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에서
해가 넘어갈 듯 말 듯 야트막한 언덕에 슬그머니 고개를 숨기고 있을 무렵, 우리 일행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다른
곳을 들릴 것이냐, 아니면 곧바로 집으로 향할 것이냐. 시간은 이미 골든타임이 다 와가는 상황이었고 지금 집으로 올라간다면 대략
여덟시~아홉시 사이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올라가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김에 기왕이면 끝까지
달리는 근성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나만 떠오른 것은 아닌 모양인지, 결국 또 다른 곳으로 핸들을 돌리게 되었다.
허나 고령에서 갈만한 선택지가 딱히 많지는 않았다. 대구시내 쪽은 몇 달 전에 온 적이 있었고, 성주나 합천은 길이 좋지 않기 때문에 가는데에만 시간을 상당히 허비할 것 같았다. 거창 방면으로는 이미 방문을 했기에 다시 역주행해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결국 남은 곳은 딱 하나, 현풍이다. 대구 땅이면서도 저번 대구 버스터미널 투어 당시에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곳이다. 그 대구 투어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88고속도로의 시작(광주)과 끝(대구)을 모두 방문한다는 의미에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경로상 88고속도로를 탈 수가 없었고, 어차피 고령 동쪽으로는 개량이 끝나 가봤자 별다른 의미도 없었기에 결국 옛 국도를 따라가기로 했다. 고령읍내를 벗어나자마자 나오는 낮지만 험한 고개를 넘어, 계곡을 따라 쭉 달리니 성산면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오고, 그 뒤로 새로 뚫린 고속도로 밑을 지나 낙동강을 넘어 우회전을 한다. 5번 국도를 타고 10여 분이 조금 안 되게 달리니 우리가 가려던 목적지가 나온다.
현재는 대구에 소속되어 있는 현풍이라는 땅에 도착했다. 대구시내에서도 족히 1시간은 가야 나올 만큼 거리가 있어서 사실상 주변의 고령, 성주, 청도, 하양 같은 동네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분위기이다. 실제로 여기는 역사적으로 대구가 아니었다. '현풍군'이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을 가진 지자체였다. 대구 최남단 지역인 유가면, 구지면 그리고 논공읍이 이 현풍에 속해 있었고, 대구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고장으로 천 년이 넘게 존속해왔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통폐합이 되면서 현풍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대구읍내가 부로 승격되면서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대구가 아닌 달성군으로 통합되었고,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달성군에 속해 있다. 즉, 현풍이 대구 땅이 된 것은 1995년이 처음이라는 이야기이다!
대구에 들어온 지 불과 20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대구와는
정서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대구시내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비슷한 생활권인 경산보다 훨씬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현풍 사람들도 '대구'라는 소속감보다는 '달성' 주민으로서의 소속감이 더 지배적이다. 생뚱맞아 보이는 위치에 시외버스터미널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나름대로 큰 규모의 마을이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70년대 이전만 해도 논공, 유가, 구지
사람들 또한 현풍 사람이라는 동질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80년대 논공공단 조성과 2010년대 현재의 테크노폴리스 조성으로 시내 쪽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점점 대구와 동화되어 현재는 지역색이 옅어졌다.
그러나 버스터미널만큼은 개발 이전의 색채를 잘 간직하고 있다.
여기가 아직 경상북도 달성군이던 시절, 현풍이 단 한 번도 대구와 같은 지역이었던 적이 없던 시절부터 영업을 해왔던 곳이기에
대구의 버스터미널들과는 이질감이 많이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촐한 입구와 다 떨어져 가는 대합실 스티커, 지저분하게
붙어 떼어낸 흔적이 보이는 벽보 등등 옛 시골 터미널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대구시내의 버스터미널들도 낡기로 유명했었지만, 그래도 처음 생길 때부터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색깔을 띄고 있다.
만약에 이곳이 처음부터 대구 소속이었다면 아마
현풍터미널이라는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저 멀리 서부정류장까지 이동하여 거기서 버스를 타는 수고를 들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풍에는 어엿하게 지역의 교통 거점지로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다. 이것 덕분에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옛 영화의 흔적으로
대구와는 다른 지역이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게 해준다. 번영했던 그 당시의 시간에 멈춘 듯, 대합실 역시 매우 좁고 어두운 옛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바닥의 상태를 보면 한 번쯤 살짝 개선을 한 것 같기는 하지만, 사람 한 명 서면 꽉 차는 매표소와 그 위를 뒤덮은 오래된 자판기, 지붕에 달린 낡은 시계와 일일이 검표를 하는 검표원까지 영락없는 80년대 모습 그대로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여태껏 지나온
버스터미널들에 비해 유독 사람이 적고 휑한 모습이 눈에 잡힌다. 원래 이렇게 대합실이 좁으면 어느 정도 사람들로 차서 북적이는
모습이 보일 법도 한데, 여기는 매표를 하러 온 사람 대여섯 명 정도와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버스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방문한 당시만 해도 이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실제로 갔다 오고 약 7개월 뒤에 이런 기사가 떴다. 만성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폐쇄를 하려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아직까지 공공성을 이유로 대구시에서 반려해 억지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란다. 어쩐지... 여태껏 친절하게 안내해주던 다른 터미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무언가를
물어봐도 직원들의 태도는 한결같이 무심한 듯 쌀쌀했고, 귀찮은 듯한 무표정함으로 손님을 대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이 당시엔 굉장히
불쾌하고 기분이 찝찝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풍전등화의 상황에 직원들 분위기가 맞물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수 년에서 수십 년간 애정을 갖고 하던 일을 갑자기 강제로 놓아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복잡한 마음을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운영 적자의 이유 중 큰 부분이 아마 이 노선과 관련된 부분이 아닐까 한다. 현풍터미널 승객의 대다수는 대구로 가는 승객이다. 거리가 꽤 있기 때문에 시내버스뿐만
아니라 시외버스 수요가 어느 정도 받쳐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승이 되고 더 익숙한 시내버스로 손님이 몰리게 마련이다. 주변
지역을 합해도 배후 인구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구를 제외하면 외부로의 수요는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부산행,
고령-거창행 버스가 많기는 하지만 저것은 거창-부산 간 시외버스에 덤으로 얹혀간 것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손에 꼽을 만큼 횟수도 적고 손님도 적다.
대구행을 제외하면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다. 하루에 몇 대 없는 서울행 손님들, 배차는 많지만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부산 또는 거창-고령 가는 손님들, 옆 동네로 가는 창녕 손님들, 그리고 고향 마을로 들어가는 의령 방면 손님들. 여기서 확실하게 수익이 난다고 할 만한 노선이 있을까? 없다. 있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수익은 대구 가는 노선에서 뽑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2006년 대구시내버스 환승 제도가
시행됨과 동시에 터미널 내에서 카드 사용이 허락되어 버렸다. 여기서 카드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다른 정류장에서 타면 되니까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카드를 허가했고, 그 뒤로 운영 적자가 눈에 띄게 불어났다. 한때 카드 사용을 막아보려 했던 적도 있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손님들이 카드로 지불한 요금은 터미널에 직접적인 수익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기사를 보면 하루 평균 400명, 매표 수입은 170만 원에 불과하고 이것도 수수료를 떼고 나면 15만 원이라고 한다. 이 금액을 관리비, 인건비로 나눠야 하는데 믿을 수가 있는 일인가. 객관적으로 보면 도저히 운영을 유지하기 힘든 충격적인 성적표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다수의 이용객들은 터미널이 폐쇄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왜 잘 이용하고 있던 터미널을 갑자기 폐쇄하느냐며 어리둥절할 것이다. 게다가 현재는 현풍면 주변에 테크노폴리스가 매우 큰 규모로 들어오고 있어 인구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주변 상황만 보면 전망이 점점 밝아지고 있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폐쇄를 한다면 납득할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터미널을 운영하는 쪽에서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고, 대구시 입장에서는 폐쇄할 시 갈 데가 없어지는 버스 노선들과 기존 이용객들을 생각하면 절대 놓아줄 수 없다. 이런 안타까운 사정이 현풍이라는 조그만 터미널 안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물론 필자 입장에서도 옛 색깔을 보존하고 있는 이런 터미널을
없앤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무리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이 발전한다 한들 수익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도 밑 빠진 독처럼 돈은 줄줄 새나가기 마련이다. 현풍이 이런 극단적인 사례로 올라와서
입방에 오른 안타까운 사례이지만,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버스터미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버스밖에 대중교통이 없는 이런 시골 지역의 소규모 터미널들이 대책 없이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다. 과연 해결책이 정녕 없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또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방문했을 때의 느낌으로 글을 써보려 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속 사정으로 인하여 글의 방향성이 갑자기 바뀌어 버렸으니 어떻게 마무리할지 혼란스럽다. 다행히 위안이 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아직 이 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를 남기기 위해 우린 또 다른 곳으로 갔다. 마지막 그곳은 과연 이런 속 사정이 나올 만한 그런 곳일까.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첫댓글 그나 저나 대구 시내 버스 노선이 많이 있어서 운영 안할꺼 라는 소식도 있는데
아직 까지는 영업 하나 보네요
아직은 폐쇄하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시내버스용 차고지를 하나 만들고 시외버스는 노상 정류장으로 대체할 것 같긴 합니다. 아니면 시 직영 환승센터로 전환을 할수도 있겠죠.
포스팅 만으로도 그 지역에 간듯한 맥시멈 님의 필력에 늘 감사인사 드립니다ㅋ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 시골지역 터미널은 자치단체가 매입해서 운영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지역은 그렇게 운영하고 있는데 점점 늘어날 것 같습니다~
현풍은 대구와다른 시골적풍경이 간직한곳이죠.인천의 강화나화도터미널 울산의언양터미널등 군내터미널로써 잘나갔지만 적자땜에 중단을 면민들께서 막으신거죠. 경산하양터미널이나 대구용계터미널처럼 노상으로 갈수있다는생각이드네요. 그리고대구시내버스차고지로 쓸거같습니다.
폐쇄된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활용은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시내버스는 저기 아니면 대체할 곳이 없으니까요.
20여년 전, 동서울-의령-현풍을 운해하던 버스를 보고 현풍이란 동네가 어디일까 궁금했었는데, 역사적으로 규모가 있던 지역이었군요.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잘 나갔던 지역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고요. 그냥 대구와는 다른 동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네요. 개발이 된다 하여도 터미널을 통해 외부로 나가는 수요가 확실하다는 보장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아보이네요. 지역 사회 차원에서도 뭔가 논의가 있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냥 업자더러 참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정성 어린 기행 잘 보고 갑니다.
버스 수요뿐만 아니라 시장과 같은 상권에서도 대구라는 소속이 오히려 악영향을 준게 아닐까 합니다. 대구 중심지에서 고령읍, 성주읍과 거리가 거의 같고 인구도 얼마 차이나지 않는데 이런 서비스 쪽에서 차이가 심하게 나죠. 정말 대책이 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경북쪽은 거의 가보지 않아 익숙치 않은데 덕분에 재밌게 보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
90년대 중반까지도 대구~현풍 구간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구간요금을 징수했다고 합니다. 이후 좌석버스 601번 1개 노선으로 대구시내와 현풍을 잇다가 지금의 600번 시내버스로 이어 오고 있습니다. 한동안 대구시내와 현풍을 잇던 유일한 노선으로 남아 있다가 지금은 현풍 인근에 국가산단 및 신도시 조성으로 급행노선이 2개나 생기는 등 많이 바뀌었지요. 여담으로 2000년대 초반, 대구지하철 2호선 건설 시절 지금의 신남역 공사현장에서 복공판이 무너져 새벽 시간대 좌석버스가 전복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노선버스가 바로 601번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진 아예 다른 행정구역이었으니 구간요금을 받을 만도 했겠죠. 그 사고는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 버스가 601번이었단 것은 몰랐네요. 몰랐던 정보를 덕분에 알아갑니다.
나름도로교통의 요지라서 옛부터 노선버스는 매우 많이나녔지요,현풍장날(5,10일)은 인근달성지역뿐아니라,창녕군지역,의령군,합천군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요,구마고속도로 생기기전 비포장도로임에도 불구하고 마산행 완행버스가30분간격, 직행버스도30분간격으로 다녔고,신반의령,진주노선도1시간이내간격으로 다닌거로기억,적교,초계,합천으로 가는버스도 다녔지요.참옛날이야기입니다. 그 번창하던 터미널이 없어진다니 씁슬하네요.
달성이란 의미가 대구라는의미를 포함하는데, 대구에 속하지않았다는이야기는 타지역 출신의 외곡해석인듯합니다.달성이란 ,대구 주위를 둘러싼 성이란 의미일텐데,대구와 관련이없다니..다사읍,하빈면(성주,칠곡군과접함),가창면(청도군과접함).공산면(팔공산,동화사,갓바위지역,노태우대통령 출신지로서 대구동구로 편입) 월배면,성서면,은 도농복합시이전에 대구로 편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