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은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에는 시의 기법이 있고 소설에는 소설을 쓰는 어떤 기법이 있듯이 희곡에도 극작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희곡 세계를 갖고 있으며 어떤 기법으로 희곡을 만들어 나가는지에 함께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나라 희곡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인 최인훈, 이근삼, 오태석, 이현화 장정일, 윤조병, 박조열 제씨의 세계에 이름을 붙여 보면 이렇습니다.최인훈은 설화의 세계이고, 이근삼은 풍자의 세계, 오태석은 이미지의 세계, 이현화는 도착의 세계, 장정일은 페러디의 세계, 윤조병은 사실의 세계, 박조열은 우화의 세계…. 이 일곱 극작가들이 어떻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는지 여러분과 함께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최인훈 하면 소설뿐 아니라 대한민국 연극과 희곡사에 커다란 획을 그으신 분입니다. 그의 장편소설 「광장」은 문학청년이나 소녀 시절에 반드시 읽어 보셨을 줄 믿습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최근에 나온 자전적 소설 「화두」,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 「낙랑 둥둥」,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등을 접하면서, 저는 이 분이 소설을 쓰다가 왜 희곡에 손을 댔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느 날 소설가 최인훈이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더니, 우리들 토박이 희곡 작가들을 앞질러 적잖은 관객들을 모아 가는 걸 보면서,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따져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젓 조사를 해 보았더니, 지금은 없어진 계간지 「문학」에 1966년에 최인훈의 제법 흥미있는 작품이 실려 있는 걸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문학」은 아주 신망있는 문학 전문지였습니다. 그 잡지에 최인훈은 「놀부전」이라는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오늘의 입장에서 「흥부전」을 새로 본 최인훈
최인훈의 눈으로는 「흥부전」을 아무리 읽어 봐도 흥부가 아이를 많이 낳은 것 외에는 잘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흥부전을 쓴 사람도 부부가 눈만 마주쳐도, 옷깃만 스쳐도 애를 낳았다고 했겠습니까. 숫자로도 스물여덟이나 아홉밖에는 더는 못 세고 마는데, 아마 50이나 60명쯤은 낳았을 겁니다.
그런데 흥부가 한 것은 뭐냐 하면 제비집에서 발을 헛디뎌서 떨어진 멍청한 제비를 살린 거죠. 물론 뱀이 올라오는 통에 놀라서 그랬다지만, 다른 제비들은 멀쩡한데 왜 그 멍청한 제비 한 마리만 떨어졌을까. 마음씨 착한 흥부는 그 멍청한 제비를 주워다가 다리를 붙들어 매줍니다. 깁스를 해서 날려보냈더니 남양군도라는 곳으로 갑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태국이나 버마에 해당되겠죠. 거기서 박을 기른다는 소리도 좀 희한한 소리지만, 그걸 물고 여기까지 온다는 둥 최인훈 선생의 입장에서는 생각하면 할수록 믿어지지 않을 소리만 잔뜩 씌어져 있어요. 박을 탔더니 거기서 밥도 나오고 무슨 돈도 나오고, 나중에는 첩도 나왔다. 사실이라는 안경을 쓰고 흥부전을 읽어보니까, 도저히 믿지 못할 소리만 잔뜩 씌어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놀부를 오늘의 눈으로 본다면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근면하고, 욕심이 많고, 목표가 뚜렷한 인간형인 걸 발견한 거죠. "나는 부자가 되고 말 거야!"라는 강력한 목표를 내건 인간상이었습니다. 아주 교훈적인 것은 게으른 자기 동생 뺨을 자기 부인으로 하여금 때리게 만든 겁니다. 그것도 놀부 마누라가 시동생 사람되라고 때렸지, 밥주걱 부러지라고 때렸겠습니까. 최인훈 선생은 이렇듯 사실이라는 안경을 쓰고 우리나라의 설화를 새롭게 보았습니다. 이런 재해석 과정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흥부가 한 것은 거의 믿어지지 않을 소리고, 놀부가 한 행동은 아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긍정적으로 봤던 흥부를, 아주 부정적으로 보면서 놀부전을 다시 쓴 거죠. 최인훈 선생님 역시 소설가이다 보니까 번역투가 아닌 판소리의 '아니리 조'를 빌어 놀부전을 썼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얼쑤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4.4조, 7.5조 할 것 없이 우리말의 고유한 운이 탁탁 맞아 들어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얼쑤를 연발하면서 소설을 읽게 되는 거죠. 마침 연출가 손진책이 「문학」지에 실린 소설을 읽다가, 소설로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느끼고서 모노 드라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손진책 씨가 놀부전을 가지고 코리아나 극장에서 모노 드라마로 올렸습니다. 놀부전을 공연했을 때 최인훈 선생님을 모시고 왔는데, 최인훈 선생이 "나는 소설로 썼는데 직접 관객을 만나 보니까 소설가가 못 느끼는 어떤 것을 맛보게 된다"는 소감을 피력하셨습니다. 소설가에게는 익명의 독자들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반응을 직접적으로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는 자기 작품과 관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에 최인훈 선생이 반해 버린 거죠.
그래서 최인훈이 두 번째로 쓴 희곡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사들로 씌어진 훌륭한 희곡이 되었습니다. 최인훈은 모든 희곡의 소재를 우리 나라 설화에서부터 가지고 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소재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설화입니다. 그 설화를 사실(事實)이라는 안경을 쓰고 들여다본 거죠.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임금의 서너 살바기 딸이 개미한테 물려 울음을 터뜨리자, 그 울음을 억지로 막아 보려고 "너 울면 바보 온달한테 시집 보낼 거야." 하고 윽박지르자 속아 넘어가 울음을 뚝 그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팔 청춘 16살이 넘은 처녀가 이제 그만한 일로 울 리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바보 온달한테 귀한 딸을 시집보낼 왕이 있을까요. 이것도 이상하였을 뿐더러, 심지어 신라군에게 연전연승하시던 일당 백, 무적의 온달 장군이 아차산에서 신라군에게 어떻게 살해를 당했을까 등이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사실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니까, 평강공주가 왕실에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왕자들과 권력 게임을 하다가 밀린 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이유가 그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거죠. 남자들은 서로 권력 게임을 하다 보면 정의냐 불의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주고 받고 하는 속에서 정의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게 마련입니다. 강직한 평강공주의 눈에는 그게 참 더러운 게임으로 비친 겁니다. 그래서 그걸 오빠들에게 지적하죠. 그런데 오빠들은 왕위 계승권이 없는 여자애가 짖어대니까 보기 싫지요. 그런 속에서 "너 궁 밖에 좀 나가 있어라." 해서 내보낸 것으로 해석한 거죠.
실제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보면 평강공주가 궁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바보 온달을 몰라요. 대사가 평강공주로 하여금 난을 피해 있도록 궁 밖에 있는 절로 데리고 나오는 도중, 숲 속의 바보 온달네 집에 우연히 물을 마시러 들렀다가 곰을 때려잡고 들어오는 온달을 만납니다. 그 순간 평강공주는 저 백지 상태의, 아직 거기에 아무 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재료를 하나 본 거지요. '아! 저 재료에 나의 지혜와 지식을 불어넣고, 이데올로기를 불어 넣자. 백지 상태의 온달을 용감무쌍한 장군으로 만들어 놓으면 내 역할을 대신해 권력 투쟁에서 용감히 싸워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요. 그런 이유에서 바보 온달을 택한 겁니다. 평강공주와 결혼한 바보 온달은 어엿한 장군이 되지요. 서울의 아차산은 신라로부터 빼앗은 남쪽 땅으로 바보 온달이 죽어서 묻힌 곳입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그 때 바보 온달이 백전백승하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한강 이북까지 침범한 신라군을 무찔러서 내모는데, 어떻게 바보 온달이 패잔병들한테 죽었을까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라는 안경을 쓰고 그 설화를 보면 달라집니다. 바보 온달이 백전백승하면 제일 싫어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당연히 권력 게임에서 평강공주한테 밀리고 있는 왕자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왕자들은 음모를 꾸밉니다. 암살자를 고구려 병사들 속에 넣어서, 온달의 등 뒤에서 화살을 쏘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이 암살자에 의해서 죽게 됨으로써 얘기가 바보 온달 설화보다도 더 의미가 생기고 확실해져요. 최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는 온달 장군이 암살당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 관객들은 콧날이 시큰해지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관극을 하고, 혼자서 읽을 때는 혼자서 펑펑 울어요.
평강공주의 꿈속에 죽은 바보 온달이 나타납니다.
'이제 이렇게 죽어서야 비로소 그 예전에 곰 때려잡고 여우 잡으러 다녔던 자유를 누립니다. 죽은 다음에야 알았지만 공주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습니다. 그 하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일자 무식쟁이에다 숲 속에서 곰이나 잡았던 나 바보 온달이 이제는 벼슬아치로 변하고, 궁전에 들어가서 정치적인 음모와 권력잡기 게임에 휘말리느라 제대로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정말 사랑했던 나는 답답했습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당신을 예전과 똑같이 얽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참다운 죽음이었습니다. 그걸 꿈꾼 거죠.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바보 온달이 전사했다라는 통지가 평강공주에게 날아듭니다.
최인훈이 사용했던 극작술, 즉 설화의 세계는 전부 뒤틀리고 변형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실 같은 부분들이 환상으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최인훈은 사실이란 안경을 쓰고 봅니다. 그런 재해석을 통해 우리나라 설화가 갖고 있는 높은 가치를 발견한 거죠.
1978년에 쓴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심청전을 새로 본 겁니다. 가령 인당수에 빠졌다가 연꽃으로 떠오른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본 거죠. 바다에서 연꽃이 피어날 리도 없고, 연꽃을 타고 갈 리도 없죠. 최인훈식 해석으로는 심청이 중국 산동에 있는 창녀촌으로 팔려갔다가 거기에서 신라 사람을 만난 것으로 설정됩니다. 그러다가 불쌍히 여긴 조선족 청년이 심청을 구해 줍니다. 그런데 최인훈은 그대로 잘 살게 놔두지 않고, 도중에 중국 해적을 만나 붙잡혀 가게 합니다. 그래서 늙도록 해적을 위해서 성적인 노리개가 되어줄 뿐 아니라, 빨래 시중도 들다가 예순이 넘어 노동력을 상실해서야 해적이 필요없다고 버립니다. 그후 갖은 고생 끝에 바닷가로 늙은 심청이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온 늙은 창녀는 어린애들을 모아놓고 심청이의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막상 이 희곡이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자 관객 사이에서 우 하는 함성이 터졌습니다. 아무리 사실이란 안경도 좋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환타지만큼은 빼앗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효 이데올로기 하에 아름답게 꾸며진 심청의 이미지를 훼손당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왕비가 되고, 용궁에서 죽은 어머니도 만나고,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날 때 심청이 다시 살아나고…. 잔인한 이야기일수록 아름답게 표현하는 한국인의 정서상 창녀촌에 팔렸다가 칠십 노파가 된 심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그 뒤부터 최인훈은 우리 설화를 희곡으로 만드는 작업을 중지합니다.
이미지 만들기의 귀재 오태석
오태석의 극작술은 이를 테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하는 구전가요 식입니다. 오태석 연극을 보면 원숭이하고 사과는 아무 관계 없이 엉뚱한데, 잘 보면 공통점 하나가 있어요. 뭐냐면 빨갛다.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이렇게 이미지의 세계를 공고하게 구축해 갑니다. 서사 구조랄까 나레이티브, 즉 이야기 줄거리를 쫓아 가면서 연극을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지 말고 이미지로 보시기 바랍니다.
가시와 비가시의 대화, 장정일
장정일은 만나 보면 참 예의 바른 사람이고 커피를 마셔도 후루룩 소리를 절대 내지 않는 사람이에요. 목소리가 사근사근하고 높지 않아요. 그런데 글은 어찌나 에로틱하게 쓰는지 심지어는 '나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죽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죽은 날 자기는 축제였다'는 등의 지독한 말을 '일기'라고 발표하니까 굉장히 괴상한 사람으로 비칩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으면서, 사람한테 그렇게 못된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나 보면 얼마나 조용하고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지 사람을 다시 보게 되요. 제 마음 속에서 대단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나본 천재 중의 한 명이지요. 장정일은 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자 소설가지만, 극작가로서도 기가 막힌 작품을 쓴 게 있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실내극」이라는 희곡으로 당선했는데, 저는 이 작품을 대한민국 희곡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장정일 문학 전집 속에 희곡집이 있는데 거기에 첫 번째로 실려 있습니다.
첫 장면에서 노크 소리가 딱딱 들리지요. 안에 있던 어머니가 "들어와." 하니까 아들이 들어옵니다. 뭔가를 훔쳐서 절도범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오는 거에요. 아들은 어머니한테 묻습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많이 훔쳐다 놓고 갔는데, 그 돈을 다 썼어요?" "또 벌어 와야 된다"고 어머니가 말합니다. 아들에게는 애인도 있었습니다. "걔가 니가 감옥에 가자 며칠 있다 슬그머니 가더라." 참으로 가슴 뭉클한 삽화죠.
이윽고 아들은 뭔가를 훔쳐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형사가 잡으러 옵니다. 감옥에 갔다가 만기로 형을 마치고 나오고, 또 훔치러 갔다가 훔쳐다 놓고 잡혀갑니다. 그렇게 왔다갔다 할 때마다 시간이 가는데, 나갔던 사람이 금방 오는데도 그 찰나에 시간은 가는 거에요. 5년, 10년, 15년…. 그런데 장정일의 기가 막힌 점은 다음과 같은 데 있습니다. 가시적 공간이라는 무대가 있고, 비가시적 공간인 감옥이 우리 관객의 머리 속에 보입니다. 우리는 흔히 집은 편안하고 행복하고 안정된 곳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연극 속에서 아들이 감옥에 갈 때마다 얼마나 쓸쓸하고 외롭고 힘들고 지옥 같을까 마음 아파 하지요. 그런데 천만에요. 극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들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이게 역전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감옥에 가면 오히려 잡아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장 안정적이고 공짜로 먹여주기까지 하니 훔칠 일이 없어지니까요. 반대로 가난한 집으로 돌아오면 끊임없이 뭔가를 훔칠 궁리를 해야 하고, 막상 훔쳐서 가난과 굶주림을 면하고 나면 누군가 잡으러 올까봐 불안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집이라는 공간과 감옥이라는 공간이 완전히 역전되는 셈입니다. 이게 바로 장정일의 천재적 발상입니다.
장정일의 「실내극」에 나오는 장면 하나를 소개하지요. 한번은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도둑질을 하러 나섭니다. 그래서 훔쳐 오지요. 훔치는 과정에서 지문을 남기고 일부러 주민등록증까지 남겼는데, 막상 형사들은 들이닥치지 않습니다. 형사들이 잡으러 오지 않으니까 모자는 불안해집니다. 빨리 잡아갈수록 덜 불안하니까, 온갖 지문을 남기고 했는데 예상 밖으로 추적의 발걸음이 더디었던 거죠. 그러다가 형사가 들이닥치니까 어머니와 아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만세를 부릅니다. 그런데 "드디어 왔다!" 하는 순간, 찾아온 형사는 아들을 잡아가지 않고, 돌연 그 자리에서 어머니를 쏴서 죽여 버리죠.
이렇게 되니, 아들만 잡혀가고 어머니가 쓸쓸하게 아들을 기다리던 집이라는 구조가 그만 깨지게 되지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와서, "하늘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고 기도하지요. 어머니가 형사한테 사살당하고 혼자 쓸쓸하게 돌아와서 기도를 하는데, 기가 막힌 패러디에요. 그 흔한 주기도문을 패러디해서 이렇게 외는 겁니다. 똑같은 기도문인데도 얼마나 패러디를 잘 했는지 모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어머니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집에서 살면 도둑질을 얼마나 많이 해야 되고, 얼마나 많이 잡혀가야 되고, 얼마나 많이 불안해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다 일용할 양식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교회의 목사가 말할 때보다 이 기도문이 훨씬 더 절실하고 기가 막혀요. 신을 지독하게 모독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슬픔, 고독을 은연중에 표출해 보여주고 있지요. 가시적 공간과 비가시적 공간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의미의 패러디를 통해, 즉 감옥이 얼마나 행복한 곳이며 거기에는 누가 잡아가지도 않는 곳이라고 설파하죠.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우리네 삶이 얼마나 불안한 곳이며 가식에 차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장군의 발톱」의 작가 박조열
우화와 알레고리의 극작가는 박조열입니다. 그의 잘 알려진 대표작은 「오장군의 발톱」이지요. 오장군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골뜨기 먹쇠바우와 동격인 법 없이도 사는 총각이 있는데, 전쟁이 나서 동군과 서군이 싸워요. 그래서 징집을 당하지요. 자기한테 영장이 온 것이 아니라, 이웃 마을에 사는 오장군이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총각한테 가야 될 징집영장을 우체부가 잘못 배달하는 바람에 군인이 되었지요.
극중의 전쟁에서 적군이 갑자기 비밀리에 군대를 더 증강시켜서 아군을 기습하려고 하지요. 그러자 아군은 오장군으로 하여금 일부러 적의 포로가 되게 해서 거짓 정보를 주게 됩니다. "우리 편도 당신들 못지 않게 엄청나게 군대를 증강해 놨다."라고요. 그런데 오장군이 너무 순박한 나머지 "이게 거짓정보야."라고 말해주고 맙니다.
"이건 진짜야." 진짜처럼 알고 가서 포로가 됐는데, 온갖 혹독하게 고문을 해도 똑같은 말만 하니까, 적군으로서는 상대방도 군비를 증강한 줄 알지요. 그래서 기습 공격하려 했던 작전도 변경하게 되지요. 그러다가 며칠 후 상대편이 오장군을 일부러 포로로 보내서 교란작전을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장군을 죽이게 됩니다.
농군 오장군이 소를 몰며 밭갈이 할 때 소하고 얼마나 친구같이 다정하게 지내고, 색시를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는지, 관객들은 마치 동화의 세계 같은 기분을 맛봅니다. 이 동화의 세계 같은 곳에, 우화의 세계 같은 곳에 느닷없이 엄청난 비극이 닥치죠. 그러니까 남북 분단이라는 시스템 속에 있으면 그와 같은 비극은 수없이 일어나고 반복된다는 것을 작가는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 비극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지요.
우리 모두는 마치 우화의 세계처럼 소하고 총각하고 노는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에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일부러 잔인하고 끔찍한 비극을 보여 주는데, 가장 아름답고 우화적인 세계 속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때 그것이 남 아닌 자신의 비극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박조열은 그 우화의 세계를 알레고리, 즉 우의의 세계를 통해 표현합니다. 현실을 바로 다룬 게 아니라, 어떤 우의적인 세상에는 이런 원칙이 있는데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말해 줍니다. 이북이든 이남이든 거기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비극의 덫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겁니다.
박조열은 원산 출신으로 원산에서 교편을 잡다가 6·25 때 단신으로 이남으로 내려온 사람입니다. 분단이라는 것을 가장 절실히 체험하신 분답게 희곡에 있어서도 분단 문제를 심도있게 다룹니다. 알레고리로써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분단 문제 해결이라는 십자가를 보여주고 있는 민족작가지요.
풍자에 능한 이근삼
이근삼 선생은 풍자에 능한 분입니다. 「공룡의 발자취를 찾아서」가 최근 서울시립극단 공연으로 선을 보였지요. 이분은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유학가 계셨을 때 영어로 「끝없는 실마리」, 「다리 밑에서」 등 두 편의 희곡을 쓰셨습니다. 당시 이것을 읽은 미국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미국에 남아서 희곡을 계속 쓰면 아더 밀러에 버금가는 작가가 될 거라며 붙잡았다는데 뿌리치고 오신 분입니다.
그의 출세작인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인데,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자 한국 희곡계는 그 물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4·19 직후에 장기 집권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신물을 내는데, 대왕만이 그 사실을 유일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대왕에게 나이 사십이 넘은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나이가 든다는 것을 대왕은 인정을 안했습니다. 아들이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정도의 성인이 되었다고 하면, 왕권을 넘겨줘야 하기 때문에 늘 어린애처럼 생각할 뿐만 아니라 늘 기저귀를 차고 다니게 했습니다. 마흔 살 먹은 사람이 기저귀를 차고 등장을 하니, 관객들은 얼마나 자지러졌겠습니까.
그 당시는 사실주의 연극들만이 무대에 올려질 때입니다. 사실주의만이 유일한 예술의 형식이라들 믿고 있을 때, 마흔 살 먹은 배우가 기저귀를 차고 무대에 나온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었습니다. 또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에서는 사실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저승사자가 나와서 이제 대왕이 죽을 때가 됐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자 대왕은 저승사자더러 "나 대신 죽겠다는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면 안 죽게 해줄 수 있느냐?" 묻죠. 저승사자의 그러겠다는 대답에 대왕은 너무 뛸 듯이 기뻐합니다. 자기가 부탁을 하면 누구든지 들어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더러 "나 대신 죽어줄 수 있느냐."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을 뿐 아니라, 누구를 붙들고 부탁해도 아무도 안 들어줍니다.
그러자 대왕은 저승사자 앞에서 죽기를 거부하는데, 그 이유인즉 대신 죽을 사람을 못 구해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리 죽음을 못 구해 안 죽겠다고 거부하는 게 얼마나 억지이고 우스운지 모릅니다. 마치 자유당 말기에서 4·19에 이르는 이기붕 부통령, 이승만은 대통령의 구린내나는 관계를 연상시키는 정치적 풍자극이죠.
저는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이 연극이 4·19 전에 공연되었더라면 아마 핵폭탄이 터진 듯 했을 거라는 점입니다. 마치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자는 외침처럼. 물론 공연 허가도 안 나왔겠지요. 이게 늘 문제가 됩니다. 광주민중항쟁 때에는 광주에 벌어진 엄청난 일을 소재로 해서 연극을 할 수 있었던가요? 불가능이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망월동 묘지를 국립묘지로 승격시키겠다는 마당에 임철우의 「봄날」도 있고 황지우의 「5월의 신부」도 무대에 올려졌지만, 이제 억압의 장치가 다 풀려버린 후에야 풍자를 해봐야 크게 시효가 있을 리 없습니다. 특히 공연예술에 있어서 풍자극이란 이미 시효가 끝난 후에 공연하게 된다라는 결점이 있고, 또 하나는 그것을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을 완전히 흑백논리로 편을 가르게 되요. 무대 위에 올라온 대왕을 조소하면서 까르르 웃으면서 보고 풍자를 해놓았으니까, 관객들은 너무나 그를 엉망진창인 인간으로 만들어 놓을수록 기쁘고 쾌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관객들에게 '이승만 정권은 썩은 정권이었고, 당신들은 정말 피해만 봤을 뿐이야. 당신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과는 아주 무관한 피해자였을 뿐'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마는 겁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 5공, 6공치하에서 살면서 이웃들이 어려움에 살 때에 모른 체한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독재에 함께 공모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죠.
무대와 객석의 벽을 허문 이현화
다음은 이현화의 작품 세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현화는 도착(倒錯)의 세계입니다. 저로서는 「넋」 등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의 대표작은 「카텐자」라고 봅니다. '카텐자'는 음악 용어로 '급격하게'라는 뜻입니다. 제1막의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서 성삼문을 마구 고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두로 지지는 등 세조가 친국(親鞫)을 합니다. "니 죄를 니가 알렸다!" 하고 진혹한 고문이 이어집니다.
제2막에서는 고문 기구들은 무대 위에 그대로 놓아준 채 포졸들이 관객 속으로 내려오더니 불문곡직 여자 관객 하나를 잡아갑니다. 그런 다음 성삼문을 앉혔던 그 의자에 앉혀 묶은 다음, 또 살이 타도록 지지면서 고문에 나섭니다. 트릭이기는 하지만, 인두로 지지고 까무러치면 찬물을 끼얹는 등 목불인견의 상황이 연출됩니다. 여자가 아픔의 비명을 지르는데, 주로 에로틱한 목소리를 내는 등으로 이상한 기분에 젖어들게 만듭니다. 성도착적으로 보이게 하면서 "니가 니 죄를 알렸다!" 하는 소리가 반복되는데, 나중에는 여주인공을 마땅히 구할 수 없어서 연출가의 여동생을 캐스팅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강력한 후레쉬 불빛을 쉴 새 없이 비추는 등 온갖 고문을 해대니까 "예, 제가 단종 복위의 획책했습니다."라고 죄를 고백하면서, 극이 끝납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연극일까요. 이현화의 작품이 있기 전까지는 무대 따로 객석 따로였습니다. 객석에서는 그저 무대에서 벌어지는 극을 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현화는 무대와 객석을 터버렸습니다. 물론 배우를 한 명 심어 놓기는 했지만, 관객을 하나 잡아다가 데려다놓은 것 역시 배우와 관객을 터버린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오백 년 전에 단종 복위를 기도하다가 참형을 당한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합쳐 버렸고, 그 사건을 동일하게 만든 것입니다. 「카텐자」를 보면서 그 연극적 방법에 대해서 얼마나 놀라운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넋」의 제1막이 열리면 바로 6·25입니다. 아주 늙은 부부가 군 사령관을 찾아가 만나게 됩니다. 부부는 자기 외아들이 결혼을 못한 채 징집을 당해서 군문에 있는데, 5대 독자인 아들에게 사흘만 외박을 시켜 주기를 부탁합니다. 느티나무 아래 있는 색시를 가리키면서, "씨를 받아야겠으니 사흘간만 허락해 달라."는 거였죠. 사령관은 마침내 허락을 하고, 두 젊은이가 여관에서 사흘을 보내는 게 제1막입니다.
제2막에서는 임진왜란으로 무대가 옮겨져 배우들이 일제히 갑옷을 입고 나옵니다. 왜군이 막 쳐들어 왔는데, 이 노부부와 며느리는 임진왜란 때 애를 배게 됩니다.
제3막은 고구려로 무대가 옮겨집니다. 이번에는 여진족이 쳐들어 옵니다. 해산할 즈음인데, 시아버지가 여진족을 막다가 자신은 죽고 며느리는 살리게 됩니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고고성을 울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법입니다. 이렇듯 연극적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실험을 한 작가가 이현화입니다.
이상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희곡작가 몇 사람의 세계를 함께 탐험했습니다. 작가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관극에 임하는 가운데, 좀더 재미있고 심도있게 연극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회성의 관극으로 그치지 말고, 이들 희곡작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 나가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줄 때 한국의 희곡문학과 연극은 한 단계 힘차게 도약할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