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 바오로 신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1베드로 5,1-4 마태오 16,13-19
교회는 오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기념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와, 무엇이든 묶고 푸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 뒤 베드로의 계승자들은 하느님 백성 전체에 대한 특별한 봉사직을 수행합니다.
가톨릭 공동체 안에서 로마 주교의 수위권의 역할은 이미 2세기부터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와
리옹의 이레네오 같은 교부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교회의 친교 안에는 고유한 전통을 지니는 개별 교회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베드로 교좌의 수위권은 온전히 보존된다. 사랑의 모든 공동체를 다스리는 베드로 교좌는
정당한 다양성을 보호하고 또 동시에 개별 요소들이 일치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일치에 이바지하도록 감독한다”(교회 헌장 13항).
베드로 사도좌는 단순히 인간적 관점에서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만들어진 직무가 아니라,
그 안에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치의 표지이자 목자의 구실을 하는 베드로좌는
당신 교회를 하나로 모아 구원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느님의 목자적 사랑을 보여 주는
특전적 표지입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를 돌보아야 하는 교황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전망을 제시하고,
하느님의 백성이 그 길을 담대히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고 독려하여야 하는 교황의 직무가
한 인간이 맡기에 얼마나 크고 버거운 것인지 묵상하게 됩니다.
세상의 풍파와 도전에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굳건한
반석의 구실을 하는 교황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서울대교구 최정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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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1베드로 5,1-4 마태오 16,13-19
댈러스에 오기 전에 저의 자리는 ‘가톨릭평화신문미주지사’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신문을
만들고, 신문사를 운영했습니다. 교구의 인사이동으로 이제 저의 자리는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주임신부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본당 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리는 직책과 직무를 뜻합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별을 보고 방향을 정했습니다.
북극성은 방향을 잡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별자리는 기준과 원칙을 뜻합니다.
비슷한 의미로 신호등이 있습니다. 빨간 신호등에서는 멈추어야 합니다. 파란 신호등에서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나라는 이런 원칙과 기준이 잘 지켜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살던 명동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장소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리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장소를 뜻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텍사스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업들도 텍사스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타주에 비해서 세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리는 직무와 직책의 의미로,
원칙과 기준의 의미로, 생활하는 공간의 의미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댈러스 교구는 저의 직책과 직무에 맞게 권한을 주었습니다. 제가 본당 사목을 할 수 있도록
댈러스 교구에서 요구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교육에 참여했다는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저의 직책에 따른 권한은 제가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
받았던 권한과 비슷합니다.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 고백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 병자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
혼배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 세례성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입니다.
본당 공동체와 함께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본당 공동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목자와 수도자가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미주지역에서 사목하는 사제들과 연대하여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중남부 지역의 사제들과 연대하여 신심단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뉴욕에서는 ME 대표신부를 맡았었고,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맡았습니다.
이제 이곳 중남부에서는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제의 직무는
복음을 전하는 예언직과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사목직과 성사를 통하여
공동체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제사직입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자리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생전에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자리를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고, 동생 안드레아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을 만난 뒤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교회는 사도들의 으뜸이라고 생각하였고, 기꺼이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도좌의
권위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죽기까지 예수님의 뒤를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3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라서 우리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고백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를 계승하는 교황은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지금 이곳에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나누는 이곳이 이미 천국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조건으로 용서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위는 주장하고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권위는 유리와 같아서 쉽게 깨지고,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아낌없이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권위는 불의와 폭력 앞에서 위축되지 않으며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기 마련입니다.
나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나의 권위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권위가
아닙니다. 나의 체면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권위일 뿐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참된 권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베드로 1서 5,2-4)
사랑과 용서, 나눔과 희생으로 사라지지 않는 우리들의 자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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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1베드로 5,1-4 마태오 16,13-19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는 봉사자 하나 하나가 모인 제도로서의 공동체입니다. 여기에는 어쩔 수 없이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모범적인 원로들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서간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원로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1베드 5,1-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하시고
이번에는 ‘제자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이어서 질문하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고 대답하지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17절)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가 정답은 말하기는 했는데 사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8-19절)
예수님께서는 미래의 사도들로 이어지는 교회를 내다 보시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교회는 세속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논리와 때로는 그릇된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기도 하고 또 그 안에서 선의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세상 안에서의 교회는 제도 위에 있어서 실망스런 말들이 오고 가기도 합니다.
‘아니, 교회는 왜 돈 타령이야?’, ‘저 사람, 정말 신앙인 맞아?’ ‘저 사제나 수도자 독선을 좀 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하면 했지, 덜 하지는 않지.’
등등의 말이 수 없이 교회 주위를 맴돌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 중에
베드로를 으뜸으로 삼아 천국의 열쇠를 주시고 양떼의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권한까지 주십니다.
인간적인 베드로를 살펴 볼까요? 베드로는 스승의 신원에 대해 정답을 말하기도 하지만,
‘사탄’이라는 심한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는 이율배반적인 연약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주님께 대한 사랑은 남다르게 깊습니다.
스승께서 말씀하신대로 부활 하신 승천하신 다음에 양떼는 베드로에게 맡겨집니다.
그는 그의 서간에서 원로들에게 믿음의 표양을 간직하며 기꺼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며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를 잘 돌보아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시편 저자는 변함이 없으신 하느님을 ‘바위’ ‘성채’에 비유하며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도 시몬에게 바위라는 이름 ‘베드로’라는 이름을 새롭게 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반석, 바로 ‘게파’ 베드로를 기초로 삼아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초대 교황님으로 베드로를 삼아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베드로 이후 계승되신 12분의 교황님들(64년에서 189년)이 계승되며 내리 순교하셨습니다.
그 후 빅토르(Victor, 189-199년), 제피리노(Zephrinus, 199-217년)로 이어지다가
다시 갈리스토(Callistus, 217-222)교황님께서도 순교하십니다.
오늘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그것도
사도 베드로와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께서도 순교한 자리에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약속하셨지만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실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세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주님께서 예고하신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의 인도로 내려온 것입니다.
골고타는 세상에서 한 점에도 되지 않은 작은 언덕입니다. 로마의 한 언덕도 마찬가지로
작은 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서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세상구원이 있는 것처럼, 사도 베드로가 묻힌, 그곳 언덕에 세워진 교회로부터
세상을 향한 구원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세기와 세기를 넘어 참으로 신비롭고 놀라우십니다.
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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