 이상한 사회가 되겠네요. 그런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농촌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지죠. 농업이 망한 곳에 농민, 농촌이 있겠어요? 이 사태를 누가 책임지느냐고요? 그때쯤 박근혜 대통령도 담당 장관도 다 무대에서 사라져 있을 텐데. 뭐, 하기는 농업, 농촌이 망할 때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있죠. 카지노, 호텔 짓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땅 투기꾼들…. 거기에 편승하는 정치인, 법관, 외교관, 언론인….
―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군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이런 식으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쉽게 알 것인데….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는 다시 농업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떡볶이 수출’이 한국농업의 미래?
그래도 수출만 많이 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심지어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떡볶이 수출로 재미를 본 어느 기업을 예로 들며, 쌀이 완전개방되더라도 농업수출을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면 된다고 합니다. 근데 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수출 많이 했다고 합시다. 누가 재미봅니까. 그 원료는 외국산인데. 수출업자인 대기업, 자본가만 재미볼 뿐입니다. 경제가 성장을 해서 GNP가 높아졌다고 합시다. 그게 우리 국민의 개별 가처분소득이 높아진 것입니까, 노동자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입니까? 대기업 주주들의 이익이 많아진 것일 뿐입니다.
― 게다가 요즘 대기업 주주는 거의 다 외국인들이잖아요.
결국 ‘코퍼라토크라시’로 인한 필연적 현상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주식가격 상승뿐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가를 올리려고 기업한테 지원을 아끼지 않죠. 주가만 오른다면 노동자들 목을 몇백 개 잘라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수출 많이 하고 성장률 높여 봤자 더이상 일반 국민, 노동자, 일자리 찾는 젊은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불임경제’ 현상이 고착될 것입니다.
― 앞으로 수출이 잘될 리도 없잖습니까. 지금 세계경제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총체적인 파국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한국 기업만 수출이 잘되겠어요?
또 한번 환율과 이자율을 가지고 장난칠지 모릅니다. ‘코퍼라토크라시’가 작동하면 대기업 자본의 이익 향방에 따라 이자율이나 환율이 대폭 변동하겠죠. 조세정책도 마찬가집니다. 이번에도 정부가 재벌들에게 엄청난 세금감면 혜택을 줬잖아요. 모든 게 ‘코퍼라토크라시’로 귀결됩니다. 이 총체적 사회적 위기, 국난 사태에 직면하여 그 대안은 오로지 ‘생명주의’입니다.
대안은 생명주의, 그러나 보수적 접근으로
― 그건 그렇습니다만, 생명주의란 게 이 현실에서 어떻게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러나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우리 국민들, 소비자들이 스스로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기업자본 지배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깨어나고 있어요. 다만 지금과 같이 해서는 우리나라 진보정치는 희망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선거에서 오히려 특권적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한다는 게 이른바 ‘베블렌 효과’라는 것인데, 먹고살기 힘든 계층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도 고달파서 진보적 정치세력이 말하는 주장이라든지 생명사상을 잘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도토리 키 재기나 하고 있는 진보세력들한테 질려버렸습니다.
― 예, 뼈아픈 말씀이네요. 선거 때마다 확인되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형편없죠.
거기다가 진보정당이 뿔뿔이 갈라지기까지 해버렸잖아요. 똘똘 뭉쳐서 감동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자기희생하는 모습이 안 보여요.
― 원래 좌파 쪽 사람들은 돈은 없지만 논리가 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논리만 강하지 사람의 심리를 모른다는 점이죠. 그러니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생명주의도 진보주의 방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생명주의가 성공하려면, 보수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어머니가 가장 걱정하는 게 자식들과 가족의 건강, 안전이죠. 거기서 출발하자는 거죠. 유기농의 목적이 물론 환경생태계를 살리는 것이지만, 그것은 좀 뒷전으로 돌리고, 이게 건강과 미용에도 좋다고 소비자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GMO나 가공식품 많이 먹으면 어떻게 건강을 망치는지도 말해줘야 합니다.
제가 농림부장관 재직 때 왜 먹거리를 강조했겠습니까. 이게 보수주의 전략이니까요. 제가 몇 년째 아파트 옥상에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일부 주민들이 한때 반대했습니다. 왜 아파트에서 지저분하게 농사를 짓느냐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상추나 쑥갓은 한 달 반 정도면 자랍니다. 거기에 ‘도시 유기농 시범포’라고 써 붙여놓고, 유기농으로 길렀으니까 누구든지 자유로이 솎아 드세요, 라고 광고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수확한 것을 내가 직접 갖다주면서, 이것 드셔보세요, 옛날 어렸을 때 먹어본 맛일 겁니다, 라고 했어요. 먹어보니까 다르거든. 벌레 먹어 구멍이 송송 나 있지만, 이것은 농약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랬더니 여름철 지나고 나서 이런 것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어와서 한살림 생협을 가르쳐줬죠. 지금 우리 동네에 한살림 매장이 하나 생겼는데, 성황입니다.
― 보수주의적 접근이란 게 그런 거군요. 재미있네요.
아무리 생명주의라 하더라도 일단 이익 중심으로 먼저 접근하고 그 다음에 이념, 원리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념, 원리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생활 속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외국에서 도입된 이념이나 원리를 가지고 먹고살기도 바쁜 대중들한테 생경하게 말해봤자 먹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나도 벤츠 타고 싶다, 나도 호텔 가서 호화음식 먹고 싶다, 그런 욕망을 갖고 삽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생태계가 어떻고 종(種)다양성이 어떻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귀에 들어갈 리가 없어요.
― 녹색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답하죠. 틀린 말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안돼요.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죠. 생명주의, 민생주의에 대해 글로 쓸 때는 항상 이념이나 원리나 원칙에 대해서 쓰지만….
― 예, 그래요. 인간이란 누구나 자기한테 이익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물질적인 이익이 없다면 심리적인 이익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 움직이죠. 그건 진리예요.
김종철 선생님이 내 말에 동의해줘서 놀랍네요. 근본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 제가 근본주의자라고요? 알고 보면 저만큼 현실주의자도 없을 텐데요. 녹색당의 젊은 동지들한테 제가 늘 하는 얘기가 그겁니다. 이념과 원칙에 찬동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녹색당이 일개 시민환경단체가 아니라 정당이 되기로 작정하고 나섰으면 현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파악하고 대중들의 먹고 사는 생활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요. 예를 들어, 지금 우리나라에 많은 협동조합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살림 같은 생협운동이 비교적 성공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게 자식들 건강에 직결된, 쉽게 대중화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운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보의 길이 없는 게 아닙니다. 지금처럼 해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들 주장이 틀려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이죠.
― 변혁을 지향한다는 사람들이 너무 소심한 것도 문제예요. 부자도 아니면서 왜 몸조심을 그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상을 타파하자면 실패를 각오하고, 과감하게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제 시간이 많이 되었네요. 오늘 긴 시간 동안 중요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운 것은 제 쪽이죠. 이 늙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출처 :
http://profksh.co.kr/press/press01_01.asp?BOA_NUM=1642&boa_gubun=5
첫댓글 빌게이츠... 양의 탈을 쓴 늑대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