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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스크랩 한국사의 시작, 왕검조선에 대하여
신석재 추천 3 조회 360 16.02.24 19:18 댓글 41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 고대사의 시작은 왕검조선이다.


<삼국유사> 기이편과 후조선 초기 편찬된 <동국통감>에 인용된 <고기>의 왕검조선이 우리민족의 최초국가로 보아야 하며 북애노인이 저술한 <규원사화> 단군기의 지리비정이 가장 사실에 근접한 사서라 본다.


참고도 - 왕검조선 강역과 도읍지 추정도






<동국통감>에서는 개국시조 단군왕검의 조선 역년을 1048 년이라 하였고 <규원사화>는 47 대 역년 1205 년이라 하였으며 <환단고기>에 실린 이암의 <단군세기>에는 47 대 역년 1997 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이전에 단국 1565 년 역사가 있었음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한국사학계가 우리의 고대 기록을 제대로 검토.분석.정립하지 못하고 왜종아이들이 창안한 소위 식민사관을 맹종하여 화국 한 유철이  5 만 병사를 보내 만.우거가 도둑질하고 차지한 조선 땅에 4 군을 설치한 시기 즈음부터 한국사가 시작되었다고 아주 바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때문인지 역사관심가들이 <삼국유사>에 기록된 환인.환웅의 신화를 환국 또는 배달국 등이라 하며 <단군세기>의 단국 1565 년 기록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더 소급하여 서기전 7199 년에 개국하였다느니 서기전 3301 년에 개국하였다며 근거 없는 환타지 소설류에 심취되어 있다.


어쩌자는 것인가? 그것이 학문적일 수가 있다고 보는가?

서기전 2333년 개국하였다는 왕검조선마저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그 이전의 역사를 어찌 그리 쉽게 말하는가? 그 이전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자각하고 하루빨리 꿈에서 깨어 현실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왕검조선 이전은 문명 시기로 분류하여 고고학적 측면의 이해 방법이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고기> <삼국유사> <단군세기> <동국통감> <규원사화> 등 신뢰할 만한 우리 고대 사서에 기록된 우리 역사의 시작은 서기전 2333 년 왕검이 단군 제위에 오르고 조선을 건국하여 1048 년 지속되었고 초도지는 태백산 서남쪽 우수하 들에 세운 임검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 본다.


후조선 숙종 시기 <규원사화>를 저술한 북애는 임검성을 후조선 시기의 청국 봉천성 요양에서 북쪽으로 600 리 떨어진 길림성 속말강 남쪽의 소밀성이라 하였는데 화국의 25 번째 정사인 <청사고/지리지>에는 길림성 치소인 길림부에서 서쪽으로 195 리 떨어진 쌍양현 치소가 소알연蘇斡延이라 하였으며 현 남쪽에는 황영皇營이 있고 이통주의 북쪽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소알연은 소밀성, 소머리 곧 우수와 같은 음, 같은 뜻의 단어들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으며 <청/지>의 봉천.길림성 기록을 샅샅히 뒤져도 황영과 비견될 만한 지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애의 지명비정이나 <규원사화>의 기록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또한 정확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곳이다.


또한 북애는 단군 왕검께서 임검성에서 10 년을 지내 보니 기후가 차가워 농사에 적합치 않고 물길이 북쪽으로 흘러 남쪽과의 교통이 불편하여 백산 남쪽 패수 북쪽으로 천도하였다고 하며 이 두번째 도읍 위치를 <신당서/열전> <요사/지리지> <일통지> 등의 기록을 검토하여 고구려의 국내.환도성지역이고 진국의 서경 압록부 신주지역이라고 설명하였다.


또 백산 남쪽인 신주에 정착한지 20 여년이 지나서 큰 홍수를 만나 남쪽으로 옮긴 곳이 아사달 아래 당장唐莊의 들이며 후조선 시기의 문화 구월산 아래 장평莊坪 땅이라 비정하였고 이로부터 900 여년 후 34 세 단군 오루문 시기에 낙랑홀로 도읍을 옮겼다고 하며 총 47 대 단군이 재위하였고 그 역년은 1205 년이라 하였다. <동국통감>의 1048 년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한편 일연이 기이편에서 제목으로 왕검조선 앞에 기록한 고조선은 왕검조선과 같다는 뜻으로 병기한 것이 아니라 환웅의 통치기를 왕검조선보다 오래 되었다하여 옛 古를 첨언한 것이라 추정한다. 어떤 이들은 왕검조선이 위만조선에 비해 오래되었기 때문에 왕검조선을 고조선으로 병칭한 것이라 했다고 해석하지만 내 상식으로는 그렇게 이해할 수는 없다고 본다.


본 글에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고 하면서 무엇때문에 글 제목을 `고조선왕검조선`이라 하겠는가?

환웅의 통치기 국호가 전해지지 않았으니 단군왕검의 국호인 조선보다 옛되었다 하여 고조선이라 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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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2.24 20:11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 16.02.24 22:33

    추측과 비정만 하지말고 임검부터 지금까지 한국사의 시작과 끝을 실증해 봅시다.. 추측과 비정을 사서.. 유적.. 유물.. 문화.. 정치등 다양한 분야로 증명을 해 보심! 그곳에 무엇이 고려이고 조선이며, 삼국인지.. 통일신라인지~

    만날 지명만으로 추정과 비정만 듣고 있을라니 멀미나것소!!

    최소한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절차 아니겟어요?

  • 작성자 16.02.25 18:53

    그동안 내 글을 건성건성 대충 읽었군요.

    신채호가 고대의 요수는 란하라 했다는 말은 기억합니까?

    그 말의 요지는 지금의 란하가 우리 동국과 진시황.연 장수 진개.한 무제 유철.수 양제.당 태종.거란국.명.청과의 국경선이라는 것이며 그 근거는 <한서/지리지> 현토.요동군에 기록된 2100 리 염난수와 1250 리 대요수 및 화국의 25 번째 정사인 <청사고/지리지>의 봉천성 해룡.창도.봉천부 기록된 요하도 지금의 란하라는 것이 증거입니다.
    이해할 수 있겠어요?

    글이 길다고 투덜거린 사람도 있어 짧게 답변하니 모르는 것은 다시 질문하세요.

  • 16.02.25 16:13

    오대십국시대를 지나 고려의 발원과 성장이 지금의 사천성과 섬서성등지인데 어떻게 저런지도에 고려의 개경을 우겨 넣을수가 있나요? 원의 공격을 받고 수도를 옮긴 충렬?왕이후 강역이 동쪽으로 이동되엇다라고 한다면 1%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겠지만 님의 지도는 보고 또 봐도 헛기침만 나오게 하네요! 사서상의 고려의 강역만 증명한다면 님의 위지도는 찢어지느거 맞죠? 신채호의 비정이나 추론, 사서의 참조 또한 엄청난 한계를 갖고 있엇음을 간과하고 계시네요~ 어차피 기존의 정사든, 개인의 문집을 참조했을텐데요!

  • 작성자 16.02.25 19:08


    에효...
    어찌 그리 맹탕 글을 올리며 따라다니는가?
    자신있으면 증명해 보시게!

    고려의 발원과 성장이 사천성.섬서성이라고?
    몽고의 공격으로 고려 강역이 동쪽으로 이동되었다고?
    허! 풍선 바람빠지는 소리 하지 말게나.
    몽고 침입이 있었어도 강역은 커녕 수도인 개경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냥 서경과 그 북쪽 지역이 몽고와 고려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공민왕 때 모두 찾았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고려사> 등 우리 역사서는 한 줄이라도 읽어는 보았는가?
    <요사><금사><원사> 지리지나 들여다보고나 하는 소린가?
    그런 생각으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조용히 있게나.
    뭘 아는 것이 쥐꼬리만큼이라도 보여야 대꾸를 하지

  • 16.02.25 18:37

    중국 사천성 성도에있는 고려 왕건의 사당 사진이 있던데,
    그것은 누가 왜 그곳에 만들었을까요?
    아시는분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16.02.25 19:03

    동명이인입니다.

  • 16.02.25 20:36

    @신석재 아! 심하다~ 님은 아무런 실증도 못하고 사서몇줄 인용해서 비정, 추론해서 임검조선부터 못을 박아 버리더니 뭐라? 동명이인? 뭐이런 황당한 궤변은?? 동명이인? 참 엽기적인 소리를...

  • 16.02.25 20:45

    <고려사절요>
    왕씨는 성이며, 건(建)은 죽은 후의 휘호이다.
    왕씨는 한주송악군(漢州松嶽郡) 사람으로, 금성태수(金城太守)였던 아버지 융(隆)의 장자이다.
    당나라 희종 이현 건부(乾符.A.D.874∼879년) 4년,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A.D.874∼884년) 3년인, A.D.877년 정유년(丁酉年) 음력 정월 14일에 태조가 태어났다

  • 16.02.25 20:53

    <고려사(高麗史)>
    고려왕 태조는 덕이 있고 효성이 있으며 준수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그리고 밝은 혜안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성대왕이라 했다.
    성은 왕씨이며 죽은 후의 휘호를 건이라 했다.
    왕건의 자는 약천이며 송악군 사람이다. 세조의 장자이다.

  • 16.02.25 20:52

    <한주송악군(漢州松嶽郡)>
    한주송악군은 지금의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임이,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103쪽에 기록되어 있다. 『漢州松嶽郡. 唐改曰 德陽郡. 宋曰 漢州德陽郡. 元曰 漢州. 明淸皆屬. 四川省成都府…』
    당나라 때 이름을 고쳐 덕양군(德陽郡)이라 했다.
    송(宋)나라 때는 한주덕양군(漢州德陽郡)이라 했으며, 원(元)나라 때 와서 한주(漢州)라고 했다.
    명(明)나라, 청(淸)나라 때에는 모두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성도부(成都府)였다….

  • 작성자 16.02.25 21:01


    정말 희한한 사람일세.
    눈꼽이 낀 것이라면 다행이련만.

    고작 한주漢州란 지명이 같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다는 것인가?
    허...................................................!

  • 16.02.25 21:05

    @신석재 고작 신채호가 요수가 란하라 했다는 걸로 피를 토하나? 그럼 끝나나? 무엇으로 증명할건데? 비정? 추론?

    링크되는 지명과 기록을 잘보고 글 읽으삼!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가지 지명이나 기록을 키워드로 해서 쭉 이어지는 글이니까!!

  • 작성자 16.02.25 21:26

    @삼분지계
    허! 무식한 작자야!
    머리가 돌지 않으며 눈꼽이라도 좀 떼고 말해라!
    고지도는 뵈지 않더냐?

    <한서/지리지>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현토군 기록,
    <후한서/군국지>상곡.범양.어양.우북평.요서.요동.현토군 주석,
    <수경주> 고수.포구수.난수.대요수.소요수 기록,
    <진서><위서> 지리지 평주 기록,
    <신당서/지리지/가탐의 사이술기>,
    <요사/지리지> 중경대정부,동경요양부 기록,
    <원사/지리지> 대도로.흥화로.영평로.대녕로.요양로 기록,
    <명사/지리지> 경사.북평행도지휘사사.요동도지휘사사 기록,
    <청사고/지리지> 경사.직예성.봉천성 기록은 꼭 보구 와라.

    란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느껴야 상대를 하지.
    참으로 한심한 작잘세.

  • 16.02.25 21:30

    @신석재 쥐미 대륙 이곳 저곳에 존재하는 한수, 태백산 하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사가 뭔 저따위 획일화되고 줄세워진 지리지 타령을 하고 있나?

    또 욱했네^^

  • 16.02.25 21:31

    @신석재 졸라 공식대로 외운 역사말고~

    열린 마음으로 탐구쫌 하삼~~

  • 작성자 16.02.25 21:38

    @삼분지계
    그래, 자네 마음이 참 넓으이.
    내는 자네 말대로 열린 마음으로 항상 존재하고 탐구하고 있으니 그리 심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자네가 나를 조롱하건 비난하건 상관하지 않겠는데 원문이랍시고 엉터리 글이나 망나니 해석을 들이미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는 것일세.
    그땐 뭐 막 나가는 거지.

  • 16.02.25 20:58

    <송사고려전(宋史高麗傳)>
    왕이 살았던 곳은 개주(開州)이다.
    개주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954쪽
    『唐置. 改曰盛山郡. 尋復故. 宋曰開州盛山郡. 元曰開州. 明降爲縣. 卽今四川開縣治…』
    개주(開州)는 당나라 때 두었다. 이름을 고쳐 성산군(盛山郡)이라 했다. 다시 찾아 이름을 복구시켰다. 송나라 때 개주성산군(開州盛山郡)이라 했다, 원(元)나라 때 개주(開州)라 했다. 명(明)나라에게 항복하면서 현(縣)으로 되었다. 즉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개현(開縣)에서 다스렸다…

  • 작성자 16.02.25 21:09


    이번엔 개주?
    정말 무식하단 소릴 꼭 들어야겠나?
    <송사/고려전>의 개주를 사전에서 찾을 때는 고려의 개주를 찾아야지 어찌 개주란 글짜만 나오면 사죽을 못쓰고 아무거나 들이미나?
    <송사/고려전>의 개주에 왕이 살았다는 기록은 의심이 가지만 어쨋든 같은 시기에 고려 국경에 있었던 개주는 <요사> 지리지 동경요양부 소속의 개주이니 우편배달부가 번지수 찾듯이 한주.개주 등 한문이 똑같다 하여도 잘 찾아야 할 것이야.

  • 16.02.25 21:22

    @신석재 ㅋㅋ 아! 모든 역사가 님이 이곳이 고려가 정한 개주야 하면 그렇게 되나보넹?

  • 16.02.25 21:01

    <개주(開州)>는 태조 왕건이 살던 곳이다. 개주는 촉(蜀)나라 지역이며 이곳을 촉막군(蜀莫郡)이라 한다. 사천성 개성부(開城府)이며, 호는 동경(東京)이라 하고 백제(百濟) 때 금주(金州)이며 금마군(金馬郡)이라 했다.

  • 작성자 16.02.25 21:13


    어.........!
    참 거지같은 원문을 보고 있군.
    열전을 왜 보나?
    더구나 북경지역을 차지하지도 못한 송사를...
    정사 지리지를 보라구!

  • 16.02.25 21:26

    @신석재 어리석은 소리쩜.. ㅋㅋ 정사지리지가 진실인지 누가 장담하는데? 님 말처럼 딱 들어맞는 느낌이 더웃기지 않나?
    역사를 공부할수록 미궁속에 빠져드는 것이 지명이고 지리인데 님이 공부하는 역사는 너무 이빨맞듯이 들어맞다고 생각하지 않나??

    1만년 동안의 수없이 많은 개인의 사서나 국사를 25사로 편집해서 줄세운게 역사라고 하면 정말 개가 웃을일이고 다분히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야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이고 상식 아니겠나?

  • 작성자 16.02.25 21:48

    @삼분지계
    허!
    자네가 그 글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그러니 내가 자넬 무식하다고 하는 것이야.

    응큼한 화국놈들이라고는 하지만 <한서>부터 <청사고> 지리지까지는 정확하게 기록했다니까!
    그런데,
    모택동과 주은래 이 두 놈이 무식한 김성주를 꼬드겨 왜놈이 1934 년 만주국지도를 제도하면서 원래의 압록강.백두산.토문강을 동쪽으로 약 1500~2000 리 밀어내 지금의 압록강.백두산.토문강으로 만든 것을 알면서도 지난 2000 년 동안 지금의 요하.압록강 등이 변함 없었다고 거짓으로 속삭여 국경선을 삼은 것이라니까!

    한국인인 것 같은데, 왜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 16.02.25 22:01

    @신석재 근대에 조선사를 반도로 띄어내기 위해서,.... 대한제국을 반도에 만들고 지리지나 근대에 편집한 사설들로 단돌이를 한것이라니까요~~~~ 그 단돌이에 해당하는 것들이 바로 님이 보고잇는 지리지니 하는 사서들이공~!

    유대나라 기억하죠? 그 복어계획이나 만주국 건설을 위해 지리지를 변경 조작하다가 얽히고 섥힌 역사의 단면을 님이 공부하신 거라니까~~

    조선을 한반도가 아닌 다른 섬에다 인구 60만 정도로 만들려다 대한제국을 한반도에 만듭니다~
    진실을 완벽하게 조작하고 은폐하기 위해서엿으나 포기하죠~~

    왜? 일본이 있으므로 가능하리라 생각햇던 것이죠~
    한반도에 대한 개념부터 쩜 바꾸시죠~~

  • 16.02.25 22:13

    @신석재 아! 그리고 제발 청사고 이넘은 쩜 빼면 안되나?

    조작의 결정판을 세상에 정사라고 취급을 하네^^ 중국 학자들도 쉬 인정을 안하는 사서를 금과옥조로 하는 조선

    민은 머하는 분이신지...

  • 16.02.25 21:04

    <명사(明史) 외국(外國)의 조선편(朝鮮編)> 송악(松岳)을 동경(東京)이라 했다.
    『唐時王建代高氏兼倂新羅百濟徙居松岳曰東京而以平壤爲西京其國北隣契丹…』

  • 16.02.25 21:20

    왕건의 출생과 주요활동등이 대륙 서쪽을 무대로 하고 있고 지명의 변천이 사전을 통해 빤히 보이는데
    우길걸 우겨야죠!!
    왕건이 일어난 곳은 사천성 성도이지 님이 맘대로 지정한 곳이 아니랍니다~~~~

    님이 비정하거나 추론하는 대륙을 완전히 서쪽으로 틀어서 지명의 변천을 함 파보삼~~~

    남들한테 으악대지나 말고 25사 너무 빨아대지는 맙시다!

    고려가 대륙 서쪽이라는 증거는 님이 비정하고 추론하는 양만큼 있답니다~ 님이 안보려고 해서 안보이는 것이지요..

    왕건릉이 동명이인 이라는 증말 오바이트 쏠리는 소리는 고만하시구요!
    <고려도경>등의 사서는 새젓으로 밖에 안보이죠??

  • 작성자 16.02.25 21:54


    그러면 <삼국사기/잡지/지리>나 <세종실록지리지>, 정약용의 <강역고/서북연혁로.북로연혁고>는 어떤가?
    읽어보았는가?
    화국 지리지 안봐도 돼.
    화국지리지를 보는 것은 객관성이 있기 때문이고 다행히 25 개 정사에 딸린 주요 지리지 기록이 정확하고 고지도 등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왜종이 조작한 만주국지도를 금방 알아 볼 수가 있는 것이야.

  • 16.02.25 22:09

    @신석재 하!! 정사만 외워서 하는 공부 답읍네 증말!!
    25사가 편집의 의혹이 있고, 한국사가 일본아이들 교열아래 탄생했다면 당연히 그외 사서와 정사라고 하는 것들을 비교하여 맞아 떨어지는 부분은 일정부분 수용하고 차이가 있는 것은 추적과 추정으로 비정을 하든 뭐시기를 해야 하는데, 지맘대로 여기서 부터 여기까지는 진짜니까 믿어! 안믿으면 무식하고 양심없는거야!!해버리넹^^

    전지전능 절대자구만!!

  • 작성자 16.02.26 23:28

    @삼분지계
    25 사가 편집의혹이 있다고 누가 그래?
    그 무식한 자가 대체 누구야?
    어떻게 그런 한심한 말에 솔깃하냐?

    왜종이 사서에 손 댄 것은 <후한서/군국지> 어양.우북평군의 거리 기록을 줄인 것이라든가, <남제사> 백제전 일부를 깍아낸 것이라든가, <통전>에서 영주까지의 거리를 늘린 것이라든가, <요사/지리지> 중경도에서 한 글
    자를 지운 것 등등 교묘하게 했지.

    편집을 건드려서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가?
    참 생각이라고 하는 것도....

  • 16.02.25 21:43

    <명사>에 이런 구절이 있지 않나?

    한이라 부르기 전에 조선이었다, 위만이후 한무제가 정복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한 말 부여사람 고씨가 그땅을 차지하여 고구려라 하였다. 이후 당나라(신라추정)에 밀려 동쪽으로 갔다(발해추정)

    원문은 찾아보시공~ 위 말대로라면 조선위 한나라 그땅위에 고구려가 있었다! 뭐데? 고구려가 한나라 위에 세워졌다네?

    한나라는 당췌 어디가 있었을까요?

  • 작성자 16.02.25 21:59

    허!
    무식한데다가 최소 양심도 없네.
    원문 올려봐!
    자네가 주절거린 내용은 기억에 의존한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아 뭐라 말할 수가 없지만 아무튼 원문은 그렇지 않을꺼야.
    같잖은 소리 때문에 원문 찾을 생각없으니 자네가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다면 올려봐!
    정확하게 설명해 줄께.

  • 16.02.25 22:41

    님의 다른 추정에 대해선 좀 다를지라도...
    위에 것은 정확히 <명사>의 내용이 맞네요.^^

    명사 조선 전 첫머리,
    신석재 이분은 자신의 위치 비정과 조금만 틀리면 그 책들이 정사여도 엉터리라 하던데...ㅎ
    그런걸 보면 그 분이 말하는 정사의 기준이 뭔지 이해가 좀 안가긴 하지만요...ㅎ

    이번엔 그 애지중지하는 명대의 기록이라...ㅎ
    어떤 결론을 낼지.. 참 재밌게 보고 있네요.^^

  • 작성자 16.02.26 10:10

    @타임로드
    무식한 자로 추가 등록하려고 하나?
    비난이든 비판이든 하면서 명사 기록이 맞다고 한다면 원문을 보았을 터이니 삼분지계가 올리지 않은 원문이나 올려봐!
    적확하게 해석해 줄테니.

  • 16.02.26 12:59

    @신석재 하늘높은 줄 모르는 사람이군.ㅎ

    아니 무슨 뭔문을 올려달라는 것이지?
    그동안 정사를 다 읽어보았다고 하더니 어디있는 줄도 모르나?
    내가 어디있다고 써놓았는데도 못찾나?ㅎ

    본인의 무지함은 모르는이가 남의 무지를 어떻게 평가한다고...ㅉㅉ

    강역 비정을 연구한다는 자가 역사는 모르나?

  • 작성자 16.02.26 23:30

    @타임로드
    정말 단순하게 사는군.
    정사를 누가 다 읽냐구!

    몇 사람이 달려들어 편찬하는 정사이고 한 사람이 쓰는 것이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 오인한 것이 당연히 있는 것인데, 기록되었다고 모두 사실을 적시한 것인줄 아는 모양이지?

    에효,
    다들 뭔 생각으로 살지?
    그냥 역사 자체를 해석하고 비판해보라구.
    한과 조선이 같은 장소에서 시기를 달리한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 보라구.

    <명사>를 편찬한 여진인들이 설명하는 1500 년 전의 정황 기록을 뭐하러 보는가?
    보더라도 사료가 정확한지 살펴야 할 것 아닌가?
    에효.
    기본적으로 아는 것이 있어야 비판을 하지.
    꼴을 보니, 정사라니 어련히 알아서 썻으라고 하며 꼬랑지 내리는 거여?

  • 16.02.27 04:06

    @신석재 정사를 다 읽어보는게 단순하다고??ㅎ
    어처구니가 없네...ㅎ

    그래서 지리지의 거리를 일자로 그었나?ㅎ

    내가 처음부터 님에게 한말...기억하고,
    '손님입니다' 같은 사사로운 해석은 집에서 혼자 하길 바람.

    그리고 역사서는 후대에 각종 명분에 의해 확장, 왜곡 해석은 할 수 있을 지언정
    그 기본은 전거에 의한다는 역사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으면서 무슨 역사 연구를 한다고...ㅉ

    그러니 조금만 자신의 입맛에 어긋나도..
    본인의 주장 근거라며 따온 책에 다른 단락의 것조차도 엉터리라며 딴소리지.

    그리고 언제부터 말을 놓는 건지.. 대체 날 언제 봤다구...ㅎ

    머리가 굳은 것은 알겠는데..
    욕구불만의 해소는 딴데서 하길.

  • 작성자 16.02.27 12:55

    @타임로드
    참 돌이 따로 없네.
    내가 얘기하는 것은 지리인데 뭔 뚱딴지같이 사건 얘기를 하나?

    사건 내용에 대한 기록은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해야겠지.
    하지만 지리 기록은 왕조가 바뀌어 주.부.군.현 등의 명칭이 개칭은 되었을지라도 그 지형지세에 대한 기록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조금만 살피면 기록자나 화사의 실수.오기 등을 바로 잡을 수가 있어.
    왜일까?
    각 시기마다 고지도도 숱하게 많을 뿐더러 가장 중요한 것은 측량에 의한 방향.축척이 정확한 현대지도가 있기 때문이야.

    이제까지 잘못 이해한 부분을 뜯어고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방향이나 제대로 잡고 댓글을 달아야 인정을 해주지. 안그래?

  • 16.02.25 22:03

    님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최소한의 공부를 위해서 찾는 노력이라도 하시라공?

  • 작성자 16.02.26 23:21


    <명사/조선전>에서 1500 년 전의 정황을 기록한 것은 읽을 필요도 없다.
    차라리 <후한서/동이전>을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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