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대신 기술력으로 정면승부
한국 경제 희망의 등불로 ‘반짝’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 바로 사회적 목적을 실현함과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회적 기업은 영리기업과 비영리 조직의 중간 형태로서, 정부나 영리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과제를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하는 기업이다.
2007년 54개에서 6배 증가
이른바 착한 기업으로 불리는 사회적 기업이 초기 정착 단계를 지나 질적으로 도약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육성법 시행 3년차인 현재 319개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 중이다. 2007년 54개에서 거의 6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들이 창출한 일자리는 1만2000여 개에 달한다.
사회복지 분야가 18.5%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환경, 간병∙가사 지원, 문화예술, 보육, 교육 등이 이었다.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과 관련된 사회복지 분야의 사회적 기업이 가장 많았으며, 녹색성장 드라이브에 발맞춰 환경 분야의 사회적 기업도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향후 서비스업이 선진화하면서 보육, 교육, 의료 분야의 사회적 기업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사회적 가치’와 경영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 이윤을 창출한다는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만큼 사회적 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반 기업 못지않은 경쟁력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 ‘착한 소비’라는 문화적 흐름도 조성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품질 제고를 통해 다른 제품들과 정면 승부를 펼쳐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전체 직원 63명 중 정신지체 장애인 40여 명을 고용해 모자를 만들고 있는 ‘동천모자’는 레드오션인 모자 시장에서 고급화와 전문화로 승부해 독자 생존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함께 일하는 세상’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서비스에 집중해 지난 8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이 회사 이철종 대표는 “사회적 기업은 영리 추구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까지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에 비용이나 서비스 품질 면에서 일반 기업들을 압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결혼 이주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장점으로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다. 이 회사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제안하는 본국 음식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노리단’은 놀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 내는 독특한 사례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탈북자들의 안정적인 생활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한 ‘메자닌 아이팩’은 전문경영인 영입으로 매출 신장에 성공했다.
장의성 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관(국장)은 “사회적 기업이 성공하려면 먼저 기업으로서 성공해야 한다”며 “정부는 앞으로 시장에서 통하지만 판로나 유통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 시급
하지만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짧은 기간에 사회적 기업의 육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상업성, 일자리 제공형 편중, 높은 진입 장벽, 직접적인 인건비 지원에 따른 사회적 기업의 자립 제약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회적 기업가의 육성이다. 일반 기업가가 시장을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기업가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 사회적 기업은 많이 생겼지만 아직 사회적 기업가는 드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정부의 지원도 문제다. 인건비 지원에 편중돼 있어 사회적 기업의 고용 확대에는 유리하나 자립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의 범위가 협소하게 정의돼 창의적인 모델이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적 기업의 질적인 도약을 통한 2단계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주도형 모델에서 시장 주도형 모델로 전환하고, 사회적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 개설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 고유의 사업 분야를 개발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하고, 지역 연계형 사회적 기업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이 고급 모자 만드는 ‘동천모자’
디자인과 기술, 자체 개발해 10여 개 고급 브랜드 생산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장애인 특수학교인 동천학교 교정 옆 330㎡크기의 작업장. 재봉틀과 재단기계, 각종 원단이 쌓여 있는 이곳에 모두 40여 명의 1~3급 정신지체 장애인이 일하고 있었다. 코오롱이나 EXR코리아 등 10여 개의 고급 브랜드들이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모자를 생산하는 동천모자다.
이곳에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들이 전문적인 재활 서비스와 기술을 익혀 자신의 업무를 책임지고 수행해내는 당당한 직업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결혼하고, 살 집을 마련하고, 직장생활을 통해 일반인처럼 독립하는 게 희망이다. 한 장애인은 “열심히 노력해서 수입이 많아지면 집도 마련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일자리 주기 위해 모자 만들어
동천모자는 사회복지법인 ‘동천학원’이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02년 설립한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해 36만여 개의 모자를 납품해 2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2007년 노동부의 1차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지만 그 시작은 1993년부터다. 동천모자의 CEO인 성선경 원장은 동천학교 졸업생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에는 재봉교육을 시킨 것이 동천모자의 모태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불과 쿠션, 앞치마 등을 만들었어요. 이후 우연히 모자공장을 견학했는데, 모자를 만드는 전체 공정이 17단계여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주력을 이불에서 모자로 바꾸게 된 거죠.”
처음에는 불량품이 너무 많았다. 제조공정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수는 거의 없어졌다. 특정 작업에 대한 집중력이 높은 지적장애인의 특성이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동천이 지금처럼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추기까지 어려운 점도 많았다. 처음에는 자체 브랜드를 붙여 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값싼 중국산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거기다 납품 거래처가 부도나면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러다간 망하겠다고 느낀 성 원장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바로 고급화 전략이었다. 디자인과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뒤 샘플로 기업의 주문을 받아 생산∙납품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진행하는 사업으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품질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군인 모자 등 단체 모자는 너무 싸고, 경쟁이 치열해서 남는 게 없어요. 값싼 중국산과도 경쟁해야 하고요. 그래서 고품질 모자 생산에 주력하게 됐어요. 올해는 동천의 고급스런 독자 브랜드 제품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현재 동천모자는 뉴밸런스, EXR, 컨버스, 코오롱 등 유명 스포츠 브랜드에 납품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수익 창출을 위해 독자 브랜드 개발에도 나섰다. 이를 위해 3명의 전문 디자이너도 뽑았다. 이들에겐 월급도 많이 줘야하고, 디자인 개발비도 많이 들어갔지만 성 원장은 살아남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케팅과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며 “정부가 인건비 지원보다는 사회적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 우선구매제도를 활성화하거나, 사회적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이 작업한 것보다 품질 뛰어나
동천모자는 거래처에 장애인 기업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장애인 기업이라는 이유로 동정을 받는 것보다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영업방침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장애인 기업이라는 것을 모르던 구매 담당자들이 공장을 방문해 보곤 깜짝 놀란다고. 제품만 놓고 보면 비장애인이 작업한 것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거래업체의 구매 담당자가 작업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장애인들이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미덥지 못했던 그는 공장 방문을 고집했고, 장애인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비장애인들도 육안으로 쉽게 구별하기 힘든 하자를 골라내는 것을 본 그 바이어가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별 문제 없는 것 같다”고 하자 그 직원이 “하자때문에 안 된다. 분명이 잘못됐다. 내 일에 간섭하지 마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바이어는 직원들의 엄격하고 꼼꼼한 품질관리에 혀를 내두르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성 원장은 “장애인은 ‘적당히’ 라는 것이 없다”며 “공장을 방문한 구매 담당자들은 정직하고 섬세한 직원들의 일처리에 오히려 감탄한다”고 말했다.
동천의 이런 노력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전체 모자 생산업계에서도 3~5위 안에 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천모자는 한 달에 약 3만 개의 모자를 만든다. 이 회사는 2006년 매출 10억원을 돌파한 이후 2007년 12억원, 2008년에는 17억원을, 지난해에는 22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경기침체 등을 감안하면 동천모자가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천 직원들의 대우는 여타 장애인 기업에 비해 훨씬 좋은 편이다. 장애인 직원들은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주5일 근무를 한다. 경력과 능력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보통 최저임금 수준인 월 80만원을 받는다.
성 원장은 “지금까지 월급을 제 때 주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앞으로 더 많은 수익을 내서 직원들의 임금도 올려주고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동천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틈새 청소 시장 공략한 ‘함께 일하는 세상’
기술 개발하고 친환경 약품 사용해 차별화
사회적 기업 ‘함께 일하는 세상’은 자활후견기관의 청소사업단이 모태가 됐다. 이 회사의 이철종(37) 대표가 청소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2년. 경기도 시흥의 자활후견기관에서 간사로 일하다 기초수급권자 4명과 함께 242개 자활후견기관을 네트워크로 삼아 자활공동체인 ‘터사랑’을 출범한 것.
이 대표는 “소규모로 운영되는 자활공동체는 한계가 있었다”며 “여러 공동체를 합치면 나아질 것 같아서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활기관에서 일자리가 없는 극빈층이나 저소득층 사람들이 재활하는 일을 도왔어요. 청소라는 분야는 초기 사업 투자비가 적고 대기업 같은 큰 자본의 손이 닿질 않은 틈새시장이라 한번 부딪혀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일하는 세상’은 다른 자활공동체와 힘을 합치면서 규모를 키워 2003년에는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이 대표는 청소 일감을 찾아 먼저 가정집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버는 돈이 최저임금 수준만도 못했다. 기업 모양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홈클리닝 서비스 사업을 접고 건물위생관리 용역사업으로 영업 방향을 틀었다. 관공서 등 공공시설물과 병원을 찾아다니며 영업에 나섰다. “누구도 선뜻 청소를 맡기지 않았어요. 자활 사업이라는 명분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한 거죠. 그래서 먼저 신뢰부터 쌓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작은 일부터 맡으면서 실력을 검증받고, 청소 영역을 계속 확대했다. 복도 바닥을 담당하다 화장실과 사무실을 맡고, 결국엔 건물 전체의 위생관리를 맡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3년에는 종합병원의 위생관리를 맡으면서 사업은 성장세를 탔다. 위탁관리했던 병원을 통해 실력과 서비스를 인정받아 또 다른 병원을 소개받기도 했다. 이후 병원은 주 고객이 됐고 관공서와 공기업 등으로 시장을 넓힐 수 있었다. 병원만큼 청결 유지를 신경 쓰는 곳에서 인정받은 업체라면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세상이 청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차별화 전략 덕분. 일부 청소 업체들의 경우 청소 용역사업을 단순한 인력 파견사업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각 지역별로 관리자를 두고 매일 청소현장을 점검하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했다. 이 대표는 “직원들이 여러 군데 흩어져 일하기 때문에 본사에서 자주 현장을 방문해서 직원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 챙겼다”고 말했다.
청소를 전문화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설립 초기부터 교육장을 마련해 현장 청소요원들에게 이론과 실습 교육을 꾸준히 시킨 것. “청소기술뿐 아니라 서비스마인드를 키우는 정신교육도 중요합니다. 특히 청소는 밑바닥 일이라는 생각에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거든요. 천시하는 눈길도 이겨내야 하고, 힘든 일인 만큼 중간에 포기하는 일도 줄이기 위해서죠.”
함께 일하는 세상은 국내 유일의 위생환경관리사 교육기관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500명의 교육 수료자를 배출했다. 또 각 지역의 자활센터나 실업자 단체 등에서 청소 용역을 하려는 이들에게 교육훈련을 하고 있다.
기술 개발 위해 미국에 직원 연수 보내기도
국내 위생관리 용역업체는 줄잡아 60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3000여 개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함께 일하는 세상이 이들과 경쟁하며 지난 8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기술력 덕분이다. 첨단 청소기기와 친환경 약품 등을 사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청소해 단골들을 끌어 모았다.
“무엇보다 상품과 서비스에 집중했습니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해외 전시회도 참관하고, 직원을 미국으로 연수보내기도 했어요. 미국이나 호주에서 배워 온 청소기술은 한국 시장에 맞게 특성화해 접목시켰어요.”
현재 함께 일하는 세상은 수도권 지역에 본사 직영 3곳과 7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서비스 분야는 건물위생관리, 바닥관리와 석재관리, 준공청소, 화장실 클리닝, 외벽관리 등이다. 최근에는 지난해 연말 웅진그룹의 계열사인 웅진홈케어의 홈클리닝 사업부인 ‘인스케어’를 인수하면서 다시 홈클리닝 분야로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
현재 직원은 모두 150여 명.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의 월급이지만 직원들의 사기는 대단하다.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반 용역업체보다 10~15% 임금을 더 많이 주기 때문이다.
올해 6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는 이 대표는 돈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규모를 더욱 키워서 직원을 늘려나가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모범이 된다는 꿈을 갖고 있다.
새터민이 박스 만드는 ‘메자닌 아이팩’
경력 30년의 전문경영인 영입해 급성장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박스 제조업체 ‘메자닌 아이팩’. 새터민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사장과 공장장 등을 빼고 20여 명의 생산직 직원 전원이 새터민인 국내 유일한 사업체다. ‘메자닌’은 ‘1층과 2층 사이’란 뜻으로, 상류층과 취약계층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북한을 떠나온 지 3년 됐다는 조모씨(47)는 “일이 힘들지만 일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어 즐겁다”고 한다.
설립에만 4년 걸려
메자닌 아이팩은 지난 5월 한 달 동안 2억6000만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납품처만 100여 군데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25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흑자도 시현했다. 하지만 메자닌 아이팩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서울 중구 ‘높은 뜻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메자닌 아이팩은 돈과 땅을 구하는 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김 목사는 2004년 새터민을 위한 공장을 세우기로 결심했지만 선뜻 투자자가 나서지 않았다. 이 교회 신도들이 세운 열매나눔재단에서 5억5000만원을 내놓으면서 공장 설립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후 SK에너지에서 1억5000만원을 후원해 초기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렇게 2008년 5월 파주시 야동동에 4357㎡(1300평), 건평 1280㎡(388평) 규모의 공장을 열었다.
30년 경력의 박스 전문가인 박상덕(50) 사장이 이 회사에 합류하게 된 것은 2008년 11월. 중소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았던 그는 김동호 목사의 요청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사장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메자닌 아이팩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생산은 임가공 수준에 머물렀고, 직원들의 열의도 없었다.
박 사장은 그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선전대에서 노래하던 사람, 도자기 공장에서 그릇에 그림 그리던 사람, 주부 등 직원들의 전직은 다양했어요. 하지만 박스 제조와 관련된 경험을 가진 새터민은 한 명도 없었어요. 처음엔 정말 막막했죠. 기술자를 초빙해 처음 한 달 동안 기술만 가르쳤어요. 그리고 박스를 만드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쉽게 적응하지 못한 직원도 많았어요.”
새터민들의 사회주의적인 의식을 전환하는 것도 힘든 과정이었다.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사장 눈을 피해 어딘가로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불량품을 몰래 숨기기도 하는 등 적당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제품 불량으로 인해 수천만원어치의 제품이 반품된 적도 있었다.
박 사장은 어떤 때는 엄격한 관리자로서 기술을 가르치고, 또 어떤 때는 친형∙친오빠가 돼 직원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일을 잘하는 직원에겐 칭찬과 함께 성과급도 지급해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도 생산 효율성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첫 석 달은 주문량 맞추기도 힘들었다. 주문량이 많아 밤샘 근무가 이어지자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도 있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박 사장과 직원들은 “여기서 무너지지 말자”며 힘을 모았다. 무엇보다 중국 공안에게 붙잡혔던 기억,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던 아픈 기억이 직원들을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됐다. 북한에서 고생하고 있을 가족들을 위해 직원들은 기를 쓰고 주문량을 맞췄다.
박 사장은 “직원들 대부분이 12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며 “부족하다면 부족한 돈인데, 자기 먹을 거 안 먹고 절약하면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한테 단돈 10만원이라도 보내려고 무척 애를 쓰며 사는 것을 보면 애처로운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청와대 선물용 포장박스도 납품
메자닌 아이팩의 박스 납품업체는 100여 곳에 달한다. 이 중에는 청와대도 포함돼 있다. 직접 발로 뛰면서 일반 기업과 품질 경쟁을 통해 일군 성과다. 박 사장은 “지난해에는 밥 먹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다”며 “이는 누구와 경쟁해도 뒤지지 않을 품질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했다.
이처럼 동고동락을 하며 희망 공장을 일궈낸 그들과 함께 박 사장은 사업을 확장시킬 계획이다. 수입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내년까지 부지를 구입해 자가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도 보강할 예정이다. 또 새터민 직원 채용도 늘리기로 했다. “직원들에게 주식도 나눠 줄 생각입니다. 주인의식이 높아지면 전 사원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나중엔 새터민 사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놀이 통해 수익 창출하는 ‘노리단’
재활용품으로 만든 악기로 공연…해외서도 인기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대림역 방향으로 오다 보면 교각 아래에 있습니다. 오다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노리단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대한 안석희 대표의 답이었다.
교각 아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보니까 진짜 그랬다.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과 대림역 사이의 철로 교각 아래 특이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노란색 가건물에 ‘구로노리단 창작발전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바로 놀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 내는 독특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의 문화창작공간이다.
노리단은 그동안 별다른 활용가치를 찾지 못해 버려져 있던 공간을 연습실, 사무실 등을 갖춘 멋진 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최근에는 인근 지역주민을 위해 마을 축제도 개최했다. 안석희 대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곳을 새롭게 단장해 주민들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인근 주민들과의 문화예술 교류를 통해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노리단은 공연단, 문화예술 공연 워크숍 센터, 악기와 놀이터를 만드는 악기 발전소로 구성돼 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작곡가, 배우 등은 물론 어린이, 청소년, 직장인 등 여덟 살부터 마흔 살까지 다양한 단원이 활동 중이다. 대기업 출신 직원도 있다.
노리단은 2004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에서 공연기획자, 예술가, 청소년 등 11명이 의기투합한 ‘창의적 문화예술 작업을 통한 창업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하자센터가 이 팀을 사회적 문화예술 벤처로 성장하도록 인큐베이팅한 것이다. 이후 공연을 통해 알려지면서 2006년 ‘노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기업으로 전환했다. 2007년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공연 외 교육∙디자인 사업도 펼쳐
창단 초기에는 주로 재활용품으로 만든 악기를 이용한 공연과 퍼포먼스에 주력했다. 놀면서 일하고, 돈도 벌자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창단 첫해 11명으로 시작해 매출 1억원이던 노리단은 지금 직원 73명에 15억원 매출을 기록하는 어엿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안 대표는 “예전에는 단발성 공연과 워크숍을 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 매년 열리는 행사에 정기적인 참여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핑팽퐁이라는 극장공연뿐 아니라 재활용 악기 및 공간 디자인, 청소년,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창의력 워크숍과 축제 등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육 사업은 창의력이나 커뮤니케이션 등을 주제로 악기 연주 및 공연을 활용해 워크숍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또 악기 제작 경험을 놀이터 등 공공 디자인 분야로 확대한 디자인 사업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어린이 놀이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노리단은 무대공연뿐 아니라 산업 폐기물과 재활용품을 활용한 악기 개발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들의 명성은 해외에도 알려져 2007년 싱가포르 아트 페스티벌에 참가했으며, 지난해 초에는 홍콩 춘절 축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큰 인기를 끌었다. 호주, 영국, 미국 등 지금까지 10여 개국에서 공연을 펼쳤다. 지난해에는 피터 드러커 혁신상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 최우수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 추구
노리단이 사용하는 모든 악기는 산업 폐기물과 버려진 생활용품을 재활용한 것이다. 플라스틱 물통, 크고 기다란 공업용 플라스틱 파이프, 폐타이어 등 소재에 대한 제한은 없다. 연주할 악기는 단원들이 직접 만든다. 대기업 TV광고에도 등장해 유명해진 움직이는 악기 자동차인 ‘스포라킷’도 단원들이 직접 만든 악기다.
노리단은 연간 150여 회 공연한다.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추구한다.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가 돼 한바탕 놀기 위한 것이다. 이들이 펼치는 공연은 기존의 타악 중심의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를 넘어선 음악, 공예, 설치, 무용, 미술, 연극이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의 넌버벌 뮤직 퍼포먼스다. 단원들은 직접 만든 다양한 악기와 맨몸을 이용하는 놀이형 퍼포먼스를 통해 객석과 무대를 넘나들며 관객과 소통한다.
안 대표는 “노리단의 공연에는 단원들의 다양한 삶이 녹아 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더욱 쉽게 어울린다”며 “앞으로 세계에서 통하는 거리 공연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으로 키울 것”이라고 했다.
다문화 퓨전요리로 인기 끈 ‘오가니제이션 요리’
이주여성이 제안한 음식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
인도네시아 출신의 결혼 이민 여성인 마리아씨는 인도네시아 전문 음식점 개업을 꿈꾸고 있다. 그가 음식점 창업을 꿈꾼 것은 사회적 기업인 ‘오가니제이션 요리’를 통해서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요리를 통해 결혼 이주여성들에게 꿈을 키우는 교실과 자아실현을 위한 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먹을거리로 이주여성의 일자리를 늘리고 있는 셈이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2007년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가 인큐베이팅한 사회적 기업이다.
처음에는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만든 사회적 기업 ‘레스토랑 피프틴(Fifteen)’을 벤치마킹했다. 청소년, 여성 등 취업 취약계층에게 노동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던 것이 2008년부터 결혼 이주여성이 합세하면서 케이터링(행사음식 서비스)과 급식업을 운영하는 동시에 요리 및 이주여성 재교육을 시행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지난해에는 요리 자문을 하던 호텔 조리사 출신의 박성배씨 등 각 분야 전문 인력들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맞춤형 음식 주문 서비스인 ‘케이터링’과 다문화 요리 레스토랑 ‘오요리’, 하자센터의 급식을 맡고 있는 ‘하모니 식당’,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고 바리스타 실습장 역할도 하는 카페 ‘그래서’ 등 외식 산업이 주력 분야다.
월 3000만원에서 많게는 7000만원까지 판매 수익을 올리는 케이터링 서비스가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지난해까지 사회적 기업 위주의 주문이 많았던 케이터링 분야는 올해부터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 회사는 다문화 어린이방 하마방, 청소년 요리사를 양성하는 영셰프 등과 음식문화 교육 및 콘텐츠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영미 오가니제이션 요리 공동대표는 “일반적인 요리와 함께 아시아 현지 음식을 제공하는 등 독창적인 메뉴를 개발한 것이 빛을 발하며 웅진, 랜드로버 등 유수 기업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을 연 다문화 레스토랑 ‘오요리’도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홍익대 앞 오요리는 인도네시아∙미얀마∙러시아 등지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요리사, 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은 모두 7명. 그중 2명이 오요리에서 서빙을 맡고 있다.
오요리에서 인기 있는 메뉴는 태국 고추 대신 우리나라의 청양고추로 매운 맛을 조절한 말레이시아식 미고랭(볶음국수), 새우와 파인애플로 볶아 낸 인도네시아식 나시고랭(볶음밥),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간장소스를 첨가한 일본식 모둠버섯 쇠고기 덮밥 등이다.
이들 메뉴 개발은 하얏트호텔 한식당에서 일하던 박성배 셰프가 맡았다. 박 셰프는 하자센터의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자문해 주다 아예 직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대표는 “이주여성들이 제안한 본국 음식을 박 셰프가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했다”고 말했다. “요즘 입소문이 나면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멀리서 단체로 오기도 하고요. 다문화 요리가 맛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죠.”
그는 “오요리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프랜차이즈 형태의 점포 확대도 계획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가출 청소년, 시설에서 생활하는 청소년 등 취약 계층 청소년들을 교육해 이들을 주축으로 한 청년 레스토랑도 창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ini Interview | 장의성 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관
“민간∙지자체가 앞장, 정부가 밀어주는 식 지원 펼치겠다”
“지자체가 앞장서고 중앙정부가 밀어주는 방식으로 사회적 기업 활성화에 나설 겁니다.”
장의성 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관(국장)은 “사회적 기업은 지역 내 부족한 일자리와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며 취약계층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위해 민간과 지자체가 앞장서고 중앙정부가 밀어주는 거버넌스 체계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사회적 기업은 일을 통한 복지를 추구해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지역∙사회 친화적 풀뿌리형 사회적 기업입니다.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사회적 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큰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정부도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위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놓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선 정부는 중앙부처간에는 협력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기업은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에 따라 문화, 녹색에너지, 지역, 교육, 돌봄 등을 사회적 기업 5대 전략 분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을 강화키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농림수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과 사회적 기업 육성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 외에 민간기업의 후원도 절실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대기업들이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사회 공헌에 눈을 돌려 사회적 기업 지원을 확대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의 사회적 기업 지원에 대한 애로사항을 수렴해 법, 제도도 정비할 계획이다.
장 국장은 “특히 정부의 지원 없이도 사회적 기업이 자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인건비 지원 등 직접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경영 컨설팅이나 판로 개척 등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 방향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인건비 등 재정 지원과 우선구매, 세제 감면 등 경영 지원을 병행하고, 안정단계에서는 독자 생존할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 체계를 확립할 계획입니다. 세제지원제도도 합리화해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