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 "한국에선 대부분 2·3상 후기 임상시험"]
"한국 병원, 中보다 10년 앞서 선진… 바이오제약社와 제휴땐 글로벌 경쟁력 우위 점할 것
해외 新藥 특허 500개, 1조원 들이면 살 수 있어… 10개만 성공해도 매출 10조원"
지난 1년 동안 아시아 국가 중 세계 최고의 국제 학술지 '네이처'와 네이처 자매지에 생명과학 분야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곳은 어디일까. 지난 13일 현재 중국과학원이 140편으로 1위였다. 2위인 일본 도쿄대의 85편을 압도했다. 한국은 서울대가 47편으로 7위였다. 10위 안에 중국과 일본이 3개, 싱가포르 2개, 한국과 호주가 각각 1개 기관이 들어갔다. 20위권으로 확대하면 한국은 KAIST(15위)까지 두 기관이지만, 중국은 8개로 단연 1위였다.
바이오산업에서 한국이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 낀 신세가 되고 있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총괄회장은 최근 경기도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실험실 차원의 연구는 이미 중국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왔다"며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은 선진국을 따라잡기는커녕 중국에도 뒤질 게 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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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광렬 차병원그룹 총괄회장이 “신약에 대한 초기 임상 시험을 국내에서도 활발히 해 연구진의 실력을 키우고, 해외 특허를 사들여 세계 수준의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차 회장은 작년 2000억원을 들여 경기도 판교에 연구 인력이 2000여명에 달하는 차바이오 컴플렉스를 설립했다. /이덕훈 기자
중국은 생명과학 연구에서 세계적 강자로 부상했다. 한 예로 현재 전 세계에서 해독되는 인간 유전 정보(게놈 정보)의 25%는 중국의 게놈 분석 업체인 BGI에서 나온다. BGI는 처음엔 베이징게놈연구소라는 국립 연구소로 시작했다가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세계 1위 게놈 분석 업체로 발전했다.
"다행히 병원은 아직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최소 10년은 앞서 있어요. 병원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선진국 바이오 제약 업체들을 끌어들이면 중국을 뿌리치고 우리가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차 회장은 글로벌 업체를 끌어들일 도구로 '초기 임상 시험'을 꼽았다. 이미 우리나라는 신약이나 새로운 의료 기술을 환자에게 시험하는 임상 시험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서울은 임상 시험 건수로 세계 1위이다.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환자와 우수한 의료진이 몰려 있는 서울을 임상 시험 기지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 회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국내 임상 시험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 2·3상의 후기 임상 시험이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신약 임상 시험은 소수 환자에게 시험하는 0~1상의 초기 임상 시험과 대규모 환자 대상의 2~3상 후기 임상 시험으로 나뉜다. 후기 시험은 초기 시험이 성공해야 진행된다. 그만큼 초기 시험을 많이 할수록 신약 개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차 회장은 "초기 임상 시험을 하면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신약을 먼저 써볼 수 있어 전 세계에서 환자가 몰려드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선진국에서 진행되는 임상 시험 중 80% 이상이 초기인 것도 이 때문이다.
차 회장은 "복제약만 해서는 영원히 하도급업체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며 "초기 임상 시험을 통해 먼저 연구진의 실력을 키우고, 그다음에 해외 특허를 사들여 곧장 세계 수준의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1조원을 들여 해외 신약 특허 500개를 살 수 있어요. 이 중 10개만 신약으로 성공해도 곧장 매출 10조원대의 글로벌 20대 바이오 기업에 낄 수 있습니다."
차병원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2005년 미국 LA 할리우드장로병원(현 LA차병원)을 3000만달러에 인수해 작년 매출 5000만달러의 병원으로 발전시켰다. 미국 ACT(현 오카타 세러퓨틱스)사에 투자해 세계 최초의 배아줄기세포 안과 질환 치료제를 공동 개발했다. 차병원 연구진은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배아줄기세포 안과 질환 치료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로 성인의 피부세포로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복제 배아줄기세포도 수립했다. 지난해에는 2000억원을 투자해 판교에 종합 바이오 연구소인 차바이오컴플렉스를 세웠다. 연구 인력만 2000여명에 이르며, 차의과대도 이곳으로 옮겼다.
차 회장은 "개별 병원이나 회사 힘으로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다"며 "임상 시험 병원과 바이오벤처, 제약사들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어지는 '바이오시티(biocity)'를 만들어 의대로 몰려드는 우수 인력을 바이오산업으로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교=이영완 기자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17/20150417000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