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12. -옥천여행 <육영수생가-정지용문학관-부소담악-용암사-하늘물빛공원-반야사>
부부가 결혼을 하여 몇 년을 살았건 신혼여행의 특별한 추억은 오롯하게 품고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그해 우리부부의 신혼여행은 40여년이 흐른 지금 서로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함께 연애를 하면서 신혼여행에 관한 계획을 단 한 번도 이야기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후 버스 터미널에 데려다 준 남편 친구들에 떠밀려 계획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둘이서 서성이다가 떠난 곳이 보은 속리산이었다. 그랬던 탓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붉은 꽃색 한복에 올림머리 그대로 신혼여행을 갔었다는 기억 이 외에는 남아 있는 사진으로만 회상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충북 옥천여행 경유지를 들은 남편은 그때 육영수생가를 방문했었다는 것이다. 내게는 기억에도 없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내 기억에도 없는 신혼여행지, 육영수생가를 비롯하여 정지용문학관을 들러 옥천의 관광명소 부소담암과 용암사까지 둘러보고 집으로 향하는 경로에 금산에 하늘물빛정원 그리고 논산의 반야사를 투어하기로 하였다. 딸아이 가족을 보내고 다시 충북으로 너머와 셋이서 1박 2일에 돌아보기에는 제법 빠듯한 일정이었다. 우리는 보령에서 출발하여 천상의 정원을 거쳐 암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부소담악으로 향했다.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이라는 뜻인데 길이가 무려 700m 를 바위병풍으로 물위에 길게 누워있었다. 우리가족의 여행 트렌드에 적격인 트레킹하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학자 송시열이 소금강이라고 예찬한 추소8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경이라한다. 또한 날카롭게 솟아오른 바위 옆의 물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수 천 년의 세월동안 깎아놓은 절벽바위가 신비로울 정도이다. 이곳은 초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아 생각보다 절정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는 없었다. 이날 우리는 옥천에 둘러 볼 곳이 워낙 많아 해가 저물어가는데에도 불구하고 육영수생가로 향했다. 서둘러 도착해보니 관리자 퇴근시간인가보다. 문을 닫아야 하는데 우리는 마지막 관람객으로 들어가 대충 둘러보는 정도였다. 남편은 신혼여행 때 찾았던 모습과 비교해 보면서 참으로 많이 단장하고 증축되어 있으며 세월 만큼 변해있음을 실감한다 하였다. 육영수생가와 정지용 문학관은 약 600m 떨어져 있는 곳에 있어서 함께 투어하기에 좋았고 마치 지용문학제가 9월 14일부터17일까지 열렸던 끝이라 아직 문학축제의 흔적들을 여기저기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정지용생가는 정지용 시를 통한 힐링을 목표로 생가 문학관 마당에 시가 있는 정원을 조성해 작가의 시를 편안하게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잘 되어 있었다. 또한 지용제의 배경이 되는 구읍에서는 실개천을 따라 형형색색의 초롱들불이 있는가하면 가호마다 호원을 적은 시를 깃발로 제작되어 펄럭이고 있었다. 이는 어디에나 축제가 흔한 요즘 집행부에서만 구상하고 용역으로 맡겨져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 모두가 함께 참여한 흔적들이 오롯이 돋보였다. 글을 쓰는 나는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학선배님들의 생가나 문학관을 찾아보는 일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또는 용기와 자부심까지 충전되곤 한다. 연휴 시작 전에 미리 계획을 하고 숙소까지 예약을 해 두었던 덕분에 날이 저물어도 서두를 필요 없이 차분하게 숙소로 향했다. 이번 숙소는 길을 지나다 문득 문득 만나게 되는 무인텔을 잡았다. 지난 퇴직 후 혼자 전국투어를 할 때 무인텔을 사용해 본 나는 일반 숙박시설보다 깨끗했던 기억이 있어서 식구가 많이 않으니 내가 선택하여 예약을 하였다. 사실 보령에서의 팬션은 다소 노후된 건물에서 불편함이 있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곳은 마치 호텔수준이다. 손주는 집에 도착한 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내 행복을 빼앗긴 적은 없지만 돌려받은 기분이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역시 우리는 열악해보면 매사에 고마움이거나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옥천에서의 하룻밤을 지낸 뒤 아침 일찍 용암사로 향했다. 옥천4경으로 알려진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 의신이 세운 천년 고찰이며 용암사에서 데크 길을 180m오르면 구름이 춤추는 모습을 본다는 운무대가 있다. 운무대까지 올라가는 길에 제1전망대와 제2전망대가 있는데 그다지 높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제1전망대까지만 가자는 것이다. 그러자고 내려오면서도 남편의 체력이 점점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니 안타까운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옥천 용암사 대웅전 앞에는 벤치와 탁자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옥천의 풍경도 참 아름답다. 운무대에서 내려와 여기에 앉아 새롭게 여운을 만끽하고 즐기기에도 참 좋은 자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늦은 점심시간이 되어 가는데 옥천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금산 하늘물빛정원으로 향했다. 물론 휴가 중의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중간 중간 코스를 계획했던 것이다. 물빛정원이라니 수목이나 잘 단장된 자연 속을 걸을 수 있으리라 짐작하고 그곳에 가서 점심식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웬걸?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살펴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건물은 많이 노화되어있고 휴업 중인 곳이 많았으며 자그마한 저수지를 비롯하여 정리되지 않은 환경에 한참을 맴돌아 결국은 실망스러움으로 점심식사라도 하자는 생각에 어렵게 식당을 찾아 들어섰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보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통밀빵을 먹어보기 위하여 카페에 들렀다. 그런데 넓지도 않고 별 보잘 것 없는 카페 주변 풍경 속에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몽땅 모여 있지 않은가? 사실 카페에 들러보지 않았더라면 하늘물빛정원에 관하여서는 크게 실망과 함께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으로 기억할 뻔하였다. 여유롭게 빵과 차 한 잔으로 마무리를 하고 또 하나의 기대를 품고 갈 곳이 있었다. 반야사 동굴법당이였다. 반야사를 찾아가는 길은 이곳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고가는 자동차도 드물뿐더러 사람조차 귀해서 조심스레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곳으로 따라가 보았다. 그렇게 안내표시 하나 없는 반야사주차장에 들어섰다. 주차장 바위에는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들도 있고 신기한 동굴법당이 있다는 반야사를 올려본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건물 밑에 사각형은 무엇인가 궁금해서 가보니 석회가 굳어있는 걸 보니 석회가 내려오던 곳으로 옛 폐광 석회광산으로 보이고 우측 포장도로로 올라가 보면 <반야사는 기도처임으로 오후 6시 이후부터는 출입이 안 되고 반려견 출입도 안 되는 금연구역입니다.>라는 문구로 하여금 한층 더 조용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올라가보니 대웅전 옆 절벽위에는 약사여래입상이 보인다. 불상과 대웅전 사이로 기암괴석이 거대하고 자연스러웠고 우리는 동굴법당 우측으로 먼저 올라가 보았다. “이곳은 낙석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절대 출입을 금합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출입하는 자에 대하여 어떠한 사고에도 일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라는 경고문이 있다. 이곳이 수직 절벽을 이루는 사진 명소로 가끔 촬영도 하는 유명한 곳으로 알고 왔다. 그래서 사실 인터넷으로 먼저 답사할 때에는 기어이 들어가 사진 한 장쯤 건져 오리라 생각했었건만 철조망으로 야무지게 둘러놓았기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아쉽게 뒤돌아 나와 동굴 법당으로 향하니 좌우로 출입이 불가한 적벽이 하나씩 있는데 절벽과 절벽 사이로 동굴 법당 출입구가 있다. 계단을 통해 시원한 용궁회상 안으로 들어간다. 광산이었던 흔적이 입구부터 느껴진다. 천태산 반야사에는 산신각이 없고 용왕님을 모신 용궁회상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석회를 채굴하는 광산으로 노역을 하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잘 정비되고 조명으로 환하게 보여주는 동굴법당이 되었다. 자연 동굴처럼 보이지만 석회 광산이었던 곳에 법당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동굴과 절벽들이 조화를 이룬 천태산 반야사의 경치는 소박한 듯 마음의 안정을 줄뿐더러 논산 여행 중에 잠시 둘러보기 좋은 동굴법당이 있는 반야사였다. 이렇게 우리는 특별히 길었던 추석연휴동안 알뜰한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둥지로 귀가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