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40대 출판계 키워드
지난해 출판계를 휩쓴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마흔'이었다. 제목에 마흔을 내세워 40대 독자를 겨냥한 책이 10여 권이었다. 공교롭게도 공자는 일찍이 마흔이란 나이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바로 불혹(不惑)이다.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대개 '자기 소신과 철학을 뚜렷이 하는 나이'란 뜻으로, 마흔이 되면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새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이 어디 그런가. 물론 '불혹'을 공자처럼 위대한 성인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로 들으면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일상의 실천을 강조한 공자가 마흔 살에게 그렇게 높은 기준을 요구했을 리가 없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공자시대 평균수명이 40세 미만이었다는 점을 들어, 지금 불혹은 60세나 80세 정도로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처음부터 공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불혹을 말한 적이 없다는 것. 이 해석은 '미혹할 혹(惑)'이란 글자가 아직 공자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혹 혹(或)'은 그때도 있었지만, 여기에 '마음 심(心)'이 덧붙은 혹(惑)은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 후기에나 만들어졌다는 거다. 그래서 일본학자 야스다(安田登)는 공자가 불혹(不惑)이 아닌 불혹(不或)을 말했을 걸로 짐작한다. 두 글자 소리가 같으므로 '논어'가 정리되는 후대에 바뀌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과 교육에 몰두하며 재충천
'혹 혹(或)'의 본뜻은 '구역' '경계' '영토'이다. 창 같은 무기인 과(戈)를 들어 경계를 표시하는 모습이며, '나라 국(國)'이나 '지경 역(域)'에 그 뜻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럼 불혹(不或)은 뭘까. 한 영토나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즉 자신을 스스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해석은 실제 공자의 삶에도 부합하는 듯하다.
그는 서른다섯 살에 제나라로 망명했지만, 이내 쫓겨났다. 서른일곱에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는 쉰 살까지 학문과 교육에 몰두한다. 불혹의 40대를 그렇게 보낸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학생이 되려고 찾아왔고, 이들의 질문을 하나씩 풀다보니 공자의 지성은 더욱 넓고 깊어졌다. 질문들 중에는 우물을 파다 흙 속에서 양 한 마리가 나왔는데 그게 어찌된 연유인지, 또 성벽을 철거하다 거대한 동물뼈를 발견했는데 그게 무슨 짐승인지, 그리고 가시나무로 만든 화살은 어느 종족 것인지 등의 질문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학자 바오펑산(鮑鵬山)은 불혹을 "어떤 질문도 그를 난처하게 할 수 없었다"는 뜻으로 푼다. 하지만 달리 보면 공자는 그런 질문들도 다 받아들일 만큼 개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성적인 면에서 자신을 고정된 틀로 한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자의 40대가 위대한 재충전 과정이 됐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영역만 아는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과정, 또 교과서만 외는 대신 자신의 마음과 세계라는 텍스트를 두루 읽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전면적인 지식 확장 필요한 시기
이처럼 불혹은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정해진 용도의 그릇이 되지 말라'는 것과 통하며, 현대 용어로는 '탈(脫)영토화'에 통하는 듯하다. 오늘날 배울 점이 많다. 현대사회는 '지식사회'다. 문제는 이제 대학 1학년 때 배운 지식이 4학년 때면 낡은 지식으로 변한다는 것. 끝없는 재교육을 요구한다. 또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르는데 반해 정년은 빨라지고, 노후연금은 고갈되기 시작한다. 제2의 인생을 살려면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 한다. 40대부터는 전면적인 지식 확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뜻에서 '인생 이모작'이란 말이 나온 지도 꽤 됐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문화 정책이 마련된 것 같진 않다. 그래서 공자를 다시 생각한다. 누구나 공자처럼 40대를 모두 학문에 바칠 순 없지만, 누구라도 제2 인생을 살아가려면 40대부터 재도약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역 대학의 역할을 생각하고 싶다. 최재천 교수가 말했듯이 40, 50대가 지식 재충전을 해야 한다면, 개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공공기관인 대학 역할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대학이 40, 50대를 위한 대학으로 특성화하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를 맞은 대학의 생존에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학, 인생 이모작 대안 내놓아야
2018년부터 고교 졸업자 수가 대입 정원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은 대학이란 기관 자체의 정년이 다 됐음을 뜻한다. 또한 현재 직장 정년의 중심에 서있는 세대가 700만 명에 이른다는 건 이들의 재교육이 국가 차원 과제임을 뜻한다. 그럼에도, 대학들이 40, 50대 재출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학문이 실종된 '학위 장사', 또 여가활동 교육자격증이나 주부 취미생활로 수익을 얻는 '평생교육 장사'에 머물고 있다.
먼저 부산지역 국립대가 나서면 좋겠다. 국립기관답게 시민의 제2 인생을 위한 비전을 제공하며, 대학 자신도 재도약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지금처럼 우수한 신진 연구자와 시간강사들을 홀대하고 40, 50대 사회인을 그저 지식사회 언저리에 있는 '봉'으로만 여긴다면, 대학에는 희망이 없다. 제2 교육 중심은 대학 외부로 넘어갈 것이다. 지역 국립대가 지역의 걱정을 덜어주기는커녕 지역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이 되려면, 스스로 낡은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자가 제자들의 갖은 질문에도 난처해하지 않은 건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지성을 틀에 가두지 않고 열어놨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흔에 이르면 고정관념으로 자신을 한정하기 쉽다. '내 인격은 이 정도이구나. 내 능력은, 내 인생은 이 정도이구나'. 이처럼 '자신을 틀에 가두는 마음'이야말로 혹(惑)이다. 40대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유혹'인 것이다. 불혹의 메시지는 바로 이게 아닐까. 개인도, 대학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우리가 끝없이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노력하길 바랐던 것이다.
# 공자
- 성인이자 인격자
- 55세에 벼슬 버리고 14년간 세상 떠돌며 이상 실현 애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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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밀랍으로 복원해 만든 공자상. |
공자(孔子·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는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이며, 정치가, 교육자, 작가이다.
공자의 위대함은 열정에 있다. 공자는 당시 평균수명이 훨씬 지난 55세에 벼슬을 버리고, 14년간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다. 적에게 쫓기거나, 자객을 만나기도 했다. 식량이 떨어져 아사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또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상갓집 개'라는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마침내 위대한 인격자로, 전인적인 지성인으로 우뚝 섰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상을 실현하려 애쓰던 '영원한 청년정신'이었다.
공자는 오늘날 40대의 재도약이 이런 청년정신으로 충만하길 바랐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잘 할 수 있거나, 혹은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학문을 예로 들면 상당수의 인문학과 예술 분야, 또 종합이 필요한 과학 분야는 오히려 제2인생에서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조선 후기 박지원 유득공 박제가 이제무 등도 50대 중반에 주요 저서를 집필했다. 지금으로는 70대에 해당한다.
공자는 40대의 재도약이 이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 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 삶의 의미에 충만한 자기 실현 과정으로 이어지길 바랐던 것이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