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멀쩡하게 미얀마 뱅골 상공을 잘 날고 있던 대한항공 858기가 "45분 뒤에 방콕에 도착한대이~" 라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뱅기 안에는 승무원 포함하여 115명이 타고 있었고, 승객의 대부분은 중동지역에서 근무하던 우리 근로자들이었다.
그 순간 총알같은 경제속도 60km/h로 달려간 우리의 안기부가 마침내 이 의혹을 밝히고야 말았으니 그것은..... 북괴가 자유대한의 올림픽 유치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지른 항공기 폭파 만행이었던 거시여따. 독한 북한 공작원뇬넘들은 끝까지 음독 자살을 기도했으나, 결국 뇬은 살아남아 그 모든 사실을 '자백'하고야 말아따....
그뇬의 이름이 바로 김현희여따.
자 이제 14년 전, 87년 겨울에 일어난 이 천인공노할 만행이 떠오르시는가. 그랬다. 있을 수 엄는 일이었다. 죄없는 근로자들이 한 순간에 영문도 모른 채, 보고잡은 가족들 품이 아닌, 영하 40도 구름의 품속으로 안겨버린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본 독자, 자라면서 하지 말란 일들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명랑 개김 정신으로 무장하길 어언 스무 하고도 몇 년 남짓, 이제 나는 운전할 때 굳이 경제속도를 지키진 않는다. 싸가지 없게도 100km/h 넘는 일을 밥 먹듯이 하게 되었으니... 눈치깨나 있는 독자 여러분도 악셀 좀 밟아 보시라.
먼가 이상한 게 느껴지지 않으시는가. 60km/h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뭔가 있지 않은가. 이제 그 뭔가가 뭣인지를 본 요원 씨부렁거리려 하니, 친애하는 독자 열분께서는 똥꼬에 힘 주고 주의 깊게 봐 주시기 바란다.
김현희는 너무 쉽게 잡혔다
김현희의 진술에 따르면,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그녀는 어릴적부터 철저하게 세뇌된 인간병기이다. 한 명을 키워내는 데에만 천문학적 액수의 비용이 투입된 살아있는 무기라는 얘기 되게따. 그런 여자를 소모품으로 쓸 만큼 북한이 대가리가 비었으리라 생각하시는가. 더군다나 우리가 알다시피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못 산다'. 게다가 당시 상황은 미친 냉전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한 사람이라도 아껴쓰고 다시써야 잘 살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김현희는 너무나 쉽게 잡혔다. 마치 '나 잡아가라'는 듯이...
울나라 정부는 더 이상의 물증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름이 블랙이라고
까만색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뱅기가 떨어질 경우, 사람들은 그 사고의 기록을 담고 있는 블랙박스를 우선적으로 회수한다. 그리하여 그것에 기록된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여, 그것이 조종사의 실수였는지, 혹은 기체 결함에 의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제 3의 가능성에 의한 테러였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즉, 증인이 있을 수 없는 항공사고에서(살 자신 있는 사람?) 그 상자를 회수하는 일은 수사의 최우선,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확실한 물증을 얻는다면 북괴의 만행을 더더욱 확증해 보일 수도 있었다. 진상을 규명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명분을 얻더라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바로 그 '증거' 중에 블랙박스가 기본이라는 말이다. 당시 상황을 기억해 보라. 어떻게 하든 북한에 대한 우리의 우월함을 국제사회에 알려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잠시, 혹시라도 '바다에 떨어지면 못 찾자너?'라고 물을 무식한 독자 열분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뱅기의 블랙박스라는 넘은 바닷속에서 1천도의 고온과 중력의 1백배에 이르는 고압에도 견디면서 약 30일 동안 반경 2해리에 신호를 보낸다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 수색작업을 단 열흘만에 끝내 버렸다.
그 좋은 증거를 포기해 버린 이유는, '특수'한 '공작원'의 자백 하나로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그저 '참고'일 뿐인 그 '자백' 하나에 만족해서 더 확실한 증거를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의 사체나 비행기의 잔해 등에 대한 수색작업도 그걸로 끝이었다???
왜 하필 그 때?
1987.12.18. 조선일보 7면
당시 대선에서, 비록 후보 단일화는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상당히 짙게 점쳐지던 상황이었고, 대한항공기 실종은 바로 그 시기에 일어났다. 물론 당국에선 북한이 이 사건을 일으킨 동기가 단지 88올림픽의 저지에 있다고 말했으나... 그렇다고만 보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다소 있겠다. 김현희의 진술에 따르면, 이 뱅기의 폭파 목적은...
88년 1월17일까지 세계 각국이 서울 올림픽에 참여하는지 여부를 확답하게 돼 있는데. 그전에 비행기를 폭파해야 다른 나라에서는 올림픽 참가를 꺼리게 될 것이고. 남한 내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격화돼 올림픽을 치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때였는가? 1월 17일은 뱅기가 터지고 나서 자그마치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게 남은 시점이다. 영문도 모른 채 허둥대게 하고, 공포심을 극도로 자극하여 다른 나라들의 올림픽 참가 자체를 방해하려 했다면, 굳이 한 달 하고도 보름 전에 일을 터뜨릴 필요까지는 없다는 얘기다. 그 시점은 1월 17일 즈음, 최소한 1월 초는 되었어야 말이 된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 시간이면 사고 원인이 설령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웬만한 여타 여건들은 수습이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북한이 우리의 민주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까지 갖고 있었다면, 그 사건을 터뜨릴 시점은 참으로 잘 맞춘 것이 되겠지만, 애석하게도 김현희는 전혀 그런 부분에 대한 진술을 하지 않았고, 남한의 수사기관 내에서도 그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뱅기가 떨어진 날은 우연히도 김대중의 여의도 유세 - 백만명이 모였다는 - 날이었다. 김대중 후보 측은 여의도 대규모 대중집회를 계기로 수도권 세몰이에 나서려고 했고 구름같은 청중에 고무되었으나.. 그 다음날 신문은 그만 뱅기 떨어진 얘기로 뒤덮였다.
1987년11월30일자 동아일보(좌) 1면과 좃선일보(우) 1면.
동아 1면엔 김대중 후보 여의도 유세가 작게 실려있지만
그나마 큰 제목은 김대중 이름이 아니라 '김영삼 후보 사퇴 요구'다.
좃선 1면엔 관련 기사가...... 아예 없다.
우연일까? 우연일지 모른다. 그런데 김현희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다시금 '우연히도' 대선 하루 전날이었다. 선거당일 아침신문을 펼친 시민들은 <오늘 대선> 이라는 헤드라인과 나란히 북괴 테러범 기사를 보아야 했다. 신문을 보며 미소짓는 노태우의 얼굴이 보이는 듯 하지 않는가..... 아 씨바 우연에 우연이 계속 겹치는 삼류 드라마 같은 느낌... 조또...
왜 테러를 했는가?
모든 테러는 '그냥' 일어나진 않는다. 반드시 '정상적인' 외교적 방법을 통해 달성하기 힘든 목적이 있을 경우, 그것을 대외적으로 표출하여 관철시키기 위한 극단적인 정치적 방법이 바로 테러라는 얘기 되겠다. 북한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선정한 '테러 지원국'(rogue state)이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당시의 사건을 북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테러라고만 단정짓기엔 의문스러운 점이 몇가지 있다.우선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은, 북한이 '완전범죄'를 노려 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들려 시도했다는 수사 발표이다. 테러는 굳이 '완전범죄'일 필요가 없다. 비행기가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면, 그것은 테러일 수도 있고, 기체 결함으로 인한 추락일 수도 있다(실제로 858기는 그 이전에 고장으로 동체 착륙 했던 적도 있다).
모두 이러진 않을 거란 말이시...
즉, 뱅기가 실종됐다고 사람들이 죄다 '아 씨바, 올림픽 가다간 누가 뱅기 떨어뜨릴 지도 몰러~'라고 단정짓진 않는단 말이다. 북한이 실질적인 위협을 주기 위해선 당연히 '우리가 해따. 죽고 잡으면 서울행 뱅기 타 봐'식으로 나와야 정상이란 얘기다.
그런데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 공작원들에게 유사시 자살을 지시했던 것이야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대외적으론 북한 스스로 완전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굳이 노동자들이 탄 뱅기를 그 타겟으로 삼기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내외적인 명분이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콩사탕이 시러여' 하는 꼬마 녀석의 말을 잘못 듣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그 무식한 인민군 병사의 에피소드와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북한 국내적으로도 상당히 심한 비판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상대방의 노동자들을 국가적으로 죽이는 일이다. 남한 체제에서 착취의 대상이라 그들이 자국민에게 선전하는 바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며, 이는 얼마 안 되는 그들의 역사적 정통성(적어도 친일 정권은 아니라는) 마저도 잃을 수 있는 행위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내세우지도 못할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도 않을 사건을, 별로 급하지도 않은 시점에, 그렇게 '특수'한 공작원 까지 동원하여 저지를 이유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