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비평고원
 
 
 
카페 게시글
** 화요논평 ** 화요논평 스마트한 시대의 예술작품
소조小鳥 추천 4 조회 1,019 11.01.28 14:28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1.01.29 02:45

    첫댓글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게임의 능동성과 비슷한 형식이 앞으로의 서사/문학/콘텐츠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데, 이 능동성이라는 것을 명확히 뜯어 볼 필요가 있는 거 같습니다. 요즘의 게임은 환상내용보다 상호작용 혹은 커뮤니테이션에 더 신경쓴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이라는 능동성의 배후에는 '타자'라는 대상을 원하는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인터넷 등장 이전의 게임, 즉 컴퓨터를 상대로 하는 게임과 다른 유저를 상대하는 게임의 구분이 있다고 말이죠. 이 두 측면에서 볼때, 컴퓨터를 대상으로 하는 간단한 게임들은 자기 존재와의 대면을 피하기 위해 일어나는 방어적/

  • 11.01.29 02:48

    측면이 강하고, 다른 유저와의 게임은 이도 근본적인 면에서는 앞과 이유가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보다 그 방어적/수동적인 면을 강화해줄 보완이 있다는 것이죠, 다른 유저라는 보완이. 말하자면 장기나 바둑 게임의 인공지능이 현저이 낮다는 점에서 게임의 한계는 제대로된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게 해주지 못한다는데 있으니까요. (환상내용적 결점)

  • 11.01.29 02:50

    아직 사람들은 환상내용을 욕망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게임은 환상을 온전히 제공 할 능력이 아직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환상이란 수동적인 현상이며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서사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꿈에서 우리가 우리의 소원대로 무엇을 달성하는 일은 없습니다. 게임이 환상과 닮은 점이 있다면 우리가 자주 실패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환상은 실패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렇게 보면 환상을 유사-능동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소조님의 능동성이 개입된 서사를 생각하면 전 어드벤쳐 게임들이 생각납니다. 대부분의 어드벤쳐 게임들은 일정한 서사에서 중간마다 몇가지 선택을 하며 이야기를 따라가

  • 11.01.29 02:53

    하지만 이런 어드벤쳐 게임이 마니아층이 아니면 그리 호응을 못 얻는데, 그 이유는 완전히 개방된 서사와 닫힌 서사의 어중간한 위치에 플레이어들이 적응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 안에서의 너무 개방된 자유는 너무 현실적이고 그로 인해 우리는 환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오는 게 되고, 그렇다고 좁은 자유에 들어가면(PS2나 XBoX같은 게임) 충분한 환상을 얻지 못하죠. 그나마 잘 작동하는 환상을 주는 것은 그건 유저들끼리의 플레이를 제공하는 게임들로서, 게임자체의 한계라는 장막으로 숨겨진 타자를 가린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콘텐츠가 하는 역할은 저 장막의 기능이다' 입니다.

  • 작성자 11.01.29 15:20

    일단 여기서 제가 문제삼은 것은 콘텐츠소비라는 관점에서 문학감상과 게임하기의 차이점이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저로서는 아직 무리입니다. 하지만 어느 수준까지는 철학적 성찰을 시도하려고 했습니다만, 그러다가는 너무 늦어질 것 같아(화요논평이기에...), 일단 <초고> 정도의 수준으로 올린 것입니다. 사실 많이 부족하죠...--; 조만간 좀 더 확장된 형태로 다시 올릴 예정입니다. ^^ 한 가지만 지적. 게임이란 기본적으로 <미션완수>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꼭 어드벤쳐 게임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의 구분은 본질적인 것이라 보기 힘듭니다.

  • 11.01.29 22:39

    초고라고 하시니 다음 글을 기약해야겠지만, '미션완수'라는 라는 것에는 소조님의 게임에 대한 경험에 특정된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소조님의 글로 인해 저도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군요.^^;;

  • 11.03.16 03:43

    죄송하지만 끼어들자면 '개방된 서사와 닫힌 서사의 어중간한 위치'는 콘솔 게임 유저라면(아니, 스토리가 있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 대다수가) 암묵적으로라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드벤쳐 게임을 말씀하셨는데 어드벤쳐 게임의 분야만 해도 무지 넓은데다 소수 마니아들만이 즐긴다고 깎아내릴 장르는 더더욱 아닙니다. 아즈마 히로키 같은 경우는 병자님이 말씀하신 그런 관점(어중간한 위치에 대한)이 라이트노벨 작법 등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까지 말하는데요. '호응을 못 얻는다'라는 표현이 거슬려서 끼어들어 봅니다.

  • 11.03.16 03:50

    뭐 세계 전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우만을 말씀하시는 거라면야 이해하겠습니다만.

  • 11.03.17 11:04

    끼어드는게 죄송한 일은 아니죠^^;; 카페가 이런식으로 소통하니까요 시차가 있는 소통이죠. 호응문제는 게임유저들을 말하는 것이고 나름 객관적 서술입니다. 깍아내린다는 kurame님이 주관적으로 하는 말씀이시고...라이트노벨은 소설인데 제가 언급한 것이 게임측면의 사실이라는 점에서, 단지 kurame님이 라이트노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게임과 소설의 시점 문제는 흥미로워서 한번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데, 그런 여유가 생기면 해야겠네요.

  • 11.01.29 10:48

    기울이지 않은 지, `양족을 다 즐겨준다', `오타쿠'적, 잡고 나면, (현실안주)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때문이다' 이 부분 모호함. 동행자라는, 서울광장, 능동성은, ㅡ생산과 소비는 각기 `역사' 시작과 종말 아닌가 함ㅡ 접근하지 않으면, 분야가 된 지, ㅡ예술과 전자게임을 축제형식과 테크놀로지로 구분함은 멋대로 구분인 것 같음ㅡ ㅡ`~써'와 `~서' 구분은 이제 지적하기도 지쳤음ㅡ^^

  • 작성자 11.01.29 15:22

    언제나처럼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제와 테크놀로지의 구분에서 축제란 카니발과 같은 말이라 하겠습니다.

  • 11.01.29 18:17

    소조님이 지적하신대로 자본의 논리에 비춰보자면 게임 제작자는 플레이어가 결코 궁극의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하도록 안배를 해야겠지만, 동시에 게이머 역시 자신이 모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스마트 시대의 문학의 미래"라는 주제의 관건은 (활자)문학의 독자들이 책을 끝까지 읽어'치울' 수 있도록 만드는 추동력은 무엇인가가 되겠구요.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아직 미치지 못했네요 ^^;

  • 11.02.22 14:24

    전 문학의 소비와 상품의 소비의 연관관계가 등가되며 회의적이라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문학 우월이나 인문학 우생학을 논자라 하는 보지 않습니다만, 가치의 문제에 있어서 문학 일반에 종사하는 삶과 상품 일반에 종사하는 삶의 구분은 조금 명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학과 삶의 구분선과 기술과 삶의 구분선을 같은 선상에서 논의해야 할까요? 덧붙여 사적 변화(개인)와 일반 변화(다수)의 구분선 또한 세밀하게 존재합니다. 사적 변화의 핵심은 성할이며 일반변화의 핵심은 기술 진보가 아닐까요? "문학 또한 상품이다"라는 논리는 "우리 또한 동물이다"와 비슷한 비약은 아닐까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