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폈네"
서수남 하청일이 부른 "과수원길"이다
이 노래때문에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당하고 교육청에 끌려갔던 일이 있다
국민학교 4학년때쯤 어린이신문 ㅡ소년동아일보ㅡ 백일장에서 차상이라는 성적으로 입상되어 누런 겉표지에 국어대사전이란 엄청나게 무겁고 부피가 큰 책을 부상으로 받았다
그게 뭔지도 몰랐다 첫장을 여니
"ㄱ" 으로 시작하는 깨알같은 글만 빼곡할 뿐이였다
당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당시 만화나 고전말고는 읽을거리가 전무한때라 시간만 나면 그 책을 뒤적거렸다 알고보니
이 국어사전이란게 언어와 단어의 바다였지 뭐야
각설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교시절 저 위의 유행가가 히트를 할때 어느날 난 작심하고 교장실을 찾았다
당시 반장이라 자유로운 출입이 가한지라...
이어 담임이 호출되고 국어담당교사와 학생과장도 줄이어 들어오고 등등의 사단이 났다
ㅡ아카시아는 아프리카에만 있고 우리나라에 있는건
아까시다ㅡ
ㅡ꽃도 향기도 모양도 다 틀리는데 학교차원에서 교육청에 항의해달라ㅡ
전부들 고개만 저을뿐이다
돌아서는데 ㅡ똑똑하면 니가 해라ㅡ
가방을 둘러메고 교실을 박차고 나와 그 길로 당시 김판영도교육감에게 달려갔다
4학년때 받은 사전의 접은 부분을 펴고 설명했더니
담당자를 불러 확인했지만 결과는 귀가조치후 무기정학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 몇몇의 후배나 지인들만 아까시로 가르친다고 하니 아직도 부글부글한다
안타깝지만 토끼먹이로 따주고 친구와 놀이하던 지천에 있는 순 우리말 "아까시"는 기린이 긴 혀 내밀고 먹이 취하는 아카시아로 바뀌는가 보다
"엄청나다"의 형용사가 택도 아니게 "엄청"이란 부사로 바뀌어도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걸 보면
뉘라 할것도 없이 우린 부끄럽게도
보신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첫댓글 아
대단하신분이시네요..
확실한 강단이 있으시고..
많이 알면 울분도 더 많을거같아요..
무지하고
강단이 없는
저같은 사람때매
많이 울분을 토하셧을거 같아서 너무 늦엇지만 사죄드립니다..
저는 그냥 저냥 살아온 사람이거던요..
부끄러워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건 없으나
반응속도가 둔해졌죠!
사죄라니요?
얼토당토안하십니다. 거두소서
유무이님`
저도 아카시 나무로 알고 있답니다
아카시아와 아카시 나무는 다르죠
아카시아 나무는 한반도에서는 자랄 수 없다고 하더군요
홍보 많이 해주시죠?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유무이님~
서수남 가수님은 아주 오래전 잠실 롯데빌딩 여성
문화 쎈타가 있었을때 노래를 지도하면서
웃음 보따리 끝없이 나와 인기 시간들 이였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참 예쁘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한 의도뫈 좀. ..
그 두분의 화음이 기가 찼지요
당찬 기질이 있었네요.
그래서도 막쥔손인가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돌하게 대들면
대개는 희생되고 말데요.
서글픈 현실이지요.
반대급부란 상법을 알았답니다 저일로. 인해
대단하십니다....
그걸 거기가서 따져요.....ㅎ
공립학교인데도 안 통하니
그저 동키호테의 빙의가 온거죠
이노래는 저의 모교 효창국교 김공선선생님이 제가 졸업후인 72년 동요로 작곡한곡입니다.
고등학교때 아카시아 꽃이름때문에 무기정학을 당하신 아픈사연이 있으시군요
일본놈들이 아카시아를 소나무를 벤자리에 심을려고 들어왔는데 원래는 아카시가 맞다고 합니다
그때 국문학자이신 양주동박사에게
편지도 썼더랍니다
회신은 받았지만 읽으셨단 건 돌아가신후.
알았지요
소신발언 이 안먹혀 들고
무기정학 이라니?
인재를 몰라보고
참 딱하네요
12일 지나고 반성문으로 대체한다고 해
반성문에ㅡ제뜻에 변함이 없습니다ㅡ라고 썼더니
교육청에 이첩하더군요
@유무이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반성문?
초교 4학년이 참 당찼네요
그때부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면 쭉 밀고 나가는..확신이 있으니 그리하셨지요 아카시 저도 여태까지 아카시아로 알고 있죠
고교시절 일화입니다
초딩때 부상으로 받은 사전읽다보니
아카시아가 우리말일까란 의구심에 뒤적이다
오류를 발견했죠
아카시아가 아카시에요
우리는 내용도 잘 모르고 따라 했지만
대단 하셨네요
그래도 결과가 안좋아 속상 하셨겠어요
그날 이후 가,나,다의 배열이
나,다가 많아 지더군요
유무이님은 백일장에서 차상이라는 성적으로 입상
유능한 인재셨군요
거기다 당찬 부분도
놀랍네요.
당시 ㅡ엿장수ㅡ 란제목으로
입상했지요
신문방송에 여러차례 등장키도 하구요
소신 있으신건 좋은데요 어떻게 그 나이에 교장실까지 찾아갈 생각을 하셨을까요 참 깜작 놀랄 일 이네요 그때 용기가 성인 되서도 여전 하셨나요 ? 궁금하네요
남아 17세면 충분한 나이아닐까요.?
신문에도 여러번 또당시 양주동박사께도
글 올렸습니다만 팽당했죠
ㅎㅎ 민주란 친구와 좀 친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