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강의 추위가 닥친 날, 한탄강을 걷다
1. 올해 최강의 추위가 몰려왔다. 낮에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최근 만나지 못했던 추위다. 오랜만에 겨울의 정체감을 확인한다. 귀와 발을 꽁꽁 시리게 만들고 손을 꺼내 무엇 하나 잡기도 어렵게 만드는 추위, 그것이 원래 겨울의 추위였다. 그런 추위가 최근에는 없었다. 특히 작년에는 두꺼운 패딩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극한의 추위가 시베리아와 중국을 덮었고 그 여파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2. 맹렬한 차가움을 만나기 위해 한탄강으로 갔다. 한강의 잘 정돈된 길과는 다르게 이 곳은 자연적인 분위기와 인공적인 편리함이 공존하고 있는 장소다. 강은 자연스럽게 주상절리 사이를 흐르고 강이 흐르는 길옆에는 거치른 자갈들이 넘치지만, 그 사이에 만들어진 시멘트길이 편리하게 걷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때린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바람은 강하다. 하지만 바람의 차가움에서도 강하게 빛나는 태양이 추위의 밀도와 강도를 조금은 완화된 느낌으로 만들어 주었다. 태양은 그 빛을 통해 어둠을 제거하면서 부정적으로 인식될 모든 것을 수용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태양이 있어 아무리 강한 바람이라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듯하다.
3. 한동안 치솟은 기온 때문에 녹았던 강물이 다시 빠르게 얼고 있었다. 오늘 이렇게 춥지만 어제까지는 영상의 날씨였다. 하루 사이에 세상의 공기가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이 지배하는 겨울은 걷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과 공포가 동반한다. 1983년 겨울, 어둠 속에서 걷겠다는 호기를 가지고 전국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어둠 속을 걷고, 차가운 겨울역 대합실에서 밤을 세우면서 절대적인 고독을 실험하겠다는 명분, 그것은 당시 나를 지배하고 있던 주변 여성들이 주는 허상과 감각적인 충동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의지였다. 하지만 어둠 속을 걷자 직면한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길옆을 무자비하게 달리는 트럭들의 질주, 차도와 인도가 구별되지 않고, 그 길에 사람이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의 걷기는 고독의 실험이기보다는 무모한 자살의 충동같은 어리석음이었다. 겨울 역에서의 밤세우기 또한 낭만적인 사고실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잠은 불가능하다. 결국 헛된 도전은 백지로 돌아갔고 심야다방이나 낡은 여인숙을 찾아야했다. 그 냉혹한 겨울도 태양 아래서 걷는다면 독기가 약해진다. 겨울의 가장 큰 축복이 세상의 빛과 열기를 포기하지 않은 태양이었다.
4. 돌아오는 길에 한탄강 유원지 주변에 <한탄강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역 건물은 사라졌고 역의 잔재들만이 흩어져있었다. 이곳에 역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 앞 버스정류장의 <한탄강역>이라는 표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서울에서 원산까지 연결되었던 ‘경원선’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현재 경원선의 종점인 <백마고지역>에서 철길은 끊겨있고, 경원선을 재개하고 다시 운행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철도는 이제 사라지고 있는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KTX, GTX와 같은 고속열차가 아닌 보통의 열차는 축소되고 보통의 열차만이 서는 작은 역도 하나둘 폐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원선 운행은 멈췄고 역 사이를 버스가 정기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첫댓글 * 절대적인 고독을 실험 --- 겨울의 가장 큰 축복이 세상의 빛과 열기를 포기하지 않은 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