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7. 주일 큐티
다니엘 3:1 ~ 12
금신상을 세우는 느부갓네살
1) 금신상의 건립
- 1절.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 꿈에 환상으로 제국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한 느부갓네살은 그 사건 이후에 금신상을 건립했습니다. 이 신상을 통하여 느부갓네살이 처음에 의도한 것은 높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자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은 본질이 호도되었는지 처음부터 그랬는지 그의 교만함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신상은 신상보다는 탑에 가까운 건축물로서 맨 꼭대기에 느부갓네살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형태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탑 형태의 것이었던지, 사람의 형태의 것이었던지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신상을 가지고 느부갓네살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꿈을 통해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가 다니엘에게 경배하리만치 그 부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고백을 했던 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세우는 신상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거나 높여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이 자신을 높이심에 대한 과도한 우월감 때문이었는지, 신상을 건축하고 거기에 모든 이들이 다 경배하도록 명령합니다. 그 신상은 실상은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 2절 ~ 3절.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 느부갓네살의 명령이 떨어졌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여서 벌어지게 될 일들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을 우상화하고 높이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만으로도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더 견고하게 하고,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야 말겠다는 모든 제국 지도자들의 표상과 같은 행위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지방의 모든 장관과 그 수하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통치에 절대복종하게 하는 행위로 이러한 행사를 치루고자 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하여 느부갓네살은 중앙집권통치의 기틀을 견고하게 다지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금신상에 절하라
- 4절 ~ 6절.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 느부갓네살을 사람을 죽이는 것을 쉽게 생각한 무서운 통치자였습니다. 자신이 통치하는 방식에 거부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엄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자신이 만들어 세운 우상에게 절하는 것으로 표현하고자한 것입니다. 그 우상은 결국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나팔’, ‘피리’, ‘수금’, ‘삼현금’, ‘양금’, ‘생황’ 및 모든 악기들. 이 악기들 중에는 예루살렘에서 뺏어온 것들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던 것과 유사한 악기들이 금신상을 경배하기 위해서 동원되고 있는 것입니다. 악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이들의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동일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7절.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 모든 악기들이 한꺼번에 연주되는 큰 소리가 들리자 느부갓네살이 다스리는 각 지방의 모든 신하들이 느부갓네살을 상징하는 매우 큰 금신상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통치에 순복하게 다는 것이고, 그것이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을 통해서 그가 원하는 의도였습니다. 의도대로 모든 지방의 문무백관이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에 절하므로 그의 통치에 순복함을 보여주었습니다.
3)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의 절개
- 8절.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 갈대아 사람들은 바벨론의 원주민들입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와서 자신들의 머리에 올려져 있는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는 결국에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다니엘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다니엘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때 뿐만 아니라 제국이 바뀌면서도 계속해서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 9절 ~ 12절.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 참소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상대방의 말에 근거하여 이용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제거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올무에 옭아매기 위해서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교묘히 인용하고 있습니다.
- 12절.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 사드락(하나냐), 메삭(마사엘), 아벳느고(아사랴)가 다스리는 땅이 지금 참소하고 있는 자들이 군침을 흘리던 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이들을 시기하고 궁극적으로 다니엘도 시기하고 있는 참소하는 자들은 없는 말도 만들어서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에게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땅에서 그 땅의 위정자에게도 순복하고 살 것을 명하셨기에 그들이 느부갓네살을 전심으로 높이고 섬기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을 것임을 분명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소하는 자들은 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에 다른 것들을 첨가하여 고소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런 형태의 참소하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어떤 공덕을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나 그들이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스런 사람들이었는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침 :
1)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통치 기반을 공교히 하기 위해서 엉뚱한 일을 꾸몄습니다. 자신이 세운 금신상에 모든 지방의 방백들이 와서 절하게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막강한 권력으로 그 일은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자금과 행정력이 투입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자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다니엘에게 경배하면서까지 고백했던 하나님의 존재와, 일하심과,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존경심은 어느 사이에 통치철학으로 말미암아 눈 녹듯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2) 느부갓네살이 공들인 사업이 세 명의 청년리더들에 의해서 반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일은 보통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진짜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두라 평지에 커다란 풀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실은 금신상을 세우기 위해서 사용했던 풀무였을 것입니다. 그 풀무를 가동하여 뜨거운 열기가 북북 새어나오도록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세 명의 청년들이 신상에 절하지 않는 사건, 항명으로 비춰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들의 존재에 대해 눈엣가시로 여기던 갈대아 인들로 인하여 참소가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3) 참소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얼마나 제국에 필요한 일꾼이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 명의 청년 리더십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지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고 하는 것은 그들의 안중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인용하는 근거는 느부갓네살이 말한 것을 가지고 이용하고 있기에 느부갓네살에게 있어서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으로 미루어볼 때 이들 세 청년들은 느부갓네살이 알고 있었던 이들로서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지혜와 학식이 뛰어나서 지방에 통치자로 가서도 여러 가지 많은 업적을 남겼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이들을 아껴서 회유하고자 하리만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그저 그런 관리가 아니라 특급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리더십이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절개를 위하여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이 높이신 것을 자신의 교만함으로 망치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통치철학을 위해 세상적인 방법, 무엇보다 우상숭배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고, 그 통치를 구하는 자는 신앙 따로 세상의 처세술 따로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길을 언제나 추구해야 합니다.
2)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보여준 믿음의 결단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국의 통치철학에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되는 젊은이들의 믿음이 귀하고 놀랍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도 제국의 황제와 맞짱 뜨고자 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느부갓네살보다 크신 분이셨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이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제 인생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주님을 의지합니다. 미얀마라는 낙후되고 정치가 불안함으로 온갖 꼼수를 쓰고자 하는 자들의 악한 의도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향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평안을 회복합니다. 주님을 더욱 온전히 바라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