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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운동
↓ ↓ 하나님을 직접 대적 간접적 사탄숭배 문화운동들 |
뉴에이지 운동이 사람들에게 드러날 때는 문화적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종교 운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교 운동인데, 기독교 신앙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사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교지만, 뉴에이지 운동의 종교는 그 모든 종교들을 통합하는 상태에서 좀더 특별하고 좀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들은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그들의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인들에게는 감춰진 사실이다. 예를들어 뉴에이지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 수많은 대중들은 적그리스도를 직접 찬양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중들에게 감춰진 뉴에이지의 본질은 분명 사탄 숭배인 것이다.
마담 블라바츠키라는 뉴에이지 운동의 대모격 되는 여인은 “사탄은 여호와다”라고까지 말하며, 창세기의 뱀은 지혜의 원천이었다고 말한다. 즉 성경의 사실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다. 기존의 이방 종교들은 아예 성경과는 관계없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성경을 말하되,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사실을 거꾸로 말하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사탄을 찬양하는 것이다. 동일한 예로 1966년 앤튼 샌더 레비라는 사람이 “사탄 교회”를 세운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성경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적인 모습이다.
1) 뉴에이지 운동이란?
New Age란? 1. 그리스도의 시대 ⇒ 탈 기독교적 인간중심 시대 |
그러면 이 운동을 왜 “뉴에이지”(New Age, 새로운 시대)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과연 지난 세기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스린 시대였던가?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스렸다면 왜 그토록 수많은 죄악들이 이 세상을 가득채웠겠는가? 우리는 성경의 말씀대로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이며(고후 4:4), 그가 이 세상 제도를 관장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뉴에이저들이 말하는 과거의 시대는 기독교적인 시대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서양인들에게 명목상으로나마 기독교는 주된 종교였고(그들이 거듭났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런데 그 시대는 수많은 종교전쟁들과 제국주의로 물들어진 시대였고, 따라서 세상 사람들의 관념 속에는 “기독교=전쟁”이라는 공식이 각인되었다. 이것을 이용해서 뉴에이저들은 기독교를 탈피하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기독교를 비판한다는 미명하에 아예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버리려는 사탄의 전략인데, 이와 비슷한 현상이 14세기에도 있었다. 흔히 “르네상스”라고 알려진 인문주의 운동이 그것인데, 당시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 압제에 시달린 유럽인들은 카톨릭의 지배에서 탈피하고자 인문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잘못된 교회에서 떠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인간으로” 그들의 관점을 옮기고 말았다. 다시말해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돌아섰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과 예술로 돌리게 된다. 어차피 중세 카톨릭도 망가질대로 망가진 종교였지만, 이제는 아예 그리스와 로마 신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모든 역사가들은 르네상스를 평가하기를, “신앙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돌이킨 위대한 운동이라 말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뉴에이지였던 셈이다. 다행히 르네상스를 뒤이어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거짓 교회로부터 참된 신앙을 구출해 내었고, 그래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개혁은 헛된 것임을 증명해 내었다.
2) 신비주의, 영지주의, 점성술에 뒷받침된 뉴에이지 운동
이처럼 “잘못된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를 배격해 버리는 것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 노리는 바다. 그들이 기독교에서 눈을 돌린다면 무언가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 르네상스 때에는 그리스 로마 신들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인가? 지금 뉴에이저들이 들고 나오는 대안은 “신비주의”다. 신비주의는 어느 종교에나 있었지만, 그것이 가장 정신 수양의 형태로 잘 발달된 종교는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다. 그래서 뉴에이저들은 힌두교와 불교, 여기에 추가로 중국의 도교에 집중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가 “영지주의”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한 초대 기독교의 이단 이론이었지만, 오늘날 뉴에이저들에게 이 이론은 인간과 하나님이 원래 하나였다는, 그래서 인간 안에 잠재된 신을 꺼내야 한다는 주장의 기초가 되고 있다. 미국 LA에 있는 “영지주의 교회”의 사제인 스티븐 횔러는 이 운동을 앞장서는 인물이다.
“인간과 신은 하나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다” “인간과 우주는 하나다” “인간과 하늘은 하나다” 등의 말들은 동양 종교들이 흔히 하던 말들이다. 그리고 그런 종교들은 하나같이 명상 같은 수행을 강조하며, 깊은 영적 체험을 통해 신비주의적인 경험을 행하게 된다. 뉴에이저들이 불교와 힌두교에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New Age란? 2. 물고기 자리 (기독교 시대) ⇒ 물병 자리 (인간 영혼의 자유, 해탈) |
여기에 또 하나 뒷받침되는 것은 점성술이다. 점성술은 고대부터 있어 왔던 종교적 학문이지만, 바로 이 점성술의 도움으로 “뉴에이지”라는 말이 완성된다. 그것은 이제 물고기 자리가 끝나고 물병 자리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점성학에서 황도에 속한 열두 궁성 중, 천체의 움직임은 2100년마다 바뀌는데, 지금은 물고기 자리에서 물병 자리로 바뀌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른 철학으로는, 물병에 물이 채워지듯이 인간의 정신적 갈증이 채워지며 인간 영혼의 참 자유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롭게 바뀌어지는 시대, 그것이 곧 이들이 말하는 “뉴에이지” 즉 새로운 시대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구약은 성부의 시대였고 신약은 성자의 시대, 그리고 이 새로운 천년은 성령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싶었던 진짜 내용은, 새 천년이 성령이 아니라 어떤 영의 시대라는 말일 것이다. 인간의 영이 신의 영의 경지에 이르러서 지배하는 시대, 혹은 어떤 초월적인 영적 존재들의 지배를 받는 시대,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바 “뉴에이지” 즉 새로운 시대인 것이다.
3) 반기독교 정서를 틈탄 뉴에이지 운동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한다(요 15:18). 요즘은 특히 더 기독교 신앙을 반대한다.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직접적인 박해는 하지 못하지만 미움은 예전보다 훨씬 더해졌다.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은 이러한 반기독교적 정서를 틈타고 확산된다.
사탄이 빛의 천사로 자신을 나타내듯이(고후 11:14), 이 사탄적인 운동인 뉴에이지 운동 역시 지극히 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운동이 이 세상의 파괴적인 현상을 치유하는 대안으로까지 여기고 있다.
New Age란? 3. New World Order - 구 시대의 낡은 질서 타파 (권위주의, 힘의 논리, 전통, 서구 중심, 기독교 사회) ⇒ 새로운 시대의 구세주 마야트레야 (미륵): ... 불교적 개념 ... 신비주의, 인간 영성의 확장 |
뉴에이지 운동은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New Age)를 여는 운동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 시대가 낡은 질서 속에 있는 낡은, 타파되어야 할 낡은 세계라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러면 그 타파되어야 할 낡은 질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온갖 권위주의적이며, 권력자들의 이득을 위해 싸움만 일삼는 힘의 질서다. 종교 문화적으로도 우수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이 있어 항상 지배, 피지배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질서, 지역적으로 말하면 서구 사회 중심의 질서이며, 종교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적 질서이다. 그래서 뉴에이지 운동은 본질적으로 반기독교적 운동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구시대에서 세상을 구할 구세주로서 적그리스도를 맞이하자는 것이 뉴에이지 운동이다. 그래서 뉴에이저들은 “마야트레야”에 대해 자주 말하곤 하는데, 마야트레야란 쉽게 말해서 “미륵” 부처다. 우리 나라를 비롯 동양인들에게는 쉽게 다가오는 불교 사상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신비롭고 새로운 사상이며, 이 세상의 새로운 대안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기다리는 마야트레야, 즉 미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이다.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그가 평화의 사도로 오는 자이며,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존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그가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리라.”(단 8:25)고 말씀한다. 분명 그는 파괴자일 것이지만, 그는 자신의 슬로건을 “평화”로 제시할 것이며, 사람들은 그 말에 속아 그를 참다운 평화의 사자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람들이 평화를 갈구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나, 오늘날 그 갈망은 어느 시대보다 더 크다. 인류는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 왔으며, 점점 커지는 전쟁 속에서 그 열망은 더욱 커졌다.
그러면 평화에 대한 갈망과 반기독교 사상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사람들은 이 둘을 한꺼번에 외치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뇌리 속에 “기독교 = 전쟁”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이 아프칸,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면서 반미, 반기독교 정서가 확산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이 외에도 십자군 전쟁이나, 제국주의 전쟁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반기독교 사상을 외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그러한 전쟁들은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며, 특히 십자군 전쟁은 로마카톨릭의 확장 정책에 기인한 것이기에 전혀 기독교와 관계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러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에이지 운동의 가장 큰 슬로건인 “평화”를 들여다 보면, 거기에는 반기독교적 정서가 가득차 있는 것이다.
2. 뉴에이지의 상징과 사탄주의
상징(symbols)이란 어떤 개념이나 추상적 사물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구상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떤 도표나 기호, 숫자 등으로 나타내는데, 신비주의자들에게 이러한 상징이란 일반인들에게는 감추어진 어떤 비밀스러운 이미지로 표현된다. 일반인들에게는 평범한 그림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기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밀스러운 집단, 예컨대 박해를 받거나 숨어서 지켜야 하는 종교 혹은 정치 집단에서 발달된다. 마녀들이나 마법사들의 경우, 그들의 의식은 일반인들에게 매우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신비스런 상징으로 표현해야 했다. 또한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단체들도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상징을 사용한다. 카톨릭에서도 다양한 상징들을 사용하는데 그 모든 것들은 비성경적인 것들이다.
때로 상징을 통해 더 깊은 진리를 표현한다고 하는 경우들도 있다. 예를들면 성경에 있는 단어들을 숫자나 특정 문자로 풀어서 코드화시킨 일명 “바이블코드” 같은 것들이다. 특정 단어의 숫자들을 조합해 보니 예수님이 나왔다, 적그리스도가 나왔다, 그들의 행적이 어떻더라, 인류의 미래가 어떻더라 하는 것들인데, 이는 절대적으로 비성경적인 것이며, 하나님께서 계시해 놓으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애매한 상징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자를 통해 그분의 무한한 진리를 계시해 놓으셨다. 만일 상징으로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특정한 사제들만 성경을 알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영지주의와 같다. 우리는 숫자나 기호 풀이를 통해서 적그리스도의 정체와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구체적인 구절들을 통해 밝히 드러난 계시로써 밝힐 수 있다. 따라서 신비스러운 상징적 기호는 성경적 기독교에서 전혀 필요가 없다. 십자가 형상도 기독교의 상징이 될 수 없으며, 물고기 상징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상징들을 왜 사용하는가? 그것은 이 운동의 본질적 모습과 드러나는 문화적 모습을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일반인들에게 이 운동의 본질을 알리게 되면 감히 동조할 수 없을만큼 끔찍할 것이다. 따라서 본질은 상징 속에 숨겨 놓고, 겉으로는 평화나 번영의 상징이라고 속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상징들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상징들은 다음과 같다.
1) 6각형 별(Hexagram)
이것은 흔히 다윗의 별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기로 사용되는 상징이다. 전설에서는 솔로몬 왕이 이 문양을 가지고 마귀를 내어 쫓기도 했다 하며, 그래서 이 문양은 하나의 부적이 되기도 한다. 뉴에이지에서는 삼각형이 위아래로 맞물린 이것은 이질적인 것들이 완전히 통합한다는 의미이다. 물과 불, 남자와 여자, 흰색과 검은색, 긍정과 부정,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등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뉴에이지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조화와 통합을 강조하니 언뜻보면 “평화”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따르면 선악의 구분도 없어지고, 하나님과 사탄의 구분도 없어진다. 또한 여기에 하나님(여호와)의 히브리어 이름(הוהי, YHWH)을 써 놓기도 하는데(이 네 자를 “Tetragrammaton”이라는 신비적인 이름으로 부른다.), 이러한 사탄적 문양에다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더욱더 신성모독적인 것이다.
2) 5각형 별(Pentagram)
이것은 우주의 신비를 담고 있는 상징이다. 이 별의 맨 위 꼭지점은 영혼을 상징하며, 나머지 네 꼭지점은 흙, 공기, 불, 물의 네 원소를 상징한다. 여기서 영혼은 성령이기도 하고 인간의 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곧 신이며 모든 것이 되고, 그것이 대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뉴에이지 상징이다. 그런데 이 별을 거꾸로 놓으면 뿔달린 염소의 모양이 나오는데, 이것은 고대인들이 숭배하던 사탄숭배의 한 형상이었다. 6각형별이나 5각형별은 목걸이로 잘 사용되는데, 그들 중에는 이 형상이 사탄의 상징임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알면서도 이 형상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가 사탄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사탄이 그만큼 세상 문화를 통해서 자신을 친근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 평화의 십자가 (튜튼 십자가, 네로의 십자가)
이 상징은 고대 튜튼족에게 죽음을 상징하는 고대 문자였다. 또한 로마 황제 네로는 베드로를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하는데(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와 같은 모독적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꾸로된 십자가 형상을 변형시킨 것이다. 그런데 1958년에는 대표적인 반기독교 지성인 버트란드 럿셀이 좌파들을 연합해 평화 행진을 벌이면서 이 기호를 사용하였다. 그때부터 이 문양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후로 모든 반전평화운동, 모든 인권운동, 모든 히피집회, 모든 동성연애자들 집회에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 상징이 등장한다. 이 경우 뉴에이지 운동의 표현은 “평화”이고, 본질은 “죽음”이다.
4) 태극 문양
우리나라 국기이기도 하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매우 익숙한 상징인 태극은 “음양의 조화”와 “우주의 에너지”라는 의미에서 뉴에이지의 상징이 된다. 음양의 조화는 선과 악을 가릴 것없이 조화와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사상이고, 우주의 에너지는 하나님을 부정한 상태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인간과 우주의 영적 흐름을 말하지만, 결국은 사탄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을 추구하는 것이다.
5) 그 외 여러 가지 문양들
6) 상징들의 특징들
- 이방 종교들과 연관되어 있다. - 이집트, 동양 종교, 변질된 유대교, 그리스 신화, 북유럽 신화 등.
∙신비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 동양의 신비로운 사상과 정신 세계가 반영되어, 인간 정신의 무한한 능력을 강조한다.
- 평화를 상징한다. - 평화와 조화와 통합을 강조하나, 이 경우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자유롭게 놔 두라.”고 외치는 자유이다. 죄를 짓든 악을 행하든. 그들에게 유일한 악은 통제 혹은 분열이며, 그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오히려 그들에겐 악이다. 그들은 끝없이 외친다. “보라, 우리가 이처럼 죄악 가운데 살아도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다.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이런 것을 “인류애”라 말한다.
- 상징 뒤에 감춰져 있는 것은 사탄숭배이다. - 하나님을 모독하고, 마귀를 높이며, 마귀의 뿔, 666, 죽음과 파괴 등이 숨어 있다.
3. 뉴에이지와 사탄적 문화
▶초절주의 명상과 신비주의와 초자연적 세계로 이끈 문학 운동 ▶신지학 신적 지식, 즉 영지주의의 현재적 이름 ↓ 모두 신비주의적 동양 종교에 영향받음 |
19세기 미국에는 두 가지 사상적 흐름이 생겼다. 하나는 에머슨, 쏘로우, 휘트만 등의 시인으로 대표되는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이고, 또 하나는 마담 블라바츠키로 대표되는 "신지학"(theosophy)이다. 초절주의(초월주의)는 삶을 초월하자는 의미가 있으며 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추구했다. 종교적으로는 청교도주의를 탈피하여 신비주의를 추구했다. 신지학은 신적 지혜, 다시 말해서 영지주의의 현대적인 이름이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동양종교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났는데, 미국으로 건너온 힌두교 구루(Guru)들의 활동을 통해 확장되었다. 이것은 현대 뉴에이지 사상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기독교 사회인 미국을 갑작스레 뒤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서구 사회를 바꾸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엉뚱하게도 히피(Hippie) 문화인 것이다. 히피(hippie)는 모든 사회적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운동으로서, 기존 사회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문화로 자리잡았는데, 찢어진 청바지와 통기타와 장발, 록음악 등으로 상징되는 이 히피 문화는 반전 평화 운동의 양상을 띠게 된다. 그런데 이 문화는 기존의 기독교적 전통질서를 파괴하기에 이르렀고, 그래서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들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평화”의 이미지를 동양 종교들에서 찾게 된다. 이로써 뉴에이지 운동은 대중 문화 속에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뉴에이지 운동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좀더 대중적인 문화적 접근이 필요했다. 히피 문화보다 좀더 온화한 이미지를 띤, 뉴에이지 운동의 목적인 평화와도 부합되는 이미지의, 그러면서도 동양의 신비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올 수 있는 분야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이다.
1) 뉴에이지 음악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뉴에이지 음악은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어서 너무나 대중적이 되었다. 록 음악은 싫고 클래식 음악은 너무 어려운 사람들에게 뉴에이지 음악은 차분한 뉴 클래식의 분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1990
년대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음악들이나 오늘날 이루마의 음악들은 유명한 뉴에이지 음악들이다. 그들의 음악들은 일단 차분하다. 어떻게 보면 발라드 풍으로 대중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 같지만, 비슷한 리듬을 반복함으로써 신비적 음색을 내어 꿈과 몽환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이 신비적 분위기는 인도의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TM)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조용한 명상이 아니다. 자아를 뛰어 넘어 우주로, 영계로, 자연으로, 신들에게로 나아가려는 그런 초월 사상을 갖고 있는 명상이다.
▶마법과 북유럽 신화를 가미한 “판타지 문학(영 화)”들도 뉴에이지 문화 의 한 형태이다. |
그리스 출신의 야니라는 뉴에이지 음악가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재즈 밴드를 섞고, 고전과 현대의 장르를 섞어가면서 연주하는데, 문제는 그의 사상 자체가 모든 것의 혼합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혼합이라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 혼합될 수 없고, 가치관들이 혼합될 수 없다. 절대진리를 버리고, 오직 인본주의만을 위해 자아를 버릴 때에만 혼합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그런 바탕 위에 세우려는 평화다. 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악을 제거하신 후 그분의 의로운 통치 가운데 화평을 이루신다 하셨다(사 2:4).
더 큰 문제는 오늘날 교회들에서 뉴에이지 음악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전자악기와 세팅 드럼 등으로 세상적 록 음악 형태의 복음성가들이 불려졌고, 기독교적 대중 음악인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 유행하게 되었으며, 결국은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을 CCM이나 복음성가로 채택해 사용해 버리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과 록 음악의 정신은 동일하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난다. 록 음악은 그 자체로 파괴적이다. 식물에게도 록 음악을 지속적으로 틀어주면 잘 자라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는 것처럼, 록 음악은 음파 자체가 파괴적인 것이다. 가사들이 자극적이고 마약, 자살, 폭력, 음행을 부추기며, 혹 가사가 건전하다 할지라도 음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청중을 충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록 음악은 대중에게 육신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대중에게 급작스런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례로 영국의 록 그룹 비틀즈는 마약을 퍼뜨리는데 일조했는데, 비틀즈의 음악이 인기를 끄는 것과 동시에 마약은 급속도로 번졌고, 마약을 규제하는 법률도 완화되어 갔다.
반면 뉴에이지 음악은 육신적으로는 크게 자극적이지 않다. 뉴에이지 음악을 듣고 자살하거나 파괴하거나 마약을 하거나 하는 사례들은 특별히 보고되지 않는다. 오히려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차분해지고 온화해지고 감수성이 풍부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더 큰 속임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록 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은 그 목적이 동일한데, 그것은 바로 청중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한다는 것이다. 록 음악은 파괴적인 성품으로 변하면서 하나님께 반항하게 되는 것이고, 뉴에이지 음악은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듦으로써 하나님 말씀의 절대진리를 부정하게 만든다.
2) 반전 평화 운동
음악으로 주도되는 뉴에이지 문화가 구체적으로 내 놓은 현상 중 하나는 반전평화운동이다. 이것은 참으로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뉴에이지와 아무런 관련없는 사람들도 전쟁은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온 인류의 염원일 것이다. 하지만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전쟁을 기존 세계의 가치관이 낳은 산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한 전쟁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관들을 파괴하려 한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많은 전쟁 속에 지쳐 있기 때문에 “반전평화”가 절대인 가치로 여겨질 정도이며, 전쟁만 없다면 모든 것들을 허용하고 싶은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전쟁만 없으면 무엇을 해도 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관들이 있기 때문에 설사 국가간에 확실한 조약을 맺어 전쟁을 금지한다 해도, 그 안에서 수많은 갈등과 싸움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갈등마저도 없애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가들이다. 어떻게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성적 갈등을 극복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 모든 것들을 용납해 주자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죄가 된다 하더라도 피흘리지만 않으면 용납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히피들이 이 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것이다. 동성연애자, 마약중독자, 성도착자, 인권운동가 등이 이 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오늘날 반전운동과 이들에 대한 인권운동은 함께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세상은 이러한 죄인들에게 너무도 관대하다. 왜 그런가? 뉴에이지 운동 영향 때문이다.
3) 동양 종교들의 문화적 접근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뉴에이지 문화 현상 중 하나는 “참선,” “요가” 같은 동양 종교의 유행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같은 동양인들에게는 전혀 “뉴”(new)가 아니다. 옛날부터 불교와 도교 문화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불교의 중들은 이 일을 계속 해 오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이 종교의 틀 속에 있지 않고 문화적 차원으로 부상해 있다. “도”(道)를 닦는 단체들이 늘어나고, “단”(丹)학을 연구하는 모임들, “마음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선”(禪, 참선)을 행하는 모임들, 건강 프로그램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요가” 등이 만연해 있다. 요가는 스트레칭 같은 건강 요법이 아니다. 그것은 인도에서 들어 온 종교이며, 정신 수양의 일종이다. 자신을 초월하여 우주의 기를 받으려는 혼적 달관의 한 방법인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종교적 명상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그들 모두가 그 종교의 신도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도들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인들도 가담하곤 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를 “초월”한 뉴에이지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도 명상을 하고, 태권도, 검도 같은 도장에서도 명상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뉴에이지 문화들이다.
오늘날에는 불교 절에서 “템플 스테이”라는 명목으로 전통 문화 체험을 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불교 행사이지만, 그들은 한사코 종교 행사가 아니라 문화 행사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뉴에이지 문화이다. 참선을 중심으로 한 모든 불교적 수행 방법은 뉴에이지 운동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4) 기독교 내에 들어 온 뉴에이지 운동
대표적인 것이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자기들 마음에 긍정적인 상상을 두고, 그 상상을 이뤄간다는 일종의 마인드 콘트롤이다. 뉴에이지 운동에서 이런 것을 “신사상 운동”(New Thought Movement)이라 말한다.
신사상 운동이란, 사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그것을 말로 발설하면 그 말이 실체를 만들며, 말한 그것을 소유하게 만들어준다는 주장을 하는 일종의 “종교 운동”이다. 이 운동의 핵심 교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신사상 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클로드 브리스톨은 <신념의 마력, The Magicof Believing>에서 “마음의 그림 그리기, 성공을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말하며 영상화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요즘 기독교인들이 바로 이 영상화에 푸욱 빠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독교계를 휩쓴 베스트셀러로서,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과 론다 번의 <시크릿>이 있다. 이 책들은 모두 그러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책들이다. 하지만 어떻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영상화를 시켰다고해서 건강해지고 부유해지고 성공할 수 있는가?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 어떻게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나 조엘 오스틴이나 론다 번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 안에 하나님이 내재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받은 성도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신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의 그 신적 능력까지 소유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영과 성령이 하나라는, 인간과 하늘이 하나라는, 인간의 영이 우주에 내제하는 그 거대한 에너지와 하나가 된다는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인 것이다. 그러한 사상이 하나님이라는 말과 기도라는 말을 적절히 삽입함으로써 마치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둔갑해 버렸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가족 중 일부입니다. 우리가 곧 세계입니다. 우리는 한 자녀들입니다...”라고 노래한 뉴에이지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노래처럼, 그들은 완전한 인류 통합을 추구하는 뉴에이지 정신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다. 그 정신은 또한 WCC가 추구하는 바로 그 정신이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성행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그것은 뉴에이지 운동의 기독교적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결 론
뉴에이지 운동을 한 마디로 묘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세계 평화 운동”이다. 그 운동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벌이는 평화 운동은 대환란 중 전3년반에 펼쳐질 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 모습과 일치한다. 적그리스도는 평화의 사도로 등장했다가 곧이어 무서운 파괴자로 변할 것이다(단 8:25). 작금에 벌어지는 모든 문화적 사조들을 보라. 얼마나 파괴적이고 얼마나 음란하며 얼마나 사악한가?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으며, 그것은 이 시대의 종말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마귀는 빛의 천사로 등장하기 때문에(고후 11:14), 이 악한 시대의 구원자로 자신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할 것인데, 그것이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해는 운동이다.
모든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세상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사랑하며 사는 것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마약중독자, 성도착자, 동성연애자들이 판을 치는데도 단지 전쟁만 안하는 세상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원하는 “뉴에이지”인 것이다. 하지만 그 세상은 곧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마귀의 세상이다.
다니엘서에 따르면 적그리스도의 특징 중 하나는 “평화”다. 적그리스도는 대표적인 뉴에이저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평화로이 입성할 것이고(단 11:24), 평화를 가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할 것이다(단 8:25). 또 하나는 그가 “때와 법을 변경”(단 7:25)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그 적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기존의 가치관들과 질서들, 혹은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에 심어 놓은 양심의 법들을 변경시키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새 시대는 이러한 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질서, 즉 적그리스도에 의해 변경된 새 질서를 통해 이룩되는 평화의 세계다.
▶진정한 뉴에이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다. |
하지만 그 세계는 결코 평화롭지 못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대환란 때는 전쟁들이 있을 것이고(계 6:4), 무엇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계 19:11-18). 진정한 “뉴에이지”는 적그리스도가 심판받은 후에 펼쳐질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이다. 그때 세상은 참으로 평화롭게 될 것이며, 전쟁이 그치는 것은 물론 자연계에까지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사 11장). 이것이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새로운 세상의 염원 아니겠는가? 전쟁도 없을 것이고, 굶주림과 질병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 다른 것이 있으니, 그곳에는 죄인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신들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세상 평화”를 추구하지만, 진정한 뉴에이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의 세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