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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입니다(엡 4:4-6)
할렐루야!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 기도를 가리켜 “그 울리는 소리는 단순하지만, 그러나 그 깊이와 넓이의 풍성함을 측량할 수가 없다”고 말했고, 멜랑히톤은 “이 기도보다 더 높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일찍이 들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20절을 보면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바로 여러분을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복음 사역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하는 그 순간까지는 아직 제자를 통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죽음을 앞둔 절박한 그 순간에도 우리를 생각하고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쁩니다.
무척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 자신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 큰 힘이 됩니다. 기도의 내용은 어떤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미워하는 사람을 놓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있고, 사랑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가장 급박한 순간에 우리를 기억하고 사랑하셔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도 날 위해 기도하는 이가 없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7:21-23절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됨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7:11절을 보면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나 우리를 위한 기도는 같습니다. 바로 ‘하나됨’을 위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에 기도해야 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등 위에 떨어진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입을 열어 제일 먼저 ‘하나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의 문제가 많으니 하나되는 것은 나중에 하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힘이 듭니다. 그리고 직장에 일이 많으면 역시 힘이 듭니다. 또 국가가 경제적인 문제를 겪어도 힘이 듭니다. 전쟁 가운데 있다면 더욱더 힘이 들겠지요. 그러나 그것들 보다 더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이 어려움을 겪는 진정한 이유는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풍족하다 할지라도 부부가 하나되지 못하고 형제간에 갈등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직장 생활이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사와의 관계가 힘들고 동료와의 갈등이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서로 돕고 하나가 되면 기근이나 홍수, 전쟁 등의 어려운 문제가 닥쳐와도 서로 같이 굶고, 적은 음식도 같이 나누면서 힘든 것은 견뎌나가기가 쉬워집니다. 그러나 서로 갈등하면 고통을 받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내적치유를 받을 때 보면 가난과 물질적 어려움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거의 모든 내적인 상처는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받아야 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는 아파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하나가 되자고 할 때 힘과 제도로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역사상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스탈린, 히틀러 등이 그런 시도를 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했을 때도 함께 번영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그들은 좋았겠지만 우리에게는 고통의 세월이었습니다. 힘에 의한 통합, 제도에 의한 통합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며 군대를 정비합니다. 왜냐하면 진정 하나되는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없이 하나가 되려고 했을 때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고, 바벨탑을 쌓았던 것이 인류가 지나온 발자국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성장하는 것은 발전이 아닙니다. 만약에 힘과 제도에 의해서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하나님은 벌써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모두 함께 간판을 내리고 하나님의 교회로 모이면 하나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사람들은 말하곤 합니다. 물론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것도 해보았습니다. 중세의 1천년 동안 교회가 그 일을 했습니다. ‘가톨릭’이라는 말이 ‘한 교회’, ‘우주적인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천년의 교회가 진정한 연합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복음과 하나님의 이름을 가렸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주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됨의 모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하나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정한 연합은 거듭남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 안에서 거듭난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일대 일로 만나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살아 있으면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주님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고 예수님이 살 때,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두가 하나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입니다” 생김새는 달라도, 하는 일은 달라도, 성품은 달라도, 배경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일곱 가지가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몸이 하나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머리가 없는 몸이 있을 수 없음같이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12:23절에 보면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라는 말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권속으로서의 우주적인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우주적인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뜻을 찾으며 행하려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교회를 이끄시는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믿음의 표준과 규칙 그리고 실천은 성경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하나라는 말은 세상에 보이는 교회가 하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 보이는 교회는 지금은 여럿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교회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어떤 물질적인 것이나 인간의 구조나 조직상의 하나가 아니라 서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초로 하여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된 것을 깊이 느낍니다. 우리는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 효성선교교회는 몸이 하나인 주님의 교회인 것을 굳게 믿으심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성령이 하나입니다.
헬라어의 ‘성령’이란 뜻은 ‘영’ 혹은 ‘호흡’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호흡이 끊어진 몸은 죽은 몸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의 생명이 코에 있다”고 했는데 호흡을 코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을 무엇으로 압니까? 산 사람은 호흡을 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숨을 내쉬는 일만 하고 거의 들이쉬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숨이 끊어지고 맙니다. 호흡을 해야 산소가 몸에 들어와 피를 새롭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도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 역사해서, 피를 새롭게 하는 것처럼 교회를 계속 새롭게 하고, 힘있게 하고 자라나게 합니다. 만일에 성령이 떠나시면 교회는 죽고 말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교회는 건물이 아무리 훌륭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활력이 넘칩니다. 생명이 넘칩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생생한 호흡은 그리스도의 영인 것입니다. 호흡이 몸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성령은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없는 교회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없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단지 어떤 집단이나 모임에 불과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교회가 생기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0명의 무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은 것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에게 임할 때,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상 교회의 탄생입니다. 이 땅 위의 교회는 성령이 임하면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 2: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기 전에는 흙으로 만든 몸뚱이뿐이었습니다. 생기가 코를 통해 들어갈 때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본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마른 뼈들에게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고 선포했을 때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이 임하시면 마른 뼈들도 살아납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살아나는 역사,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으로 하나 되지 않고 흩어질 때,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성령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을 때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날마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 효성선교교회가 새롭게 부흥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소망도 하나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아멘.
히브리서 6:18-20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모르는 불멸의 소망, 산 소망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서 2:13절에서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목표는 결국 하나입니다. 여기에 하나가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방법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입니다. 목표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에는 다 한 아버지 집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유명한 미국의 부흥사 D. L. 무디 목사님이 시카고에서 집회를 하는데 운동장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가 강단에 올라서서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고 합니다.
“베드로 선생님, 거기 하늘나라에 장로교인 몇 명이나 됩니까?” “장로교인은 없다.”
“그래요. 그러면 감리교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여기는 감리교인도 없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침례교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침례교인도 없다.”
“그러면, 거기는 도대체 누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는 회개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만이 있는 곳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계신 하나님의 나라에 장차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는 교파를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으로 서로가 다르다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다투고 시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하고만 얼굴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 싫어하던 사람과도 얼굴을 대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세상에서는 미운 사람 안 보고 지낼 수 있겠지만,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함께 볼 수밖에 없겠는데, 그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언제나 소망이 하나인 것을 기억하고 화평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 소망을 바라봄으로 이땅 위에 사는 동안 서로 섬기며, 서로 사랑하며,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주도 하나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아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교회를 주장하시는 주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그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시고, 하늘의 진리를 가르치시고,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언젠가는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9-10절에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날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교회가 가정이라면 그는 주인이십니다. 교회가 믿음의 학교와 같다면 그는 우리의 선생님이십니다. 교회가 큰 군대와 같다면 그는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교회가 신부라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우리에게 다른 주님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로마제국이 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는지 아십니까? 로마제국이 모든 나라를 점령할 때 그 나라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받아들였습니다. 황제 헤드니안은 로마 시내에 ‘판테온’(The Pantheon)이라 하는 굉장한 탑을 건설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모든 신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이 점령하는 나라의 신들을 판테온에다가 모두 병합을 시켰습니다. 쥬피터, 쥬노, 아르테미스, 오시루스, 비너스, 넵튠 같은 신도 다 거기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만은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여러 신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주후 155년 2월 23일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이 순교한 사건은 기독교 2천 년의 순교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폴리갑은 수많은 사람들이 운동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군중은 폴리갑을 처형하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중들은 외치기를 “로마신을 섬기지 않는 무신론자를 죽여라. 폴리갑을 죽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폴리갑아, 굳세게 남자답게 싸워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서머나의 총독은 폴리갑에게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로마 황제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라. 그리하면 너를 살려 주겠다.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은 총독에게 “내가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 왔으나 그 분은 단 한 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신 일이 없소. 나를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이신 주님을 욕할 수가 있겠소?”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나를 잠시 타다가 꺼져 버릴 불로 위협하고 있으나 그것은 당신이 영원한 형벌과 심판을 모르기 때문이오. 자, 지체 말고 어서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른 불에 휩싸여 장렬한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날 그는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오늘 순교자의 반열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는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요, 소망이 하나요, 주도 하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러분이 어떤 상황 속에 처한다할지라도, 주님을 모른다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는 그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나의 생명이십니다”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날마다 순교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믿음도 하나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내셨다가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의 승천과 재림을 믿습니다. 마지막 날의 심판을 믿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 시대 때 가장 용감하고 신체가 튼튼한 전사 40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황제의 투사”라고 불렀고,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경기하는 것을 보고 가장 건강하고 가장 용감한 투사들을 뽑아서 구성한 팀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결투할 때, 황제를 향해 손을 들고 외치기를 “우리 투사들은 황제를 위해 싸우겠습니다”라고 선서했답니다. 로마 역사상 가장 탁월한 투사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군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여, 마침내 네로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네로는 “베스파샨”이라는 친위대 백부장에게, 황제의 특명으로 그들을 색출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베스파샨은 로마 황실의 모든 군대를 다 집결시켜놓고 “너희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서라”고 하자 놀랍게도 그 40명의 “황제 투사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동시에 모두 앞으로 나와 꿋꿋한 자세로 섰습니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어서, 백부장이 더 놀랐습니다. 그래서 베스파샨 백부장은 그들을 설득하고 회유하며, 신앙을 포기하도록 협박까지 해보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릴 터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타일렀으나 그들의 신앙은 초지일관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백부장은 그들은 호수가로 데리고 가서, 옷을 다 벗기고는 얼음판 위에 서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옷을 벗은 체, 혹독히 추운 겨울 밤, 얼음판 위에 서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할 때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오, 그리스도시여. 우리 40명의 용사들은 당신을 위해 싸웁니다.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용감히 싸웁니다”
베스파샨이 밤새도록 모닥불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니까, 그 투사들의 노래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던 중 새벽이 되자, 한 사람이 그 혹독한 추위를 도저히 견뎌내지 못해, 신앙을 포기하고 불가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그 캄캄한 겨울 밤중에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데, “오, 그리스도시여 우리 39명의 용사들은 당신을 위해 싸웁니다.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용감히 싸웁니다”
그런데 로마 군대의 베스파샨이 그 배반자가 불가로 기어오는 것을 보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환한 빛이 호수 한 가운데로 비춰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누가 말한 일도 없는데, 백부장 베스파샨은 로마 장교의 헬멧과 군복을 벗어 던지고, 얼음판 위로 뛰어들면서 그들과 함께 찬양했습니다.
“오, 그리스도시여. 우리 40명의 용사들은 당신을 위해 싸웁니다.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용감히 싸웁니다”
그래서 그도 신앙의 투사들과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 혼자 믿음 생활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 믿음생활을 하면 힘들고 어려운 것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떨어져 나가면 아무리 좋은 신앙이라 할지라도 쉽게 시들어버립니다.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함께 모여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을 위하여 힘있게 살아감으로 우리 효성선교교회가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헌신하며, 함께 봉사하며, 또한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 격려하며, 서로 의지하며, 함께 믿음의 길을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걸어감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승리의 면류관을 모두 다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섯째, 세례도 하나입니다.
누가 어느 교파에서 세례를 받든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받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침례를 하는 데서는 세례 받는 사람의 몸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가 나오게 합니다. 우리는 머리에 물을 얹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장사지내는 것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옛사람, 육신에 속했던 사람, 마귀에게 종노릇하던 사람은 죽어 장사지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6:11절에는 세례의 의미를 자세히 말했습니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장사지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다시 살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 주시고 그리스도의 산 몸으로 하나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하나입니다. 물세례는 이 영광스러운 영적인 부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힘있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일곱째, 하나님 아버지도 한 분이십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분이 아니시고 단 한 분이십니다.
이사야 45:5-6절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5:22절에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6: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리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7:3).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일곱 가지 근거 위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아서 한 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말씀처럼 한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그 지체가 맡은 일도 다릅니다. 그러나 이 여러 다른 지체들이 한 데 모여 한 몸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꼭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 효성선교교회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하나됨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우리의 하나됨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심을 늘 생각하시고,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주님과 하나됨의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님과 하나됨으로, 우리 모두가 주님 사랑 안에서 하나되어, 주님이 우리 효성선교교회와 여러분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이, 아름답고 거룩한 열매로,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교회 안에 풍성하게 맺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하나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사랑으로 우리 모두가 서로 하나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소망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또한 주님이 허락하신 하나됨을 힘써 지키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