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정지용(鄭芝溶)
이명 : 정지룡(鄭池龍)
자 : 영지(靈之)
본관 : 연일 정씨 (문정공파-이의공파 27세 용(溶) 항렬)
출생 : 1902년 6월 20일 충청북도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
(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사망 : 1950년 9월 25일 (향년 48세)
평양시 또는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으로 추정
학력 : 옥천공립보통학교 (졸업),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도시샤대학 문학부 (영문학 / 학사)
종교 : 가톨릭
서훈 : 금관문화훈장
정지용(鄭芝溶, 1902년 6월 20일 ~ 1950년)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아명은 지용(池龍), 세례명은 프란치스코(方濟角)이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납북되었고 사인은 폭사로 추정된다.
생애
1902년 6월 20일 충청북도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아버지 정태국(鄭泰國)과 어머니 하동 정씨 정미하(鄭美河)사이의 4대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 정태국 대까지는 옥천군 군동면 수북리(현 옥천읍 수북리) 화계마을의
연일 정씨 집성촌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정지용이 태어난 후 아버지 정태국은 이후 후실 문화 류씨를 들여
슬하에 남동생 정화용(鄭華溶)과 여동생 한 명을 더 두었다.
출생지인 옥천읍 하계리 39번지에 정지용 생가가 있다.
근처에는 박정희 前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의 생가도 있다.
옥천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한국 시단의 3천재로 불리우던 오장환의 스승이기도 하다.
구인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였고 일제의 탄압이 이어지자
모더니즘, 그 중에서도 이미지즘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1941년에 출판된 그의 시집 《백록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청록파에 영향을 주었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그리고 이상은 그가 추천하였다.
1933년에는 《가톨릭 청년》의 편집 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의 시를 실어 등단 시켰고
1939(38세)에는 문장지의 시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마지막으로 윤동주는 강처중과 정병욱의 요청에 따라 추천사를 써주며 등단시킨 셈.
그리고 일제와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1942년 이후 정지용은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았다.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의 시단을 대표했던 인물로 꼽힌다. 현대에 와서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개척자 등의 수식도 심심찮게 붙을 정도로 거물로 평가된다.
한국시인협회장이었던 이근배는 "정지용 시인 자체가 그냥 한국 시문학사다라고 할만큼
정지용 시인이 끼친 우리 한국시사, 특히 현대시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당대 유명시인(청록파 시인 전부 포함)을 발굴하기도 하고 그들(윤동주 등)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주로, 절제된 어조와 이미지즘이 특징으로 꼽힌다.
한 때 납북된 것인지 월북한 것인지를 확인하지 못해
1988년 7.19 해금조치를 통해 그의 시가 해금되기 전까지 정X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현재 그의 사인은 납북되던 중 소요산 부근에서 폭격에 휘말려 사망하였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이 증언은 북한 시인 박산운이 정지용과 함께 납북되던 중
정지용의 최후를 목격했던 소설가 석인해의 이야기를 소개한 회고문을 통해 알려졌다.
자녀로는 3남 1녀가 있다.
정구관(鄭求寬)(2004년 4월 24일 별세) 정구익, 정구인, 정구원이다.
연일 정씨 문정공파 족보에는 정구관만 정지용의 자식으로 등재되어 있다.
정구인은 북한에 남았으며 정구익은 한국전쟁 때 병사했다.
장남인 정구관과 딸 정구원은 남한에 남았다.
장남인 정구관은 정지용이 1988년 해금 조치된 직후 '지용회'를 세우고
정지용의 복권 활동을 행했다.
이 지용회에서 매년 정지용 문학상을 발표한다.
첫댓글 정지용씨에 대한글 잘보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지용 시인이
저의 고등학교 선배님이십니다 ^^*
감사합니다
옥천 정지용 생가에 가봤습니다
육여사 생가도요
그러셨군요
저는 아직입니다
라아라님 노래 덕분에
정지용시인을 소개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지용 시인의 일생 이군요
어쩜 이리도 멋진시가 나올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시 들 많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샀던 정지용시선
요즘도 가끔 열어 봅니다
정말 주옥같은 시 들이지요
감사합니다
어느해던가 전체동창회 모임에 같은테이블에 앉게되어 '향 수' 노래 공감대로 화제가 .
즉석에서 너랑 나랑 2 부 여흥시간에 듀엣으로 불러보자 좋아 ! (반응이 가히 폭팔적 앵콜 앵콜 그치만 앵콜은사양) ㅎ
다행하게 두 사람 모두 가사를 외우고 있어 가능했던것 같았습니다. 단 한 번의 연습도 없이 눈으로 손가락으로 차례를 인지해가며 .
그랬었던 즐거운 추억이 있었고 간간히 떠 올리며 혼자서도 불러보던 나만의 애창곡이기도 하답니다.
얼마전 T V 에서 박 인수님의 삶을 편집 방영한것을 관심있게 잘 보기도 했었지요. 삼가 그 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러셨군요
이 노래 무척 어러운 노래인데요
박자도 그렇고...
컴사랑님 노래솜씨가 짐작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솔 그런데 말입니다. 거짓말처럼 나이탓 핑계를 대야할 것 같네요.
이젠 가사도 못외우고 음정 박자 호흡 음성도 제멋대로 아무렿게나 나오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청력마저도 점점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것 같구요. 서글퍼지는 현실이지만 긍정적 마인드로 전환 그냥저냥 지내고 있지요 .
ㅎㅎㅎ 죽으면 늙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점점 가까이 가까이.... 감사합니다.
@컴사랑 자동차도 노후되면 달라지지요
그러다가 결국 폐차되지요
생노병사! 생자필멸!
존경스럽습니다
긍정마인드로 즐겁게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컴사랑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