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그를 진단하고 몇 가지의 처방을 적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의사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그의 기도실에 아름다운 의사의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향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세 번 절하고 꽃과 향을 바칩니다. 그리고 앉아서 기도합니다. 의사가 적어준 처방을 꺼내어 매우 경건하게 "아침 두 알, 오후에 두 알, 저녁에도 두 알." 암송하기 시작합니다.
온 종일 아니 일생 동안 내내 그는 의사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을 암송합니다. 그러나 의사의 처방은 아직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의사의 처방에 대해서 더 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달려가서 묻습니다. "왜 당신은 이 약을 처방했습니까가? 이것이 나의 병을 낫게 할 것입니까?"
의사는 지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자 이것이 그대의 병이고 그대 병의 원인이다. 만약 내가 처방한 이 약을 먹으면 병은 자동적으로 사라진다."고 설명하고 그 사람은 매우 훌륭하고 그의 처방은 매우 적절한 방법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나의 의사가 가장 훌륭하다. 다른 의사들은 필요 없다."고 이웃들에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그에게 무슨 득이 있습니까? 평생을 주장한다해도 이것이 결코 그를 돕지 못합니다. 그가 약을 먹을 때만 그 사람은 고통이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사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시며 우리의 문제 곧 아픔을 정확하게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처방전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이 좋고 위대한 분이라고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예수님의 선함을 주장하면서 싸운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병을 치료하려는 환자는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약을 먹으라면 먹고 조심하라고 하면 조심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해야 그가 병에서 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고 우리의 구원자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그분을 찬양하는 것만도 아니고 그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만도 아니고 오직 그분의 말씀을 내가 먹어야 합니다. 그것을 먹고 그 예수님이 내 삶 속에 들어와 나를 살게 할때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변화가 되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일곱 주 째 산상수훈 팔 복을 듣고 있습니다. 이처럼 멋지고 정확하고 실제적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이 말씀이 멋있다고만 하겠습니까? 참 좋은 말씀이라고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노벨 평화상이라는 상이 있습니다. 이 상을 받으면 받는 사람과 그 나라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진 상입니다. 1901년부터 지금까지 80여명의 사람과 단체 그들이 평화를 위해서 일한 공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01년 이래 이 지구에는 사상 유례없는 전쟁이 끊임이 없었고 수많은 희생이 치루어졌습니다. 또한 국제 연맹이니 국제 연합이니 하는 기구를 만들어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모여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문을 볼 때마다 전쟁으로 폭동으로 몇 명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왜 그렇게 실패합니까?
그것에 대한 답은 단 한 가지 뿐 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것도 아니요 경제적인 것도 아니요 사회적인 것도 아닙니다. 신학적이요 교리적인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은 이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으며,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기까지 그들의 표면에 변화와 조작을 일으킬 수 있어도 사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문제의 원인이 시내물의 근원인 샘에 있을 때 물을 깨끗하기 위해서 화약품을 집어 넣는다면 시간과 돈의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원인으로 향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원인에 있습니다. 사람이 지금 상태 그대로 있는 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여도 달라질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진정 평화를 이루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세상적인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문제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으면 새 사람, 새 마음이 아니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악한 생각과 살인, 시기, 질투, 악의가 있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를 위한 훌륭한 조약을 체결합니다. 전쟁을 종식시켜 줄 것처럼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이익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어떠한 조약으로 이 세상의 평화를 이룬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교리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마음 속에 있습니다. 문제가 마음에 있는 한 표면을 바꾼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본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세계는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두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화평케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본래 그런 성품을 타고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화평케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말썽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안이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화평케 하려는 사람은 공정과 정의감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공평치 못합니다. 만일 이런 식으로 평화를 이루려 했다면 악한 자는 더 악해 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유화정책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부정과 불의 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피한다고 해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의 회피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화평케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평화로운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을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가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평화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그는 평화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룹과 그룹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할 필요를 적극적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평케 해야 한다는 사실에 궁극적으로 최종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무엇으로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두통거리를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새 성품을 가져야 함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새 마음, 깨끗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시기와 질투를 가진 사람들은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 앞서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에 앞서 자아와 자기 이익과 자기 관심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야 합니다. 그 까닭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 관하여 생각하거나 자신을 감쌀 때 여러분 적절하게 화평케 할 수 없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절대적인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이래야만 쌍방 간에 화해를 시킬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가져오는 결과에 비추어서만 만사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어떤 이익을 주는 가를 따져서 행동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은 누구나 만사를 자기 중심적 관점에서 봅니다. '이것이 내게 공평한가? 나는 내 권리와 몫을 받고 있는가?, 이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관심을 가집니다. 항상 싸움과 분쟁으로 이끄는 것은 바로 이러한 행동과 생각 때문이며 이것은 화평케 하는 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합니까?
1.그는 자신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비참하고 비열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래서 아무것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권리나 특권을 받을 가치도 없으며 그럴만한 주제도 못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마음이 가난한 자였고 애통하는 자였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였다면 자신의 어떤 요구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어떻게 되든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에 대해서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내가 기독교인인가 아닌가를 시험할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을 미워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이 세상에서)는 자시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이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입니까?'라고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2.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그 속에 두 사람, 옛 사람과 새 사람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옛 사람을 미워하며 그에게 '가만있어! 상관 마! 나는 너와 절교다'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은 새 생활관을 가집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새 견해를 가짐을 의미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그는 그들은 객관적으로 보며 성경에 가르침에 비추어 그들을 보려고 애를 씁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공격적이며 까다로울 때 그들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는 '그들이 어째서 저 모양이지?'라고 묻지 않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악한 자들을 보며 그들 속에 역사 하는 악한 영들을 보며 그들이 지옥을 향하여 가고 있음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며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악한 자들을 그렇게 보는 순간 그는 비로소 그를 도울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며 그와 화해하게 됩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3.화평케 하는 자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오직 한가지 관심만을 가지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도 이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삶의 유일한 관심은 자기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4.화평케 하는 자는 자기를 낮출 준비가 되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악행과 불의를 당할 준비마저 되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사람들에게 그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 때문에 고난이 오더라도 감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상은 이론입니다. 실제는 어떠해야 합니까? 항상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입니다. 여러분이 평화를 이루는 자인지 아닌지는 바로 실제에서 드러납니다. 화평이 실제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1.입을 다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혀를 제어할 수 있다면 이세상의 불화는 훨씬 적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하였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곧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리고 대꾸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 대꾸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다른 사람이 그에게 한 불편한 말을 해 준다면 여러분은 그의 참 친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가짜 우정입니다. 더구나 무가치하고 불친절한 말을 반복하는 것은 가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혀와 입술을 억제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 는 자는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화평을 위해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겠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이러한 말에 따라서 말하면 안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해서 자꾸 토론하는 것 좋지 않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첫걸음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생각하는 단계-우리는 어떤 상황을 보든지 그것을 항상 복음의 빛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분쟁상황을 보면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상황을 받아드려 복음의 문맥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으로 인해 조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교회 밖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평화는 이룩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적극적인 자세가 되어 평화를 이룰 수단과 방법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네 원수가 주리면 그에게 먹이라'는 성경의 힘찬 말씀을 기억하십니다.
3.기도하는 단계-여러분의 원수가 여러분에게 무서운 말을 한다고 합시다. 그 때 여러분은 대꾸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혀를 억제하였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의 속에 있는 마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대꾸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그를 불쌍히 여겨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고 그가 사탄에게 속고 있음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4.행동하는 단계-그는 배가 고프며 여러 가지로 그에게 잘못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그를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함을 말합니다. 자신을 낮추어서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말하고 사과하고 친절히 하려고 애쓰고 여러분이 화평을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일에 선수를 쳐야 합니다.
5.감동을 주는 단계-내가 이기심 없이 사랑으로 평화를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자신들의 잘못 행하는 행동에 정죄 감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자신과 그들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독교인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컬음을 받는다는 말은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소유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평화의 하나님'이란 말씀을 두번 말했고 그의 서신을 읽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주시는 평화를 받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세상의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속성에서 거룩하며 공의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절대적이시지만 평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어디에서 옵니까? 인간, 죄, 사탄에게서 옵니다. 불화가 이렇게 해서 세상에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위엄을 지키거나 점잔을 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이 무엇인가 먼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 아들 속에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모습이 이러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의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의 반복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자기의 권리와 체면을 세웠다면 온 인류는 절대 파멸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그가 평화의 하나님이시며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화평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닮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평강의 왕으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가 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가 오신 것은 그가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화평을 이루셨습니까?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그의 아들의 십자가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과 화평하며, 우리 마음 속에 평안을 누리며, 우리가 서로 화평하기 위해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우리와 이웃사이에 평화를 만드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즉 화평케 하는 자를 이와 같아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신성과 영원한 특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했습니다. 어째서 입니까? 그는 자기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마음을 품으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 ' 각각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남의 일도 돌보아 주시오.'이것이 신약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은 자아와 절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그가 여러분을 위해 죽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아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낮추고 여러분은 '죄를 지은 신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 거짓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욕을 당하셨으나 욕으로 갚으시지 않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지 않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을 따라야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되고 영광스런 진리를 볼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으며 우리를 평화의 모방자와 다시 생산하는 자로 만드시며 '평강의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드십니다.
첫댓글다른 생각하다가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함을 아쉬웠지만 나를 위한 공간이 아름답게 있으므로 행복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위하여 주님 닮아가는 모습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내 입술이 침묵할 수있는 연습을 하며 ... 기도하며....낮아지고 낮아져서 섬기며...사랑하며..
첫댓글 다른 생각하다가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함을 아쉬웠지만 나를 위한 공간이 아름답게 있으므로 행복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위하여 주님 닮아가는 모습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내 입술이 침묵할 수있는 연습을 하며 ... 기도하며....낮아지고 낮아져서 섬기며...사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