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녀이혼(倩女離魂)
당대에 왕주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한 동네에 사는 천녀란 여인을 사랑하였다. 천녀 역시 왕주를 연모하였다. 그런데 지방에 새로 부임한 관리가 천녀의 미모에 반하여 부친에게 결혼을 청하였다. 부친은 그의 딸을 관리에게 시집 보내기로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왕주는 매우 실망하여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배를 타려고 하는데 자기를 부르는 천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둘은 결국 멀리 도망가서 5년 동안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천녀가 어느 날인가부터 이름 모를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기를 시작하였다.
왕주는 고향을 방문하여 용서를 빌고 결혼의 승낙을 받기로 결심하고 천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는 깜작 놀랐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인 천녀가 지난 5년 동안 병으로 앓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병든 천녀는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마당으로 나와서 왕주와 함께 살아온 천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천녀는 서로 만나는 순간에 하나로 합하여졌다는 설화이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법연화상의 천녀리혼이란 화두공안(話頭公案)이 등장한다. 어느 쪽의 천녀가 진짜인가, 집안에서 병든 천녀인가, 아니면 왕주와 함께 한 천녀인가, 이것이 오조법연(五祖法演) 스님의 질문이다.
몸은 집안에 있었고, 또 마음은 배를 타고 왕주와 함께 한 설화이기에 현실적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화두(話頭)로서는 충분하다. 몸과 마음 중에서 어느 쪽이 진실한 것인가를 묻는 질문과 같다.
무언가 답이 떠오른다고 해도 그것은 옳은 답이 아니다. 설사 법연스님이 어떤 의도로 천녀이혼을 화두로 삼은 것인지를 알아차린다고 해도 화두란 알음알이를 벗어나는 안내표지판에 불과하다.
이러저러한 말을 통해서 화두가 지닌 의미를 알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화두의 생명력이 없는 죽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닭이 알을 품듯이 스스로 화두를 깨친다면 그것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자신의 일부로써 존재하게 된다.
화두가 무아의 진리로 인도하는 안내표지판과 같음을 이해했다면 화두에 대하여 구구절절한 설명으로 정답을 찾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들이 화두를 품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화두의 '화' 자도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며, 그러므로 화두란 품는 것이지 수학문제 풀듯이 정답을 알아맞추는 것이 아니다. 닭은 알이 필요해서 죽자고 품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첫댓글 몸 없는 마음을 귀신이라 하고 마음 없는 몸을 시체라 한다. 나는 시체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 몸과 마음이 하나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