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합시다.
“사람은 사람이고, 원숭이는 원숭이다.”
사람과 원숭이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사람의 존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시편 49편 20절에『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존귀함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지 못하고 살면 우리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물건의 값은 사람이 매기지만 사람의 값은 자신에 의해 매겨집니다. 나의 가치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고 자기의 품위와 자기의 길을 지켰다면, 그들은 왕 같은 존귀한 자리에서 계속하여 에덴을 즐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천박하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으니 그 하나를 먹고 낙원을 잃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잘 지켜 세워나가 존귀하게 살면 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하늘의 별처럼 존귀한 사람도 함부로 살면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30년간 무사고로 표창을 받은 운전기사 분에게 무사고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가속 페달을 밟고 싶을 때면 늘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손님들이 빨리 가자고 채근하고 재촉할 때 저도 빨리 달리고 싶은 충동을 받습니다.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 때마다 ‘이러면 안 되지.’하고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래서 30년 무사고 운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 합시다.
“마음의 브레이크”
선악과를 따먹고 싶을 때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하고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다이어트를 합니다만 특히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요거 하나 먹었으면……’하는 마음이 들 때 ‘아니지!’하고 브레이크를 꽉 밟아야 합니다. 어제 설교를 준비하다가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더니 맛있는 곶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이 곶감으로 저절로 가는데 마음이 ‘그러지 마라,’라고 해서 먹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브레이크를 잘 잡으니 날씬합니다. 마음의 브레이크가 중요합니다.
우리 집사님 한 분은 아들이 고3이 되니 마음이 바빴습니다. 과외를 시키려는데 돈이 많이 드니 십일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3 1년간만 십일조를 아들에게 투자하자.’라고 생각하고 그 돈으로 과외를 시켰습니다. 명문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명석한 아이가 가을 들어 성적이 자꾸 떨어지더니 명문대학에는 원서도 못 내고 몇 개 대학에 원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 집사님이 무릎을 꿇으니 십일조를 과외비로 쓴 것이 걸려 마음이 아팠습니다. ‘십일조로……’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집사님은 마음의 브레이크를 잡았어야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브레이크를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아담과 이브가 마음의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선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 열매를 먹지 않았으면 얼마나 귀하게 살았겠습니까? 따 먹고 나니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마음이 깜깜했습니다. 하나님께 달려가 하나님과 손잡고 산책하던 그들이었는데 부끄럽고 창피해서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고 도망 다녔습니다.
사람이 당당하게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남편 앞에 떳떳한 아내, 아내 앞에 떳떳한 남편, 자식 앞에 떳떳한 부모가 행복합니다.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모, 남편에게 부끄러운 아내, 아내에게 부끄러운 남편으로 사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거친 땅에서 가시덩굴과 싸우고 엉겅퀴와 싸우면서 영원히 사는 것이 복이겠습니까? 그것은 저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보면, 제우스의 딸인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이 세상에 여행을 왔다가 기 막하게 잘 생긴 청년을 만납니다.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합니다. 에오스가 제우스에게 남편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구하니 제우스가 허락을 합니다. 그러니 남편은 늙어는 가는데 결코 죽지는 않습니다. 에오스는 점차 쇠약해져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늙지 않게 해달라고 구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도서 6장 3절에『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그들을 쫓아내신 후 에덴 동편에서 토지를 갈아 먹고 살게 하시고 천사를 통해 그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많은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 합시다.
“즐겁게 살아야 한다.”
괴로워하고 찌푸리고 심각하게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겁고 기쁘게 살도록 만드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립보서 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요한일서 1:4)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15:11).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 8:10) 할렐루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조금 기뻐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꽉 찬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기뻐할 때 우리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우리에게 힘이 나는 것입니다. 기뻐하며 힘 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뻐할 때 모든 것이 잘 됩니다.
남가주 대학의 심리학교수인 골든 박사는 40년간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습니다. 그가 교단생활을 마감하면서 쓴 회고록에 흥미 있는 글이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 중에서 탁월한 제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걸음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공부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고 언제나 교수에게 몰입한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도 보면 복 받는 사람은 눈이 목사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넷째는 언제나 긍정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언제나 얼굴에 기쁨과 미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결국에는 다 성공하더라는 것입니다.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우리 교회를 떠나가신 지 십 수 년이 되신 귀한 집사님이 지난 번 저희 아들의 결혼식에 오셔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분은 저와 제 아내가 늘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귀하게 여기는 분입니다. 그분은 항상 웃습니다. 교회에서도 웃고, 심방을 가도 웃고, 길에서 만나도 웃고, 항상 웃습니다. 아마 그분은 주무시면서도 웃으실 것 같습니다. 항상 미소가 가득하고 행복한 얼굴인 그분은 결혼 전에 간호사로 일하셨는데 그 때도 늘 행복한 얼굴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 모 회사의 회장님이 입원을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웃는 얼굴로, 기쁨으로 환자들을 섬기는 그의 모습에 이 회장님이 크게 감동을 받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지금 그분은 모 회사의 사장 부인이십니다.
따라 합시다.
“웃으면 시집도 잘 간다. 웃으면 팔자도 핀다.”
그리고 우리는 기뻐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교회에 오면 즐거움을 누립니다. 할렐루야! 은혜가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가슴이 뛰는 것입니다. 막 가슴이 뛰는 것입니다.
또 말씀이 기쁨입니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시편 119:24)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시편 119:77)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편 119: 92)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편 119:10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1~2)
최고의 기쁨이 말씀입니다. 가장 큰 기쁨은 말씀 묵상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루 중 가장 기쁜 시간이 예배 시간이고 그 다음 기쁜 시간은 성경 읽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도 기쁨이고, 말씀도 기쁨이고, 하나님도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슬퍼할 일이, 짜증낼 일이 없는 것입니다. 내 아들이 50명 중에 24등을 해도 1등부터 23등을 생각하면 스트레스지만, 건강하게 학교에 잘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습니까? 내가 밥이 없어서 죽을 먹어도, 죽도 못 먹는 상황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경대로 살면 다 기쁘고 감사한 일뿐입니다. 할렐루야! 기뻐서 못 견디는 것이 성도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삶이 기쁨이어야 합니다. 기쁨이 없으면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은 우리는 교회에서도 기뻐하고, 가정에서도 즐거워하고 일터에서도 즐겁게 일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감사한 일은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아담 이후 모든 사람에게 차단하셨지만, 예수님 이후에는 그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써 세상에 죄가 들어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5절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가 짓는 몇 가지 죄 때문이 아니라, 아담 이브 때부터 시작된 원죄를 포함해서 우리가 짓는 모든 크고 작은 죄, 우리가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용서하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죄가 십자가의 보배 피로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저주가 끝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죽음의 동네에서 생명의 동네로 옮겨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완료형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지금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고, 이미 완료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내 감정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교수이신 한 장로님이 제게 “목사님, 저는 교회를 다닌 지는 35년이 되었고 장로가 된 지는 10년째이고,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믿은 지는 3년이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을 때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한 것이 거짓말이었습니까? 장로 서약을 할 때 거짓말로 서약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3년 전에 특별한 은혜를 받아 특별히 기쁜 감정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감정이나 자기 기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예수님 안에서 구원 받을 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기분은 자꾸 바뀝니다. 오늘 은혜를 받아서 감격하면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은혜 받고 나에게만 구원의 감격이 있는 것처럼 흥분하다가 한 달 뒤에 또 죄를 짓고 나가떨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감정에 따라 살면 불안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면 변함이 없습니다. 한결같습니다. 할렐루야!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판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 위에 서면 불완전한 믿음이 완전해지고 비로소 주를 바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 위에 서 있는 믿음은 불안합니다. 좋아하다가 슬퍼하다가 기뻐하다가 또 나가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위에 있는 사람은 꾸준합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우리 손을 딱 잡고 있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서 저와 여러분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영생나무가 되시어 우리에게 떡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영생하는 길이다. I am the way.”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영생나무로 가는 길인 동시에 생명의 나무고,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35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이 되고, 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세례가 되고, 구약의 피, 소피, 양피 제사가 신약에서 예수님의 피로 바뀐 것처럼 현재 이 성령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떡으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 보면 물론 천당에는 강 좌우의 생명나무에 열두 가지 실과가 맺혀 달마다 그 실과를 우리가 즐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현재는 예수님께서 생명나무이십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살아있는 떡, 생명의 떡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떡이 무엇인가 하면 말씀이고, 또 성찬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54, 55절에『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생명과일을 따 먹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합니다. “와!”하고 세상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며 살아야 할 만큼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영생을 확보한 사람답게 좀 굵게, 담대하게, 크게, 빛나게 살아야 됩니다. 흐지부지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6장 56, 57절에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해 살리라”
이것은 굉장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위대한 삶을 하나님의 힘으로 사셨던 것처럼 생명나무 떡을 먹은 우리는 내 힘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말씀입니다. 이제는 지용수가 지용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종합병원에서는 아침마다 회진을 합니다. 과장, 수련의, 그리고 간호사들이 쭉~ 병실마다 다니며 “밤새 안녕하셨어요? 어떠세요? 곧 좋아질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그 시간이 딱 1분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어떤 환자는 감격해서 웁니다. ‘저 훌륭한 의사 선생님들이, 저 훌륭한 간호사님들이 나를 위해 저렇게 애쓰니 내가 좋아질 것이다‘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면 치료가 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회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루 1분간 “아무개야! 잘 해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1분간 우리를 만나주시고 또 다음날 아침 1분간 만나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계십니다. 항상 계십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게 힘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는 것입니다. 집에 천억을 두고도 거지처럼 사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가득 안고 있으면서도 내 모습으로, 나대로 산다면 가련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산을 바다에 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큰 비전을 가져야 됩니다.
‘목사님! 제 나이가 70인데 무슨 비전을……’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70이라도 ‘금년에는 50명 전도해 보자. 아니, 100명을 전도해 보자. 이 영근 장로님, 박 상수 장로님처럼 나도 한 번 해 보자.’하는 생각이 비전입니다. 한 달에 십일조를 백만 원 하는 사람은 ‘하나님! 저도 십일조를 오천만 원, 일억 원 하게 해 주세요.’하는 것도 비전입니다. 회사의 말단 사원이 ‘하나님! 저도 회사의 기둥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도 비전입니다. 그리고 비전대로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어릴 때 오스트리아에서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몹시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그는 세 가지 꿈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노력했습니다.
첫째, 나는 영화배우가 된다. 둘째, 케네디가의 여자와 결혼한다. 셋째, 2005년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다.’
그는 할리우드의 배우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꿈이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서 배우가 되었고 가난한 집의 아들로 명문가인 케네디가의 딸과 결혼했고 2003년도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기가 많은 배우라서 주변에 많은 여자들이 우르르 따라 다녔지만 ‘나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될 사람이다.’하고 자기를 지켰습니다.
꿈을 갖고 사니 주지사의 꿈을 2003년도에 이루었습니다.
따라 합시다.
“꿈이 있으면 타락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될 꿈을 지닌 사람이라면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만남을 조심해야 하고, 대통령이 될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맑고 아름다운 꿈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Dream comes true.” 꿈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양곡교회가 2010년도에 10만 명을 구원하게 될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 10만 명이 되지 않으면 2015년까지 미룰 것입니다. 그런 꿈을 꾸니 제가 그만큼 말씀을 준비하며 목회자로서 자신을 가꾸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에서 성회를 인도했지만 하나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에 네 번째 갔는데 그 큰 교회도 제게는 작게 보였습니다. 작은 저이지만 주님의 힘으로 서고 주의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니 백만 명이 모여도 괜찮습니다.
따라 합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내가 지금은 구멍가게를 해도 꿈을 가지면 앞으로 백화점도 할 수가 있는데 꿈을 꾸지 않으니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그 다음에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젊었을 때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가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라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네, 나 혼자 해야 되겠네,’하고 그 수레를 끌고 혼자서 땀을 흘리며 힘들게 겨우겨우 올라가는데 갑자기 수레가 가벼워지고 쭉 올라갑니다. 뒤돌아보니 사람들이 수레에 여럿이 붙어서 밀어줍니다. 그때 그는 ‘사람들이 도와주기만을 바라면서 가만히 있을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만 내가 힘써 일하면 너도 나도 도와주는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제 친구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대학교 배지를 그려놓고 “아버지, 어머니, 이게 제가 갈 대학입니다.”라고 하면서도 공부는 하지 않습니다. 서울대학은 고사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갔습니다. 꿈을 세웠으면 거기에 걸맞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도 도와주고 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이 잘 되지 않아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한 가지 뜻을 가지고 그 길을 가라.
잘못이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길을 가라.”
에드먼드 힐러리라는 등산가는 1940년에 야망을 가지고 에베레스트를 올랐으나 정상을 정복하는데 실패하고 내려오면서 산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산아! 너는 자라지 못해. 너는 키가 더 이상 크지 않아. 하지만 내 실력, 내 경험, 내 장비는 계속 커 갈 것이다. 나는 다시 온다. 너를 정복한다.”
그리고 1954년 5월 29일, 마침내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물러서면 안 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하나님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내가 올라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맞추어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한 것은 정상에 올라갔을 때, 꿈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를 맞아 싸우려고 군사를 모으니 3만 2천명이 모였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내라. 너무 많다.”
“하나님, 미디안의 수가 훨씬 더 많습니다.”
“아니야, 이 많은 사람들이 싸우면 자기들 힘으로 미디안을 꺾었다고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래서 3백 명만 남겨놓고 다 집으로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니 3백 명이 미디안의 그 수많은 군사를 무찌르고 승리합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 싸우셨도다. 하나님께서 하셨도다.”
우리 교회가 십만 명이 모여도 “하나님께서 하셨도다.”
한 달에 십일조를 일억 해도 “하나님께서 하셨도다.”
아들이 대통령이 되어도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것이 가장 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때 겸손할 수 있고 계속 정상을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영부영하다가 서른이 넘고 어영부영하다가 시부모가 되고 어영부영하다가 세상을 떠나갑니다. 인생은 편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 있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서 편히 쉬고, 이 땅에서는 열심히 무언가 이루어서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꿈을 일으켜 주시기 바랍니다. 열심을 일으켜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5년 뒤, 10년 뒤에 그 꿈을 이루고, “아, 그때 그 말씀에 힘을 얻어 내가 이렇게 꿈을 이루었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