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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 최악을 향하여
(주의) 글쓴이는 아무것도 이해 못 한 대상을 다룹니다.
요즘 베케트빠 다 됐다. 일단 3부작이라고 하는 장편도 3권도 읽었고, 번역된 단편집도 있길레 빌려다 보고, 역시 베케트하면 희곡이 짱짱 유명하자너? 희곡전집도 빌려다가 안 읽어봤던 단막극들도 읽고, 단막극들은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다 보고 있음. 사실 사놓기만 하고 안 읽었던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자꾸 눈에 밟혀서 ‘말론 죽다’부터 읽기 시작한 건데 지금은 너무 빠져버린 듯. 이건 뭐 한창 카프카 좋아 죽을 때랑 비슷한 정도로 베케트 꺼만 읽고 있는 듯. 사랑해요 베케트!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사실 내가 베케트를 읽게 된 계기가 저 인용구 때문이었음. “늘 시도했다. 늘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자. 다시 실패하자. 더 잘 실패하자.” 대충 이런 의민 거 같았는데 너무 멋졌다. “FAIL BETTER” 라는 모순돼 보이는 문장에 심금이 울리더라니까. 그렇게 해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접하게 됐고, ‘엔드 게임’과 ‘행복한 날들’을 거쳐, ‘몰로이’까지 와서 멘탈이 터졌다. 아니 이거 내가 예상했던 거랑은 달라도 너무 다른 거다.
다른 사람들은 저 인용구에서 뭘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희망차게 느껴졌다. 곧 올림픽도 있겠다, 운동선수에 비유해보자면,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상황이 떠오르더라 이거다. 근데 이게 쉬울 리가 있나, 번번이 실패하는 거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면서! 점점 더 나은 실패를 하다보면! 언젠간 세계신기록 보유자가 되지 않겠냐! 하는 노오오력충스러운 느낌을 받았다는 이 말이지. 그래서 베케트는 희망전도사 같은 작가겠구나! 나를 힐링해줘! 하는 느낌으로 책을 폈다.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더라. 고도란 놈은 오지도 않을 거고. 에스트라공이랑 블라디미르는 기다릴 고도라도 있지, 클로브 함 이 자식들은 기다릴 것도 없음 그럼 이자식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위니란 아주머니는 땅위에 머리만 빼꼼 내민 채로 수다만 떨고 앉아있고, 몰로이는 돌맹이 빨아재끼는 경우의 수나 계산하고 앉아있고, 모랑은 힘들게 써 논 사건 기록을 마지막에 엎어버리는 짓거리나 하고 앉아있더라. 아니 이게 뭐죠? 희망전도사 어디 가셨죠? 전!혀! 희망차지 않았음. 하물며 이게 도대체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재미는 더럽게 없고, 인물들의 행동, 대사, 묘사 하나하나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때려 치웠지. 심지어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 덕분에 하나도 안 힙한 작가라고 생각했으니까, 미련 없이 그만 뒀었다.
이제 와서는 이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 사실 작가로서의 주제의식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과정이란 걸 알게 됐다. 뭐, 솔직히 말해 아직 잘 모르겠지만, 긴 시간동안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책을 찾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마음에 들었음.
그런데 이쯤 오니까 처음에 나를 낚았던 저 인용구의 실체가 궁금해 졌다. 말로썬 완성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에 닿을 수 없는 말의 비극적인 운명을 토로하고, 작가로서는 표현 불가능에 다다랐음을 고백하는 베케트가, 도대체 왜 저딴 말을 해서 나를 헷갈리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란 말이다. 그래서 이참에 저것까지만 알아내고 슬슬 다른 작가로 넘어가자 싶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저 인용구는 Worstward ho 라는 단편에서 나온 문구였다.
'Worstward ho' 는 1983년에 발표된 베케트의 ‘마지막’ 산문이라고 한다. 뒤에 ‘ho’ 는 감탄사 같으니, 대충 ‘최악을 향하여 호’ 정도면 될까? 아무튼 링크를 따라가면 전문을 볼 수도 있다. 근데 잠깐 보기에도 문장성분들이 뭉텅뭉텅 썰려나가고 심각할 정도로 미니멀하다. 아무래도 양놈들도 읽기 힘들었는지, 아래쪽에 나름 해석본도 달려있는데, 영알못으로서는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베케트는 1953년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자신은 이미 언어의 표현 불가능에 다다랐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좌절하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말하면서 “너는 계속 해야만 해. 나는 계속 할 수 없어. 나는 계속 할 거야.” 라고 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베케트는 자신에게 남아있는 걸 모두 토해버리고 나면, 그 감미로운 혼수상태 속에 ‘진짜’ 자기 자신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베케트에게 글쓰기란 더 많은 것을 집어넣기 위한 게 아니고, 점점 더 작아지는 것, 더더욱 적은 것을 써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향점은 “meremost minimum” 가장 미미한 최소한의 상태로 삼는다.
베케트는 4명의 등장인물들을 만든다. 우선 꼿꼿이 서 있는 남성. 손을 잡고 끝임 없이 걷고 있는 노인과 아이. 그리고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감춘 머리. 그리고 이것들을 아주 어스름한 불빛만 비추고 있는 황량한 공간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더 나쁘게, 더 작아지고, 더 텅 비게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우선 꼿꼿이 선 남자는 점점 등이 굽어 가다가 무릎을 꿇게 되고, 마지막에 다리가 없어져서 묘비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게 된다.
손을 잡고 걷는 노인과 아이는 신발부터 옷이 하나 둘씩 벗겨지다가 서로 마주 잡았던 손이 사라지고, 마지막엔 하반신도 없이 상반신만 남은 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멀어진다.
끝으로 머리는 얼굴을 가린 손이 사라지고, 시야를 차단하는 눈꺼풀도 사라지고, 해골 같은 모습이 돼버린 다음, 마지막 순간엔 외눈박이 해골이 되어 점점 멀어져가는 나머지 세 인물들을 바라본다.
이 네 인물의 마지막은 더 이상 어두워 질 수 없는 희미한 불빛 속 세 개의 핀과 한 개의 핀홀로 표현되면서 마무리된다. 베케트는 여기까지 표현하고 충분하다라고 말하며, 더이상 계속할 도리가 없지만 계속해나가겠다 라고 말하며 끝을 낸다.
음... 역시나 뭔 개소린지 모르겠다. 이런 무의미한 묘사를 왜 계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Ooze back try worsen blanks. Those then when nohow on. Unsay then all gone. All not gone. Only nohow on. All not gone and nohow on. All there as now when somehow on. The dim. The void. The shades. Only words gone. Ooze gone.
더 나쁜 빈칸들을 위해 흘러 돌아가자. 도리가 없지만 계속할 때 그것들이 있을 거다. 모두 사라지면 말하지 않는다. 모두 사라지진 않았다. 도리 없지만 계속할 뿐. 모두 사라지진 않았고 도리없지만 계속. 어떻게든 계속하는 지금과 같이 모두 있다. 어스름한 불빛. 공허. 그림자들. 단지 단어만 사라졌다. ‘Ooze’(‘흐르다’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Blanks for when words gone. When nohow on. Then all seen as only then. Undimmed. All undimmed that words dim. All so seen unsaid. (...) No ooze for seen undimmed. For when nohow on. No ooze for when ooze gone.
빈칸은 단어가 사라졌을 때를 위해 있다. 도리 없지만 계속할 때를 위해. 그땐 모든 게 그 자체로 보일 것이다. 밝아진다. 단어가 어스름하게 한 모든 게 밝아진다. 말해지지 않고 보여진다. (...) 밝게 보이는 것을 위해. 도리 없지만 계속할 때를 위해 ‘Ooze’ 는 필요 없다. ‘Ooze’가 사라진 때를 위해 ‘Ooze’는 필요 없다.
번역이 맞는지 모르겠다. 지적 환영이다. 아무튼. dim void shade 라는 단어들은 그저 단어일 뿐, 아무 것도 의미하지 못한다. 오히려 단어는 단어들이 지칭하는 실체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는 걸 표현한 거 같다. 그래서 가장 미미한 최소한의 상태에 도달해 단어들이 사라지게 되면, 모든 것들이 그 자체의 모습 그대로 보이게 될 것이란 말이다.
이 비슷한 생각이 ‘이름~’ 에서도 나왔던 거 같다. ‘내 머리 속에서 메아리 치는 목소리들의 말을 모두 토해내 버리면 그 끝에 내가 있을 것이다.’, ‘계속 한다면, 언젠간 말이 멈추고 나를 놓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 끝엔 내가, 침묵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이었다.
‘가장 미미한 최소한의 상태’는 결국 말이 나를 놓아주고 진정한 나에 도달하는 경지를 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름~’에서 보여준 것 같이 그 끝은 확실하진 않다. 나를 찾는 다는 건 결국 나를 다시 잃는 것이고, 처음부터 반복해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애써 도착했는데 다시 출발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 오히려 그 가능성이 더 높지. ‘최악을 향하여’ 라는 말은 그 끝이 절망일 것을 예상하면서도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나는 계속 말할 것이다.
그리고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라는 구절 몇 문단 아래 이런 문장이 다시 한 번 등장한다.
Try again. Fail again. Better again. Or better worse. Fail worse again. Still worse again. Till sick for good. Throw up for good. Go for good. Where neither for good. Good and all.
다시 시도하자. 다시 실패하자. 더 잘 다시 한 번. 혹은 더 잘 나쁘게. 다시 좀 더 나쁘게. 다시 훨씬 더 나쁘게. 정말 역겨워질 때까지. 토가 쏠릴 때까지. 아예 가버릴 때까지. 아무 것도 없는 곳까지. 정말 저 끝까지.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라는 말은 결코 밝고 희망찬 뉘앙스는 못됐던 거다. 긍정적인 부분도 어느정도 있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겠지만, 모든 걸 부정하고 부정한 끝에 다다른 최악을 통한 방법이니, 결국 다 내 착각이었다.
“더 잘 실패하자.”의 의미는 “더 잘 망쳐버리자” 내지는 “가장 나빠질 때까지 계속 실패하자” 정도라고 생각한다. 제목처럼 “최악을 향해서” 나아가자는 의미다. 그 과정은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며, 그 끝에 희망이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On. Say on. Be said on. Somehow on. Till nohow on. Said nohow on.
계속. 계속 말하자. 계속 말해지자. 어떻게든 계속. 결국 도리 없지만 계속. 도리 없지만 계속 말해지자.
Enough. Sudden enough. Sudden all far. No move and sudden all far. All least. Three pins. One pinhole. In dimmost dim. Vasts apart. At bounds of boundless void. Whence no farther. Best worse no farther. Nohow less. Nohow worse. Nohow naught. Nohow on. Said nohow on.
그만. 갑작이 그만. 갑자기 모든게 저 멀리로. 움직임 없이 갑자기 저 멀리로. 가장 작게. 핀 세 개. 핀홀 하나. 가장 어둑한 어스름 속에서. 멀리 떨어져서. 무한한 경계의 끝자락에서. 더 멀리 갈 수 없는 곳에서. 좋건 나쁘건 더 갈 수 없는 곳에서. 더 작아질 도리가 없다. 더 나빠질 도리가 없다. 더 텅 빌 도리가 없다. 도리 없지만 계속. 도리 없지만 계속 말해지자.
위는 ‘최악을 향하여’의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다.
베케트는 그래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하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던, 그 끝에 무엇이 있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까스로 완성한 작품의 끝이 결국 참담한 실패에 불과했다. 가장 작고, 가장 나쁘고, 가장 텅 빈 상태를 위해 달려웠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랐고, 갑작스레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출발점이 돼버렸다. 하지만 베케트는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나아간다.
"도리 없지만 계속. 도리 없지만 계속 말해지자."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라는 의지. 더욱 참담한 실패를 반복해서 최악을 향해, 불가능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거장의 으으으으지가 다시 한 번 엿보이는 단편이었다.
흠... 감상문 다 쓰고 다시 읽어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이해 못한 거 같다. 이게 뭐야 도대체? 아무튼 그렇다.
내가 저 인용구에 낚여서 읽었고, 위 문구는 전혀 밝고 희망차고 밝은 내용은 아니었다 정도만 알아 줬으면 좋겠다.
뭔 개소리야 이게. 조이스도 그렇고 아일랜드 놈들은 말년엔 다 미쳐 나가나보다.
아무튼 베케트는 내가 소화하기엔 너무 어려운 작가인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링크 따라 들어가면 뭔가가 느껴진다. 넘쳐 흐르는 힙함이 느껴진다!
뭔 소린진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힙하다. 힙하다와 좋다는 동의어다. 그러니까 일단 읽고 생각하자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