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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스크랩 전라도가 한 상에, 전주 여행
킴스특허 추천 0 조회 9 09.06.01 21: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맛과 감흥을 전통으로 버무리다, 전주

 

 

화려했던 전주의 5월 축제가 모두 끝났다. 모든 축제가 그러하듯 전주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다른 도시의 축제에 비하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전주 축제는 보고, 들으며 느끼는 감동 이상으로 먹고, 마시면서 몸으로 스며드는 한국적 정서가 진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축제 내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몸과 가슴을 한국적 정서로 가득 채워준 전주의 맛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고즈넉한 멋. 그 여운을 좇아 평온한 일상을 보내며 또 다른 축제를 준비하는 전주를 찾았다.

 

 

 

 

88서울올림픽 당시 정부는 우리나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자 전통 문화와 기념품 홍보 자료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이 끝난 후 외국인들이 그들의 기억에, 짐 보따리에 담아간 것은 엉뚱하게도 ‘컵라면’이었다. 짧은 일정 속에 오며 가며 접하게 된 맛의 기억은 그 어느 문화나 기념품보다 강렬했던 것이다. 불과 컵라면 하나에도 감동하는 입맛일진대, 우리나라 맛의 일번지라는 전주의 다양한 먹을거리가 흥을 돋우는 축제라면 어떻겠는가? 지난달 열린 전주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한 결정적 콘텐츠는 먹을거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서 먹은 비빔밥이 워째 전주비빔밥인감?
오늘날에는 전주비빔밥을 전통 음식이라 말하면서 왕이 국사에 바쁘거나 사냥을 나갔을 때 간편히 먹기 위한 음식이었다고 강조하지만, 한때는 거지들이 동냥밥과 반찬을 한데 받아먹은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었을 정도다. 이렇게 전주비빔밥이 한끼 가볍게 때우는 자장면과 동급으로 전락한 데는 확실한 조리법이 전래되어지지 않은 까닭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번 맛본 이가 대강 그 맛을 흉내 내어 ‘전주비빔밥’이랍시고 내놓는다 한들 누구도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 없었고, 결국 그렇게 전주비빔밥은 실체가 없는 음식으로 존재해 왔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몇 해 전 전주시가 전주비빔밥의 브랜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 표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몇 개의 지정업소를 선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주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가족회관(063-284-2884, www.jeonju-bibimbap.com)을 찾았다. 하필이면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 주인장인 김년임 할머니가 축제가 끝나자마자 일본 행사에 참석하느라 식당을 비운 상태인 것이 아쉽다. 1만원 하는 전통 전주비빔밥을 시켜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유기 그릇. 전주돌솥비빔밥도 있지만, 전통의 전주비빔밥은 오직 유기 그릇에 담긴 것만을 말한다. 이 유기 그릇 안에 담기는 재료는 각 식당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전주시가 통합 규정한 재료는 오롯이 담겨 있다. 우선 주재료는 밥과 콩나물, 황포묵, 쇠고기, 육회 또는 육회 볶음, 고추장, 참기름, 달걀이다. 부재료는 깨소금, 마늘, 후추, 무생채, 애호박 볶음, 오이채, 당근채, 쑥갓, 상추, 부추, 호두, 은행, 밤채, 잣, 김 등이다. 계절에 따라 부재료가 바뀔 수는 있지만, 대략 30가지 전후의 재료가 들어가야 제대로 된 전주비빔밥이라 할 수 있다. 나물이 잘 섞이도록 젓가락으로 설겅설겅 비빈 후, 한입. 많아야 10가지 재료가 채 넘지 않는 서울의 ‘전주비빔밥’에 익숙한 사람에게 수 십가지 재료들이 혼합되어 자극하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일일이 분석하여 표현하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전라도가 한 상에 오르니, 상다리 부러지것다!
전주의 한정식은 유기 반상기를 사용하며, 전주 8미를 곁들인 12~13가지 반찬에 4~6가지 별미 재료의 반찬이 오르는 것을 말한다. 전주비빔밥의 재료도 마찬가지지만, 전주가 이토록 풍성한 재료를 한 상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서해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과 나주 평야의 새하얀 햅쌀, 강과 들판, 지리산에서 채취한 온갖 나물들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도 왜 하필 전주의 한정식이 유명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전주가 조선 왕조의 발원지인 데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시내에 자리한 경기전 慶基殿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모셔진 곳으로, 그 규모는 경복궁에 비교해 턱없이 작지만 왕의 위엄과 그에 따른 신하들의 예우는 결코 왕궁에 견주어 손색이 없었다. 경기전 앞에는 하마비 下馬碑가 서 있는데, 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곳에 비록 왕이 없다 할지라도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지나가야 했을 정도. 지방이지만 수도만큼이나 왕의 권위가 살아 있었으니, 왕의 후광을 업고 있는 이 지역의 사람들이 타 지역보다 더 권세와 영광, 부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을 연 지 50년 된, ‘백제 땅의 주막’이란 의미를 가진 백번집(063-286-0100, www.100foodhouse.com)의 주환 대표는 한정식이 궁중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를 밝힌다. “궁중 음식은 민가 음식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왕족이 사대부가와 혼인한 데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혼인을 통해 사대부가로 전해진 궁중의 생활양식을 비롯한 모든 문화가 다시 민가로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1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양념을 포함하여 대략 30가지. 서울에서는 결코 이 맛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2 전주의 유명 식당은 여전히 직접 담근 장을 사용한다. 장맛이 곧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3 전주가 먹을거리로 풍족했던 이유는 인근에 넓게 펼쳐진 나주 평야가 있기 때문이다. 나주 평야를 뒤덮은 5월 청보리. 4 전주 오모가리탕은 민물고기 매운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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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원에 2인 한 상이 차려지는 백번집의 한정식에 오르는 찬은 대략 14가지. 우선 김치는 물김치와 배추김치에 파김치, 열무김치, 고들빼기, 갓김치, 오이소박이, 섞박지, 부추김치 중 2가지 김치가 오른다. 나물은 미나리, 가지, 숙주, 취나물, 머위, 고사리, 무나물, 냉이나물, 호박 등의 삼색 나물과 콩나물겨자잡채, 탕평채(황포묵), 들깨 즙탕(머위대, 토란, 진채 등)이 오른다. 여기에 토화젓과 진석화젓, 간장 장아찌, 참게장, 김부각, 멸치자반, 조기구이와 대합구이, 민물새우탕, 홍어찜, 섭산적, 아롱사태편육, 육회, 신선로 등이 오르며, 마지막으로 토장국이나 생합국이 오른다. 거짓말 보태 밥알을 세면서 먹는다 해도 반찬이 남을 정도. 여기에 전주 이강주까지 곁들이면 식사 시간이 길기로 소문난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진이 빠질 정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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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잔말 안허시고 처드신 국밥이여!
진수성찬도 매일 먹으면 지겨운 법이라 다른 먹을거리가 없을까 하여 둘러보니, 시내 곳곳에 간판을 내건 ‘콩나물국밥’집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국밥집이라고 하기에는 주차장을 두 개나 갖추고 있을 만큼 큰 삼백집(063-284-2227, http://pusanfood.com/w_sambak)을 들렀다. “매년 다양한 축제가 거듭되면서 콩나물국밥은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한자리에서 세 그릇을 해치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삼백집을 운영하고 있는 조정래 대표 역시 원래는 삼백집을 자주 찾던 손님이었다. 본래 손맛의 장인은 故 이봉순 할머니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맛이 사라질 것이 안타까워 아내가 할머니에게 요리법을 전수받고, 그가 가게를 인수하여 오늘날까지 그 맛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전주에서 욕쟁이 할머니로 더 유명했던 이봉순 할머니가 직접 만들 때만 해도 콩나물국밥은 새벽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서민 음식으로, 당시는 정확히 300그릇만 팔았다. 다음 날 새벽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삼백집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그저 평범했던 음식이 유명하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전주를 방문하여 이곳을 찾은 일화가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늦은 밤 전주에 도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저녁을 먹으려 했으나 이미 모든 음식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그나마 일찍 장사를 시작하는 삼백집이 유일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방문했기에 대통령일지라도 할머니에게 욕지거리 한 사발을 먼저 얻어먹는 것은 당연했다. “그놈 참 누가 보면 영락없이 대통령인 줄 알것다. 옛다, 계란이나 하나 더 처묵어라!”


6000원이면 푸짐한 상차림을 받을 수 있는 삼백집의 콩나물국밥은 멸치와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깨소금으로 맛을 낸 육수에 콩나물을 넣어 끓인 후 계란을 띄우기에 재료만 봐서는 타 지역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맛은 훨씬 담백하고 부드럽다. 여기에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고 직접 달여 만든 ‘모주’를 함께 하는 것도 일미라 하겠다.

 

 

 

아야, 비 온다. 언능 매운탕 올려라!
전주 한옥 마을을 천천히 걷는데,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낯선 도시라 마땅히 비 피할 곳도 없고 하여 아쉬워하며 한옥 마을을 빠져나오다가, 한옥 마을 언덕 아래 자리한 전주천 뚝방길 옆에서 중·장년의 어르신들이 천막 아래 평상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쏟아지는 빗속에서 세월을 노래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무엇인가 궁금하여 차를 세우니 ‘오모가리탕’이라 쓴 간판이 몇 개가 늘어서 있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하여 네 곳 중 한벽교 바로 아래 자리한 한벽집(063-284-2736)의 평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평상 귀퉁이에 앉아서 비 내리는 전주천을 바라보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내 대신 식당을 향해 주문을 한다. “아야, 오모가리 하나 올려라.”
빗속에서 심심한 젊은 길손의 말동무가 되어준 이 분은 한벽집의 주인인 박연성 할머니다. “전쟁이 끝나고 군산에서 이리로 시집왔제. 당시는 너무도 가난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냇가에서 피리(피라미)를 잡아 오모가리에 매운탕을 만들어 파는 게 전부였어. 그게 오모가리탕이여.” 서울 오모가리가 김치찌개라면, 전주 오모가리는 민물고기 매운탕인 것이다. “전쟁 직후라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는 거의 없었던 시절이제. 비라도 오면 일감은 더 줄어들고, 그래서 비 때문에 공친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한 사발의 막걸리와 한 수저의 얼큰한 매운탕에 시름을 털어낸 것이여. 지금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이면 일부러 이곳을 찾아와.”


스물세 살에 처음 만든 매운탕과 여든이 넘어 만드는 매운탕은 많은 차이가 있다. 과거와 달리 오모가리에는 피라미만 있는 게 아니라 붕어, 빠가사리, 메기, 쏘가리 등 다양한 민물고기가 들어가고, 여기에 잘 볶아진 우거지와 미나리, 들깨와 고춧가루가 풍부하게 들어간다. 과거에는 매운탕에 어울리는 술이 막걸리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 역시 소주와 맥주로 바뀌었다. “뭐, 전통이란 게 별거 있는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다 보면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먹고살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지.”


전통과 변화가 공존할 수 있을까? 박연성 할머니의 말처럼 오늘날 전통 음식들은 단지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각 시대의 사람들의 입맛을 맞춰오며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했기에 ‘전통’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전통은 변화와 상반관계가 아니라 변화에 적절히 순응했을 때 얻어질 수 있는 결과인 것이다. 지금의 전주 맛을 꼭 기억해 두자. 언젠가 스스로 세상의 변화에 뒤처지는 때가 오면 지금 맛본 ‘전통’의 맛을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3 서해부터 지리산까지, 전주의 식재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바다와 들, 산에서 수확되었다. 4 전주 음식을 먹을 때 전주 토속주인 이강주를 곁들이면 좋다. 5 콩나물국밥은 소고기 장조림을 얹어 먹기도 한다. 6~7 전주 구한옥 마을의 골목길에서 만난 담장과 장독대가 정겹다. 


 

 
<출처;tong.nate 네이트 우수 블로그 왕관이예요justi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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