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청원 미동산(557.6m)
조용히 생각에 골몰하며 걷기 좋은 산길
수목원을 낀 미원면 동쪽의 산
한파가 발목을 잡는다고 산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고민은 어리석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 죽는다는 소한추위, 대한은 얼어 죽을지 몰라도 산꾼의 몸이 가장 뜨거워지는 때가 바로 이맘때다. 산 중에 산은 겨울 산이 으뜸이라. 살을 에는 칼바람과 쩌렁쩌렁한 추위 속에 간밤에 쌓인 눈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난분분 다시 꽃잎처럼 흩날리는 풍경을 보러 겨울 산에 간다.
청주에서 32번 지방도를 달려 미원 삼거리에서 우측 보은 방향 19번 국도로 800여m 진행하면 좌측으로 미동산수목원 이정표가 보인다. 충청북도 산림환경연구소와 수목원이 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틀 사이 거푸 내린 눈으로 빙판이 된 정문 앞 도로에서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이종려씨가 활짝 웃는다. 한파에도 불구하고 빙판길을 달려와 준 나의 산 친구다.
정문을 들어서서 양 갈래길 중심에 있는 청사의 우측 도로로 들어선다. 정문 맞은편으론 계류를 중심으로 수목원의 다채로운 시설과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수목원을 빙 돌며 이어지는 미동산 자전거 도로는 2004년 전국체전 MTB 경기가 열린 곳으로 전국 MTB동호인에게 명소로 꼽힌다. 미원리, 쌍이리, 월룡리로 연결되어 있고, 내쳐 옥화대까지 갈 수 있다. 등산로는 MTB코스에서 잠시 후 우측으로 갈라진다. 완만한 경사의 숲 사이로 한동안 계단길을 걷는다. 눈길 위로 앞서 누군가 부지런한 발자국을 남겨놓았다. 중간 중간 계단길이 이어진다. 간밤 새로 내린 눈이 발목을 덮는데 몸이 후끈 더워진다. 재킷 안의 내피를 벗어 배낭에 넣는다. 계단이 끝나고 등성이에 오르면 좌측 북동쪽 정상을 향해 능선을 걷는다.
먼 곳에 있는 큰 산이 그리워 매년 겨울마다 몸살을 앓던 때의 기억이 새롭다.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 덕유산, 한라산... 그런 큰 산만이 산인 줄 알았던 때의 기억이다. 큰 산을 가기 위해선 그만큼의 준비와 그만큼의 각오가 따라야 해서 열이면 아홉, 마음으로만 그치기 십상이었다. 방안에서 각오만 다지다 주저앉느니 가까운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는 게 현명이다. 마을 주변 작은 산에도 눈 오면 멋진 설경이 펼쳐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에 반듯한 발자국을 내며 걷는 일, 나목의 가지 끝에 송이송이 피어난 눈꽃송이들에 눈 맞추는 일은 게으른 이에겐 어쩌면 평생 해볼 수 없는 일이다. 집 안에서 생각하는 겨울 산은 살을 에듯 춥지만 산길을 걸으며 생각하는집 안은 부유하는 먼지와 나태를 떠올리게 한다.
미동산(557.6m)은 미원면의 동쪽에 있어 미동산이다. 좌구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596m봉으로 솟았다가 한쪽은 미원면 미원리로, 한쪽은 청청 방향 479m봉을 거쳐 어암리까지 이어진다. 500m급의 작은 산, 완만한 경사의 편안한 길이다. 아름답고 고요한 겨울 숲의 정취를 느끼기에 이만한 데가 또 있을까 싶다. 계단길이 끝나고 한 시간여 능선을 걸으면 정상이다.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 사이로 간간이 조망이 터진다. 청주와 증평쪽으로 한남금북정맥이 휙금을 그은 듯 하늘과 땅의 경계를 긋고 있다. 급한 경사도, 험한 바위도 없는 부드러운 육산이지만 깊고 울창한 숲길이 마치 어디 먼 데 심산을 걷는 듯하다.
저만큼 눈길을 헤치며 앞서 걷는 종려씨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평소 아픈 데가 많은 사람이 산에만 오면 노루처럼 펄펄 뛰어다닌다. 갈림길마다 이정표는 잘 되어 있고, 길은 복잡하지 않다. 왼쪽으로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수목원을 내려다보며 약간의 경사로 오르내리는 능선을 걷는다. 잡목과 함께 쭉쭉 뻗은 소나무 숲에 솔바람이 맑고 향기롭다. 수목이 울창해지는 계절이면 조망이 그다지 좋진 않겠으나 조용히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고 싶을 때 걷기 좋은 길이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우측으로 속리산 문장대와 천황봉 능선이, 낙영산과 도명산, 멀리 대야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곧게 뻗은 능선 저만큼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와 데크가 보인다. 미동산 정상이다. 좌측으로 한남금북정맥이 달려 나가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북쪽으로는 595.6m봉과 동쪽 청천 방향으로의 능선이 선명하게 조망된다. ㅅ한 밑에서 올려친 눈만 아니면 이대로 청천까지 종주를 해도 좋겠다. 보온병의 커피와 빵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고 수목원 골짜기로 하산한다.
바람이 차다. 벗어두었던 재킷의 내피를 꺼내 입는다. 하산길은 경쾌한 경사의 눈길이다. 스키를 타듯 미끄러지며 20여분 내려가면 MTB코스와 만난다. 이 길은 쌍이리와 월룡리로 나가는 임도로 MTB코스이며 청천으로 향하는 종주길을 잇는다. 소나무 숲을 지나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활엽수림을 만난다. 골짜기를 따라 좌우로 고라니고관찰관, 습지원, 산림환경생태관, 목재문화체험장, 산야초전시원, 산림과학박물관, 난대식물원 등이 위치하고 있다. 원앙이를 볼 수 있는 사방댐의 눈 쌓인 풍경도 고즈넉하고 문학의 오솔길, 생태체험탐방로 등 곳곳에 잘 꾸며진 산책로와 쉼터와 벤치가 놓여 있다.
산행은 세 시간 안팍이면 충분하다. 수목원에서는 산림문화프로그램과 목재문화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우선 출발 전 수목원 정문에서 맞은편 골짜기를 따라 걷고픈 유혹을 이겨낼 일이다. 오목조목 잘 갖춰진 수목원의 시설들만 돌아보는 데도 하루가 부족한 까닭이다. 정문에서 우측 등산로로 능선을 올라 정상을 거쳐 골짜기로 내려오면서 수목원을 감상해야 짜임새 있게 미동산과 수목원을 두루 즐길 수 있다.
온 가족 다 함께 설악산, 태백산, 지리산이 가기 힘들면 미동산을 갈 일이다. 산행이 힘든 노인과 유아는 산야초전시원과 화원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은 MTB코스를, 짧은 산책코스를 원하는 사춘기 딸은 삼림욕이나 문학의 오솔길을, 설산을 즐기고 싶은 부부는 산행을 한다면 온 가족이 각자 성향에 맞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식당이나 매점은 수목원 정문 밖 주차장 인근에 있다. 코스가 짧아 따뜻한 물과 간식거리만 준비해도 한나절 겨울풍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까운 옥화휴양림 나뭇집에서 하룻밤 묵는다면 금상첨화겠다.
*산행길잡이
◎미동산수목원 정문~우측도로~MTB코스에서 우측 등산로~464m봉~549m봉~정상~512m봉~좌측 하산길~수목원 시설 탐방~수목원 정문
◎수목원 정문~정상~595.6m봉~486m봉~청천교회
미동산수목원은 1996년부터 5년간에 걸쳐 국고지원사업으로 44억원을 투자해 94만2,000평의 부지에 조성되었다. 속리산 정이품송 후계목을 비롯한 우수 유전자원 보존원과 침엽수, 유실수원 등 11개원의 전문수목원에는 560종 30만여 본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으며 수목원 골짜기를 빙 둘러 미동산 중턱에 조성된 MTB코스는 2004년 전국체전 MTB 경기가 열린 곳으로 전국의 동호인들에게 명소로 알려져 있다. 매주 월요일은 수목원 휴관일이다.
수목원에서 출발해 정상을 거쳐 595.6m봉에서 청천으로 하산하는 종주코스는 수목이 울창한 여름보다 조망이 쉬운 겨울과 이른 봄철에 적당하다. 봄이면 일대가 꽃동산이 되는 미동산 외에도 인근 옥화9경과 옥화휴양림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주말을 이용해 미동산 산행 후 옥화휴양림에서 자고 옥화9경을 감상하는 일정을 추천한다.
*교통
대중교통 버스편 청주가경터미널에서 미원터미널까지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45분 소요된다. 미원터미널에서 속리산 방향, 도보로 800m 지점에 미동산수목원 이정표가 있다. 청주시내에서는 미원, 수목원행 211-2번 버스를 이용(90분 간격)한다.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청원나들목 진출, 청주(19번 국도)를 거쳐 고은삼거리에서 우회전, 미원삼거리에서 보은 방향 800m 진행 후 좌측에 미동산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다. 중부고속도로 서청주나들목 청주 방향 좌회전 직후 IC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공군사관학교를 지나 고은삼거리~미원삼거리~보은 방면 800m에서 좌회전한다.
*숙식(지역번호 043)
인근에 옥화휴양림(297-4324, http://okhwa.cbhuyang.go.kr)이 있다. 식당은 미원우체국 옆에 있는 올갱이해장국 전문 고향식당(297-1004), 랑성황토오리집(288-4200)이 있다. 미원에서 청주 방면으로 6km 떨어진 낭추골눈썰매장 앞 상촌매운탕(297-9933), 운암삼거리에서 미원 방면 200m 지점에 있는 시골집순두부(288-5737)도 권할 만하다.
글쓴이:차은량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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