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작사 : 페니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
작곡 : 푀브 냅(Phoebe Palmer Knapp, 1839~1908)
이 찬송가의 작사자는 그 유명한 크로스비 여사이다. 그녀는 생후 6개월에 열병으로 치료를 잘못 받아 평생을 장님으로 살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크로스비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지 일 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크로스비는 15세에 뉴욕의 맹인학교에 들어갔는데, 이미 그때부터 그녀의 비범한 시작(詩作)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대외적인 행사나 기념일을 위해 쓴 시들은 외부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사실이 뉴욕 타임즈에서 기사화되자 많는 작곡자들이 크로스비에게 작사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당시 작사. 작곡으로 명성을 떨쳤던 조지 루트(Gorge. F. Root)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뉴욕 머서 가(街)의 ‘나그네 교회’(Church of the Street)에서 반주자로 그리고 뉴욕 유니온 신학교수로 활동하고있었는데, 크로스비의 소식을 듣자 그녀에게 ‘꽃 여왕’(The Flower Queen)이라는 자유시 한편을 작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루트는 그 가사에 곡을 붙이고 1852년에 출판해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때 크로스비의 나이 32세 때였다. 1858년 38세 때 그녀는 같은 맹인학교 교사이자 학자, 그리고 음악가인 알렉산더 반 알스타인(Alexander van Alstyne)과 결혼하여 평생 서로를 돕고 격려하며 살았다.
크로스비가 처음으로 찬송시를 작사한 것은 그녀가 44세 되던 때였다. 1864년 2월 5일, 유명한 작곡가 윌리엄 브래드버리가 그녀를 찾아와 자신이 작곡한 곡에 붙일 찬송시를 작사해 줄 것을 부탁했다. 크로스비에게 있어서 당대의 가장 유명한 대가요 거장인 찬송가 작곡가 브래드버리의 방문과 청탁은 엄청난 감격이었다. 그녀는 청탁에 응했고, 그렇게 시작한 찬송시 작사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어 작품수가 거의 8,000여 편에 달하였다.
크로스비가 53세 되던 해인 1873년 그녀는 한 친구를 사귀었다. 그 여자는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회사의 설립자이자 굴지의 백만장자였던 조셉 냅(Joseph Kmapp)의 부인인 푀브 팔머 냅 여사였다. 냅 부인은 작곡자이자 자선사업자였는데 그녀도 브래드버리가 1864년에 그랬던 것처럼 크로스비를 찾아와 자신이 이미 작곡한 곡에 맞는 찬송시 하나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당시에는 찬송시에 곡을 붙이기도 하였으나 곡이 먼저 작곡되고 그것에 가사를 맞추는 경우도 많았다. 냅 부인이 크로스비 여사에게 자신의 곡을 피아노로 쳐서 들려주자, 크로스비는 불현듯 지난밤 목사님으로부터 들었던 설교 메시지와 성경구절(히브리서 10장 22절)이 떠올랐다. 그녀는 즉시 가사를 써서 냅 부인에게 건네주었는데, 그 찬송시가 바로 위의 찬송시이다.
해설
1절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①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예수님을 단순히 훌륭한 선생이나 종교의 창시자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행전 4:12
또한 로마서 10:9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믿음과 구원을 연결합니다.
따라서 이 첫 구절은 구원의 출발점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②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표현입니다.
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히브리서 9:11~12
그리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따라서 이 가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새 생명을 얻어 거듭난 사람
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③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영광은 죽은 후에만 누리는 영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현재에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고린도후서 3:18
그리고 장차 완전한 영광에 들어갑니다.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4
그러므로 현재의 은혜와 미래의 영광을 함께 바라보는 표현입니다.
후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이 후렴은 이 찬송의 신앙고백의 핵심입니다.
①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간증은 단순히 자신의 체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요한계시록 12:11에는 성도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승리했다고 기록합니다.
성도의 간증의 중심은 내가 무엇을 했느냐보다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무엇을 하셨느냐입니다.
②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구원받은 사람의 찬송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는 찬송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7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찬송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③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평생의 신앙 결단입니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 시편 104:33
또한 시편 146:2도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후렴은 구원받은 성도의 평생의 목적을 잘 나타냅니다.
2절 온전히 주께 맡긴 내영 사라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 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①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맡김과 신뢰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인생과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편 37:5
베드로전서 5:7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②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이 부분은 찬송의 역사적 가사에서는 일반적으로 “His voice”, 즉 주님의 음성을 듣는 중에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신앙적으로는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여기서 핵심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③ “천사들 왕래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히브리서 1:14
그러나 이 가사를 현재 실제로 천사를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성도의 영적 시선이 세상의 것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고 고백했던 장면도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7:55~56).
3절 주 안에 있는 기쁨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 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과 자기 부인의 신앙을 노래합니다.
① “주 안에 있는 기쁨으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환경에만 의존하는 기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1
바울도 감옥에 있으면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했습니다(빌립보서 4:4).
따라서 주 안에 있는 기쁨은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②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성경에서 풍랑은 인간의 두려움과 고난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실 때 큰 풍랑이 일어났지만,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태복음 8:26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자연현상의 기적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풍랑 가운데서도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③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이 표현은 세상 자체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의 욕심과 자기중심적인 자아가 주님의 영광 앞에서 작아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또한“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3:2고 합니다.
즉 자기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④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 찬송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를 구속하신 예수님만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2:2는 성도의 시선을 명확하게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라고 표현합니다(빌립보서 3:10).
결국 신앙의 중심은 내 체험이 아니라 나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를 확신하고 자신의 삶을 주께 맡기며, 세상의 풍랑 가운데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고, 평생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찬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