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 9. 13. 23:14
■점필재선생의 초배 하산조씨(창녕조씨) 묘단소.
▲점필재선생의 초배 하산조씨(지금의 창녕조씨) 단소 입구
소재지 :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뒷산 1978년에 설단함.
▲단소 전경
▲하산조씨(夏山曺氏)는 김천현감 조계문(曺繼門)의 딸로 매계(梅溪) 조위(曺偉)와는 남매지간이다.
▲증 정경부인(贈 貞敬夫人)이다./기사 1689년(숙종 15)에 정경부인으로 증직됨.
(기사 1689년(숙종 15)에 7대손 시락(是洛)이 상소하여 증직(贈職)과 복시(復諡)의 일을 청하였고, 남 상공 용익(南相公龍翼)이 예조 판서로서 입계(入啓)하여 찬성(贊成)을 추증할 것을 청하니, 상이 특별히 영의정(領議政)을 추증하고 복시는 미처 못했었다)
하산조씨(夏山曺氏)는 점필재선생이 21세때 혼인하여, 3남 2녀를 낳았는데, 큰아들 김곤(金緄)은 해평인(海平人)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正六品) 김맹성(金孟性)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일찍 죽었고, 그 다음은 모두 요사(夭死) 하였다. 장녀는 생원(生員) 류세미(柳世湄)에게 시집가고, 차녀는 생원(生員) 이핵(李翮)에게 시집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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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선생의 계배(繼配) 남평문씨(南平文氏) 묘소.
●김종직의 늦장가
김종직은 늘 삶이 곤혹스러웠지만 그래도 위안은 있었다. 쉰다섯에 새 장가를 든 것이다.
신부는 합천 야로현에 상당한 전장(田莊,자기 소유 경작지)을 소유한 문씨가(文氏家)의 열 여덟 살 규수였다.
그동안 자식도 없는 올아비 생활이 힘들던 차에 다행이었디.
"서울에 와서는 자못 외로워서 환어(鰥魚) 처럼 밤잠을 이루지 못하네" 하였다. 환어는 표정이 슬픈 물고기를 말한다. 남산 아래 집을 얻어면서 지은 『대구부사 임수창(林壽昌,1426~1501)의 집으로 이사하다.』에 나온다. 여기에서 김종직은 자주 집을 옮겨다니는 셋집 생활의 불편도 털어놓았다. 이렇게 되어있다.
성중(城中)에 있는 몇몇 집들은
성중기옥노(城中畿屋盧) / 다 내가 머물러 살았던 집인데