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과 영상매체의 보급으로 꼭 오페라 하우스에 가지 않아도 집안에서 세계 각국의 오페라 공연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고 교통 수단의 발달로 오페라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나 관객이나 모두 세계를 쉽게 왕래하게 되었다.
오페라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공연예술이다. 따라서 음반으로 감상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오페라 공연을 감상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준비 단계는 오페라의 매니어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말하자면 산을 오르기 위해 산의 정보를 미리 알고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음반시장은 과거에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좋아져서 오페라 전곡 음반을 여러 종류 중에서 고를 정도가 되었다. 인기있는 작품들의 경우 그만큼 많은 해석 중에서 골라야 되는데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결정하기 힘들 때가 많다. 이럴 때 음반비평을 참고할 수 있지만 아주 우수하거나 아주 형편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평도 역시 비평가의 주관이 반영된 것이고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것이다. 경험자의 도움을 받되 결국 자기 판단이 생기려면 오랜 세월 동안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지키면 좋을 사항들이 있다. 오페라에 어느 유명한 가수가 나온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레퍼토리가 넓으면 넓을수록 어느 하나에 뛰어나기는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가수들은 요즈음 가수들보다 어느 특정 스타일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로 유명했던 리자 델라 카자, 프랑스 오페라에 뛰어났던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등) 이름 뿐 아니라 그 가 수의 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알아두면 실망하는 확률이 적다. 그러나 오페라의 경우는 가수보다 지휘자를 기준으로 택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오페라처럼 규모가 큰 장르에서는 결국 얼마나 전체 균형을 유지하는가가 가장 중요하고 그 역할은 지휘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토스카니니가 취입한 음반들은 가수들의 역량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짜임새나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토스카니니의 음반들은 모두 모노로 취입되어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다른 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오페라의 경우에는 사운드에 너무 민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보다는 얼마나 생동감을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음반보다 공연실황 녹음 음반을 택하면 된다. CD시대가 되면서 한가지 크게 반가운 것은 전보다 훨씬 많은 실황녹음 음반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공연실황이 녹음된 경우는 대개 유명한 공연일 터이므로 수준을 안심해도 좋은 이점도 있다. 음반은 실제 공연을 보기 전에 들으면 좋지만 비디오테이프나 레이저디스크 등의 영상매체는 가능한 한 공연을 본 후에야 볼 것을 권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영상매체란 오페라 감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페라 뿐아니라 발레, 연극 등 공연 예술은 일회성에 그 생명이 있다. 똑같은 배역이 매일 똑같은 연기를 하더라도 실은 그것이 하나도 똑같은 것이 아니다. 무대에서 움직이는 연기자는 객석에 있는 관객과 교감함으로써 순간순간 창조적인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연의 대부분은 연기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공연 예술의 매력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밤낮으로 대하면서도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과도 같다. 그리하여 삶은 또한 살 맛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반이나 영상매체는 복제되어 출판된 것이며 결코 공연의 맛을 느끼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음반이나 영상매체는 오페라를 알기 위한 최종단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매체들이 가장 적절하고 유용하게 쓰일 때는 '교재'가 되었을 때다. 음반과 영상매체가 있어 우리는 가령 베토벤의 교향곡을 1번부터 9번까지 시대 순을 하루 동안에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며 세계 어느 무대에서도 공연되지 않는 희귀한 바로크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반과 영상매체의 중요한 가치는 가치대로 인정해야 한다. 다만 오페라를 즐기기 위해서 음반을 듣는 것과 영상을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음반은 오페라의 내용을 정확하게 미리 아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에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 후에 공연을 보았을 때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과 우리 머리 속에서 만들어졌던 것과 부딪칠 때에 우리는 대단히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작업이 계속되면 오페라를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런데 공연을 보기 전 영상매체를 보면 어느 한 연출가의 해석의 최종단계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고 그 작품에 대해서는 일단 한 번 거친 것같은 느낌이 든다. 좋은 공연일 경우 매일 보아도 재미있는 수가 많지만 영상은 되풀이해서 보면 금방 싫증이 안다. 영상매체가 방해가 된다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시각적인 것을 위주로 하는 시대가 되면서 음악과 연기의 밸런스가 깨지는 부정적인 현상에는 영상매체도 한 몫을 했다. 20세기에는 푸치니나 슈트라우스, 그 밖의 몇몇 작곡가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새로 만들어진 것들 중에서 관객에게 인기를 끌만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지 못했다. 자연히 과거의 작품을 색다르게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늘고 오페라의 전문 연출가들이 나오게 되었다. 오페라 가수들도 더욱 정교한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2차 대전 후 오페라의 위대한 연기자 마리아 칼라스의 출현이 있게 된 것은 그러한 배경과 함께 가능했다. 1950년대에 LP가 보급되면서 오페라 전곡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실제 오페라 공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주 공연되지 않는 오페라라 하더라도 사전 지식을 가지고 공연에 온 관객이 그만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오페라 가수에게서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하게 되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어떤 동기에 의하여 동작이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동기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이고 오페라의 연기도 일상 생활의 논리가 반영되었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작품에 대한 세밀한 사전 지식이 있을 때 그만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동작의 동기를 잘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상매체 시대가 되면서 상황은 오페라의 이상에 맞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노래는 노래대로, 연기는 연기대로 따로 따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원인은 오페라를 만드는 사람들이 관객과 교감하면서 호흡을 맞춰 공연하던 오랜 관례가 점점 깨어져 나가는데 있다. 관객층이 점점 넓어지는 반면 몇몇 전통적 오페라 하우스의 일부 관객층을 빼고는 이전같은 깊은 지식을 가진 관객들을 오늘날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무엇을 깊이 음미하기에 세월이 바빠진 탓도 있지만 세계가 좁아진 것도 이유가 된다. 음반과 영상매체의 보급으로 꼭 오페라 하우스에 가지 않아도 집안에서 세계 각국의 오페라 공연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고 교통 수단의 발달로 오페라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나 관객이나 모두 세계를 쉽게 왕래하게 되었다. 그동안 앙상블 오페라를 잘 고수하던 지역이 공산권이었는데 그것마저 무너졌고 이제는 앙상블의 성과 보다는 스타를 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스타를 선호하다 보니 한 가수가 적절한 역으로 등장하는지에 대한 비평적 안목보다는 시각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한편 오페라 관객은 점점 스피커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익숙하게 된다. 이제는 극단적으로 목소리 보다는 디테일한 외모를 더 따지게 되었다. 이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 영상매체는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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