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을 흐르는 망각의 강과 그곳에 머무는 망각의 여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구라도 그 강물을 마시면 살아있을 때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레테라는 이름은 ‘망각, 기억의 상실’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죽음의 신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에 망자들이 반드시 거쳐야할 다섯 개의 강이 흐른다고 믿었다. 고통의 강 ‘아케론(Acheron)’은 망자가 저승 입구에서 만나는 첫 번째 강이다. 그 강은 늪으로 가득차 있어 거의 흐르지 않았다. 망자는 뱃사공 카론(Chron)이 모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아케론 강을 건너며, 자신의 죽음에서 오는 깊은 고통을 천천히 씻어냈다. 비탄과 통곡의 강 ‘코키토스(Cocytus)’는 망자가 건너는 두 번째 강이다. 얼음보다 차가운 물이 흐르는 그 강에 망자는 모든 시름과 비통함을 내려놓았다. 세 번째 강인 ‘피리플레게톤(Pyriphlegethon, 플레게톤)’은 코키토스와 정반대인 불의 강이다. 뜨거운 열기에 물과 진흙이 끓어오르는 이 강에서 망자는 남아있는 감정들을 완전히 태워버렸다. 그 다음 만나는 것은 두려움과 증오, 우울함, 약속의 강인 ‘스틱스(Styx)’이다. 영혼과 죽음, 내세에 대해 다룬 플라톤(BC 429?~BC 347)의 ≪파이돈(Phaidon)≫에 따르면, 스틱스의 강물은 청금석(靑金石)과도 같은 검푸른 색을 띠었다고 한다. 하데스의 왕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했던 이 강의 위엄은 인간은 물론 신들조차 두렵게 했다. '레테’는 망자가 건너는 마지막 강이었다. 잠의 신 힙노스(Hypnos)의 산속 동굴 주변을 흐르는 이 강은 매우 고요했기 때문에 침묵의 강으로도 불렸다. 오비디우스 나소(OvidiusNaso,BC 43~AD 18?)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는 천천히 흐르는 레테 강의 속삭이는 듯한 물소리가 힙노스를 더욱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고 나온다. 죽은 자들은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웠다. 이를 영혼이 새로운 육체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보는 설도 있다. 문헌과 시대에 따라 강의 순서나 개수, 위치, 역할이 약간씩 달라지기도 했다. 정화의 공간인 피리플레게톤이 첫 번째 강으로 나오거나 레테와 스틱스의 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레테는 ‘망각’이나 ‘혼수상태’, ‘은닉’ 또는 ‘망각의 강’을 신격화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 진실의 여신 알레테이아(Aletheia)와는 반대되는 속성을 가졌다.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Pausanias, 2세기?)의 ≪그리스 이야기(DescriptionofGreece)≫ 등에 따르면, 보이오티아 지방의 트로포니오스(Trophonius) 신전에는 각각 레테와 므네모시네라 불리는 두 개의 샘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신탁을 구하러 찾아온 사람들은 반드시 레테와 므네모시네의 샘물을 차례로 마셔야 했다. 이는 이전까지의 복잡한 생각들을 잊어버리고 예언을 보다 분명하게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레테 여신의 가계(家戒)는 문헌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8세기?)의 ≪신통기(Theogony, 신들의 계보)≫에는 그녀가 분쟁과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Eris)의 딸로 나온다. 그에 따르면 고난·굶주림·고통·살인·거짓말·폐허·무질서·싸움 등은 레테와 한 뱃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2세기 작성된 위(僞) 히기누스(Hyginus) 문헌에는 레테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천상의 신 아이테르(Aether)의 결합으로 고통·사기·분노·비탄·맹세·복수·두려움·자만·게으름·언쟁 등과 함께 태어났다고 적혀있다. 한편, 레테가 제우스와 결합하여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