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오펜하이머>
1.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는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의 집단적인 이기심과 광기가 극단으로 치달렸던 시대, 결국 서로를 향한 증오는 ‘원자폭탄’이라는 엄청난 위력의 무기를 완성하게 만들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탄 프로젝트>을 이끌었던 미국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삶을 추적한다. 영화는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감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과정이며,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간첩’ 혐의를 받은 오펜하이머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다.
2. ‘핵분열’의 원리가 밝혀지고 난 후, ‘원자폭탄’의 개발은 가시권이 되었다. 이제는 누가 먼저 돈과 인력을 동원하여 성공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 되었다. 미국은 나치 독일보다 먼저 성공하기 위해 오펜하이머를 책임자로 선정하고 과학자들을 섭외하여 <맨하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였고 가공할 무기는 전쟁을 빨리 끝낸다는 명분으로 일본의 두 도시에 투하된다. 수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다는 무기임에도, 어쩌면 그 무기가 지구의 대기를 태워버려 인류를 종말시킬 수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개발하고 사용했다는 사실은 어떤 문제도 현재의 위기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아무리 치명적인 문제로 남을지라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용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원자폭탄’의 사용을 허용한 것이다.
3. 오펜하이머는 이 가공할 무기가 앞으로의 전쟁을 억제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점차 ‘평화’의 도구가 아니라 죽음의 ‘사신’이 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선한 의도가 무엇일지라도 완성된 것들의 파괴성은 또 다른 형태의 위협과 공포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손쉽고 완전한 승리의 유혹때문에 만들어진 ‘원자폭탄’은 결국 인간의 가장 강력한 자살 도구를 만들어준 것이다. ‘전쟁’을 이끌어내고 정당화시키는 거짓된 가치들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로 이끈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멸망의 길을 갈 것인가? 현재 다시 지구 전체를 압박하고 있는 ‘냉전’의 공기는 인간의 종말을 경고하건만, 권력과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은 상대의 문제에만 초점을 세우고 자신의 변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시도하지 않는다.
4. 영화 <오펜하이머>의 또 다른 내용은 전쟁이 끝난 후 벌어지는 오펜하이머의 간첩 혐의에 대한 논란이다. 오펜하이머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좌파 계열이었다. 비록 전쟁 전에도 그런 사실은 변화없었지만, 국가의 위기 속에 재능이 필요했던 정부는 그를 활용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다. 하지만 그는 수소폭탄 개발에는 반대하면서 정부와 틀어지고 남은 것은 그에 대한 ‘간첩’혐의를 끌어내기 위한 공작과 음모였다. 이용가치가 없는 것은 버려진다는 오래된 인간의 행태 ‘토사구팽’이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 속에서, 전쟁의 영웅들은 대부분 현실의 영웅이 되지 못했다. 전쟁의 신화는 오히려 현실에서는 제거의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그것을 알았고, 처칠도 선거에서 졌으며, 로마의 영웅 스키피오도 음모의 희생양이 되었다. 영화 <람보> 또한 전쟁 영웅의 비극적인 현실에서의 모습을 통쾌하지만 쓸쓸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5. <오펜하이며>는 너무도 많은 정보를 너무도 빠르게 전개하는 호흡 때문에 정보가 부족하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영화 속 대사는 함축되어있고, 은폐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기 위한 성격을 띠었다는 점에서 왜곡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각각의 대화와 행동이 주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의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관람한다면 지극히 표면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대화만이 남을 것이며 오펜하이머의 모순적이고 다중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충분히 내용을 알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보를 갖고 관람한다 할지라도, 영화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며 쉽지 않은 과제가 된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정지된 사진의 연속적인 슬라이드처럼 핵심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그것의 관계와 논리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다. 영화는 분명 흥미롭고 빠른 호흡의 쾌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능력은 분명 도전적이다.
첫댓글 - 파인만 이야기를 통해 들었던 오펜하이머와 원폭 이야기. 과학의 쓸모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과학자들의 관심과 정치가들의 안목은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과학은 변명을 용인하지 않지만 정치는 거짓말과 변명을 끝없이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