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저희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신랑이 대구교회에 다니는 형제라서 제가 오래전 대구교회에서 목회할 때 함께했던 형제자매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과 그 시절을 회상하며 한참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들이 당시 대부분 처녀 총각이었는데 이제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끔씩 지난 시절을 돌아볼 때면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너무나 커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던 초창기에, 저는 한 열댓 명 앉혀놓고 목회하다가 늙어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이끌어 주셔서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며 복음을 전하다 보니 어느덧 저도 나이가 참 많이 들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
오늘은 마가복음 5장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참 감사한 것은 만일 사단이 하나님보다 힘이 세다면 우리는 모두 사단에게 꼼짝없이 굴복했을 텐데, 하나님의 능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람 속에서 강하게 일하던 사단도 예수님을 만나면 전혀 맥을 못 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이 세상 무엇보다 크신 분이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어느 형제님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제 여동생의 신앙 상담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당시 대구 성경세미나 기간이라 저는 집회 장소로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 여동생 부부가 저를 찾아와서 신앙 상담을 하였는데 그 부인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절대 안 돼요. 다른 목사님들과도 상담을 많이 해봤어요.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래서 제가 말씀을 읽어 주려고 성경을 펴자마자 그 부인이 바로 ‘드르렁’ 하고 코를 골면서 잠을 잤습니다. 제가 “여기 성경 좀 보세요”라고 말하자 그 부인이 갑자기 “아이 씨이!” 하더니 막 욕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남편이 깜짝 놀라서 “너 미쳤어? 목사님한테 무슨 소리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가 “그냥 두세요” 하며 남편을 말리고 사흘정도 휴가를 내 아내와 함께 교회에서 지내면 제가 시간 나는 대로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자 그 남편이 당장 사흘 휴가를 얻었습니다.
귀신들린 어떤 부인
그동안 그 부인은 남편이 직장에 가고 집에 없으면 어떤 영(靈)과 대화를 해왔답니다. 그 악한 영이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려니까 “시끄럽다!”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튿날 제가 몇몇 형제들과 같이 기도하려고 그 부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부인이 “또 온다”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부인을 조용히 시키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다 한 형제가 찬송가를 부르는데 가사를 틀리니까 “가사도 모르면서…” 하며 분위기를 흐트러뜨렸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마다 그 부인 속에 있는 악한 영이 기가 푹푹 죽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 들어오는데 그 부부가 화단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귀신이 완전히 떠난 부인은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저는 귀신들린 사람을 참 많이 만나봤습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지혜롭고 영리해서 우리가 직접 사단과 맞붙으면 사단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사단의 어떤 세력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속 라멕의 아들들
사람에게 육체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아 춥다. 따뜻한 옷을 입어야지. 목마르다. 뭘 좀 마셔야겠다. 아 피곤하다. 좀 쉬어야해.’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라멕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첫째 아들 야발은 육축 치는 일을 했고, 둘째 유발은 수금과 퉁소 잡는 자, 즉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셋째 아들 두발가인은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흘러가는 공통된 방향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주입니다. 야발은 목축업을 해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가축을 기르면서 양털로 옷을 만들고, 소가죽으로 텐트를 만들어 집을 지었으며, 고기와 젖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야발은 어렵게 살다가 목축업을 하면서 옷 한 벌 더 만들 수 있으면 기뻤고, 음식을 좀 더 먹을 수 있으면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 유발은 형 덕분에 배부르게 먹고 잘 살게 되니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발은 수금과 퉁소 잡는 사람, 즉 현악기와 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처음엔 의식주를 위해 살다가 그것이 충족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육체의 욕구가 흐르는 방향
사람에게 이 두 가지 욕구가 모두 충족되면 이제는 자극적인 것을 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셋째 두발가인은 동철로 창과 칼을 만들었습니다. 그에게는 먹는 것도 노래를 듣는 것도 시들해 보였습니다. 대신 마음에 자극적인 것, 곰이 창을 맞고 쿵하고 넘어질 때 오는 쾌감 같은 것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가난해서 ‘쌀밥 먹고 운동화 신으면 무슨 소원이 있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신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입고 있는 이런 옷은 그 당시 대통령도 입을 수 없던 옷입니다. 이런 것들이 채워지면 사람들은 유발과 두발가인처럼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마음이 형성되는데 문제는 악한 영이 우리 마음에 생각을 집어 넣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하며 사단이 유다의 마음에 생각을 넣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유다는 그것이 사단이 준 생각인 줄 몰랐습니다. 유다도 처음엔 깜짝 놀라며 ‘내가 왜 우리 선생님을 팔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안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교도소에 들어 오는 사람들
우리 삶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제가 문제 있는 청소년들과 대화할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목사님, 저도 아버지에게 잘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요. 그런데 아버지를 만나면 저도 모르게 갑자기 화가 나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에게 화내고 짜증내고 때로는 발작을 하는 거예요. ‘내가 왜 아버지한테 이러지? 아버지가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데, 내가 잘해야 되는데…’ 하고 결심을 해도 그게 안 돼요.”
제가 오랫동안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죄를 짓는 사람들의 성품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내가 이러면 감옥에 가. 내 인생이 비참해져’ 하는 사람들은 감히 죄를 지으려고 하지 않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을 거야. 난 잡히지 않아’ 하며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은 쉽게 판단하고 자기 좋을 대로 결론을 내립니다. 반대로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확인하고 점검하며 정확하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악한 영이 사람들의 인생을 파탄시키려고 미움, 시기, 음란 등 더러운 마음을 시시때때로 넣어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악한 영이 넣어준 생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그 생각을 그냥 받아들여 따라가면 자기도 모르게 악한 길로 들어서게 되고 나중에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는 과정
마가복음 5장의 귀신 들린 사람은 사단에 이끌려 다니며 무덤에서 소리를 지르고, 제 몸을 상하게 하며 쇠사슬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처음부터 이렇게 악한 영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악한 영이 주는 생각과 유혹에 이끌리다가, 그것이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르면 악한 영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게 되고, 이제는 우리 이성이 감당할 수 없는 단계의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때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악한 영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면서 흔히 이야기하는 ‘미쳤다’는 단계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꼭 미친 짓을 하는 단계에 들어가지 않아도 악한 영이 주는 생각을 하나 둘 받아들이면 악한 삶으로 이끌려 갑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바쁘고 복잡한 삶을 살면서 자신의 생각이 정확한지 점검하지 않고 대충 자기 생각이 이끄는대로 달려가기 때문에 문제와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믿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넣어줍니다. 그것을 유혹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아무 일 없을 거야. 이게 무슨 문제가 돼’ 하면서 악한 영이 주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고하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으신 후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하여 배에 오르셨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은 자신에게 또 귀신이 들어올까봐 불안하고 두려워 예수님과 함께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막 5: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그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촌, 안녕하세요?” “네 얘긴 대충 들었다. 이젠 정말 괜찮아진 거니?” “예, 괜찮아요.” “참 다행이다.” “삼촌,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어요.” “뭐, 고생이라 할 게 있나. 우리는 가족인데.” “삼촌, 제가 그동안 악한 영에게 잡혀서 누구도 저를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예수님이 제 안에 있는 악한 영에게 나가라고 명하시니까 떠나버렸어요.”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예수님으로 마음이 가득 채워지면서 행복해지고 밝아져 더 이상 그에게 사단이 역사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 교회 김 장로님 부부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Fiji)로 떠나셨습니다. 올 6월에 저는 김 장로님과 함께 피지 월드캠프에 참석했습니다. 한번은 김 장로님께 “장로님, 영어 잘하세요? 저는 너무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는데, 장로님이 저 경비원에게 복음을 전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다 전하고 와서 장로님이 기뻐하시며 저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경비를 맡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요즘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저버릴 수 없어서 매일 성경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읽는다고 했습니다. 김 장로님이 그에게 죄 사함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 읽어 주자 기뻐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그분이 친구를 불러 그날 두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장로님도 참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 그러면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지 마시고 피지에 남아서 마음껏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자, 장로님은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더니 정말로 피지에 남으셨습니다. 김 장로님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이 마음에 가득 차 행복해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예 짐을 싸서 내외분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피지로 가셨습니다.
‘저 사람이 이 기쁨을 알까?’
오래전 제가 대구 파동에서 사역을 할 때, 알았던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분이 대전 조폐공사에서 경산 조폐공사로 전출을 갔는데, 그분에게 복음도 전하고 교회로 인도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후 경산 조폐공사를 찾아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조폐공사에 성경공부가 이루어지면서 구원받는 사람이 한 명, 두 명, 열 명, 서른 명 이렇게 늘어 갔습니다. 저는 조폐공사 성경 공부하러 갈 때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성경공부를 마치면 밤 9시 30분쯤 됩니다. 거기서 시외버스 종점까지 걸어가는데 캄캄한 하늘에 별들이 반짝반짝 비치는 것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옥희가 구원받았네. 다음 주에는 소영이가 구원받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나 벅차올랐습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집에 오면 거의 밤 열두 시가 됩니다. 저를 기다리는 아내가 애기를 안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저 사람이 이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어렵고 가난해서 배고플 때였는데 복음을 전하는 동안 예수님의 마음이 제 마음에 가득 차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받은 버스 안내양
이렇게 조폐공사 성경공부를 통해 사람들이 연결될 때 어느 날 버스 안내양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버스 안내양 근로 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요금을 조금씩 빼돌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속된 말로 ‘삥땅’이라고 하는데 이 아가씨도 버스 안내양을 하면서 삥땅한 돈으로 화려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나니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이제 삥땅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삥땅을 해서 자기도 쓰지만 운전기사도 줘야 하고 점심도 사주고 담배도 사줘야 했습니다. 그것을 안했더니 운전기사가 대 놓고 말은 못하고 알게 모르게 이 자매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매는 더 이상 삥땅을 하지 않았는데, 자매가 예수님을 만나 깨끗하고 밝은 삶을 사는 것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마음을 지배했을 때, 예수님과 우리 마음이 같아졌을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실 때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것이 물러간 자리에는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채워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참 기쁘고 또 복음을 전할 때 그렇게 행복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행복
이젠 제가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지 그곳에 현지 목회자들이 모입니다. 얼마 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도 기독교 목회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현지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첫날 오백 명, 이튿날 칠백 명이 모였습니다. 제가 그 모임에서 복음을 전했더니 그분들이 놀라워했습니다. 또 인도 국회의원들과 장관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스와질란드에서는 큰 교회 목사님이 우리를 통해 복음을 듣고 강 선교사님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교회가 두 개입니다. 우리 교회를 맡아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맡을까요? 말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맡고 말고가 뭐가 중요해. 가서 복음 전하면 되지”라고 말했는데 그분들이 복음을 듣고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어려움과 문제가 생겼을 때
저는 세상에 살면서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목양실에 앉아 한 명, 한 명 저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복음 전하고, 성경 세미나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서 구원받으면 그것이 큰 기쁨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과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속에 잡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근심이나 두려움, 염려 등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목사님, 저 어렵습니다. 기도해 주세요”라고 전화해 보십시오. 마음이 어려울 때 성경도 읽고 설교도 듣고 구원받았을 때를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 찹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렸던 자에게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라고 말씀하신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증거하는 동안 우리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 차게 되면서 평안이 오는 겁니다.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차면
예수님이 계셨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소와 양과 비둘기가 가득해 더럽고 냄새나고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오시자 그런 것들이 다 쫓겨나 깨끗해지고 그곳에 찬양하는 소리가 넘쳤습니다. 우리 마음도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지면서 어둡고 더러운 마음들이 다 떠나갑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일어나든지 예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평안하고 감사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 귀신들렸던 자에게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말하라는 것은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차고, 예수님으로 가득 차면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어두움이 물러가고 감사와 기쁨만 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사단을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있는 동안 절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나 슬픔이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2016. 11. 13. 주일 오전예배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