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내에서 40여분 곳에 있는 신흥사는 대광전이 아주 볼만하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대광전이라는 편액과 내부에 있는 불상이 맞지가 아니하여 자료를 찾아 보았다.
그래서 재미 있는 내용이 있어 공부 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라 글을 적어 본다.
신흥사는 원래 이름이 밀양 삼랑진에 있는 만어사와 같은 이름이 었다.
즉 萬魚寺 였는데 신흥사의 돌을 두르리면 쇳소리가 났다 한다.
지금의 신흥사는 자리가 현재의 곳이 아니고 건너편 산중턱이었다 하나 찾을길이 없다 한다.
신흥사의 건축년도는 조선 선조때 승병의 거점이 되어 왜병과 싸웠다는 이야기는 전하는 바가 있으나 전쟁중 전소되어
알길이 없고 대광전 수리중 나온 기와명에는 1653년에 중창이 기록이 있다.
울산 신흥사와 같이 승병을 양성하고 싸웠다는 기록이 일치하는데 이러한 연관 관계도 공부해 보면 재미 있을것으로도 생각된다.
'몇번을 중창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는 기와는 나타나지만 신라나 고려 ,조선 초기를 알수 있는 기록은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거두절미하고 대광전이라는 편액이 있으면 내부에 있는 불상은 비로자나불이 되어야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는데 아미타수인을 결한 석가모니상이 나타나 있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흥사 중수기에는 19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대웅전이라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불상은 여래로 보아야 하는데 현재의 불상은 아마타불로 보여진다.
그런데 협시불의 보관에 나타나는 것은 정상부가 결실되어 후보시 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어 현재의 아미타불은 여래에서 바뀐것으로 보여지고 있으며, 대광전이라는 편액은 일제시대에 바뀐것으로 추정되는데 대광전이라는 편액을 교체하여야 할것으로 보인다.
석가불이면 좌우 협시불은 보현과문수보살로 보아야 하며 편액은 대웅전으로 바꾸어야 하자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사실 대광전 내외부 벽화가 중요한 것인데 이러한 전각의 벽화는 전국의 사찰에서도 보기드문 것이고 잘 보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벽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서 여기서는 언급을 피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