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권규리. 제공 권오진.
보름 전, 전남 목포에 사는 초 2학년 두 자녀를 둔 준형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2주 후에 제주도로 여행을 갈 예정인데 도움을 받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일정이 확정되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 8시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늘 정오에 배를 타고 출발해서 일요일 오후에 귀가하려고 합니다. 아이들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이 질문에 3분 동안 정리를 해주었더니 ‘하하하, 그렇게 쉬운 것을 몰랐네요’라며 웃는다.
이야기의 핵심은 도우미 놀이법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준형이네는 2학년 지아와 준형이 이란성 쌍둥이를 두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우선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는 동안 두 아이에게 연필과 종이를 준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가고 싶은 곳, 놀고 싶은 곳 5개를 적게 한다. 모두 적었다면 다시 순위를 매기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두 아이가 적은 5개를 합치면 10개가 된다. 이것을 두 아이가 상의해서 순위를 정하게 한다. 아빠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초2 아이라면 제주도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배에 비치된 제주도 안내 책자를 주면서 참고하라고 하면 된다. 아마 거기에는 50가지 이상의 볼거리와 놀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리플렛의 정보를 참고하여 결정할 것이며, 아빠는 결정된 그곳을 가면 된다.
» 무인도 체험에 참여했던 지아 준형네 가족. 사진 권오진 제공.
금요일 정오에 떠나서 일요일 정오에 출발한다면 사실, 시간이 많지 않다. 토요일에 2곳 정도를 가는 스케쥴이다. 만일, 두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곳을 가자고 주장을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아빠는 고민하거나 머리가 아플 일이 없다. 여행에 목적지를 아이들이 결정하고, 아빠는 그곳을 가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과의 놀이란 아이들이 행복해야 한다. 아빠는 그저 도우미 역할이면 충분하다. 이것이 도우미 양육법의 핵심이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이유도 도우미 아빠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2달 전이면 두 아이를 부른다. 그리고 올해 여름방학에는 어디에 가면 좋을지 다음 주에 가족회의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가고 싶은 곳, 3곳을 적어오라고 한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통하여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준비한다. 가족회의는 단순하다. 아이들이 적은 것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말하게 한다. 두 아이가 3개씩 적었으니 6개다. 발표가 끝나면 두 아이에게 조정할 시간을 준다. 조금 후에 결론이 난다. 그러면 올 여름방학 때 놀러 가는 곳은 바로 그곳이 된다. 나는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장소를 스스로 찾게 하고 결정하게 한다. 이것이 도우미 아빠의 방식이다.
집에서의 놀이도 마찬가지다. 아빠가 먼저 무엇을 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아들에게 다가가서 ‘아들, 오늘 무슨 놀이 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서너 가지를 말한다. 그러면 다시 꼭 하고 싶은 놀이를 결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가 결정하면 그 놀이를 한다. 아들이 초2가 되었을 때, 베란다에 놀이창고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20가지 정도의 놀이기구를 비치했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면 놀이창고에서 놀이기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날 놀이는 그것으로 했다.
(*참고 : 놀이의 달인 베란다 비밀창고)
그런데 많은 아빠들이 아이와의 놀이를 힘들어한다. 그 이유는 가짜놀이를 하기 때문이며, 특히 ‘아빠 주도적’이며, 아빠가 놀이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아이가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한다. 그러면 아빠는 놀이박스를 가져와서 바닥에 쏟아놓는다. 그리고 아빠가 지정을 하며 그것으로 놀라고 한다. 10분 정도가 지나면 아빠가 그 놀이는 그만하고 다른 놀이를 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분명히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없고 기계처럼 움직인다. 아빠는 곁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하품이 나고 그 자체도 힘이 든다. 이건 놀이가 아니라 심리적인 고문과도 같다. 기본적으로 놀이가 되려면 교감이 형성되고,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또한 아이 주도적이어야 한다. 아이가 ‘놀이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위의 아빠가 재미있게 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아이 방에 있는 놀이박스를 아이와 함께 들면서 거실로 가지고 나온다. 이 때, 함께 들고 이동하면서 ‘영차영차’를 외쳐준다. 놀이의 충분한 준비과정이 된다. 그 다음 아이에게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냐고 물어본다. 만일, 아이가 블럭을 선택했다면 그 것으로 놀게 한다. 그리고 아빠가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며 곁에 있는다. 이제 블럭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이 때, 아빠도 아이 곁에서 블록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자체로 아이는 아빠와 함께 놀이를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아이가 만드는 것이 뻔히 자동차인줄 알면서도 무엇을 만드는냐, 그리고 각종 성능에 대하여 물어본다. 아빠의 관심에 아이는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동차가 완성되면 기념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앨범에 스크랩을 해준다. 이렇게 아이의 작품을 계속 스크랩을 해준다면 아이에게 더 많은 자신감과 성취감을 들게 한다.
그런데 도우미아빠를 왜곡시키는 사례도 있다. 아이가 5살이다. 그런데 식사 때가 되면 아이에게 ‘지금 저녁시간인데 밥을 먹을래, 안먹을래?’라고 묻는다. 이건 도우미아빠가 아니다. 아이에게 식사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이기에, 당연히 먹어야 한다. 오히려 식사 시간을 즐겁게 만들면 아이가 밥도 잘 먹는다.
도우미 양육법에는 몇 가지 핵심이 있다.
1) 아이에게 청유형 표현을 사용한다.
2)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3) 결정된 것을 할 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4) 놀이의 주도권은 아이가 쥐어야 한다.
5) 아이가 놀 때, 곁에 있는다.
6) 아이가 하는 것을 곁에서 따라하면 아이가 더욱 좋아한다.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24개월이면 스스로 하려는 마음이 무르익으며, 36개월이 되면 자기주도적이 된다. 바로 놀이의 주도권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결정은 부모가 하려고 하며, 아이들을 끌고 가려고 한다. 그 결과 아이가 떼를 쓰면서 충돌과 반목이 자주 발생하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런 태도는 아이의 성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격을 존중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동안 우리는 부모의 관점에서 양육을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했기에 주로, 아이를 끌고가는 양육의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도우미 양육법이란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보다 한발짝 뒤에서 아이를 쫓아가는 형태이다. 아이는 아빠가 바로 뒤에 있음으로서 안정감을 가질 수 있고, 아빠는 아이의 뒤를 슬슬 걸어가면서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자세를 취하면 된다. 그래서 도우미 양육법을 이해하면 양육이 즐겁게 된다.
권오진 2018. 07.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