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노비 걸승의 이야기
난리통에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구해낸 것은
주지 스님이 아닌 노비였다.
주지는 이것을 자신이 끝까지 갖고 있을 욕심이었지만
국가로부터, 절로부터, 부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노비는
애국적. 신도적 차원에서 이를 구해냈다.
몽고란 때 노비의 활약상에 대하여는 익히 알려져 왔다.
귀족들이 노비에게 신분을 해방시켜 줄 터이니
싸우라고 독려해 놓고 자기는 도망가 버리고
난리가 끝나자 돌아와서는 집안 기물이 없어진 것을
노비들에게 덤터기 씌운 비인간적 처사도
여러 사례 알려져 있다.
진돗개 같은 맹목적 충성으로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구해낸 절의 노비 걸승.
나라에서는 그것을 가져온
심부름꾼 야별초 병사 10명에게는 후한 포상을 하였음에도
걸승에게 어떤 대접을 했다는 얘기는 없다.
낙산사를 해설한 어떤 안내책자에도
이 노비 걸승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야멸찬 행태들이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 -
* 임진왜란 때 낙산사에는 국가의 신보라고 불리는 두 보물이 있었다. 수정염주와 여의주가 그것이다. 이것을 걸승이라는 노비가 땅에 묻어 보존했다고 한다. 이것을 내부로 옮겨오도록 심부름 보낸 야별초 10명에게는 은 1근과 쌀 5석씩을 주었으나 정작 이것을 보존한 걸승에게는 아무런 포상도 없었다.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잇다. 혹시 나 자신도 이런 우를 범하지 않는지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