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분석
게임모바일컨텐츠 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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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
서울 국제영화제
2000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05년 제6회를 맞이하였으며, 시작 당시의 명칭은 '서울넷페스티벌'이었으나, 2003년 제4회 때부터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플래시 애니메이션, 웹아트, 실험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며, 온라인 영화제인 '서울넷페스티벌'과 오프라인 영화제인 '서울영화제'로 나누어 진행된다.
프로그램은 크게 경쟁부문, 비경쟁부문, 기획전으로 구분되어, 국제경쟁부문의 디지털익스프레스 온라인과 디지털익스프레스, 국내경쟁부문의 넥스트스트림, 비경쟁부문의 퍼스펙티브 아이, 오버 더 시네마 등을 비롯하여 테마기획전, 마스터비전, 특별초청전, 영국영화기획전, 삼성 미디어 라운지, 베스트 온라인, 세디프 프리미어 등으로 진행된다.
부산 국제 영화제
한국 영화의 발상지인 부산을, 영상문화의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지방 자치시대에 걸맞은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발전시키고자 기획된 영화제이다. 1996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03년 제8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구에 억눌려 있던 아시아 영화인의 연대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행사 프로그램은 '아시아 영화의 창', '새로운 물결', '한국영화 파노라마', '한국영화 회고전', '월드 시네마', '와이드 앵글', '오픈 시네마', '크리틱스 초이스', '특별기획 프로그램' 등 총 9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비경쟁 영화제를 추구하지만 '새로운 물결' 부문만은 경쟁 프로그램이다.
시상 부문은 유일한 경쟁부문 상인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을 비롯해,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한국영화 공로상', '선재펀드상', '운재펀드상', '국제영화평론가 협회상', '아시아 영화진흥 기구상', '관객이 뽑은 PSB영화상' 등 총 8개 부문으로 나누어 수상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북한과의 영화교류 모색, 오리엔탈리즘 극복, 아시아 영화의 발굴과 세계화 등을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숙제로 삼고 있다.
칸 영화제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Cannes)에서 매년 5월 개최되는 국제영화제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이다. 1932년 베네치아영화제가 개최되자 프랑스 정부에서는 1939년 9월 1일 제1회 개최를 목표로 칸영화제를 기획하였으나 히틀러의 폴란드 최후통첩으로 인하여 영화제는 연기되었고, 1946년 9월 20일 임시정부의 승인 아래 18개국의 영화를 모아 영화제를 개최하였다. 그후 1948년부터 1950년까지를 제외하고는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1951년부터 영화제 기간을 5월로 옮겨 2주일간의 행사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칸영화제는 영화의 예술적인 수준과 상업적 효과의 균형을 잘 맞춤으로써 세계 영화의 만남의 장으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독들이 많이 참여하여 세계적인 영화산업의 집결지가 되어 갔다. 또한 영화 상영 외에도 토론회·트리뷰트·회고전 등 많은 문화예술행사를 병행하고 있다. 칸에서 작품이 상영되려면 영화제 시작 전 12개월 안에 만들어진 작품이어야 하며, 다른 어떤 행사에서도 경쟁이나 전시가 없어야 하며, 단편은 15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그 조건들이 많이 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황금종려상·심사위원대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감독상·각본상·심사위원상 등의 경쟁부문이 있으며 그외에 비경쟁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황금카메라상, 단편부문 황금종려상, 단편부문 심사위원상, 시네파운데이션 등의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한국은 1984년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로 특별부문상을 수상하였고,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999년 제5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다. 또한 송일곤 감독의 《소풍》은 제52회 칸영화제 단편부문에 출품하여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제55회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대종상 영화제
정부가 주관하는 영화 부문의 유일한 상으로 1958년부터 문교부(현 교육부)에 의해 실시되던 '국산영화상'을 2회 이후부터 공보부(現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하면서 1961년 대종상으로 명칭을 바꾸어 1962년 제1회 시상을 가졌다. 그 후 1969년 제8회와 1970년 제9회 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영화 부문)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971년 제10회부터 다시 대종상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제12~17회(1973~1978년)까지는 문공부와 영화진흥공사가 공동주최했고, 18~24회까지는 영화진흥공사 단독으로 행사를 주최했으며 제25회(1986년) 때는 다시 영화인협회와 영화진흥공사의 공동주최로 이때부터 사단법인 영화인협회의 본격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제30회(1992년)때부터 민간기업의 참여가 이루어졌는데 삼성그룹이 재정 후원을 담당했다. 이에 따라 행사주최도 영화인협회와 삼성그룹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제32회(1994년) 때부터는 삼성 계열 문화재단인 삼성미술문화재단이 대신 참여해 영화인협회와 삼성미술문화재단 공동주최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우수작품, 감독, 연기, 촬영, 음악, 미술, 각본 등 18개 부문에 걸쳐 시상하였으나, 1973년의 제12회부터 우수작품상 외에 다시 최우수작품상과 그 밖에 우수반공영화상 등을 증설하여 22개 부문으로, 다시 1989년에는 공로상 등 4개 부분을 추가, 26개 부문을 시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