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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쎄시봉]은 소문만 무성했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 그 자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건축학 개론]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건축학 개론]은 달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격렬한 감성의 골짜기로 몰아가기도 했고,
관람객들 대부분 가슴 속에 아련하게 존재하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슬쩍슬쩍 건드리기도 했다.
지나간 추억에 대한 아스라함...
철없고 미숙했던 시절의 대책 없는 그리움...
그런 요인들이 그 영화를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영화 [쎄시봉]은 쎄시봉 시절과 중년 시절의 톤이 맞지 않아
관람객들의 시선은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쎄시봉]은 한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킨
조영남(김인권), 윤형주(강하늘), 송창식(조복래), 이장희(진구) 등을 배출한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설의 듀엣 [트윈폴리오]가 가상의 인물 오근태(정우/김윤석)와
3인조 트리오쎄시봉으로 구성돼 있었다는 설정을 더해
그들의 뮤즈 민자영(한효주/김희애)을 둘러싼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영화다.
겉으로는 [쎄시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 [쎄시봉]은 오근태와 민자영의 러브스토리가 주가 된다.
영화에서 정우가 맡은 오근태는 경남 통영 출신으로
우연한 계기로 인해 쎄시봉 송창식 윤형주와 트리오를 이루게 된다.
그러면서 쎄시봉의 뮤즈인 민자영과도 풋풋한 첫사랑을 시작한다.
다소 촌스럽고 찌질하지만 충분히 매력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가상인물 오근태에게서 별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경상도 사투리도 그대로이고,
연기 잘하는 배우가 열연을 펼쳤지만
왜 [정우]는 건축학개론의 [이제현]처럼 사랑을 받지 못했을까?
[정우]의 연기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왠지 어딘가 실제 할 것만 같은
옆집 오빠를 보는 듯한 정우 특유의 연기가
오근태에게 잘 묻어났다.
하지만 찌질한 남자와의 차별화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과연 이것이 배우 [정우]만의 탓일까.
순정남 특유의 절절함이나 가슴 아픔 등이 제대로 묻어나지 않은건
오히려 감독의 책임이라고 본다.
특히 [쎄시봉]은 오근태의 과거가 드러나는
40대 등장 이후로 집중력이 분산되면서
20대와 40대의 이야기가 완전히 분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윤석]과 [김희애]의 연기력에 기댔지만
안일한 스토리 전개 탓에 가장 중요한
오근태의 사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 것이 이유다.
또한, 민자영의 역활을 맡은 [한효주]는 너무 이쁘기만 했지
관객에게 감정전달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도 이유다.
[국제시장]에는 통했던 [추억팔이]가
[쎄시봉]에서는 통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과연 [쎄시봉]의 흥행부진은 무엇일까?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건만
그 시대를 살아온 중장년층이 주 관객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20~30대 젊은층을 겨냥한 것도 아닌
어중간하고 애매한 관객의 타깃 설정이
흥행부진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영화 [쎄시봉]은 추억이란 장치와
감성이란 장치를 버무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0년 노래로는 대박난 [쎄시봉]이었다.
하지만 2015년 영화 [쎄시봉]은 그렇지 못하다.
중장년층이 원했던 것은 자신들의 추억이지,
쎄시봉들의 연애사가 아니었다.
또한, 젊은층이 원했던 것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아날로그 감성이지,
멀기만한 1970년대의 빛바랜 풍경 사진이 아니었다.
[쎄시봉]의 노래들은 이에 부합해줬고
[쎄시봉]의 영화는 그렇지 못한 듯 하다.
감독 및 등장 배우들이이 꼽은 최고의 장면은
[고백 씬]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밤에 텅빈 [쎄시봉] 무대에 걸터 앉은 오근태는
노래를 부르며 떨리는 마음으로 민자영(한효주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민자영은 오근태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이다.
어느 시대, 누구에게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보편적 감성을
절묘하게 그려낸 오래된 일기장 같은 명장면이다.
[쎄시봉 OST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