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도솔암에서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유관순열사 유적지를 찾았다. 병천으로 들어가는데 각양각색의 팬지와 금송화 꽃길이 아름답다. 아우내 장터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유적지에 들어서니 마음부터 경건해진다. 우선 눈앞에 들어오는 것이 유관순 열사 탄신 100주년 기념이라는 현판이었다. 백년인데 우리는 까마득한 옛날 역사로만 그저 삼월이면 일과성 기념행사만 하고 지나온 것은 아닌지….
태극기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댕기머리 유관순 열사 동상 앞에 나는 서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 장한님이시여!
당신이 계셨기에 오늘 이 나라 이 겨레가 있습니다. 지금 온 나라가 축구로 들끓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의 저력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48년만의 쾌거라고 합니다. 세계가 놀랄 만큼 선진국 수준으로 많이 성장한 조국입니다. 83년 전 이 아우네 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던 그 맥의 정신이 이어져 온 국민을 결집시킨 오늘이 되었습니다.
님이시여! 기뻐해 주소서!
16강 8강 진출을 지켜주소서. 개최국의 영광을 더욱 빛나게 하여주소서.
“한국의 딸 유관순은 우리나라정기의 화신이다. 일천구백십구년 기미년 3월1일 어린 여학생의 몸으로 태극기를 높이 드니 여섯 고을이 향응하고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니 왜적의 총칼이 보이지 않고 아우내 장터가 피로 물들었다. 왜병에게 잡힌 몸이 되었으나 자유를 굳게 주장하여 왜적의 재판을 거절하니 적의 법관도 크게 놀랐다.7년의 최고형을 받고 옥중에서도 용감히 투쟁하다가 마침내 피살되니 그때나이 겨우 열일곱, 아아 슬프도다. 인간의 생애는 비록 짧으나 천상의 성녀로서 거룩한 그 정신은 이 나라에 수호신이 되어 이 겨레와 함께 영원히 살리로다.” (1983년 유제한 글. 동상에서)
동상 앞에는 무궁화 몇 그루와 진달래가 은근한 끈기로 유관순 열사의 넋을 위로하고 있는 듯하였다. 『부원건설』이라고 쓴 장막을 친 속에서는 아직도 마련 못한 1919년 4월1일 그 함성을 기념할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짓느라고 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83주년이 되는 지난 4월 1일 겨우 기공식을 한 모양이다. 아직도 우리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관심이 적고 소홀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이 발걸음이 부끄럽다.
추모각에는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 앞가르마에 옥색 코 흰 고무신을 신고 얌전히 두 손을 모으고 계신 좌상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영정을 모셔놓고 있었다. 나는 향로에 향을 꽂고 우러러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뜰 양쪽에는 어두움이 몰려와 님이 무서워하면 동무해 줄 것 같은 동으로 만든 가로등이 단아하게 서있다. 님이 좋아 하셨을 성싶은 수국이 이제는 탐스런 꽃송이가 다 진 채로 흔적만 남기고 싱싱한 잎사귀만 무성하게 네그루나 서있었다. 주위에는 은행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뜰의 조화를 돕고 있었다.
초혼 묘로 올라가는 돌계단 옆에는 열 발짝 혹은 열 댓 발짝 간격으로 일 미터쯤 되는 돌 시비가 스물 두개나 서 있다. 님을 위로하고 칭송하는 싯귀들이 자연석에 선명히 새겨져 이곳을 찾는 이로 하여금 깊은 침잠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나는 보았소. 당신의 울음을
푸른 하늘 위 진한 아픔의 소용돌이를
나는 들었소. 당시의 외침을
푸른 역사를 지키며 터뜨렸던 한의 잔서리를
아! 민족의 가슴을 울려버린 피맺힌 그 발자취.
(이화여고 이 정희)
거칠은 이 땅에 외로운 들꽃으로 피어나
굽히지 않는 기상으로
이 나라의 눈부신 아침을 열었도다.
(이화여고 허미림)
분명 이러한 선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이지구상에서 이만큼의 자리를 지키고 살고 있는 것이다. 매봉 높은 곳에 초혼묘로 누워 계신 님께 오르는 길 위의 헌시는 하나하나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도 하고 백옥같이 순진무구하게도 하였다. 진정 경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돌아 갈 길을 재촉 받아 멀리 바라보이는 매봉 정상의 봉화대는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 총총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머릿속을 정리했다.
진달래꽃 정열을 다 사르지 못하고 가신님아!
이 돌계단 오르내리시며 스물 두개 시를 읊으며
못 다한 애절한 나라사랑의 한!
이제는 억울한 심사 잠재우소서
오직 겨례 뭉쳐 더 든든하게 하나되게 하소서
님의 영혼의 외침이 언제까지나 우리들 가슴에서 숨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